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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5과

 

하나님의 임재  

 

학습구절: 시 84편 1 -12절

성경진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는 참 안전을 찾을 수 있다.

주요교리: 종교의 자유

시민 정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위배되지 않는 한 정부의 모든 일에 충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암송구절: 시 84편 12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LORD Almighty, blessed is the one who trusts in you.

 

시작하는 글:

마음을 감동시키는 장소들이 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병사들이 묻혀있는 묘지의 기념비 앞에 서게 되면 마음에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 

부부가 약혼을 한 곳이나 신혼 여행을 갔던 장소를 다시 방문하게 되면, 서로에 대한 사랑이 되살아날 수 있다.

어떤 한 장소를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그곳에서 일어난 일과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뜻이 되고 있다.

시 84편은 시편기자가 예루살렘에있는 성전을 방문했을 때 혹은 그곳에서 여호와를 섬겼을 때 느꼈던 감정을 되새기는 노래이다.

성스러운 건물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임재를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성전을 하나님의 집, 즉 하나님이 지상에서 거하시는 장소로 생각하였다.

시편 기자의 성전에서의 체험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강한 갈망을 불러 일으켰다.

성전에서 떠나있을 때는 그곳에 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성전에 있을 때에는 그는 거기에 머물기를 갈망했다.

그는 자신의 행복이 하나님의 임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기도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할 때 우리는 참 안전을 누릴 수 있다.

 

배경설명:

84편

시 84편에 붙여진 표제(標題)는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인도자”로 번역된 단어는 시편 전체에 55번이나 나오고 있는데, 그 말은 “노래” 혹은 찬양대를 인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깃딧에 맞춘 노래”라는 말의 “깃딧”이 무엇을 뜻하느냐는 분명치가 않다.

그 용어가 붙어있는 시편들은 모두 음조가 기쁨에 차있으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들이다 (8; 81; 84). 

그 같은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일종의 음악적인 용어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깃딧에 맞춘”이라는 말에서 “깃딧”은 일종의 악기가 되었을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악기였느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로, 가드는 골리앗의 고향으로, 블레셋 성읍의 이름이었다 (수 11: 22; 삼상 5: 8; 17: 4).

그러므로, 어떤 성경 해석자들은 “깃딧”이 “가드”에서 파생된 단어로, 블레셋 사람들이 보통 사용하던 종류의 악기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던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 틈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특히 음악가였던 그는 그 악기를 잘 알고 있었을 수 있다 (삼상 21: 10 -15).

둘째로, 가드(gat)라는 히브리어는 포도즙 짜는 기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기딧”은 포도 추수를 축하하는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한 악기였을 수 있다.  

시 84편은 또한 “고라 자손”을 언급하고 있는 표제가 달린 11개 시편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시 42: 44 -49; 84 -85; 87 -88).

어떤 성경해석자들은 고라 가족과 관련된 시편들은 본래 별도의 그룹으로 되어있었는데, 후에 다른 그룹들과 합쳐진 것으로 제안해 오고 있다.

고라는 레위의 증손자였는데, 하나님께서 성막을 관리하며 봉사하는 일을 가지고 제사장들을 도울 지파를 지정하셨을 때 레위는 그같이 세움을 받은

지파의 족장이었다 (출 38: 21; 민 1: 47 -53; 18: 21 -29).

고라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있을 동안에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한 일이 있었다 (민 16장).

그렇지만, 민수기 26장 9 -11절을 보면, 고라의 아들들은 그 반란에 개입하지 않았다.

후에 고라의 자손들은 레위 사람들 중에서 뛰어난 찬양자들이 되었다 (대하 20: 19).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고라의 자손들은 성전에서 문지기가 되었다 (대상 9: 19 -21).

이 가족은 분명히 이스라엘에서, 특별히 백성의 예배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행하였다.

그러므로, "고라 자손의 시”라는 말은 그 시가 고라 가문에 속한 어떤 사람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학습구절연구:

성전에 대한 열정 (시 84편 1 -4절)  

84: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84: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84: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84: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시편기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기쁨을 그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인해,

어떤 성경해석자들은 시편기자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가 고라 자손에 의해 지어졌고, 또 고라 자손들이 성전에서 봉사하고 있던 사람들인 것을 생각하면,

이 시가 항상 성전에 있던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매일 성전에 있었지만. 그같이 특별한 장소에 있는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더 큰 헌신 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84편 1절“사랑스러운”이라는 말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사랑스러운 것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가 사용될 때마다, 이 시편을 제외하고는,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가리키고 있다 (신 33: 12; 시 60: 5; 108: 7; 127: 2; 사 5: 1; 렘 11: 15).

따라서, 시편 기자는 감동적인 이 단어를 택하여 예배의 장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였다.

분명히, 그는 성전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시편기자는 성전을 “주의 장막”으로 불렀다.

인간이 집에 사는 것처럼 건물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전 건축이 완성되었을 때,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고 하였다 (왕상 8: 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곧 이어서 하나님께 성전에서 드려지는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구하였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성전을 건축하였고, 이제 그것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로 봉헌하고 있었다 (왕상 8: 28 -30).

일찍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기를 위해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이 백성들 “중에 거할 성소”가 되었고 (출 25: 8),

하나님은 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 위에서 그의 백성과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출 25: 21 -22).

하나님은 동시에 모든 곳에 계시지만,

그의 백성들이 특정한 장소에 모여 그를 찾으며 예배할 때 거기서 그들과 만나시며 자신을 그들에게 계시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새 언약의 시대에서는, 하나님은 특정한 건물에서 그의 백성들과 만나시겠다고 규정하지 않으셨다.

대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그의 성전으로 부르시고 있다 (고전 3: 16 -17; 6: 19; 고후 6: 16).

오늘날 하나님이 거하시는 특별한 장소는 어디일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인 우리들이다.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권속” 혹은 “주 안에서 성전”이라는 생생한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하나가 되고 있음을 묘사하였다 (엡 2: 19 -22).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믿는 각자들과 그리스도의 통일 된 몸인 교회가 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호칭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권과 권세에 주의를 환기시켜준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개인적인 이름이다.

그 것은 군대를 뜻하는 군사용어와 합쳐져 “만군의 여호와”라는 합성용어가 되었다.   

이 호칭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대의 진정한 지휘관이 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똑같이 천사군대도 명령하신 것을 즉시 인정하였다.

후에 이 단어는 또한 “하늘”이라는 말과 결합되어 천체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나타내는 호칭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명령하신다.

인간들과 천사들 그리고 심지어 생명이 없는 물체들까지도 복종해야 한다.

84편 2절 – 시편기자는 “사모하여 쇠약함이여”라는 두 개의 강한 동사를 사용하여 자신이 성전에 있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묘사하였다.

본문의 “사모하다”라는 말은 야곱이 아버지인 이삭을 20여년 동안 보지 못했을 때 (창 31: 30),

그가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한 단어와 같다.

쇠약함이여”라는 말은 ‘다 써버리다’ 혹은 ‘끝이 나다’라는 뜻을 전해주고 있다.

시편기자는 분명히 성전에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느꼈다.

여호와의 궁정”은 성전을 둘러싸고 있던 광장들과 행각들이 있던 장소가 되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과 예배하러 그 지역에 모여있는 사람들 앞에 있는 것을 사랑하였다.

그는 건물이나 전통들, 혹은 성전에 있었던 행복한 추억을 사랑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고 그를 예배하는 것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궁정을 사모하였다.

84편 3 -4절 - 시편 기자는 새들이 성전 경내에서 날아다니거나, 앉기도 하며, 또한 둥지를 짓는 것을 보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 새들이야 말로 모든 새들 중에 가장 축복받은 새라는 생각이 그에게 들었다.

그 새들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신 곳인,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시편 기자가 참새와 제비를 특별히 골라 언급한 것은 성전 인근 지역에서 그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 같은 종류의 새들에게 갖고 있던 특별한 의미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새는 아주 작고 흔하여, 가치가 별로 없었다.

예수님은 참새들이 당시 로마의 가장 낮은 화폐 단위인 “한 앗사리온” 혹은 “두 앗사리온”에 팔린다고 하셨다 마 10: 29; 눅 12: 6).

동물들 중에 가장 낮은 것조차 하나님의 집에 오도록 환영을 받고 거기에다 둥지를 틀므로 특별한 지위를 부여 받았다.

잠언은 참새의 특징은 계속 떠도는 것으로 그리고 제비의 특징은 계속 날아다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잠 26: 2).

그러므로 제비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그들이 계속 움직이는 것을 지켜 보기만해도 지쳐버린다.

그런데, 그 같은 제비들조차도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앉아있어야 한다.

성전 경내에서 거하는 제비들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처럼, 복이 있다고 시편기자는 선언하였다.

시편 기자는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했는데, 그 말은 성전에서 섬기고 있던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을 가리켜 한 말이 될 수도 있다.

살다” 혹은 “거하다”라로 번역되고 있는 용어는 성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리키는 시적인 과장표현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시점에서 최소한 몇 사람이 성전에 연결되어 있는 큰 방에 살았던 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느 13: 4 -9).

이 구절의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시 1편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묘사한 것과 같은 말이 되고 있다.

 

우선으로 삼아야 될 일 (시 84편 5 -7절)

84: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84: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84: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4편 5절 –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축복된 삶을 묘사하는 말이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 3 -10절에서 같은 말을 사용하셨다.

4절에서 시편기자는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하였다.

5절에서 그는 “주께 힘을 얻고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힘을 잃거나 약해질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어디에서 힘을 얻으려고 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 우리 자신, 취미, 또는 일에서 힘을 구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술이나 마약 같은 화학물질에 의존하여 힘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주께 힘을 얻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라는 말은 성전으로 가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 말에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해 성전에 가고 싶어하는 간절한 염원과 그같이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은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84편 6 -7절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그같이 가는 길이 어렵고 힘들어서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도 하나님은 “많은 샘들”과 “이른 비”

복을 채워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그 말은 순례자들이 그들의 믿음과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 앞에 서려는 간절한 염원을 통하여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7절의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라는 말은 긴 여정이 순례자들을 약하게 만들지 않은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나아가다”는 “걸어가다”라는 말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순례자들은 그들의 목적지에 더 가까이 걸어감에 따라 힘을 더 얻었다.

그들 각자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을 생각하면, 기운이 나고 힘이 생겼다.

시온”은 본래 예루살렘 성읍이 서 있는 산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시편 책에서 그 말은 대개의 경우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가리켰다.

후에 그 이름은 또한 마지막 때에 메시야가 나타나실 곳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가리키게 되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시 84편 8 -9절)  

84: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84: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84편 8절 – “내 기도를 들으소서”라는 말은 시편 기자의 소원이 이루어 지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방법이 되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렀는데, 그것은 보통 “이스라엘의 하나님” 대신으로 부르는 방법이 되고 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고, 그는 종종 이스라엘로 불려지고 있다 (창 32: 27 -28).

9절에서 시편 기자는 왕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는 왕을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로 불렀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 중의 하나가 왕으로, 그는 왕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의 세움을 받은 것을 확증하는 의식의 일환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사울과 다윗은 여러 번에 걸쳐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불려지고 있다 (삼상 24: 6; 26: 9; 삼하 1: 14, 16; 19: 21).

기도는 바른 예배의 일부가 되고 있다.

시편기자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딤전 2: 1 -2).

하나님은 권세를 가진 사람들을 인도하시며(잠 21: 1), 그의 백성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요 14: 13 -14; 15: 7; 요일 5: 14 -15).    

 

하나님의 임재 (시 84편 10 -12)

84: 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84: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라

84: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84편 10절 -시편 기자는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를 강조하기 위해 두 가지 대조법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그는 “주의 궁중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이라는 말로, 성전에서의 하루를 다른 곳에서의 천 날에다 대조시켰다.

예배의 장소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다른 곳에 있으며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보다 얼마나 더 가치가 있으며 소중한 것인가?

시편 기자에게 그것은 천 배나 더 가치 있는 일이 되고 있다.

시편 기자는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장소에서의 삼 년 동안 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에서의 하루를 더 귀하게 여겼다.

둘째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문에 서 있는 것을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에다 대조시켰다.

고라의 자손들은 성전 문지기로 섬겼다.

문지기로 섬기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 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했고 때로는 추위나 비를 감수해야 되었다.

대조적으로, 장막에 사는 것은 편안했다.

그런데도, 시편기자는 성전의 문지기가 되는 것을 선호하였다.

그는 분명히 예배의 장소를 사랑하였다.

84편 11 -12절 – 무엇 때문에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궁정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고 사랑했는가?

만일 우리가 성전 건물이나 주변 궁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좋아했기 때문에 시편기자가 하나님의 전을 귀중하게 여겼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편기자를 오해한 것이다.

시편기자는 성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성전을 귀중하게 여겼다.

11절에서 시편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라고 했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유일하게 “”로 불려지고 있는 곳이 되고 있다.

비슷한 것으로는,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부르셨다(요 8: 12).

하나님은 우리 삶의 빛으로 비추어 주시며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

에베소서 6장 16절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인 우리들에게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로 부터 지켜주는 “믿음의 방패”를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편기자는 또한 하나님을 “은혜와 영화”를 주시는 분으로 찬양하였다.

만일 사람들이 은혜와 용서가 필요하다면, 그들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만이 그같이 살게 해 주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예배에 충실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많은 즐거움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따름으로 좋은 것을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이는 여호와께서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기 때문이다.

시편기자는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는 말로, 그가 4절과 5절에서 사용한 “복이 있나니”라는 주제로 돌아가서 그의 시편을 끝맺었다. 

예배의 장소나 거기서 예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과 기쁨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말씀의 적용:

  •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어떤 분이신지를 알 때 그를 열정적으로 예배해야 한다.
  • 하나님은 자기를 예배하려는 사람들에게 삶의 힘을 주신다.
  • 믿는 자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지도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인재에 대해 예배와 찬양으로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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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하나로 연합되다 : 2016년 3월 20일 주일 장년성경 연구 - 제 3과 사도행전 공부 1 강호길 2016.03.13 10694
284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다 - 제 10과 - 2019년 2월 3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7장 5 -11, 19 -27절 강호길 2019.01.27 97
283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 제 1과 - 2019년 12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9장 15 -23절 강호길 2019.11.23 215
282 하나님이 설계하신 지혜의 삶 - 제 5과 - 2020년 7월 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잠언 5장 3 -11, 15 -18절 강호길 2020.06.28 119
281 하나님이 부르실 때 - 2015년 10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7과 창세기 공부 1 Hokil 2015.10.19 364
280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것은? - 제 3과 - 2021년 3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8장 9 -17절 강호길 2021.03.20 94
279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음 - 2015년 9월 13일 주일 장년 성경공부 교사용 창세기 제 2과 Hokil 2015.10.11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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