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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6과

 

성실하게 행하라

 

학습구절: 사도행전 4장 36 -37; 5장 1 -11

 

성경진리: 

믿는 자들은 교회 안에서의 범죄를 심각하게 취급해야 한다.

 

핵심교리:  청지기 직분

하나님은,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모든 축복의 원천이 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그의 뜻에 따라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잘 관리할 책임이 있다.

 

암송구절:  사도행전 4장 33

사도들이 권능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은혜를 받아

With great power the apostles continued to testify to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Jesus,

and much grace was upon them all.

 

 

시작하는 글:

예수님은 그의 교회를 그에게 순종하는 것과 그의 사명을 성취하기를 힘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게 계획하셨다.

그렇다고, 교회가 완전한 성인(聖人)들의 집합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한 신자들이라도 자신들이 지키겠다고 약속한 미덕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성숙한 제자의 한 가지 표는 믿는 자들은 세상이나 육체 혹은 사탄과 영적 싸움을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신자는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려는 끊임없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교회는 죄에 빠진 신자들을 맞서서, 그들의 죄를 꾸짖고, 회개하게 하며, 회복시켜 줄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교회는 결코 거짓되거나 비난 받을만한 행동을 묵인하거나 무심이라도 시인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회중의 성실성을 손상시키는 행동들은 처리되어야 한다.

죄를 묵인하거나 시인하는 것은 전체 회중의 건강을 해치는 영적 암이 자라나게 허용하는 일이 된다. 

 

본문배경설명:

 

예루살렘 교회가 직면한 최초의 문제는 교회 밖으로부터의 적대였다 (행 4: 1 -22).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의 핍박은 믿는 자들의 결의를 강하게 하였고 교회내의 일치감을 촉진시켰다 (4: 23 -37).

핍박은 종종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정화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핍박을 받게 되면, 사소한 의견차이나 문제들은 없어져 버리고 만다.

또한 핍박의 위협이 오면, 교회는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고 도와달라고 기도하게 한다.

베드로와 요한의 용기 있는 말과 행동은 교회의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켜 그들의 본을 따라 행하게 하였다.

믿는 자들이 핍박을 용기 있게 믿음으로 잘 이겨낼 때, 그것은 목숨까지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믿음의 본질을 나타내며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믿는 복음을 살펴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도행전 5장은 독자들에게 교회에 생긴 다른 종류의 문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사도행전 2 -3장에서는 교회 내의 친교에 어떤 문제도 기록되지 않고 있다.

믿는 자들은 하나가 되었고 숫자적으로도 급성장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성령님의 인도로 한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한 것을 보게 된다 (4: 31 -35).

그러나 사도행전 5장에서, 신앙공동체는 교회내의 교인들의 죄악 된 행동으로 인해 위협을 받게 되었다.

교회는 외부의 적대로부터 위험이 올 것으로는 기대했지만, 안으로부터의 속이는 일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예기치 않은 내부의 위협은 사도들과 교인들로 하여금 절절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결의를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초대 교회의 복음증거와 성실성은 크게 손상을 입기 때문이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예루살렘 교회의 두 교인이 행한 사악한 일은 초대교회의 진정한 영웅이었던 바나바라는 교인이 아낌 없이 베푼 뛰어난 행동

직후에 일어났다.   

희생 없이 칭찬을 받으려는 욕심에서 두 사람은 성실성을 잃게 되었다.

그들의 부정직은 거짓말과 복합적인 것이 되었다.

성령님은 그들의 부정직과 거짓을 심판으로 대응하셔서, 하나님은 모든 교인들에게 성실함을 요구하신다는 멧시지를 교회에 전하셨다.

 

학습구절 연구

성실한 본을 보인 사람:  바나바 (사도행전 4장 36 -37절)

4: 36    구브로에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4: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앞에 두니라

 

4장 36: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한 인물을 간단하고도 특색 있게 소개하였다.

이 경우에, 그는 “요셉”이라는 인물로, “구브로(섬)에서 레위족 사람”이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은 레위지파에서 나왔는데, 요셉이 제사장으로 섬긴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암시도 성경에 없다.

당시에 그는 예루살렘에서 살았는데, 사도들로부터 “바나바”라는 이름을 얻었다.

누가는 그 이름을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였다.

예수님은 “보혜사”로 번역된 같은 헬라어를 사용하여 그가 떠나신 후 믿는 자들을 돕기 위해 오실 성령님의 역할을 표현하셨다 (요 16: 7).

문자적으로 그 단어는 도와줄 목적으로 “다른 사람 곁으로 온다”는 뜻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 표현을 오늘날에 맞게 풀어서 바나바를 “격려의 형제”로 부를 수 있다.

사도들이 붙여준 그 별명은 바나바의 뛰어난 성품을 칭찬하며 인정하는 일이 되었다.

바나바는 특별히 소유하고 있던 땅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그 매각한 전체 값을 교회에 바친 관대함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레위지파사람들은 구약의 율법으로 땅을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민 18: 20), 그들 금지 규정들은 항상 시행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그의 아내가 땅을 소유했을 수 있다고 제의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땅이 구브로섬에 있었는지 아니면 이스라엘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바나바가 그의 교회 내에 필요를 보고,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팔아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전 액을 사도들을 통해

교회에 바쳤다는 것이다.

바나바가 행한 일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다.

사도들은 교인들에게 그들의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사도들이 바나바가 행한 일을 특별히 칭찬한 것을 보면 그것이 관대함의 뛰어난 예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교회의 재정적 지원을 위한 헌금은 격려의 행위가 된다.

교인들의 생활의 필요를 위해 바나바가 물질적인 도움을 베풀어준 것은 사도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직접 도움을 얻은 교인들은 기도가 응답 받은 것으로 인해 위로와 격려를 얻었다.

바나바가 행한 것은 또한 자원이 있는 다른 사람들도 교회에 헌금을 하도록 격려하는 일이 되었다.

하나의 친절한 행위는 다른 사람들도 베풀도록 격려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이것은 바나바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 되고 있다.

후에 그는 교회에서 사도들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바나바는 기독교로 갓 개종한 다소의 사울(바울)을 받아들이도록 초대 교회를 격려하였다(행 9: 26, 27).

바나바는 또한 바울을 다소에서 불러다가 안다옥에서 사역할 수 있는 기회에 그를 포함시켰다 (행 11: 22 -30)

그뿐 아니라, 그는 바울과 함께 안다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첫 번째 선교여행을 주도하도록 택함을 받았다 (행 13: 1 -14: 28).

“마가라 하는 요한”은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첫 번째 선교여행을 떠났으나 도중에 돌아간 것으로 인해 신용을 잃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나바는 제 이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고 하였다.     

그 문제로 인해 바나바와 바울은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게 되었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따로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행 15: 36 -41).

후에 바울은 마가가 자신의 사역에 중요함을 인정하였다 (딤후 4: 11).

마가는 바나바의 멘토링으로 영적 회복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나바의 영향력은 아낌 없이 재산을 팔아 교회에 헌금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인들 모두가 그 뜻을 바로 이해하고 그를 따라 행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불성실한 본을 보인 사람: 아나니아 (사도행전 5장 1 -6절)

5: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5: 2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앞에 두니

5: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얼마를 감추었느냐

5: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땅이 아니며 후에도 마음대로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일을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5     아나니아가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일을 듣는 사람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5: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5장 1:  바나바가 행한 일은 곧 교회전체에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는 바나바가 자신이 교회에 헌금한 일을 나팔을 불며 자랑하지 않은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사도들이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다른 사람들이 헌금하도록 격려했을 수 있다.

바나바의 특별한 헌금에 대해 들은 사람들 중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로 불리는 부부가 있었다.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도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이었다.

그들 부부도 바나바처럼 재산을 팔았다.

본문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유물을 판 것은 바나바가 사도들과 교인들의 인정과 칭찬 그리고 존경을 받는 것을 보고 이를 몹시 탐한 것이

그 동기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올바른 일을 그릇된 동기에서 행하는 위험성을 잘 나타내주는 실례가 되고 있다.

아나니아는 재산을 판 값에서 일부를 감추어 놓고 나머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앞에” 놓았다.

그의 아내도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본문의 “감추다”라는 용어는 ‘횡령하다’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 단어는 또한 지역공동체의 재산인 수확의 일부를 개인적인 사용 목적으로 몰래 숨겨놓는 것을 묘사할 수도 있었다.

구약의 주요 헬라어 번역판인 70인 역은 이 단어를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이 멸망당한 후에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하나님의 물건들 중에서 일부를

아간이 탐을 내어 취한 것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수 7: 1).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읽지 않고 2절만 읽으면, 아나니아의 죄는 그가 팔은 것 중의 일부만을 헌금으로 바친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누가는 문제의 핵심을 밝혀주고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의 전 재산 혹은 그것을 팔았을 때 그 팔은 전액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나팔을 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시점에서 그 재산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되었고, 자신을 위해 그 일부를 취하는 것은 아간의 죄와 같은 도둑질이 되었다.

그 도둑질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은 죄를 더하게 하였다.  

5장 3 -4: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베드로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성령님이 그 같은 속임수를 베드로에게 알려주시고, 베드로는 의로운 분노로 대응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야”라며 처음 자기 이름을 불렀을 때, 아나니아는 칭찬의 말을 들을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들은 말은 칭찬이 아니라, “어찌하여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얼마를 감추었느냐”는 엄한 질책이었다.    

베드로는 그 같은 속임수와 거짓 배후에는 “거짓의 아비”인 사탄이 있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요 8: 44).

사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갖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믿는 자들과 교회를 공격하고 있다.

사탄은 믿는 자들을 타락시킬 때 가장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증거와 효율성을 파괴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사탄을 경계해야 한다.

베드로가 한 말 중에서 아나니아의 마음에 가장 깊이 박힌 것은 그가 성령님을 속였다는 말이 되고 있다.

아나니아는 의도적으로 사도들과 교회에 거짓말을 하였지만, 그것을 성령님에게 거짓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교회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신앙공동체가 되었다.

교회에 행한 범죄는 어떤 것이든지 궁극적으로 성령님을 대항하는 일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를 해치는 행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5장 4절에서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행한 일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였다.

그 땅은 아나니아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꼭 팔아야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바나바에게 그의 땅을 팔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아나니아도 그의 땅을 팔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땅을 판 후에도 그 판 값의 전부 혹은 일부를 원하는 만큼 교회에 바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고의적이고도 계획적으로 교회를 속였을 때 죄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물질욕과 과시욕에 사로 잡혔을 때, 거짓된 생각이 생기고 죄 된 행동이 나타났던 것이다.

4절에서 누가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는 말로 아나니아를 정죄하였다.

그 말은 3절의 “성령을 속이고”라는 말과 함께 하나님과 성령님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5장 5 -6: 자신의 죄가 적발되었을 때, 아나니아는 엎드러져 죽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아나니아가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자신의 계획과 거짓이 밝혀지자 충격으로 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그 후에 일어난 그의 아내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증거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고 있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다 크게 두려워하였다.

아나니아가 죽자,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였다.

유대인들은 보통 사람이 죽으면, 애도하며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매장하는 기간을 가졌다.

기후가 따뜻하였고, 또한 일반적으로 시체에 방부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속히 시신을 매장하였다.

그러나 장례절차도 없이 시신을 금방 매장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같이 성급한 매장은 일반적으로 범죄자들이나 자살한 사람,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되었다.    

교회는 아나니아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 것과 그 결과로 믿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죽었을 때처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던 것이 분명하다.

 

불성실한 본을 함께 보인 사람: 삽비라 (사도행전 5장 7 -11절)

5: 7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5: 8     베드로가 이르되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5: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가리라 하니

5: 10    그가 베드로의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5: 11    교회와 일을 듣는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니라

 

5장 7 -8: 삽비라는 남편이 속임 수를 꾸미는데 공모를 했었다.

그러므로 삽비라는 남편이 하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행 5: 2).

그러나 삽비라는 베드로가 남편에게 죄를 추궁할 때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아나니아가 죽은 후 “시간쯤 지나” 삽비라가 그 동안에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다.

누가는 그 동안에 삽비라가 어디 있었는지 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누가는 또한 죄에 대한 그 같은 추궁이 일어난 장소에 대해서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장소에 사도들과 젊은 사람들 그리고 다른 교회 회원들도 모두 참석해 있었던 같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같은 추궁은 교회가

정기적으로 모이던 장소들 중의 하나에서 일어났을 수 있다.

다른 한 편, 아나니아가 자신의 선행에 대해 사람들의 칭찬과 박수를 받으려고 하였다면, 그는 가능한 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그것을 사도들에게

바치려고 했을 수 있다.

누가는 5장 12절에서 교회가 “솔로몬의 행각”에서 정기적으로 모였던 사실을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관련되고 있는 그 사건은 솔로몬 행각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삽비라가 도착했을 때,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일어난 일을 즉시 말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값이 이것뿐이냐”라는 질문으로 삽비라도 그 속임수와 거짓에 관계되고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하였다.  

그 질문은 실제로 ‘당신들이 판 땅 값이 이것 뿐이요’라는 말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함께 거래에 참여한 것을 암시하고 있다.

어쨌든, 아나니아는 아내도 속이고, 아내에게 얼마를 바치겠다고 한 액수보다 덜 바쳤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삽비라는 “이것뿐이라”는 대답으로, 아나니아가 교회에 바친 액수가 소유물을 판 값과 같은 것을 확증하였다.

베드로의 질문은 삽비라에게 죄를 회개하고 사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삽비라의 대답은 부부가 함께 속임수를 계획하고 그녀는 계속 거짓말을 하기로 작정한 것을 드러내 주는 증거가 되었다.

5장 9 -11: 베드로의 역할은 심판보다는 죄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었다.

베드로는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며 삽비라를 질책하였다. 

여기서 ‘너희’라는 말은 다시 부부가 함께 공모하여 그 계획을 실행하기로 합의했던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때서야 베드로는 삽비라에게 남편이 죽은 사실을 알려주고 그녀도 똑 같은 값을 치르게 될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베드로의 말을 들은 순간에, 삽비라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고 말았다.

죽은 아나니아를 매장하러 갔던 젊은이들은 돌아와서 삽비라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였다.

당시 유대에서는 동굴같이 생긴 묘들이 있었고 묘안에는 몇 개의 돌 선반들이 있어서 시체들을 그곳에 올려 놓았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이 과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던 세 교인들의 차이점을 공부하였다.

바나바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동료 믿는 자들을 돕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려고 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의 마음을 나타내었다.

반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어떻게 교만과 자기 자랑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신실하게 행한 바나바는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여 초대 교회에서 위대한 지도자들의 하나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삶을 부끄럽고도 짧게 마감하였다.

우리는 바나바의 삶을 따르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를 피하기를 힘써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진정한 신자였느냐는 문제가 되고 있다.

누가의 기록에서는 어떤 것도 그들이 믿는 자들이었다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 않다.

믿는 자들은 불순종의 행동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거나 영원한 상급을 잃을 수는 있을지라도, 구원을 잃지는 않는다.

바울은 나중에 고린도 교회에 있는 불순종하는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였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계속 죄를 범하는 성도들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의 징벌로 병든 사람도 생기고 심지어 죽는 자도 생겼다고 하였다 (고전 11: 30).

물론 계속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죄를 범하는 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모든 병과 죽음을 죄나 하나님의 심판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여기서 밝히려는 것은 구원을 받은 신자들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공로로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과실로 잃을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믿는 자들은 거짓 없는 진정한 순종과 희생의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다.

모든 동기가 바르고 훌륭한 것이 아닌 것을 감안할 때, 믿는 자들은 헌금을 어떤 동기로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믿는 자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일과 동기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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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제 8과 - 2017년 4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4.16 218
163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 제 1과 - 2019년 12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9장 15 -23절 강호길 2019.11.23 215
162 용기 없는 전사 - 제 10과 - 2017년 2월 5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 사사기 공부 강호길 2017.01.30 215
161 악순환의 주기 - 제 8과 - 2017년 1월 2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1.18 215
160 하나님의 임재 - 제 5과 - 2017년 7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84편 강호길 2017.06.25 214
159 주의하라 - 제 12과 - 016년 11월 20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15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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