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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제 5과

 

왕이 기대하시는 것들

학습구절: 마태복음 5 1 -16

 

암송구절: 마태복음 5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성경진리:

왕의 축복들은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 그의 제자들에게 임한다.

 

시작하는 글:

많은 사람들은 새 해를 삶의 새로운 출발점이나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들은 새 해에는 더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 운동을 더 많이 하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 혹은 카드 빚을 갚겠다는 등의 결심을 한다.

그 같은 새해의 결심이나 결의는 바람직하며 칭찬할만한 목표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같은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것을 인정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의지나 결심 자체가 삶의 해결책이 되지 않는 것을 아셨다.

그는 결코 인간의 선행을 평가절하 하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에게 훨씬 더 큰 문제인, 죄의 문제가 있는 것을 아시고 이를 가르치셨다.

죄의 문제는 매년 새로운 각오나 결의로 취소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삶은 복음의 기쁜 소식으로 말미암아 먼저 속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다.

바른 삶은 변화된 인격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그 같은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마 7: 18).

그래서 예수님은 ‘왕의 취임사”로도 불리는 유명한 “산상 수훈”을 전하실 때, 먼저 선행을 강조하지 않고 속 사람이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셨다.

예수님은 내적 인간이 변화되어 하늘 나라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계속해서 천국 백성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시고 있는지를 가르치셨다.  

 

본문 배경설명 (마태복음 5 1 -16):

마태복음 5부터 7장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산상설교” 혹은 “산상수훈”으로 부르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사역을 이 말씀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전한 곳은 그가 갈릴리에서  사역의 본거지로 삼으셨던 가버나움 지역의 한 산이 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갈릴리 바다의 동북 해안에 위치했던 이 중요한 도시는 예수님의 사역 기간 동안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의 무대가 되고 있다.

산상 수훈의 서두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특성인 내적 자질들을 열거하고 그 같은 삶을 살 때 얻을 수 있는 축복들을 약속하셨다.

이들 구절은 “팔복” 혹은 “지복”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 문학양식은 구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 1: 1; 32: 1 -2; 잠 8: 34).

예수님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그 같은 내적 자질들이 생길 때, 그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다 (마 5: 13 -16).

예수님은 당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 가지 물건인 소금과 등불을 예로 들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문제를 설명하셨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세상을 본받거나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사람들이다.    

 

학습구절 연구:

새로운 모세 (마태복음 5 1 -2)

 

5: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온지라

5: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5 1-2:  사역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하였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예수님은 입을 열어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당시의 유대교 교사들은 앉아서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이었다.

본문의 문맥으로 미루어볼 때,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열두 제자를 주 대상으로 삼아 가르친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산상수훈의 대상에 “무리”들도 포함시키고 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제자들”과 “무리”를 지나치게 구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산상수훈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교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설교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물론 호기심에 끌려 모여든 군중들도 염두에 두셨지만, 그보다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산상수훈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주위에 모여든 제자들에게 먼저 그들이 지녀야 될 내적 자질과 특성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마 5: 1 -12).  

예수님은 전 사역기간을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일에 전념하셨다.

산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은 자연히 예수님과 모세 사이의 유사점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고 돌에 새긴 십계명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였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것을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 언약의 일꾼”을 삼아주신 점에서 새로운 모세가 되고 있다 (고후 3: 6 -11).  

 

 

새로운 축복들 (마태복음 5 3 -12)

 

5: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것임이요

5: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팔복의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그의 통치권을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들이 지녀야 될 성품을 묘사하고 있다.

그 가르침은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복이 있다”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행복하다”이다.

예수님은 “행복하다”는 단어를 취하여 제자의 삶에 적용시킴으로, 그 말은 좀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팔복에서 밝히고 있는 것들을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가르치는 행복은 내적이며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다.

산상수훈의 나머지 가르침들은 모두 이들 팔복 구절들에 대한 강해나 해석 혹은 적용이라 해도 무방하다.

팔복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첫 번째의 네 구절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묘사해 주고 있다 (3 -6절).

그 구절들은 신자들이 어떤 환경이나 여건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밝혀준다.

두 번째의 네 구절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묘사해 주고 있다 (7 – 12).

그것들은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나타나야 될 삶의 질이 되고 있다.

팔복은 신자들이 자기들에게 알 맞는 것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특성들이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함께 결합되어야 할 것들이다.

5 3: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심령이 가난한 ”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셨다.

심령이 가난한 ”는 자신의 영적 무력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될 필요성을 깨닫는 자이다.

영적으로 궁핍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희망임을 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또한 ‘마음이 겸손한 것”을 뜻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셨다.

이는 “천국이 그들의 ”이 되기 때문이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일 때 그의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5 4: 예수님은 “애통해 하는 ”를 축복하셨다.

애통해 한다”는 말은 자신의 죄와 세상에 존재해 있는 악과 불의에 대한 강한 슬픔을 나타낸다.

애통해 하는 마음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적 상태와 영적 필요를 깨달을 때 생긴다.

애통해 하는 마음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적 생태와 필요를 깨달을 때도 생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은 용서받지 못한 죄로 인하여 불신자들에게 미치게 될 엄청난 비극을 생각할 때 애통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애통자체만으로는 복이 될 수 없다.

애통해 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은 “그들이 위로를 받을 ”이기 때문이다.   

위로를 받는다’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에는 ‘곁으로 부르다’는 뜻이 들어있다.

위로하다라는 영어의 ‘comfort’는 ‘cumfortis’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인데, 그 뜻은 어떤 사람에게 기운 혹은 힘을 준다는 말이다.

특별히 세상에서 파괴적인 죄의 권세에 시달리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세가 죄를 이기고 승리를 거둘 때 위로를 받는다.

5 5예수님은 온유한 를 축복하셨다.

온유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유약한 것을 생각한다.

경우에, 온유하다는 말은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교만한 것의 반대로, 겸손한 마음 혹은 부드러운 마음을 가리킨다.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마 11: 29).

온유한 자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 그리고 감정, 심지어 성질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복종시켜 따르기로 한 사람이다.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5 6: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축복하셨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예수님 당시의 청중들이 자주 겪는 일이었다.

그것들은 무시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래서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는다.

육체적인 갈증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예수님은 의를 그같이 갈망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는 “저희가 배부를 ”이기 때문이다.

“의”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갈망해야 될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며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의”의 기본적인 뜻은 의롭게 생각하고 의롭게  행동하는 것이지만, 죄인인 인간은 그같이 완전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힘 입어 의롭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하였다 (롬 5: 1).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요 6: 35).

5 7:  팔복의 둘 째부분은  이 구절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들 네 구절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를 축복하였다.

헬라어로 긍휼이라는 말은 죄를 지은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개념뿐 아니라,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나타내며 가난한 사람에게 두움을 베푸는 뜻을 담고 있다.

긍휼은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이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며 억압당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같은 속성을 나타내야 한다.

휼히 여기는 제자가 행복하거나 복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치실 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것을 강조하셨다.

5 8: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를 축복하셨다.

유대인들은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와 태도가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는 아들에게 “ 마음을 내게 주며 눈으로 길을 즐거워할지어다”고 하였다 (잠 23: 26).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죄가 조금도 없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고 정직하며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마음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청결한 자는 거짓없이 오직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에도 믿음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5 9: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를 축복하셨다.

오늘 날 문화권에서 화평은 싸움이나 갈등이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화평케 하는 자는 싸움이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좋은 관계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일은 위험이 따를 있다.

화평케 하기 위해서는 싸움판에 뛰어 들어가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평 혹은 평화에 대한 히브리사상은 갈등의 부재 이상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기초한 온전한 상태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까지 흘러넘치는 것을 뜻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화평케 하는 최상의 본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을 이루기를 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하나님과 화평케 된 자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화목케 하는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고후 5: 18).

그같이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데가 있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뿐 아니라, 자녀들은 놀라운 특권을 누리게 마련이다. 

5 10 :  팔복의 마지막 번에서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를 축복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때, 주님이 받으신 것처럼 피박을 받게 마련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은 “천국이 저희 ”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모든 문제가 다 의를 위하여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그들 자신의 잘못으로 겪게 된다.

그래서 베드로 전서 2: 20과 4: 15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자신의 죄와 악행으로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핍박 받는다고 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행하는 것과 높은 영적 진리를 지키는 것으로 고난을 당하거나 핍박을 겪을 때에는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게 된다.

5 11  -12:  예수님은 10절의 사상을 계속 이어가시면서 거기에다 자신을 결부시켜 말씀하셨다.

앞 절에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주제였으나, 여기에서는 (예수님) 위하여”가 되고 있다.

그같이 핍박을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다.

그처럼 믿음을 신실하게 지키면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다.

예수님은 또한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그같이 핍박을 받은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다.

 

새로운 기대치들 (마태복음 5 13 -16)

 

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소금과 빛을 예로 드셔서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어떻게 삶으로

실천해야 될지를 밝혀주셨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한다.

5 13: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일세기 당시의 사람들은 소금을 주로 세가지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음식물을 썩지 않게 보존하기 위하여 소금을 사용하였다.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생선이나 고기를 소금에다 절이면 썩지 않게 저장해 둘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는 그들의 삶이 세상이 썩는 것을 막아주는 방부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소금은 또한 음식의 맛을 내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사람들에게 삶의 참된 가치와 목적을 밝혀주며 보다 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다.  

소금은 또한 치료의 효력을 갖고 있다.

옛날 엄마들은 갓 태어난 아기들을 소금물로 씻기곤 하였다(겔 16: 4).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 몸에 난 상처가 소금물에 소독이 되어 치료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자를 치료해 주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맛이나 효력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말에서는 참된 제자의 변함없는 순종의 삶이 강조되고 있다.

오늘 날에는 소금이 그 맛을 잃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당시에 유대 지역에서 사용하는 소금은 주로 사해에서 생산된 것으로, 화학물질과 광물질등의 불순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순수한 소금 결정체가 습기나 바람에 의해 녹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소금처럼 보였던 것이 실제로 음식을 만드는데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썩는 것을 방지해 주고, 맛을 내주며, 치료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맛을 잃은 소금처럼 쓸모가 없어져 버리고 만다.

5 14: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세상의 ”이라고 하셨다 (요 8: 12).

또한 성경은 예수님이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취는 ”이 되신다고 밝히고 있다 (요 1: 9).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참 빛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세상에 비추는 사람들이다.

빛의 기능을 알면 “세상의 ”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빛의 반대 현상은 어두움이다.

성경에서 어두움은 종종 죄와 악을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 1: 5; 요일 1: 5).

빛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해 주며 사물들과 갈 길을 밝혀준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어디로 가야 될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사람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보고 그의 말씀을 깨닫도록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세상의 빛이되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도록 구원의 길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빛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됨을 상기시켰다 (빌 2: 15).

 5 15 -16:  예수님은 당시에 흔히 사용되고 있던 등잔불을 예로 들어 빛의 원리를 설명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켜서 아래” 두면, 빛은 그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은 곡물을 되는 용기였다.

누구든지 불을 켜서 그같은 용기로 덮어두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올려놓거나 선반에다 올려 놓을 것이다.

등불을 그같이 올려 놓아야 “짐안 모든 사람에게” 비친다.

그 말씀에 담겨있는 원리는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공개적인 성격이 된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도 같은 뜻으로 고린도 교회교인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 하였다 (고후 3: 2).

예수님은 5장 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6장 1절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말씀하신 경고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일에는 그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믿는 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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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축하하며 예배하다 - 제 3과 - 2018년 6월 1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5장 9 -12절; 6장 12 -19절 강호길 2018.06.10 406
229 믿음의 공동체로 받아 들이다 2016년 5월 22일 장년성경연구 제 12과 사도행전 공부 강호길 2016.05.16 398
228 지켜진 약속 - 제 3과 - 2016년 12월 18일 장년성경연구 - 여호수아서 공부 강호길 2016.12.11 394
227 고대하며 기다리는 믿음 - 제 13과 - 2018년 11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5장 7-9, 13 -20절 강호길 2018.11.18 385
226 충분하게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 제 5과 - 2017년 10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16장 1 -5절, 11 -20절 강호길 2017.09.24 375
225 부활에 대한 확신 - 제 5과 - 2018년 4월 1일 장년성경연구 - 요한복음 20장 3 -9절; 고린도전서 15장 20 -28절 강호길 2018.03.24 372
224 보냄을 받다 - 제 5과 - 2019년 3월 31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6장 7-13, 30-32절 강호길 2019.03.24 371
223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합하라 - 제 1과 - 2018년 3월 4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전서 1장 23절 강호길 2018.02.25 371
222 믿음의 집을 짓자 - 제 3과 - 2016년 9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베드로전서 공부 강호길 2016.09.11 369
221 하나님의 임재 - 제 9과 - 2017년 10월 2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39장 42 -43절; 40장 1 -4, 34 -38절 강호길 2017.10.21 368
220 보호자이신 하나님 - 12과 - 2017년 8월 2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141편 강호길 2017.08.15 368
219 기도로 왕 앞에 나아감 - 2016년 1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6과 마태복음 공부 강호길 2016.01.02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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