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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7과

 

모든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라

학습구절: 

잠언 24장 10 -11절; 마가복음 10장 46 -49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신다.

 

주요교리: 사회정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아와 궁핍한 자, 학대받는 자, 노인, 무력한 자, 및 병든 자를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

암송구절:  잠언 24장 10절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If you falter in a time of trouble, how small is your strength.

 

시작하는 글:

오늘은 교회들이 “생명 존엄 주일”로 지키는 날이어서, 사사기의 말씀 대신에 생명의 귀중 성을 강조하고 있는 잠언과 마가복음의 말씀을 골라

공부하게 된다.  

세계가 이차 대전으로 피폐되었던 당시에,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은 아일랜드 정치지도자였던 에드먼드 버크 (Edmond Burke)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명언을 인용하였다.  

악이 승리하는데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버크는 1797년에 죽었지만, 인용된 그 말은 나치의 침략 초기에 적군에게 포위당한 유럽의 상황을 적절하게 대변한 강한 경고의 말이 된 것으로 보인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같은 생각을 표현하였다.

그는 민권 운동이 종종 위험한 투쟁으로 확산되고 있는 동안에, 미국의 선량한 시민들이 거의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이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선량한 시민들의 놀라울 정도의 침묵”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들 말들이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는 기본적인 관점은 악한 자들이 승리하고 있는 것은 악에 대한 선량한 시민들의 침묵 혹은 비적대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 같은 침묵 혹은 비적대적인 자세는 도리어 질문을 유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왜 선한 사람들은 사회의 불법적인 일과 그릇된 일을 목격만 하고 있는가?

왜 선한 사람들은 침묵하고 반대를 하지 않음으로 악이 계속되고 더 심해지게 방관만 하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룹들이 많이 있다.

집 없이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극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은퇴를 하고 보니 수입이 없거나 건강을 잃어서 소위 “황금기”로 불리는 삶을 즐기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73년에 미국에서 낙태가 합법화된 이래, 요구에 의한 낙태로 인해 지금까지 생명을 잃은 태아가 5천 8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신다.

오늘의 학과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 없는 사람들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라고 도전한다.    

믿는 자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어떤 신체적 제한에 관계 없이 하나님은 누구나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적 정의를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 과를 공부할 때에, 우리들 각자가 혹은 교회가 이들 중요한 분야 중 하나에서 어떻게 행동 해야 할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해보자.

 

배경설명: 잠언 24장 10 -12절; 마가복음 10장 46 -49절

잠언서는 전도서와 욥기와 함께 구약의 지혜 문학의 일부가 되고 있다.

전도서는 철학적 또는 지적인 관점에서 인생의 목적의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

전도서 기자는 어떻게 하면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로 작정하였다가 결론을 내리기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다 (전 12: 13).

대조적으로, 잠언은 일상 생활에 대한 보다 실용적인 접근법을 제공해 주고 있다.

잠언서는 믿는 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잠언서에서 배우는 원리들과 교훈적인 것들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결합시켜 참 지혜를 얻게 해 준다.

잠언서의 핵심구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는 1장 7절이 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참 지혜를 얻는데 출발점이 된다는 뜻이다.

잠언 24장은 삶과 관계되고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주제들에 대한 격언들과 교훈들을 모은 것이다.

우리는 마음에 강포를 품고 폭력을 꾀하는 악인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거나 그들과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 (24: 1 -2).

사악한 자들은 폭력을 계획하고 있는 반면에, 선한 사람들은 공의에 따라 행한다 (24: 3 -4).

24장 10 -12절은 우리들에게 부당하게 정죄를 받아 죽게 된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건져주라고 한다.

무고한 사람들을 구출 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24: 12).

24: 16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거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는 말로, 악한 자들이 의로운 자들에게

악의에 찬 행동을 할지라도 그것이 헛됨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잠언은 또한 우리들에게 원수가 넘어질 때 기뻐하지 말며,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한다 (24: 17 -19).

잠언은 독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왕을 경외하라고 한다 (24: 21 -22).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악행 하는 자들을 징벌하는 자이다 (롬 13: 4).

우리는 판단할 때 편애를 나타내지 말고 (24: 23 -25), 모든 일에 정직해야 한다 (24: 26, 28 -29).

이 장은 게으름으로 인해 밭이 황폐해 진 게으름뱅이의 이야기로 끝난다 (24: 30 -34).

마가복음 10장은 예수님이 유대 지역으로 여행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과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중이셨다.

유대에 들어가시자, 큰 무리가 그에게 모여들었고, 그는 전례대로 그들을 가르치셨다 (막 10: 1).

어떤 바리새인들이 이혼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을 때,

예수님은 평생 동안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확인하셨다 (막 10: 2 -12).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심으로 어린 아이들의 귀중함을 확인해 주셨다 (10: 13 -16).

그런 다음, 예수님은 한 젊은 부자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와서 자기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것은 그 젊은 부자 청년이 지불하고 싶지 않은 값이었다 (10: 17 -22).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 어려운 것을 경고하셨다 (10: 23 -27).

그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실함을 축복해 주실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10: 28 -31).

세 번째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해 주셨다 (10: 32 -34; 8: 31; 9: 31).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그들이 다가오는 왕국에서 그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10: 35 -41).

예수님은 지도력의 본질을 분명하게 밝혀 주심으로 대답하셨다 (10: 42 -45).

참된 지도자는 그들이 인도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다.

제자들과 함께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예수님은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청하는 "바디메오"라는 맹인 거지를

만나시게 되었다 (10: 47 -48).

군중들은 “잠잠하라”며 그를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그를 부르셔서 보게 해 주셨다 (10: 49 -52).  

 

학습구절연구

생명을 보호하는 사명 (잠언 24장 10절)

24: 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솔로몬은 부당하게 죽을 자리로 끌려가는 자나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해주라고 하였다

.

24장 11절 – 솔로몬은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라는 말로, 생명을 보호하라는 강한 명령을 하였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라는 표현은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이 되고 있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 중에는 매해 낙태로 죽어가는 태아들도 포함되고 있다.

오늘 날 많은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낙태반대 운동을 펴고 있는 것도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 24: 11의 말은 그릇 억압을 받거나 잘못 정죄를 받는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시사되고 있다.   

약한 사람들이 억압을 받는 일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억압할 수 있었다.

당시에 의지할 곳이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고아와 과부들은 고통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았다(사 1: 17, 23).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자들,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 실향민, 고아와 과부들을 옹호하고 변호하기를 원하셨다.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잡지 말라" (신 24: 17).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 24: 21).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시 82: 3).

본문은 계속해서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살륙하다”는 말은 종종 인간의 생명을 취하는 것을 가장 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사 30: 25; 스 26: 15).

여기서 이 구절은 사람들이 파멸로 향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을 구출하는 일에는 우리의 힘이 미치고 있는 상황이 묘사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당연히 그 개념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육체적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그를 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적용될 수 있다. 

다른 한편, 그 말은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경우 삶이 영적 파멸로 향하고 있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 같은 경우, 우리는 그 말을 영적인 면에다 적용시킬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 그것은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는 일이 될 수 있다.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 (잠언 24장 10, 12절)

24: 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24: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 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솔로몬은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고 알지 못했다고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며 회피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24장 10절 – “낙담하면”이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구약의 다른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단지 두 곳뿐이다.  

잠언서 18장 9절에서 그 말은 게으른 사람을 묘사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고 하였다.

구약에서 그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또 다른 곳은 여호수아 18장 3절이다.

거기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가지 지체하겠느냐”는 말로

백성들이 행동하지 않고 지체하고 있는 것을 질책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었지만, 이방 족속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곳이 많이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게을리 하였고, 사사기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인 쇠퇴(衰退)를 경험하게 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본 학습구절에서 이 히브리어는 어려운 시기에 거의 혹은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

환난”으로 번역된 용어는 무거운 것이 내려 누르거나 압박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그 말은 어떤 사람을 압박해 들어가는 때나 상황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구절의 두 번째 부분에서, 솔로몬은 “네 힘이 미약하게 보임이라”는 말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이라는 말은 단지 육체의 힘을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서는 것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같이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10절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힘이 약함을 보이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도전에 직면 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대변자가 되기를 기대하신다.

사회 정의를 이루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연스런 산물이다.

이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창 1: 26; 약 3: 9).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이웃이 누구이든 간에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라고 하셨다 (눅 10: 29 -37).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 할 때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24장 12절 – 솔로몬은 10절에서 환난 날에 도움의 손길을 펴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였다.

12절에서는 그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핑계를 대며 회피하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솔로몬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고 거짓 말로 변명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같이 변명하는 사람들은 진짜 알지 못해서 행동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인 하나님이 진실된 상황을 “통찰”하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알지 못한다고 거짓 주장하지 말아야 했다.

통찰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사이”라는 말과 관련된 용어에서 파생되었다.

 하나님은 옳은 것과 그른 것 그리고 공평한 것과 불공평한 것 사이를 구별하신다.

그는 우리의 생각을 아시며 진정한 동기를 식별하신다.

그런 다음, 이 구절은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이다. 

그 질문은 다시 엄중한 경고의 말처럼 들린다.

하나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을 모두 아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시며 보호해 주신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어려운 일을 겪거나 위험에 직면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간섭해 주시기를 간구하며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인간을 도구로 삼으셔서 그의 목적을 성취하신다.

어쩌면, 하나님은 삶의 위협을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실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할 만큼 우리의 생명과 삶이 귀중하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 줄 수 있을 때, 그 같은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모태에서부터 무덤에 묻힐 때가지 귀중하게 여기신다”고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 같은 사실을 확증하셨다 (사 46: 3 -4).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께 귀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그것이 태아이거나, 지적 혹은 신체적 장애자거나, 노약자거나에 관계없이, 모두 귀중하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 앞에 귀중하다.

12절은 또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고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를 우리들에게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알고 있다 (요일 4: 1).

성경은 또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단언하고 있다 (롬 2: 5 -6).

선지자들은 종종 이스라엘 백성이 고아와 과부들을 학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렸다 (사 1: 3).  

어느 사회에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을 도와주라고 하신다.

 

본을 보여주심 (마가복음 10장 46 -49절)

10: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다메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10: 47    나사렛 예수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고서 하거늘

10: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10: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이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던 사람들이나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 주셨는지를 자주 부각시켜 주고 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죄인”으로 부르던 사람들은 물론, 어린 아이들의 가치를 확증해 주셨다 (마 18: 1 -6; 9: 11 -13).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중에 그 같은 또 다른 예를 제자들과 관중들에게 보여 주시고 있다. 

 

10장 46절 –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17마일 떨어져 있는 도시인 여리고에 도착하였다.

여리고는 요단 계곡에 있던 성읍으로, 그곳은 여행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삭개오라는 세리장을 만나신 것도 이 여행 때 여리고로 들어가시다가 생긴 것이 분명해 보인다 (눅 19: 1 -10).

마가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방문하셨을 때 일어난 일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일어난 일에 촛점을 맞추었다.

에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셨다.

허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가 가르치는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하시는 일을 보려고 그를 따랐다.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다.

그 이름의 문자적인 뜻은 “디메오의 아들”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바디메오”라는 이름은 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을 수 있다.

바디메오는 “맹인 거지”였다.

예수님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인 장애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요 9: 1 -2).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바디메오가 죄를 지은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때문에 그는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돈을 구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0장 47절 – 바디메오는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나사렛 예수가 오시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예수님의 주의를 끌기 위해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을 때)”, 그것은 소란을 가증시키는 일이 되었다.

먼저 그는 주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바디메오의 간청은 간절하면서도 적절한 것이었다.

그 당시는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에 대한 소문이 이미 많이 퍼져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바디메오는 자비와 치유를 구했던 것이다.

10장 48절 -  많은 사람들은 바디메오를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하였다.

어쩌면, 그들은 바디메오가 죄를 졌기 때문에 장님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친절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었을 수 있다.

그들은 바디메오를 귀중한 한 사람이기 보다는 방해물로 보았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자기가 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됨을 알고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였다.

10장 49절 – 바디메오가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을 들으셨을 때,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셨다.

그날, 많은 군중이 내는 소리 위로 예수님은 자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의 음성을 들으셨다.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준비가 늘 되어 있으셨다.

그리고 그가 행하신 일은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 하나의 본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바디메오의 음성을 들으셨고, 무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그를 부르라”고 명하셨다.  

군중 가운데 있던 사람들은 그 맹인을 부르며, 예수님이 부르시니 “안심하고 일어나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져 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왔다.

예수님은 그 맹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그 맹인은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는 곧 다시 보게 되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태아를 포함하여 부당하게 죽음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돕기를 원하신다.
  •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절실하게 깨닫고 (마 5: 13 -16), 사회정의를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한다.  
  • 믿는 자들은 신체적, 정서적 또는 정신적 제약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모든 생명은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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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한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는 성도들 - 제 7과 - 2019년 10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에베소서 4장 1 -10절 강호길 2019.10.05 3801
291 불완전한 가정 - 제 3과 - 2018년 12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창세기 29장 16 -30절 강호길 2018.12.08 2212
290 이기심 없이 섬기는 사역 - 2016년 4월 2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제 8과 - 사도행전 공부 강호길 2016.04.17 2211
289 변화되다 - 제 6과 - 2019년 1월 6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2장 24 -32절 강호길 2018.12.30 1793
288 선지자보다 크신 예수님 - 제 4과 - 2017년 3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3.19 1617
287 왕이 임하시다 - 2015년 12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2과 마태복음 공부 강호길 2015.12.02 1538
286 죄에 대한 징벌과 용서 - 제 13과 - 2018년 8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24장 10 -25절 강호길 2018.08.19 1330
285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 제 2과 - 2018년 3월 11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전서 6장 12 -20절 강호길 2018.03.06 1283
284 예수님의 명령 - 제 7과 - 2019년 4월 14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9장 14 -27절 강호길 2019.04.08 1146
283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다 - 2015년 9월 6일 장년성경공부 교사용 창세기 제 1과 2 Hokil 2015.10.10 1123
282 사울의 회심과 개종 - 2016년 5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10과 - 사도행전 공부 강호길 2016.04.30 1100
281 유혹을 받다 - 제 11과 - 2019년 2월 10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9장 3 -12, 19 -21절 강호길 2019.02.04 1087
280 임무를 맡은 제자들: 2016년 3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제 1과 사도행전 공부 강호길 2016.02.27 1024
279 절제의 믿음 - 제 11과 - 2018년 11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3장 1 – 12절 강호길 2018.11.06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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