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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8년 10월 14일 주일 용  

 

7 과

 

 

참된 사랑의 삶

 

 

학습구절: 갈라디아서 6장 1 10, 14 -15절

 

성경진리:

성령님은 신자들로 하여금 순수한 동기로   다른 사람들을 돌봐 줄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주요교리성령 하나님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의 품성과 품격을 키워주시며, 신자들을 위로해주시고, 영적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신다 (요일 4: 12 -13).   

 

암송구절:  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시작하는 글:

 

어느 날 이른 새벽에, 한 사람이 뺑소니 자동차 사고를 당하였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길가로 기어 나와 누워있었는데, 아무도 멈추어 서서 도와주려거나 경찰을 부르려고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한 사람은 심지어 사고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소셜 미디어데다 올리기 까지 하였다.

몇 시간이 흐른 후에, 마침내 한 사람이 멈추어 서서 사고 당한 사람을 발견하고 도와주며 911을 불러서 구조대가 달려왔다.

그러나 그 희생자는 사고를 너무 크게 당하고 시간이 너무 많이 경과한 바람에 생명을 구하지 못하였다.

만일 사고를 낸 사람이 뺑소니를 치지 않고 도움을 베풀었거나, 다른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 좀더 일찍 병원으로 왔웠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병원 측의 말이었다.  

그 사람은 자동차 사고의 희생자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무관심의 희생자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좋지 않은 상황에 직접 참여하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친 사람이나 못 본척하고 사고 현장을 지나쳐 버린 사람들 또는 멈추어 서서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의 동기와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배경설명                                          

 

갈라디아서 6장 1절부터 18절까지

갈라디아서 6 장은 ‘성령님 안에서의 삶’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갈 5: 16-18, 22-26 참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며 그에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신자들은 죄에 빠진 다른 신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바울은 갈라디아의 믿는 자들에게 죄에 빠진 사람들을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 주라고 권면하였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들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며, 특별히 영적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들을 지키라고 경고하였다 (6: 1 -5).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따라 행하는 믿는 자들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 (6: 6-10).

그같이 하는 일은 교회 성도들이 그들의 지도자들을 돌보는 일을 포함하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부분에다 자서전적인 부분을 추가하였다.

그는 결론 부분의 일부 구절들을 친필로 썼다 (6: 11).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업적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만과 자부심에 빠진 나머지 복음의 요점을 놓쳤다.

유대주의자들은 십자가의 중요성과 능력을 약화시켰다.

대신에,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과 그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를 추구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을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따랐다.

바울은 자신의 노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였다 (6: 14 -15).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 하였다 (고전 2: 2).

이기적인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다.

바울은 강경한 어조로 거짓 교사들에게 “이후로는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평강과 긍휼”을 간구하는 기도로 마쳤다.  

 

 

학습구절 연구 

 

관계의 삶 (갈라디아서 6장 1 -5절)

 

6장 1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는 것)”과 같이 파괴적인 태도와 행동을 보일 것이 아니라 (갈 5: 26), 서로 도와야 한다.

바울은 다시 갈라디아 신자들을 형제 자매로 부름으로써,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며, 그들이 영적 가족이 되고 있는 것과 그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바울은 먼저 믿음의 가족인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여기서 “범죄한 일이 드러나(다)”라는 말은 시험에 빠져 죄를 지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그 말은 의도적이고도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고,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해서 예기치 않게 죄를 짓게 된 것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은, 그 같은 일이 생기면, “신령한” 성도들은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사람을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신령한 너희”로 번역된 말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행하며 바울이 언급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 (5: 22 -26)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잡다” 라는 단어는 복음서에서 ‘그물을 수선하다’ 혹은 ‘그물을 깁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마 4: 21, 막 1: 19).

그물에 난 구멍을 수선하면, 그물은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단어는, 성경 밖의 다른 곳에서는, 골절된 뼈를 바로잡다 혹은 이어 맞추다 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그 같은 회복의 사역은 죄인을 교회의 가족 안에서 유용하게 쓰임을 받는 위치로 되돌려놓는 일이 되고 있다.

시험에 빠진 형제를 바로잡는 일에는 “온유한 심령”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의 하나로 “온유”를 열거하였다 (갈 5: 22 -23).

온유한 마음으로 대한다고 해서 죄를 지은 형제가 그것을 필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온유와 정반대가 되고 있는 마음인 교만이나 오만은 오히려

시험에 든 자와 교회 사이에 더 깊은 골을 만들 뿐이다.

 

 

자신도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여 시험에 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가지도록 도와 준다

 

 

바울은 죄를 범한 형제를 바로잡아 주려는 성도들에게는 결코 우월감이 설 자리가 없음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다

시험과 유혹은 예기치 않은 때에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되, 오히려 믿음이 강한 성도를 더 강하게 공격한다.  

 

6장 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바울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짐을 서로 지라”고 하였다.

여기서 “짐”이란 말은 혼자 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무거운 짐을 의미 할 수 있지만, 1 절에서 언급 된 것과 같은 도덕적인 결함을 구체적으로 가리킬 수도 있다.

그 같은 죄의 죄책감과 수치심은 무거울 수 있다.

믿는 자들도 이 세상에서 다른 여러 가지 무거운 짐들을 지고 씨름하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다 (마 11: 28).

바울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어떤 종류의 것이든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을 도와줌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윤리적 가르침을 가리킬 수 있었다.

그때 바울은 예수님이 인용하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 분명하다 (마 22: 34 -40; 눅 10: 25 -28; 막 12: 29 -31 참조).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6장 3 -4절: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있지 아니하리라

 

바울은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는 말로 교만의 죄에 대해 경고하였다.

성도가 영적으로 교만해 질 경우, 다른 성도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행할 수 없으며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죄에 빠진 것을 보고 우리 자신은 같은 죄를 짓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바울은 그같이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죄에 빠진 것을 보고, 자기는 그 같은 죄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믿는 자들이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쉬운 또 다른 함정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의 것과, 특별히 믿음이 약한 신자들의 것과 비교하는 일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각각 자기 일을 살피라”고 하였다.

“살피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금을 화덕에다 단련할 때 그 순도를 검사하는 용어였다.

우리는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 혹은 대조 하는 대신에, 자기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검증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같이 할 때, 다른 사람을 가혹하고도 비판적인 마음과 태도가 아니라, 온유하고도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대할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믿음 생활의 목표로 삶을 때, 가장 신실한 신자라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먼 것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다윗처럼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신자는 그들의 삶 속에 영적 교만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을 안다 (시 139: 23).  

4절 본문에서, “자랑할 것”이라는 말은 우리가 행하는 일이나 업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6장 5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바울은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는 말로 이 단원을 요약하였다.

언뜻 보면, 이 구절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한 2절의 말과 모순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5 절에서 ‘’으로 번역된 헬라어와 2 절에서 번역 된 ''이라는 용어의 차이점을 알면 외관상 불일치의 문제는 해결된다.

5절에서 ‘짐’으로 번역된 용어는 군인의 배낭이나 군장 혹은 배의 선적 화물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는 아무도 혼자 힘으로 져서는 안될 무거운 짐들은 나누어 지도록 서로 도와야 하는 반면에 (2절의 짐), 어떤 짐들은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서 질 수 없는 것이 있다 (5절의 짐).

각각 자기의 짐”으로 표현되고 있는 5절의 ‘’이란 용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각자가 져야 될 책임의 짐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는 말씀으로, 그 짐이 가볍다고 하셨다 (마 11: 30). 

바울은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책임의 짐을 지는 것뿐 아니라, 마지막 날에 신자들 각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생각했을 수 있다 (고후 5: 10).

 

청지기의 삶 (갈라디아서 6장 6 -10절)

 

6장 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로,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 특별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도록 격려하였다.

바울 자신은 천막을 만드는 생업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치는 사역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도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였다)”고 하였다 (행 20: 34).    

그러면서도 바울은 교회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고 지도자들은 교회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동업 관계의 사역을 구상하며, 그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고 더 효과적인 사역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예수님도 복음의 일꾼들이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것을 옹호하셨다 (눅 10: 7).  

 

6장 7 -8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바울은 원인과 결과의 일반적인 원리를 그리스도인의 삶에다 적용시켰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은 자명하며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였다.

이 자연 원리에 따르면, 우리가 삶 속에서 심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자라나며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믿는 자들마저도 이 점에서 스스로 속이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심은 것을 거두어 들이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심은 것과 다른 것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고 경고하였다.  

업신여김을 받다” 혹은 “조롱을 받다”로 번역된 말의 문자적인 뜻은 ‘경멸하여 코를 거꾸로 들어 올리다”이다.

아무도 고통의 결과가 없이 하나님을 그 같은 방법으로 대할 수 없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르며 참된 복음의 진리에서 이탈하면, 그들은 파괴적인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바울은 또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하였다.

바울이 8절에서 밝힌 그 말은 그가 갈라디아서 전체를 통하여 교훈하려고 한 신앙의 원리가 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그의 육체를 위하여 심거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부터 26절에서 육체와 성령에 대해 말하며, 육체의 욕심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시키면서 심는 대로 거두는 원리를 제시하였다.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낙심하다’라는 말은 ‘무기력해지다’, ‘지치다’, 혹은 ‘의기소침해 지다’ 등의 뜻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선을 행하다’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는 일’을 가리킬 수 있지만, 넓게는 도덕적인 선행과 성령님의 지시와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바울은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로, 신자들이 거두게 될 것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심는 자가 거두게 될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가능하기는, 성령님께서 적절한 때에 베풀어주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축복들을 생각할 수 있다.

바울은 마지막 심판 때의 상급을 의미했을 수 있다.

만일 그랬다면, 여기서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종결시키려고 결정하신 때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추수 때를 주시기 까지 기다린다.  그 동안에 우리에게는 중요한 할 일들이 있다.

 

 

작물들을 재배하려면, 인내심과 열심 그리고 힘든 작업이 필요하다.

농부들은 가뭄이나 홍수 혹은 농 장비의 고장이나 병충해 같은 장애물들로 인해 낙심할 때가 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추수 때가 오고 곡물들을 거두어 들인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의심이나, 다른 성도들로부터의 지원이나 격려의 부족, 혹은 끊임없이 변하는 문화 등으로 인해 낙심할 수 있다.

그 같은 성도들에게 바울은 인내하라고 격려하였다.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6장 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 구절에서 “기회”로 번역된 헬라어는 9절의 “”와 같은 용어가 되고 있다.

그것은 보통 어떤 일을 하기에 적당한 때 혹은 정해진 때를 가리킨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하였다.  

추수 때를 간절히 기다리는 믿는 자들에게는 심는 때 혹은 시기를 잘 선용하며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바울은 심는 일에는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이 포함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기는 힘들고 어렵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기는 쉽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 악한 사람, 혹은 나를 실망시키는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바울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바울은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는 말로, 믿는 자들은 먼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며 섬길 것을 강조하였다.

믿는 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며 선하게 대하기를 힘써야 하겠지만, 다른 믿는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도움을 베풀기를 힘써야 한다.

 

복음 선포의 삶 (갈라디아서 6장 14 -15절)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그러하니라

 

율법은 구원을 얻는데 필요조건이 된다고 주장한 유대주의 신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바울은 “내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다음,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그러하니라”는 말로 그 이유를 밝혔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동의어가 되고 있다.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 혹은 ‘죽었다’는 말은 바울이 더 이상 삶에 대한 경건치 않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는 육체에는 죽었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그리스도를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사람의 가치를 뒤집어 놓았다.

 

6장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바울이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라고 했을 때, 그것은 유대주의자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었다 (5: 6 참조).

유대주의 신자들에게 할례는 구원을 얻는데 필요하였다.

그들은 가르치기를,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행 15: 1). 

바울은 할례를 받느냐 또는 받지 않느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생명을 창조하시는데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며 할례와 구원의 관계를 부정하였다.

바울은 단언하기를, 오직 중요한 것은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찬양하였다.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죄인이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를 맺게 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믿음은 새로운 희망, 새로운 목적, 새로운 갈망, 및 새로운 습관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길을 열어준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믿음이 성숙한 신자들은 죄를 범한 다른 신도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조심스럽고도 주의 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원들을 잘 관리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 신자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며 증거해야 한다.  

 

 

당신이 지금 삶 속에서 심고 있는 것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서, 자신의 일과 삶을 살펴보라.

자신이 심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향후 5년 안에 어떤 것을 거두어 들일 것을 기대하는가?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공부한 것에 비추어서, 당신에게 어떤 변화들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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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감사의 찬양 - 제 12과 - 2018년 8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22장 26 -36, 50 -51절 강호길 2018.08.14 200
148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 제 2과 - 2019년 12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14장 5 -19절 강호길 2019.11.30 203
147 미래에 목표를 설정한 삶 - 제 13과 - 2017년 11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레위기 26장 3-16, 40-45절 강호길 2017.11.20 204
146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 제 5과 - 2020년 10월 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25장 1-10절 강호길 2020.09.27 205
145 바로와의 대결 - 제 2과 - 2017년 9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7장 1 -13절 강호길 2017.09.03 211
144 준비시키시다 - 제 7과 - 2017년 10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25장 1 -9절; 31장 1 -6절 강호길 2017.10.07 211
» 참된 사랑의 삶 - 제 7과 - 2018년 10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6장 1 10, 14 -15절 강호길 2018.10.06 211
142 정착하다 - 제 5과 - 2017년 1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여호수아 공부 강호길 2016.12.24 212
141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함 - 13과 - 2017년 8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42편 강호길 2017.08.19 213
140 주의하라 - 제 12과 - 016년 11월 20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15 214
139 하나님의 임재 - 제 5과 - 2017년 7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84편 강호길 2017.06.25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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