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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13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습구절: 마태복음 28장 16 -20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전도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주요교리:  전도와 선교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려고 노력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암송구절: 마태복음 28장 19 -20절

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nd teaching them to obey everything I have commanded you.

And sure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end of the age.

 

시작하는 글:

우랄 산맥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고 있다.  

이 산맥을 통과하는 한 길 근처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조그만 한 교회가 있다.

교인이 12명 밖에 안 되는 이 교회는 강한 간증이 되고 있다.

그들은 정부의 제재(制裁)와 지역주민들의 박해로 인해 개인 집에서 모인다.

이들 신자들은 적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잘 지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깊은 산 속 지역에다 다른 교회들을 시작하였다.

매주 마다 그들은 어렵고 힘든 산길을 걸어가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고 전파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들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엄청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가능한 곳은 어디든지 찾아가서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헌신적인 신도들의 고립된 하나의 예가 아니다.

지금 세계 전역에서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지상명령을 단순히 해야 될 어떤 일, 즉 해야 할 일의 목록에서 체크하는 하나의 과업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며, 하나의 계획과 과제가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것이 되고 있다.  

이번 주의 학습을 통해 우리는 지상명령의 초점은 단순히 제자를 삼는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단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우리의 기쁨은 사람들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을 얻게 하고 목적과 능력이 있는 삶으로 변화를 받게 하는 것이다.

배경설명

마태복음 28장 16 -20절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고전 15: 3 -4).

이 간단한 진술은 복음의 핵심을 선포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난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무덤의 정적은 3일 만에 그리스도의 부활로 하나님의 능력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롬 1: 4).

아직도, 그것은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갈릴리로 돌아가면 거기서 그들을 만나시겠다고 지시하셨다 (막 16: 7; 마 28: 16).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지체하며,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요 20: 19).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여행길을 떠났던 곳인 갈릴리로 돌아가야 될 필요와 목적이 있으셨다.  

열한 제자는 그들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베드로와 다른 몇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있는 고기잡이 배로 돌아갔다 (요 21: 3).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더 크고 새로운 과제를 받게 될 것을 기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부르셨을 때의 장면을 재연(再演)하셨다 (눅 5: 1 -5; 요 21: 15 -17).

제자들은 자신들의 인생 목표와 목적이 변하지 않은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다.

예수님은 특별히 베드로가 잠시 믿음이 약해져서 그리스도를 부인한 일로 인해 제자로서 실격되지 않은 것을 알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여전히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 어부와 하나님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요 21: 16 -17).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의 분부를 모든 제자들에게 확대시키셨다.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자신의 과업을 마치시고, 구원의 좋은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맡기셨으며, 그들을 통해 오늘 날 우리들에게 까지 전해 지고 있다.

하늘로 돌아갈 준비를 하실 때 (행 1: 9),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며, 가는 곳마다 그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분부하셨다 (마 28: 18 -20).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명의 배경은 예수님의 주권이 되고 있다.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는 일 자체만이 목적이 아니다,

그 사명은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포함하고 있다.

금주의 학습구절에서,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 혹은 대 분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로, 예수님이 영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배우게 된다.  

학습구절연구

경배 (마태복음 28장 16 -17절)

28: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28: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28장 16절 –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로 이전에 70 마일이나 되는 갈릴리까지 여행했을 때, 그들의 수는 열 두 명이었다.

이제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갔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는 절망에 빠진 나머지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다(마 27: 5).

종종 더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은 이 핵심 인물들을 택하여 사도로서의 특별한 역할을 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직후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지시 하셨다 (마 26: 32; 마 28: 7).

그렇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있으면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아 걸고 함께 모여 있었다 (요 20: 19).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후, 그들은 슬픔과 불안에 가득 차서 애도하고 있었다 (막 16: 10).

그들은 무덤에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잊어 버렸던 것처럼 보였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대신에, 그들은 두려움이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게 했다.

단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그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후에야 (요 20: 19 -29),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두려움과 겁에 질려 숨어 있는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던 예루살렘을 떠나 옛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들의 마음은 어떤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특정한 목적으로 그들을 만나시기 위하여 “지시하신 산”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는 예수님이 갈릴리 북쪽에 있는 수많은 산들 중에서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산을 지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시기 전에 찾아 올라가셔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산과 동일한 곳이 될 수도 있다 (눅 6: 12 -13).

그 산은 갈릴리 바다 근처에 있었다.

베드로와 다른 몇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고기를 잡으러 가기로 한 것을 보면(요 21: 3),

그들은 베드로나 요한의 아버지의 배들이 있던 곳 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그 같을 경우, 이 해변가는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부로 일했던 곳이 되었을 수 있다 (마 4: 18 -22).

28장 17절 –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진정으로 메시야이신 것을 알았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그들 앞에 서 계셨던 것이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그들을 만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았고 그에게 “경배”하였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보고 그에게 경배하였다 (마 2: 11).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으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예수께 절하(였다)” (14: 33).  

무덤 근처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여인들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 (마 28: 9).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와 예배를 받으실 분이 되시기 때문이다 (4: 10).

심지어 천사들까지도 경배 받는 것을 거절하였다 (계 22: 8 -9).

예수님이 경배를 받으신 것을 보면, 그는 단순히 선지자나 교사나 치유자가 아니라,

분명히 아들 하나님이시다.

놀랍게도, 그들이 예수님께 경배할 때에도, “아직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

몇 일전,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에서,

예수님은 그가 부활하신 후 그를 본 여인들의 말을 듣고 믿지 않은 것으로 인해 열한 제자를 꾸짖으신 적이 있다 (막 16: 14).

갈릴리에서의 상황을 보면, 열 한 제자들 외에 다른 제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믿음의 정도가 확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의심하다”는 말로 번역된 말은 신약성경에서 단지 두 번만 사용되고 있는 용어에서 온 것으로,

흔들리거나 의견이 확고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고 있다.

 

권세 (마태복음 28장 18절)

28: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장 18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나아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멀리 떨어져서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며 지시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는 제자들을 “친구”로 부르셨다 (요 15: 15).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의 복음을 맡겨 보내려고 하셨을 때, 그는 가까이 오셨다.

그가 그같이 가까이 오신 일은 메시지의 긴박성과 그의 메신저가 될 제자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은 이제 그들의 손에 맡길 임무를 성취 할 수 있는 능력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는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에 의존할 것이다.

성자 하나님으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

권세”로 번역된 용어에는 통치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뜻이 담겨 있다.

다니엘은 인자가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의 영원한 나라를 다스리게 될 환상을 보았다 (단 7: 14).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대제사장의 기도를 하실 때, 아버지께서 그에게 “만민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 것을 인정하셨다 (요 17: 2).

내게 주셨으니”라는 말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본성과 그와 아버지와 관계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부활 이전이나 후에나 똑같이,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다 (요 10: 30).  

예수님은, 부활 후에는 영화롭게 된 새 몸을 가지게 되었지만, 부활 이전이나 후에나 똑같이 인성과 신성을 똑같이 지니고 있다.

바울은 선언하기를,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등됨”을 주장할 모든 권리가 있으셨지만, 그는 자기를 낮추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하였다 (빌 2: 6 -8).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시고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과 땅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끓게 하셨다.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 할 때가 다가 오고 있다 (빌 2: 9 -11).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맡겨서 그의 제자들을 보내실 수 있는 권세를 받으셨다.

똑같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가 맡겨주신 사명을 성취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사명 (마태복음 28장 19 -20절 상)

28: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8: 20a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28장 19절 – 예수님의 사명은 십자가, 부활 또는 승천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구속의 속죄 사역은 십자가에서 끝난 반면에,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과업은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 계속되었다.

떠나시기 전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지상 명령을 하셨다.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19절과 20절을 18절과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온 세상으로 가서 그의 이름으로 제자를 삼을 수 있다.

우리도 그의 권세로 그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 삼는 일을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같이 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포함하여, 그의 제자들이 안전하고 펀안한 삶의 영역을 벗어나 모든 사람에게 그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를 원하신다.

많은 성경 주석가들은 19 절과 20 절에는 “제자를 삼(으라)”는 단지 하나의 명령형 동사가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가서”라는 말로 번역된 단어는, 침례를 베풀고 가르치는 것과 같이, 분사형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문장의 구조를 보면 예수님은 가는 것의 중요성도 똑같이 강조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제자들이 온 세상으로 가서 제자를 삼기를 원하셨다.

물론, 그들은 일상생활 과정 속에서도 제자들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들은 또한 의도적으로 모든 민족을 찾아가야 되었다.

민족”이란 용어는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 그룹들을 가리키고 있다.

당시 제자들은 주로 자신들의 백성, 즉 이스라엘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예수님이 승천하시려는 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나라에 왕국을 회복시키시려는 지에 대해 물었다 (행 1: 6).

분명히 예수님은 먼저는 유대인과 나아가서는 이방인(“헬라인”)의 구세주가 되셨다 (롬 1: 16).

이방인이란 용어는 유대인이 아닌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잘못 이해될 수 있다.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제자를 삼는다고 하면,

우리는 먼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교인들에게 신앙훈련을 시키는 조직적인 활동이나 프로그램을 생각하게 된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은 여전히 예수님의 명령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지만,

그것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으로, 지상명령의 별개의 부분이 되고 있다 (마 28: 20).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에게서 배우는 제자를 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자를 삼는 일의 시작은 전도이다.

그 같은 뜻은 예수님이 뒤이어 하신 말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일단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로 영접하면, 그들은 침례를 받는다.

침례를 베푸는 일은 제자를 삼는 일의 일부가 되고 있다.

침례는 구원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는 순종의 행위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된 것을 알리는 공적인 증언이자,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장사되었다가 부활한 것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중요한 교회의 규례가 되고 있다 (롬 6: 4 -5).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하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강조하셨다.

실제로 삼위일체 형태의 교리가 여기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하나님이 서로 다른 인격체가 되면서 동시에 한 하나님이 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명령은 이 중요한 교리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교회가 이 의식을 수행할 때, 교회는 삼위 일체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임을 선언한다.

28장 20절상 - 제자를 삼는 일은 전도로 시작되며, 뒤이어 침례를 베푸는 일이 따르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돕는 일로 계속되고 있다.

20 절의 전반부에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제자로서 성숙하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먼저, 가르(치라)”는 말에는 단순히 주일학교 반이나 소 그룹 모임에서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것이 포함되고 있다.

성경말씀을 아는 지식은 믿음의 성장에 필수적이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은 가르치고 배우는 단순한 지식 전달에만 국한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적은 그 말씀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새로 믿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가르침의 또 다른 측면은 그 완전성이 되고 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마치 성경이 뷔페 저녁 식사 인 것처럼.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거나 유익되는 것만을 고르거나 선택해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함께 계심 (마태복음 28장 20절 하)

28: 20b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8장 20절 하 -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제자 삼는 일을 위해 나아갈 때 그들을 혼자 있게 하지 않을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다.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로 번역된 말의 어원은 “나는 . . .이다”이다.  

이 용어는 단순한 사실을 진술하는 것 이상의 것으로, 그것은 정체성을 선언하는 말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정체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밝히신 것처럼 (“I AM WHO I AM” - 출 3: 14),

예수님은 이 용어를 사용하셔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표현하셨다 (요 8: 58).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제자들은 세상의 재판관들 앞에 서게 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우주의 재판자가 계시다.

그들은 세상의 왕들 앞에 끌려 나올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왕들 중의 왕이 계시다.

그들이 직면하게 될 어떤 권력이나 권세도, 위험이나 기회도 그들과 함께 걸으시는 분보다 크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또한 “세상 끝날까지” 그리고 “항상”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몸으로는 조금만 더 함께 계시게 될지라도, 성령님을 통해 그는 항상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 안에 거하실 것이다.

 

말씀의 적용:  

  • 우리는 마음에 의심이 들 때에도 예수님을 예배할 수 있다.
  • 믿는 자들은 세계의 여러 곳을 다닐 때,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일을 해야 한다.
  •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현존에 비추어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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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주의하라 - 제 12과 - 016년 11월 20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15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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