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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5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12과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심                                                        

 

학습구절:  마태복음 27장 41 -52절

성경진리: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셨다.

주요교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사람들이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암송구절: 마태복음 27장 54절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When the centurion and those with him who were guarding Jesus saw the earthquake and all that had happened,

they were terrified, and exclaimed, “Surely he was the Son of God!”

 

시작하는 글:

우리는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며 자유와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려는 군인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경찰들은 이웃을 보호하고 돕지만, 누군가가 강제로 시켜서 그같이 하는 것이 아니다.

경찰들은 순찰을 하다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자원해서 순찰하는 일을 한다.

소방관들과 응급처치 요원들도 직무 중에 생명을 잃을 위험을 안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예수님과 그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즉시 십자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단번에 주시려고 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죽음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해 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야기를 공부할 때, 우리는 진정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를 예배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온전한 헌신의 마음으로 그를 섬기게 된다.

 

배경설명:

마태복음 27장 33 -66절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사형의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는 잔인함을 유대에 가지고 왔다.

예수님에 대한 사형 선고는 로마 총독에 의해 선언되었기 때문에, 그는 로마의 처형방법에 의해 죽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같이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처형을 받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경고해 주셨다 (마 20: 19; 26: 2).

잔인한 구타와 가학적인 채찍질을 받으신 후, 예수님은 강제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장소로 끌려가셨다 (요 19: 16 -17). 

일반적으로 범죄자들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갔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다른 두 죄수도 그 행렬에 섞여 걸어갔다 (눅23: 32).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게 될 것을 예언했었다 (사 53: 12).

예수님은 심한 구타와 출혈로 너무나 기진하여 더 이상 십자가를 메고 가실 수 없었다.  

병사들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다.

구레네는 오늘 날 리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던 마을이었다.

이 사람은 단지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었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 밝혀지고 있는데 (막 15: 21), 이들 두 아들이 후에 믿는 자들이 되었다면 (롬 16: 13), 그것은 중요한 사실이 되고 있다.

처형장소는 “골고다”인데, 그 말은 “해골”이라는 뜻으로, 라틴어로는 ‘갈보리’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장소에는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섬기며 갈릴리로부터 따라 온 여자들이었다.

그들 여인들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있었다.

요한은 비통에 차 있는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요 19: 25).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몇 가지 특별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낮 열두 시(“제육시”)부터 오후 세시(“제구시”)까지 해가 빛을 잃은 것 외에도,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막 15: 38; 눅 23: 44 -45).

지진이 일어나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다.

백부장과 그와 함께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그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하였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 총독에게 청하여 예수님을 장사하도록 허락을 받고 시신을 가져다가 니고데모데와 함께 장례 준비를 하였다 (요 19: 36 -39).  

그들은 요셉이 자기를 위해 만든 새 무덤에다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 지냈다.

요셉은 예수님이 그 무덤을 단지 3 일동안만 필요하실 것을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빌라도 총독은 무덤을 지키게 해 달라는 유대지도자들의 요청도 들어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그가 부활하였다고 주장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빌라도 총독은 그들에게 경비병을 내줄 터이니 힘대로 굳게 지키라고 하였다.

불과 3 일 만에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노력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학습구절연구

조롱을 당하심 (마태복음 27장 41 -44절)

27: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27: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27: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27: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27장 41 -42절 – 로마정부는 죄인들을 십자가에 처형할 때, 일반 대중에게 경고와 교훈을 삼을 목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공도로가

가까운 장소를 사용하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삼일 동안에 짓겠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곡해하여 도리어 조롱 거리로 삼았다 (요 2: 19 -21).

그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하였다.  

그들 중에는 한 주 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그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다윗의 자손으로 환영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반 군중들뿐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였다.

그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이었다.

히브리 서기관들은 단지 성경을 베끼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에 정통한 율법학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관해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마땅했다.

율법과 예언에 정통했던 이들은 성경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것을 알아야 마땅했다.

대신 그들은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장로들도 그같이 조롱하며 조소하는 부끄러운 일에 참가하였다.

여기서 “장로들”이란 말은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산헤드린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로마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제한적인 자치 통치권을 부여해 주었다.

산헤드린은 그 같은 자치 통치권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로마총독의 감독하에 종교, 민사 및 형사적인 안건들을 결정하며 처리하였다.

그것은 유대의 최고 의결기관 혹은 공회로 불려지고 있다.

그들 구성원들은 사람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불법적으로 재판하는 일에 참가하였고, 골고다 언덕에서는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조소하며 비방하였다.

그들은 또한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 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조롱하며 비방하였다.

당시 죄수를 십자가에 처형할 때에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삼기 위해, 죄수의 죄명을 나무 판에다 적어서 죄수의 머리 위에다 못박아 두는 것이 관례였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고발한 죄명은 예수님이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그 것은 로마제국과 권세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과 모욕이 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의 죄패에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과 “유대인의 왕”이라는 호칭을 기록하였다 (요 19: 19).                                                      

그 패는 또한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어 있었다 (요 19: 20).

당시 히브리어는 종교 권을 대표하였고, 로마 혹은 라틴어는 정부 혹은 정치권을 대표하였으며, 헬라어는 문화권을 대표하였다.

그러니까, 인간의 세가지 생활권이 십자가에서 만났던 것이다.

유대지도자들은 빌라도 총독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하였다 (요 19: 21).

그러나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고 하였다 (요 19: 22). 

로마법에 의하면, 일단 죄패를 기록하여 붙여 놓으면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공식적으로는 “유대인의 왕”으로 죽으셨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자,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올” 힘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백성들은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믿기에는, 예수님이 기름 부음 받은 분이 시라면, 그는 못 박혀있는 십자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예수님이 그 같은 능력을 갖고 계셨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과 굴욕을 기꺼이 견디셨다.

역설적이게도,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비웃기 위한 의도로 말하였지만, 그것은 실제로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인정하는 일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남은 구원하였(다)”고 하였다. 

그 말은 예수님이 치유해 주신 사람들과 나사로 같이 죽은 것을 살려주신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이 자기를 조롱하는 자들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버리신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를 믿게 되었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 사람들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고 하면서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전에 비유로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눅 16: 31).

27장 43절 - 그들의 경멸의 두 번째 요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예수님의 주장에 촛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이들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고통과 수치를 받는다는 것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조롱하였다.

어쩌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신 말씀에 의거하여, 그들은 그 말을 가지고 예수님을 공격하였다.

확실히 아버지를 진정으로 신뢰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출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이란 말에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군중들 앞에 내보이기 전에 군인들로 하여금 그를 심하게 채찍질하게 했다.

총독이 예수님을 끌고 나와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왕이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들 대부분이 로마 제국의 멍에를 깨뜨릴 것으로 믿었던 사람의 피에 물든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요 19: 14 -15). 

그들은 이 사람이 그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이 십자가를 향해 조롱하며 야유한 것은 하나님도 그를 언치 않으실 것이라는 뜻을 나타냈다.

27장 44절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조롱하는 일에 합류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의 오른 편에 달렸던 죄수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다른 죄수를 꾸짖으며, 예수님을 옹호하고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부탁하였다 (눅 23: 39 -41).

그러나 마태는 기록하기를, 십자가에 못박힌 두 강도가 함께 “욕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 강도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행하시는 일과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가 진정으로 메시야인 것을 믿게 된 것이 분명하다.

 

버림을 받으심 (마태복음 27장 45 -49절)

27: 45   제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 시까지 계속되더니

27: 46   제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27: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27: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27: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27장 45절 - 예수님의 최후 시간 동안에, 자연계도 그 창조주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에 반응을 나타냈다 (롬 8: 22).

낮 열두 시(“제육시”)부터 한 낮의 밝음이 사라지면서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오후 세 시(“제구시”)까지 계속되었다.

회의론자들은 이 현상을 일식(日蝕), 화산분출(火山噴出), 혹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의 하나로 설명하려고 든다.

그들은 일식현상은 마태가 전한 대로 세 시간은 고사하고, 수 분 이상도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또한 이 기간의 어떤 역사적인 기록물에서도 화산분출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꾸며낸 이야기의 경우에는, 복음서 기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그들에게는 어둠이 온 땅을 덮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될 동기가 없었다.

유일한 합리적인 결론은 그 사건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에 대한 초자연적인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을 때, 태양의 밝은 빛은 숨겨지고 세상은 죄의 암흑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이다 (고후 5: 21).

모든 창조물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다.

27장 46절 – 마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 중 하나만 기록하고 있다 (막 15: 34; 눅 23: 34, 43, 46; 요 19: 26, 28, 30).

그러나, 이 부르짖음은 예수님이 고통가운데서 아버지께 말씀하신 것으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제구시쯤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이 무렵 신비한 어둠이 세시간 동안 온 땅을 뒤덮었다.

예수님은 또한 격심한 매질과 손과 발에 박힌 못과 이마에 씌어진 가시관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계속 몸을 들어올려야 하는 일로 인하여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었음이 확실하다.

그때 예수님은 부르짖는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같은 사실은 예수님의 질식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일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시편 22편의 시작부분을 인용하셨다:

그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을 제기해 오고 있다.

영지주의나 가현설을 주장했던 초기 이단자들은 이 때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예수님의 인간성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경 본문은 예수님의 인간성과 신성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과 가장 멀리 분리된 상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죄에 대한 가장 가혹한 하나님의 심판이 되었다.

예수님이 부르짖은 말씀은 그 같은 상태에 대한 반응으로 시편 22편 1절을 인용하여 당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셨다.

27장 47 -49절 – 마태는 예수님이 부르짖은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은 말만을 전했다.

그런 다음 그는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외치신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전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하였다.

당시 유대 백성의 일부는 하나님의 종이 곤경에 처할 대에 엘리야가 와서 구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가만 두라”고 하며,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고 하였다.

요한복음은 또한 예수님이 성경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요 19: 28 -39; 시 69: 21).

그러자 한 사람이, 필시 병사들 중의 하나가,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였다. 

 

희생제물이 되심 (마태복음 27장 50 -52절)

27: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27: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7: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27장 50절 –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심한 채찍질로 인한 과다한 출혈과 질식사로 보고 있다.  

한 군인이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피와 물”이 나온 것으로 인해,

예수님의 죽음을 심장 파열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요 19: 34).

본과의 학습구절은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고 적고 있다.

요한복음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고 기록하였다 (요 19: 30).

그런데,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는 말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영혼을 넘겨주었다”이다.  

이 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 죽음의 자발적인 성격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타의에 의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주셨다.

예수님은 범죄자나 순교자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 죽으셨다. 

27장 51 -52절 – 예수님은 “제구시”, 즉 오후 세 시경에 운명하셨다 (27: 45 -50).

그것은 성전에서 정기적인 오후 희생제물을 드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성전에는 제사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특별한 사건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뒤이어 일어났다.

성전 안의 지성소를 막고 있던 아주 두꺼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이 휘장을 두께가 4 인치, 넓이가 60 피트, 그리고 높이가 30 피트가 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그 휘장을 지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대제사장도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과 자신 사이를 막고 있던 것이 그리스도의 찢겨진 몸을 통하여 열려졌음을 선포하시는 것과 같다 (히 10: 20).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다.

이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졌다.

또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갈라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동시에 마태는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니라”고 기록하였다.

그 말은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을 상기하며 부활의 능력을 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에스겔 선지자는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고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겔 37: 12).

 

말씀의 적용:

  • 모든 창조물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증거한다.
  • 죄는 인간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요인이 된다.
  •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막고 있는 담을 제거해 주어,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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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참된 열매 - 제 6과 - 2018년 10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5장 13 -26절 강호길 2018.10.01 198
150 화해하다 - 제 7과 - 2019년 1월 13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3장 1 -15절 강호길 2019.01.08 199
149 감사의 찬양 - 제 12과 - 2018년 8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22장 26 -36, 50 -51절 강호길 2018.08.14 200
148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 제 2과 - 2019년 12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14장 5 -19절 강호길 2019.11.30 202
147 미래에 목표를 설정한 삶 - 제 13과 - 2017년 11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레위기 26장 3-16, 40-45절 강호길 2017.11.20 204
146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 제 5과 - 2020년 10월 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25장 1-10절 강호길 2020.09.27 205
145 참된 사랑의 삶 - 제 7과 - 2018년 10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6장 1 10, 14 -15절 강호길 2018.10.06 210
144 정착하다 - 제 5과 - 2017년 1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여호수아 공부 강호길 2016.12.24 211
143 바로와의 대결 - 제 2과 - 2017년 9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7장 1 -13절 강호길 2017.09.03 211
142 준비시키시다 - 제 7과 - 2017년 10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25장 1 -9절; 31장 1 -6절 강호길 2017.10.07 211
141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함 - 13과 - 2017년 8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42편 강호길 2017.08.19 213
140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 제 1과 - 2019년 12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9장 15 -23절 강호길 2019.11.23 213
139 주의하라 - 제 12과 - 016년 11월 20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15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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