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2017년 3월 19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3과

무엇이 요구되는가?

학습구절:  마태복음 19장 16 -26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신다.

주요교리: 사람

사람이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암송구절: 마태복음 19장 26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Jesus looked at them and said,

“With man it this is impossible, bu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시작하는 글:

비행기로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필요한 물건들을 잘 준비해가는 것은 스트레스를 덜 어주는 방법의 하나가 되고 있다.

가득 찬 여행 가방과 더플 백(duffle bag)은 여행자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다 챙겨가지고 간다는 확신을 갖게 해 준다.

그렇지만, 약 병들이나 휴대 전화 충전기가 여행가방에 들어있는지 궁금해지는 것처럼 여행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만일 그것들을 챙겨 넣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여행길은 짐을 싼 모든 과정을 계속해서 일일이 점검하는 일이 된다.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면,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물건이 거기 있는지를 확인한다.

마태는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의도는 자기가 종교적 규칙에 따라 산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었지만, 아직 뭔가 빠진 것이 없는지 궁금하였다.

때문에 그는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그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알고 싶어하였다.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그는 영생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였다.

예수님은 그만이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을 그에게 깨우쳐 주시려고 하였다.

 

배경설명:

마태복음 19장 1절 – 20장 34절까지

무엇이 바르게 사는 길이며, 우리는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이 두 개의 유사한 질문은 금주의 학과의 본문에서 탐구하고 있는 것을 요약하고 있다.

이들 두 장에 포함된 이야기들은 삶과 영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백성들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말을 하게 하려고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 이혼문제는 논쟁의 불씨가 되고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첨예하게 대립시키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당시 힐렐(Hillel) 학파사람들은 남자는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샴마이(Shammai) 학파사람들은 단지 아내가 간음을 하였거나 다른 수치스러운 일을 저질렀을 경우에만 남자가 아내를 버리고 다시 결혼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모세는 아내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주고 이혼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신 24: 1; 마 19: 7 -8).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어떤 방법으로든지 논쟁에 말려들게 하고 모세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의도된 것이었다.  

예수님은 형세를 역전시켜 하나님에 대해 군중들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부부가 어떤 구실을 만들어 결혼 관계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부부가 전적으로 헌신하여 결혼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신다.

제자들은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는 말로 그같이 하기가 어려운 것을 인정하였다.

예수님은 이를 이용하여, 결혼관계로 대표되고 있는 하나님의 표준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성취할 수 없음을 보여주셨다.

인간은 하나님과 가능케 하시는 그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예수님은 아이들이 자기에 오는 것을 환영하시며, 천국은 그들처럼 단순한 믿음을 가진 자들의 것이라고 하셨다 (19: 13 -14).

어떤 젊은 사람의 이야기도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19: 16 -30).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성공과 신실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 즉 영생을 진정으로 갖기를 원하였다.

그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필요한 한 가지를 희생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보다는 많은 재물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그의 제자가 되기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실제로 그가 갖고 싶어하는 영생의 길이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해진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래서 공로를 인정받는 시스템을 선호한다.

예수님은 관대한 한 주인의 비유를 드셔서 어떻게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20: 1 -16).

그러나 그 같은 은혜의 댓가는 엄청나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시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그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지불하시려고 하는 값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의 계시의 엄청남을 터득하는 대신에, 예수님의 두 제자는 세상적으로 높아지려는 야망을 계속 추구하고 있었다 (마 20: 17 -28).

반대로, 겸손한 맹인 두 사람은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을 요구할 자격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구하고 예수님의 자비와 은혜로 치유의 능력을 받았다 (마 20: 29 -34).

영생을 얻는 것도 그와 같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인데도, 값없이 주시는 것을 우리는 받을 수 있다.   

 

학습구절연구:

정의된 규범 (마태복음 19장 16 -20절)

19: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9: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19: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19: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

 

19장 16절 인간의 추론은 잘못된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인해 보통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다.

그는 청년으로 (19: 20), 부자였으며 (19: 22) 관원(눅 18: 18)이었다.  

그의 동기는 순수한 것 같이 보였지만, 자신과 예수님 그리고 영생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오해하고 있었다.

영원한 일들을 세상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때, 그의 오류는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첫째로, 이 청년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잘못 이해하였다.

존경심을 나타내는 “선생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그는 예수님을 단지 여기저기 다니며 가르치는 한 순회 랍비로 생각하였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대해 가르쳐 줄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자신에게 말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 예수님이 “”이 되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요 14: 6).

둘째로, 이 질문자는 그가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선행이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람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하나님의 표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셋째로, 불완전한 영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이 적어도 좋은 목표를 원하고 있은 점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본문은 그가 물질적인 성공을 이루었지만, 더 이상의 것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영생”의 확신이 없었다.

그는 영생을 구하는데 진실하고도 성실하였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자기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분임을 믿었다.

그는 다른 많은 질문자들처럼, 예수님을 속이려 들지 않았다.

그는 진정으로 영생으로 가는 길을 알고 싶어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의 대답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19장 17절 – 예수님의 대답의 첫마디는 다른 질문자들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전형적인 질문의 형태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는 질문으로 선한 일의 의미를 지적하셨다.

질문한 사람은 무엇이 선하냐의 관점에서 말하기를 원하였다.

예수님은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는 대답으로 누가 선하냐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대답하셨다.

이는 영생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누가 선하냐라는 문제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영생은 어떤 선한 일을 행함으로 얻을 수 없다.

도리어 영생은 선한 분이신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선의 본질을 확립한 후에, 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는 말씀으로 그 청년으로 하여금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던 길을 생각해보게 하셨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계명들을 (지킬 수 있다)”든가 그같이 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그같이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계명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모든 계명들을 모든 기간 동안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다 (롬 3: 20).  

19장 18-19절 - 우리 중 많은 사람들처럼, 그 청년은 어떤 계명들은 다른 계명들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가 예수님에게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모든 계명을 지키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실패를 시인하였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 자신이 따르며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단계를 예수님께서 제시해 주기를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계명의 완전한 목록을 제공하시는 대신에, 십계명의 뒷부분을 인용하셨다.

그것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계명들이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처음 네 가지 계명은 부정적인 것으로, 하지 말아야 될 것들이다.

어느 누구도 그 같은 죄들을 지으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적극적으로 행해야 되는 것으로, 계명들 중에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되고 있다 (출 20: 12; 엡 6: 2).

예수님은 또한 레위기 19장 18절 하 반절의 말씀도 포함시키셨는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은 이들 계명들을 합한 총체적인 표현이 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면, 우리는 살인이나 간음, 혹은 도둑질하는 죄를 이웃에게 짓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를 위해 가장 좋고 바른 일을 행할 것이다.

19장 20절 – 이 청년은 자기가 무죄하다고 느꼈음이 분명하다.

그는 살인하지 않았고, 도둑질하지 않았으며, 거짓 증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였다 (막 10: 20).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라는 말은 그가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 탐구자는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라고 물었다.

그것은 자랑스럽게 한 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막 10: 20), 그의 질문은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그 외에 다른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진정으로 알고 싶어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은 지킬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의 공로는 아무 가치가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구약의 율법이 지적해주고 있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키기 불가능한 규범 (마태복음 19장 21 -22절)

19: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19: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19장 21절 앞부분에서, 예수님은 인간관계에 대한 십계명의 후반부의 계명들을 열거하셨다.

젊은 탐구자가 그 기준에 맞게 살았다고 주장하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과 직접 관계되고 있는 더 중요한 문제를 그 청년에게 상기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처음 네 계명을 열거하는 대신에,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기초되고 있는 희생적인 행동으로, 예수님은 그 청년이 온전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 같은 지시를 하였다.

그 용어는 완전한 것과 대조되는 완성을 뜻하는 말이다.

한 사람이 행함으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표준을 완전하게 따라야 한다.

한번이라도 지키지 않는 것은 율법을 모두 다 지키지 않는 일이 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는 야고보서 2장 10절은 그 같은 그 같은 경우를 두고 한 말씀이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지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한 제 일 계명과 관계된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마음을 아셨다.

이 젊은 관원은 자신의 삶에서 우상이 된 모든 것을 제거해 버려야 했다.

그는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대신에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어야 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하실 때 이 문제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마 6: 19 -24).

예수님은 그 청년이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하는데, 이제 그가 어느 주인을 택하여 따라야 할지를 결정해야 될 것을 아셨다.

그렇지만, 영생에 대한 궁극적인 문제는, 단순히 계명들을 지키거나 이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청년이 전적으로 자신을 바쳐 그의 제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재물과 자기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포함하여, 이전의 삶을 버리는

것임을 아셨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와서 나를 따르라”고 초청하셨다.

그것은 자기가 달성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인,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초청이었다.

그는 자만의 길을 버리고 의의 길을 택하여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서만 자신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제자의 길은 예수님께 헌신하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이 포함되고 있다.

19장 22절 –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의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절충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으신다.

전적인 헌신이라는 한 가지 선택만이 가능하다.

어쩌면 이 청년의 진짜 문제는 신뢰의 문제가 되었을 수 있다.

이 청년은 재물이 많았고, 그 재물들을 안전의 방패와 우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것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요구는 그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에게 그 대가는 너무 컸고, 그는 그 댓가를 지불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며” 갔다.

이 청년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부를 더 신뢰했던 것이다.

 

받아드릴 수 있는 대비책 (마태복음 19장 23 -26절)

19: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19: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19: 25   제자들이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19: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19장 23절 - 예수님은 관심을 제자들에게 돌리셨다.

그들은 무엇이 진짜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예수님은 돈 문제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그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지적하셨다.

천국”은 마태복음 전체에 흐르고 있는 주제이다.

천국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하늘 위에 있는 것이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다스리시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의 개념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 대한 지배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는 그의 천국의 일원이 된다.

그 청년 관원은 영생을 원하였다.

그는 영생은 단지 하나님 왕국의 시민이 되는 것의 한 특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젊은 관원의 문제는 많은 재물이 아니었다.

재물은 본래 악하지 않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그것이 문제이다 (딤전 6: 10).

젊은 관원은 재물을 안전의 방패와 우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삼을 수 없었다. 

19장 24절 - 예수님은 낙타와 바늘귀의 속담으로 그가 즐겨 쓰는 교수법을 사용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바늘귀”는 실제로 예루살렘 벽에 나있던 좁고 얕은 출입구라고 주장해 오고 있다.

낙타가 그리로 들어가려면, 무릎을 끓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벽에 그 같은 문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꾸며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왕국 (또는 통치권)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부자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법을 사용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낙타와 바늘귀의 속담으로부터 부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예수님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력의 수단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겸손하게 주님께 드리고 믿음을 갖기가 어려운 것을 강조하고 계셨던 것이다.

19장 25절 –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였다.

그들은 몹시 놀랐다.

이 구절은 제자들의 반응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것으로 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부자에 대한 강한 말과 예수님의 은혜의 멧시지를 서로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는 그들의 질문에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나타나고 있다.

당시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재물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징표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누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얻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19장 26절 –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라는 말에서는 놀라움에 차서 쳐다보는 제자들을 애정에 찬 눈으로 쳐다보며 말씀하시는 모습이

암시되고 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라는 말로, 예수님은 구원은 인간의 힘이나 방법만으로는 불가능한 사실을 확실히 밝혀주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곧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

인간이 자신들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그의 능력과 은혜로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부자 청년의 삶 속에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게 하기 위해서는, 그는 믿음으로 자신을 예수님께 드리고 그를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리스도의 손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우리는 구원을 노력해서 얻을 수 없다.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받을 수 있다.

 

말씀의 적용:

  • 구약의 율법은 인간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지적해 준다.
  • 한 사람이 안전을 위해 의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면 그가 구원을 얻기 위해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지 결코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8 서로 용납하며 격려하는 신자들 - 제 13과 - 2020년 5월 2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4장 1-12절 강호길 2020.05.17 186
157 선택의 삶 - 제 12과 - 2020년 2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신명기 30장 1 -10, 19 -20절 강호길 2020.02.09 187
156 가족관계의 삶 - 제 12과 - 2019년 11월 1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에베소서 5장 22절 - 6장 9절 강호길 2019.11.09 190
155 부적당하다고 주저한 모세 - 제 1 과 - 2017년 9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3장 4 -14절; 4장 13 -16절 강호길 2017.08.26 192
154 백성을 구원함 - 제 8과 - 2016년 7월 2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 상 공부 강호길 2016.07.21 193
153 자유함을 얻다 - 제 6과 - 2020년 4월 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6장 1- 14절 강호길 2020.03.31 193
152 진실하신 하나님 - 제 9과 - 2017년 7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146편 강호길 2017.07.24 194
151 참된 열매 - 제 6과 - 2018년 10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5장 13 -26절 강호길 2018.10.01 198
150 화해하다 - 제 7과 - 2019년 1월 13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3장 1 -15절 강호길 2019.01.08 199
149 감사의 찬양 - 제 12과 - 2018년 8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22장 26 -36, 50 -51절 강호길 2018.08.14 200
148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 제 2과 - 2019년 12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14장 5 -19절 강호길 2019.11.30 202
147 미래에 목표를 설정한 삶 - 제 13과 - 2017년 11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레위기 26장 3-16, 40-45절 강호길 2017.11.20 204
146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 제 5과 - 2020년 10월 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25장 1-10절 강호길 2020.09.27 205
145 참된 사랑의 삶 - 제 7과 - 2018년 10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6장 1 10, 14 -15절 강호길 2018.10.06 210
144 정착하다 - 제 5과 - 2017년 1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여호수아 공부 강호길 2016.12.24 211
143 바로와의 대결 - 제 2과 - 2017년 9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7장 1 -13절 강호길 2017.09.03 211
142 준비시키시다 - 제 7과 - 2017년 10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25장 1 -9절; 31장 1 -6절 강호길 2017.10.07 211
141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함 - 13과 - 2017년 8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42편 강호길 2017.08.19 213
140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 제 1과 - 2019년 12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9장 15 -23절 강호길 2019.11.23 213
139 주의하라 - 제 12과 - 016년 11월 20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15 214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