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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2과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

학습구절: 마태복음 17장 1 -13절

성경진리: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주요교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 한이 없으시며 모든 면에서 완전하시다.

암송구절: 마태복음 17장 5절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While he was speaking, a bright cloud covered them,

a voice from the cloud said,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Listen to Him!”

 

시작하는 글:

대부분의 우리는 이웃 사람의 신분과 신원 및 정체성을 다 알고 나면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수 있다.

당신에게는 그가 단지 매주 토요일 마다 뒤뜰에서 그릴에다 핫도그를 요리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그는 야구팀에서 유명했던 타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에게 지난 날 자신의 영광스러웠던 일을 알려 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에 전념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우리가 볼 수 있는 일부분만을 알고 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준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고백하였지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태는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있는 “한 높은 산” 꼭대기에서 세 제자들이 겪은 사건을 기록하였다 (마 16: 13; 17: 1).

그것은 영속적이고도 지속적인 인상과 감명을 준 놀라운 일이었다.

베드로가 그곳에서 한 고백은 예수님을 모세나 엘리야 같은 역사적 인물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위험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 산의 경험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경배하고 헌신할 분이심을 알게 된다.

 

배경설명:

마태복음 17장 1절 – 18장 35절

금주의 배경구절들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증거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변형사건에서부터 시작하여, 마태는 우리가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증거를 기록하였다.

그 첫 번째 증거는 변형사건 때 들린 하나님의 음성으로, 율법의 전수자인 모세와 예언자였던 엘리야는 뛰어난 역사적 인물이었던데 반해, 예수님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마 17: 1 -13).

그 같은 놀라운 사건이 있은 후 수일 동안에 걸쳐, 예수님은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신적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한 아이를 괴롭히는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그것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대한 지배권을 보여주는 일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것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그의 권세의 궁극적인 증거가 되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시켜서 성전 세를 내는 문제를 가지고 민간정부와 종교의 권세를 지배하는 그의 권세를 나타내셨다 (마 17: 14 -27).

제자들도 가장 중요한 사람 혹은 가장 큰 사람이 되려는 욕구에는 우리와 다름이 없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다 (마 18: 1 -9).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에 대한 비유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요점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을 사랑하는 목자가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으려는 노력이, 양떼의 안전에 대한 염려로 인하여, 적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잃은 영혼을 찾는 아들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다.

죄를 범한 형제를 회복하는 문제에 대한 가르침이 예수님의 양의 비유 바로 다음에 나오고 있는 것에서는 마태복음 18장 15 -20절이 단순히 교회 징계를

위한 하나의 가르침이 되고 있지 않은 것이 암시되고 있다.

대신, 그것은 범죄한 형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가 취해야 될 범위와 정도를 나타내주고 있다.  

그 비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로마인들과 헬라인들이 주장하던 갖가지 신들처럼 권위주의적이고도 심술궂은 신의 모습으로 묘사될 수 없다.

우리 하나님은 용서해 주며 회복시켜 주기를 원하시는, 자비와 은혜가 풍성한 사랑의 구세주가 되신다.

용서하지 않는 종의 이야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함이 강조되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의 임재 (마태복음 17장 1 -6절)

17: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17: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7: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17: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17: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17: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17장 1절: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언했을지라도,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의 독특한 본성을 더 완전하게 이해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엿새 후에”라는 말은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후 엿새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막 9: 2).

누가 복음은 “팔일 쯤”후로 밝히고 있는데 (눅 9: 28), 그 것은 변화 산까지 오는데 걸린 이틀간의 시간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태는 변형사건이 일어난 곳이 어느 산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단지 그곳을 단지 “높은 산”으로 밝히고 있다.

그것은 상당히 높은 산을 묘사하는 말이 되고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그 산을 “헤르몬”으로 주장하고 있다.

변화산 교회가 다볼 산에 세워진 것으로 인해, 다볼 산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17장 2절 – 누가복음 9장 29절은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변형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구절의 언어는 예수님의 변형이 아무 경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을 나타내고 있다.

마태는 예수님의 몸이 다른 모양을 취했다고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의 얼굴과 옷이 눈이 부시도록 밝게 빛났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누가복음에서는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라고 묘사되고 있다 (9: 29).

시내 산에서 하나님 앞에 있은 후에 모세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광채가 났던데 반해 (출 34: 29 -30), 예수님의 얼굴은 그 자체로 강렬한 광채의 빛을 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본 인자를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고 묘사하였는데 (계 1: 16), 그것은 마태가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것과 많이 흡사하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17장 3절 – 어떤 경고도 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예수님과 함께 말을 하였다.

모세는 위대한 율법 전수자였고,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였다.

그러니까,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성경의 두 주요부분인 율법과 선지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몸으로 하늘로 들리어 올라갔다 (왕하 2: 11).

이제 그는 이 변화 산으로 돌아와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성경본문은 모세와 엘리야가 어떤 방법으로 나타났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누가는 그들이 “영광 중에”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눅 9: 31).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주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 두 사람의 형상을 알지 못했던 제자들은 누가 누구인지를 구별하기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태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고 있는 사실만 전하고, 무엇에 대해 말했는지는 자세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누가 복음 9 장 31 절은 이야기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당하게 될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십자가의 처형은 얼마 안 있으면 일어날 일이었다.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러 오셨다 (마 5: 17).

17장 4절 –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했지만, 어떤 것도 이 같은 경험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켜주지 못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나타났을 때, 그들은 압도당하고 말았다.

베드로는, 지켜보며 듣는 대신에, 거룩한 순간을 중단시켰다.

제일 먼저 말을 한 사람이 베드로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말을 할 경우, 16: 16 -23에서 보는 것처럼, 그의 말은 홈런이 되든지 아니면 삼진(三振) 아웃을 당하는 극단적인 성격을 띨 수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면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말하였다.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것은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동등하게 취급한 일이 되고 있다.

그 제안을 다르게 표현하면, 그 말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함께 모시고 여기서 살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베드로는 예수가 단지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막”은 장막처럼, 단순한 거처가 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의혹의 여지가 있다.

예수님의 변형과 구약의 주요 인물들의 초자연적인 등장에 비추어 볼 때, 베드로는 예배장소를 암시했을 수 있다.

구약의 장막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만나시는 회막이었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와 동등하게 보았던 것이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그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17장 5절 – 베드로가 “말할 때에,” 즉 베드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나타나 제자들을 덮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가끔 구름 속에서 자신을 그의 백성에게 나타내셨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는”이란 말은 예수님과 다른 두 인물 사이의 분명한 구별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 오셔서 예수님의 독특한 위치와 자격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세와 엘리야와 동등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월등하시며 그들의 주가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는 말로 예수님 만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셨을 때에도, 하나님은 아들인 예수님에 대해 똑같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다 (마 3: 17).

하나님은 이곳에서는 제자들에게 “그의 말을 들으라”고 명하셨다.

베드로는 후에 그의 두 번째 서신인 베드로 후서를 기록할 때 이 사건을 회상하였다.

베드로는 자신들을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로 밝히면서,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소리가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고 증거하였다 (벧후 1: 16 -17).    

17장 6절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엎드려서 심히 두려워” 하였다.

당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것은 예배의 자세가 되었지만, 제자들은 경배하려는 마음보다는 두려움에 더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그들은 전능자이신 하나님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이 되신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하신 말씀도 그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요 14: 8 -9).

 

임재의 목적 (마태복음 17장 7 -9절)

 

17: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17: 8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17: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7장 7 -8절 예수님은 엎드려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 오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눈을 들어서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태가 강조한 점은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는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그 자리에 있었던 목적은 예수님의 정체성, 즉 예수님이 메시야가 되심을 확증해 주는 것이었다.

비록 모세와 엘리야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할지라도, 세 제자들은 그들의 주님을 바라보느라고 그 둘을 무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눈만 가지고 있었다.

많은 경이로운 것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 잡을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장관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놀랄 수도 있다.

우리는 훌륭한 음악에 도취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17장 9절 – 예수님과 함께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제자들의 마음은 갖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겪은 놀라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들이 그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가 되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의 간증은 도리어 정치적 메시야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부채질을 하는 일이 되었을 수 있다.   

예수님이 변형되신 목적은 부활 후에 제자들이 그를 위해 증거할 때 추가의 증거로 삼게 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살리신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더 확실하게 전할 수 있었다 (행 2: 36).

 

시각(視角)의 변화  (마태복음 17장 10 -13절)

17: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7: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7: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7: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침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17장 10절 – 제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예수님에 대해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에 비추어서 자세히 살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 주신 것을 메시야에 대해 서기관들이 가르쳐 준 것에 비추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물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말라기 3장 1절과 4장 5절에 근거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메시야보다 먼저 올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때까지 목격 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제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질문은 그들의 당혹감뿐 아니라 배우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17장 11 -12절 - 예수님의 대답은 예언의 정확성을 재강조하고 있으며 엘리야가 실제로 메시야보다 먼저 올 것이라는 가르침을 알고 계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말라기의 예언에는 엘리야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올 것이 포함되었다 (말 4: 5).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엘리야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는 말라기 선지자의 말을 가리키고 있다 (말 4: 6).

보통 회개를 가리키는 말로, 자녀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한 침례 요한의 사역에서 입증되었다.

예수님은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리고 라고 하시면서 이미 이전에 침례 요한이 엘리야의 역할을 완수한 것을 설명하셨다 (마 11: 13 -14).  

아이러니하게도, 메시야를 간절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가 왔을 때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요한으로 온 예언된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대신, 요한은 광야에서 살며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였고, 요단 강에서 침례를 베풀고, 궁극적으로 잔인한 왕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설명하시기를,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이전 몇 개월 동안 수 개월에 걸쳐, 예수님은 임박한 죽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어떻게 메시야가 고난을 받으실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17장 13절 – 예수님의 설명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침례 요한”인 것을 깨달았다.

엘리야처럼,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그는 또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백성들에게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였다 (사 40: 3; 마 3: 3).

사가랴에게 요한의 탄생에 관한 예언을 할 때, 천사는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슬기(지혜)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하였다 (눅 1: 17).   

천사가 한 말은 말라기의 예언에서 인용된 것으로, 침례 요한의 사역이 어떻게 엘리야의 목적을 성취할 것인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침례 요한의 설교는 이스라엘 전역의 많은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여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는 결과를 나타냈다.

백성들이 침례 요한의 설교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응답 한 것처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도 주님의 변형에 경건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반응했다.

경건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우리가 나타낼 적절한 반응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끊임없이 깨닫고 우리의 예배와 삶에서 경건을 드러내기를 기원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 예수님의 사명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 장례 및 부활에 비추어서만 이해 될 수 있다.
  • 경건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우리가 나타낼 적절한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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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준비시키시다 - 제 7과 - 2017년 10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25장 1 -9절; 31장 1 -6절 강호길 2017.10.07 211
141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함 - 13과 - 2017년 8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42편 강호길 2017.08.19 213
140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 제 1과 - 2019년 12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9장 15 -23절 강호길 2019.11.23 213
139 주의하라 - 제 12과 - 016년 11월 20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15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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