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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11월 15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11과  

 

 

하나님은 의롭게 하신다                 

 

 

학습구절: 이사야 53장 1 -12절    

 

성경진리:

유일(唯一)하신 참 하나님은 죄를 사해주신다; 그는 신자들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심으로 그들을 의롭게 하신다.                             

 

주요교리: 아들 하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낮추어 순종의 본을 보이셨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인간을 죄에서 구속할 준비를 하셨다 (빌 2: 6 -8; 벧전 2: 21 -25).

 

암송구절: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시작하는 글:  

 

우리는 자녀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해 갖가지 일을 열심히 하는 부모들를 존경한다.

우리는 공무(公務) 중에 순직한 공직자들의 이름들을 다리나 건물 등에 기록해 놓는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의 희생을 기념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축하한다.

이사야는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오실 종에 대해 말한다.

희생의 종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는 용서와 회복을 얻는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희생한 것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습니까?
그들의 희생들이 오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이사야 51장 1절부터 57장 21절까지

 

     앞에서 나온 이사야서의 종의 노래들은 53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내용들이 되고 있다.

앞의 과들에서 언급했듯이, 일부 노래들은 이스라엘을 종으로 말하면서도 이름이 밝혀지고 있지 않은 개인으로 밝히고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문제의 그 개인이 이스라엘을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용어(用語)거나 이사야 선지자가 되고 있다고 추단하고 있는데 반면에, 백성전체나 이사야 선지자가 종의 노래에서 묘사되고 있는 역할을 수행 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53장의 종의 노래에 이르게 될 때, 그 종은 한 집단이 아니라, 전적으로 한 개인이라는 분명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만이 이 종의 노래에서 묘사되고 있는 설명에 부합할 수 있고 또 부합되고 있다.

     51장과 52장은 예루살렘과 그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후에 (51: 17), 희망(希望)을 경험할 것이라고 한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징벌은 일시적인 상황이라고 선언한다.

그것은 끝나게 될 것이다.

실제로, 51 -57 장에서 이사야는 포로생활의 전체적인 목적은 책망과 바르게 잡아주는 수단이 되고 있음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는 것처럼, 징계는 이상적으로 죄 짓는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있다.

징계가 끝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것처럼 그의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이끌어 내실 것이다 (52: 7 -12).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이사야 53 장의 종 노래와 52장 13 -15 절의 서론(序論)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배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시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종의 사역으로 인해 예루살렘이 새롭게 될 것이다.

54장은 예루살렘을 자녀를 잃은 과부나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로 묘사하고 있다 (54: 1).

기적적으로, 예루살렘은 회복될 것이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자녀를 갖게 될 것이다.

이 회복은 네 성벽을 보석들로 장식하는 것으로 묘사할 만큼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54: 11 -12).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완전한 평화를 묘사하는 내용이 되고 있다.

     55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값없이 제공하신다.

따라서, 56장은 백성들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구하라고 한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는 것으로 의롭게 생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자들과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구하는 이 부름에 속하게 하실 것이다.

이들 두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어떤 혈통적인  유산보다 더 중요함을 말한다 (56 : 6  -8).

그러면서, 그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걸음이 될 것이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56: 7).

     57장은 이스라엘의 죄를 다시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재차 강조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우쳐주며 재삼 재사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불의와 우상 숭배를 행하였고,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40장의 말씀을 연상시키는 언어로, 미래에 있을 회복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오도록 길을 돋으며 수축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57: 14).
57장은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으로 끝나고 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평강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멸시를 받는 여호와의 종 (이사야 53장 1 -3절)  

 

이사야의 네 번째의 "종의 노래"의 시작부분은 실제로 52: 13-15가 되고 있다.  
그 시작부분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이 상함을 받아 볼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높이고 있다 (52: 13 -14).

그 종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그 종이 성취한 사역의 업적(業績)과 가치(價値)를 보고 깨닫게 될 것이다 (52: 15).

 

이사야 49장 1 -3절

  •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 그는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53장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는 말로 시작되고 있는데, 52장이 끝난 후에 그 말은 놀라운 것이 되고 있다.

이사야는 사람들이 그 종에게 나타낼 부정적이고도 적대적인 반응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의 종을 통해, 그것도 세상적으로 볼품없어 보이는 한 개인을 통해 그같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엄청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은 이사야 당시의 사람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특별히, “여호와의 팔”이라는 말은 심판을 내리시거나 (51: 9), 구원을 베푸시는(52: 10)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켰다.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그 말은 고난의 종 안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종이 “여호와의 팔”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신성모독으로 보일 수 있는 일이 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또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라는 말로, 그 종이 다른 보통 아이들처럼 자라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눈부신 빛 가운데서 갑자기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문제의 그 종은 개인적으로 보기에 특별한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이사야는 그 종을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는 말로 묘사한다.

마른 땅에서 나온”이라는 그 종의 초라한 탄생과 생애를 묘사하는 말일 수 있다.

다른 한편, 그 것은 그 종의 생애 동안에 만연되고 있는 딱딱하고 메마른 율법주의의 영적 분위기를 암시하는 말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 종은 육체적인 면에서 신뢰하거나 자랑할만한 것이 별로 없고 외모도 눈에 돋보일 정도로 뛰어나지 않고 아주 평범하게 보일 것이다.

     그 종에 대한 이사야의 설명과 묘사는 그 종이 하찮은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라는 말로, 이사야는 그 종이 직면할 적대와 반감(反感)을 예언하고 있다.

그 종은 특별한 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다.

그는 “질고를 아는 자”가 되고 있다.

질고를 아는 자”라는 표현은 삶이 슬픔과 고통 그리고 곤경으로 특징지어 있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그 종은 인간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괴로움을 이해하는 분이 되고 있다.

     “얼굴을 가리[다]”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얼굴을 돌리다’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종과 사귀려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사야는 그 종이 멸시를 당한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하면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한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이 종의 노래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이해한 이유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평범한 유대 가정에서 자라나셨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그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나 용맹스러운 군대 영웅으로 그 자리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야에 대한 많은 유대인들의 기대에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거절을 당하였다.

그 거절은 적대감과 고난으로 굳어져버렸고, 마침내는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가 보게 되는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는 또한 그 종이 겪는 혹독한 거절과 고난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공하는 방법이 되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을 당하거나 부당하게 증오의 대상이 되어 본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좀더 소중하게 여겨지기를 바란 적이 있습니까?

그 같은 느낌을 기억하는 것은 그 종이 겪은 역경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대속제물이 되신 여호와의 종 (이사야 53장 4 -6절)

 

이사야 53장 4 -5절: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4절부터 6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이 고난을 당하는 일에 관한 놀라운 진리를 밝혀준다.
그 종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할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종의 고난이 다른 사람들의 치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진리는 대속제물(substitutionary atonement)로 알려진 신학적 교리의 핵심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 교리를 고후 5장 21절에 기록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이사야는, 두 개의 유사한 동사를 사용하여, 여호와의 종이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고 한다.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는 이사야 자신과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은 넓은 의미에서 그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나 온 인류를 일컫는 말이 될 수 있다.

이사야는 고난을 뜻하는 “간고”라는 말을 “질고”라는 말과 함께 죄를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하였는데, 본 학습구절인 4절에서는 죄를 대신 지고 있는 사실을 강조하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다”라는 단어는 무거운 짐을 져서 나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라는 말은 그 종이 우리의 죄의 무거운 짐을 진 것을  뜻하는 말이 되고 있다.
우리의 슬픔” 혹은 “고통”을 “담당하[다]”는 말도 대신 진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 종이 살던 당시의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는 모든 고통과 고난은 죄에 대한 징벌로 받는다는 것이 되고 있다 (욥 4: 7 -9; 요 9: 2 참조).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종이 고난과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같은 상황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강하게 항변한다.

이 구절에서는 강조점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 종은 자신의 악한 행위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 종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그같이 “징벌을 받[으며]”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다.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성경저자들은 죄를 묘사할 때 주로 “허물”과 “죄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허물”로 번역되고 있는 히브리어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고의적으로 어기는 것을 가리킨다.

그 단어가 영어로는 ‘rebellion’ 혹은 ‘iniquities’로 번역되고 있다.

죄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그릇 행하거나 악하게 행하는 인간적인 죄악, 즉 악행을 나타내고 있다.

히브리어로 “찔[리다]”는 말은 관통되어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을 뜻한다.

상함[을 입다]”로 번역된 용어는 육체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견딜 수 없는 상처를 받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사야는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는 말로 그 종의 고난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미치는 두 가지의 결과를 밝히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반목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 같은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죄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 종이 징계를 받음으로 인간에게는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히브리어로 “샬롬”을 뜻하는 “평화”라는 말에는 반목이나 싸움이 없는 상태 이상의 뜻이 들어있다.

그 말에는 건강과 평안, 온전함 및 번영의 상태도 포함되고 있다.

많은 경우, 그 용어는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종은 또한 “채찍에 맞으므로” 사람들에게 치유를 얻게 해 준다.

여기서 “나음을 받[다]”라는 말은 주로 영적인 치유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 2장 24절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믿는 자들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원을 가리키고 있다.

 

이사야 53장 6절: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6 절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라는 말로 지금까지의 상황을 요약한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상태가 되고 있다.

”은 완고하고 비교적 무지한 짐승이다.

그들은 앞을 내다보는 감각이나 방향감각이 없으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목자가 없으면 그들은 또한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 무의식적으로 흩어지기 쉽다.

이사야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라는 말로,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인간은 양과 공통점이 많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사야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두 죄와 관련하여 그같이 방황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길을 따르기보다는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3절에서 이간의 그 같은 상태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로 진단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 [종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적인 죽음은 이 종의 노래에 기록되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분명하게 성취한 일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의 모범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아들이심으로, 우리 대신 고통을 겪으시고 죽으신 대속자가 되신다.    

 

4절부터 6까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무엇이 되고 있습니까? 설명해 보십시오.

기꺼이 고난을 대신 받는 여호와의 종 (이사야 53장 7 -9절)

 

이사야 53장 7 -8절: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6절에서 양을 비유로 삼아 고집 세고 제 멋대로 구는 인간의 본성(本性)을 설명한 후, 이사야는 같은 비유를 이끌어 내어 그 종이 하나님의 대속(代贖) 제물이 되는 사명(使命)에 순종하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이 “곤욕”을 당한다고 한다.

다른 번역판은 그 종이 “굴욕”과 “고문”을 당하는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 (표준 새 번역)

곤욕”으로 번역되고 있는 히브리어 단어는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진 사람이 매일 채권자들에게 쫓기며 시달림을 받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는 말이 되고 있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 종이 누구에게 어떻게 곤욕을 당하느냐가 아니라,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는 말로, 그 종이 그 곤욕을 잠잠히 받아들이는 사실이 되고 있다.

그 종은 굴욕과 고통을 당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지고 있는 죄의 빚 때문에, 즉 다른 사람들 대신에 당하는 곤욕이 되고 있다.

그 종은 그같이 굴욕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알기 때문에 (눅 22: 42), 반박하거나 (마 27: 14), 복수심이나 고통에 차서 부르짖지도 않는다.

대신 그 종은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될 징벌을 자신의 것으로 조용히 받아 들인다 (벧전 2: 23).

이사야는 그 종이 그같이 하는 것을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에다 비유하고 있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라고 한 말은 그 종이 심문을 당한 것을 묘사한다.

이 문맥에서 “곤욕”이라는 말은 ‘억압’ 혹은 ‘강요’를 뜻하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의 종을 적대하는 자들이 그 종이 하는 사역의 참 뜻과 목적을 모르고 부당하게 제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라고 반문한다.

그것은 그 하인이 부당하게 정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부정적인 답변이 암시되고 있는 수사적인 질문이 되고 있다.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이란 말은 그 종이 궁극적으로 죽임을 당한 것을 묘사하는 시적인 표현이다.

실제로, 그것은 그 종이 자기 목숨을 스스로 버린 일이 되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더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 20: 28).

그 종이 자기 목숨을 그같이 스스로 버린 것은 “마땅히 형벌 받을 [그의] 백성의 허물 때문이[다].

 

이사야 53장 9절:

  •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업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이 구절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종의 죽음의 사건은 악인들과 그리고 부자와 관련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신 사건과 무덤에 장사된 일에 비추어 설명될 수 있는 역설적(逆說的)인 사건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사야 53장 9절은 고난의 종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처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묻히시게 될지를 예언한 말씀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무 죄도 없으셨는데도 불구하고 (히 4: 15), 죄인으로 그리고 악인들과 함께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다 (마 27: 37 -38).

예수님의 시체는 십자가에서 썩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신은 부자인 아리마대 사람으로, 유대 관원의 일원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비밀리에 믿고 있던 요셉의 새 가족 무덤에 묻히게 되었다 (마 27: 57 -61 참조).  

 

희생제물이 된 여호와의 종 (이사야 53장 10 -12절)

 

이사야 53장 10절:

  •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 종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다]”는 말은 그 종이 고난과 상함을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삼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종이 고난을 받음으로 그의 구속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또 그 종이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그의 뜻과 목적에 순종한 것을 기뻐하셨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 종이 그같이 순종함으로 “속건제물,” 즉 속죄제물이 되었을 때, 그 종은 희생과 순종의 세 가지 결과를 보게 된다.  

     첫째는그가 씨를 보게 [된다]”고 하고 있는데, 그 말은 그의 영적 후손들, 즉 그가 고난을 당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 영혼들을 가리킨다.

둘째는그의 날이 길 것이요”라고 하고 있는데, 그 말은 형벌을 받아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던 그 종이 부활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세 번째의 결과는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뜻”이 성취되는 것이다.       

 

이사야 53장 11 -12절:

  •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53장 11절은 그 종이 고난을 당한 후에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라고 한다 (표준 새 번역).

개역 개정 성경에는 ‘생명의 빛’이라는 말이 빠져있다.

이는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식”이란 말은 관계적인 측면에서 이해하여 “안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 같을 경우, 우리는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의로운 종을 앎으로 의롭게 되다”는 뜻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우리는 이사야의 이 위대한 예언이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원의 기쁜 소식에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엡 2: 8).

     53장 12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종을 높여주시는 것을 묘사한다.

그 종은 “존귀한 자”와 “강한 자” 중에서 높아질 것이다.

하나님은 그 종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겠다]”고 하신다.  

”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성경에서 자주 “유산”을 묘사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 용어를 그리스도의 사역에 적용 할 때,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유산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신자들이 받은 유업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영생(永生)이다.

하나님은 또한 그의 종에게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여기서 “강한 자”라는 말은 “죄와 사망”을 가리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리고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눈다]”는 말은 ,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승리자로서, 그리스도께서 한때 죄와 죽음의 노예였던 자들을 그의 소유로 얻게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 되고 있다.                 

     그 종이 그 같은 상급을 받는 것은 그가 죽기까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한다].’”

신약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사야의 종의 노래와 예수님의 사역 사이에 수많은 유사점들이 있는 것을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고난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종의 사역을 잘 마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면서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요 17: 4).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여호와의 종은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사람들의 거절을 감수한다.
  • 여호와의 종은 우리의 죄를 지시고, 우리 대신 재판을 받으셨다.  
  • 여호와의 종은 기꺼이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신다.  
  • 여호와의 종은 그를 희생제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이 구절의 뜻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번역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 구절이 복음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핵심이 되고 있습니까?

 

당신의 영적 순례(巡禮)에 대해 이야기해 보십시오.
당신은 구세주(救世主)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구원을 베풀어주시겠다는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제안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된 이야기를 누구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당신이 아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있지 않다면, 장년성경연구 학생용 교재의 앞면 표지의 뒷면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한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누가 복음서 공부

지금 하고 있는 이사야서의 공부는 11월 마지막 주일로 마치게 됩니다.     

다음 달부터 2021년 5월까지 6개월 동안에 걸쳐 우리는 누가복음서를 공부하게 됩니다.
우선, 12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의 학기에는 누가복음 전반부로, 1장부터 9장까지의 말씀을 공부하며 가르치게 되겠습니다.  

제 3복음서인 누가복음서는 후편인 사도행전과 함께 의사인 누가가 기록한 책이다.
누가복음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몇 가지 주제들과 강조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누가복음서에서는 성령의 역할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일이 여러 번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생애의 결정적인 순간에 직면하셨을 때마다 기도가 차지한 역할이다.

누가는 특별히 예수님의 기도생활과 기도에 대한 가르침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세 번째로, 누가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역을 부각시키고 있다.

네 번째로,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서 여자들이 맡은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별히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역할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죄를 사함 받은 것이 너무나 감사하여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는 오직 누가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앞으로 6개월 동안 누가복음서를 학습하고 가르치면서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좀더 깊이 있게 살펴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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