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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11과

 

충성을 다하고 있는가?

 

학습구절:  마태복음 26장 63 -75절

성경진리: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충성하는 일이 요구되고 있다.

주요교리: 성자 하나님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이제는 높이 들림을 받아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며,

거기서 그는 한 분이신 중보자 이시자, 완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인간이시며,

그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다.

암송구절: 마태복음 26장 64절 (Matthew 26: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You have said so,” Jesus replied.

“But I say to all of you: From now on you will see the Son of Man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the Mighty One

and coming on the clouds of heaven.”

 

시작하는 글:

충성심은 어려운 시기에 그 진가를 나타낼  수 있다.

모든 일이 잘 될 때에는 충성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우리의 충성심이나 충성도가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들 대부분은 좋아하는 식당이 있다.

그렇지만, 한번의 맛 없는 음식이나 불친절한 웨이터로 인해 좋아하는 다른 식당을 찾을 수 있다.

다른 기업이나 기관 혹은 브랜드나 심지어 교회에 대한 우리의 충성심에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확고부동 한 충성심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싶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오래 동안 지켜보면 언제나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을 보게 된다.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다른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하신 말씀들은 무슨 일이 생기든 제자들이 주님께 충성을 다해야 될 필요성을 깨우쳐 주고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때때로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때도 있다.

그 때에 주님에 대한 우리의 충성심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어떤 위험이 닥쳐오든지 관계없이 그에게 충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배경설명:

마태복음 26장 47절 – 27장 32절

제자들이 충성심과 불충성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것을 알려면, 그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기보다는 잠에 빠져있던 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제자들은 기도를 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무장한 무리가 유다와 함께 도착했을 때 영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베드로는 가지고 있던 칼을 빼어 들고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귀를 떨어뜨렸다 (마 26: 51; 눅 22: 50; 요 18: 10).

예수님은 그 귀를 만져 낫게 해 주시고(눅 22: 51),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네 칼집에 꽂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하셨다 (마 26: 52).

예수님이 구출되기를 원하신다면, 그는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두려움에 찬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예수님과 함께 깨어서 기도할 수 없었던 그들은 위험에 처한 예수님과 함께 당당하게 대처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들이 예수님을 잡아 결박하여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을 때,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는 멀리 떨어져서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다 (요 18: 15).

그러나 안뜰에서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묻자, 베드로는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용기마저 사라져

예수님을 아는 것조차도 부인하였다.

예수님은 신성모독죄로 고발당하셨다.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일반적인 범죄로 예수님을 고발할 수 없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밤중에 체포 한 이유 중 하나는 기적적인 선행을 목격 한 군중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성모독이 이들 종교 지도자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심각하고도 큰 범죄였다.

법적으로 사형을 집행 할 수 없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무장 경비를 하여 예수님을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사형을 요구하였다.

당시 로마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허용한 반면에, 사회질서에 대한 통치는 엄격하게 시행하였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침착하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지 않으셨으면 그가 권세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다.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할 수 없었던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하였다.

심지어 빌라도의 아내마저도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라고 하면서 처형에 반대하고 나섰다 (마 27: 19).

당시에 유월절이면 총독이 죄수 한 명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예수님과 난폭한 반란 자였던 바라바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자, 유대지도자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처형해야 된다고 요구하였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획을 받아 들이셨다.

그가 사랑하셨던 사람들이 그를 버리거나 배반하였을지라도, 예수님은 은혜를 모르고 충성하지 않는 그들에게 계속 충성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롬 5: 8).

 

학습구절연구:

메시야를 확증한 성경  (마태복음 26장 63 -64절)

26: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26: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26장 63절 – 수백 년 전에, 이사야라는 선지자는 예루살렘에서 이 밤중에 연출되고 있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 7).

거짓 증인들이 그를 고소하고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조롱했을 때, 그는 “침묵”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 할 필요가 없으셨다.

재판자리에 앉아 있던 자들의 거짓말에는 답할 가치가 없었다.

예수님의 침묵은 또한 분노한 적대자들 앞에서 그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 되었고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일이 되었다. 

당시의 “대제사장”“가야바”였다.

이 불법 재판은 가야바의 관저에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공모하는데 주축이 되었던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앞에서 열렸다.

가야바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를 우리에게 말하라고 요구하였다.

가야바는 메시야의 신적인 성격을 이해하고 있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가야바는 또한 “하나님의 아들”은 신적인 존재인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 지도자들에게,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신성모독보다 더 큰 죄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가야바가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라고 한 말은 그가 하나님의 대리자로 예수님을 심문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불경죄를 짓고 있는 것을 입증시키려는 의도를 나타내 주고 있다. 

불경은 유대법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되었다.

그 같은 심문과 재판 과정을 통해 예수님이 산헤드린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하나님에 대한 불경죄로 그를 제거할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가야바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26장 64절 – 예수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네가 말하였느니라’는 말씀으로 가야바가 그 자신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였다는 뜻으로 답변하셨다.

현대 구어체로 하면, 그 말은 ‘내가 아니라, 네가 말하였다’는 표현이 되고 있다.

마가는 예수님의 답변에 “내가 그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막 14: 62). 

예수님은 그 질문을 피하려 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정당한 역할을 주장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셨다. 

그것은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 되고 있다 (단 7: 13 -14).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을 때, 한 천사가 나타나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약속의 말로

제자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행 1: 11).

가야바와 다른 지도자들은 결박을 당한 채 자기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승리의 미래를 주장 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가야바는 예수님의 멸망이 가까웠다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전의 상황 이후의 것을 바라보고 계셨다.

이들 지도자들은 이 심문과 재판에서 권세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예수님은 어느 날 “권능의 우편”에 앉아 계실 것이다.

심문과 재판을 받는 분은 죽은 자까지도 포함하여, 세상을 심판하는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 될 것이다 (행 10: 42; 딤후 4: 1; 계 11: 18).

예수님은 성경에서 약속된 메시야로 영원히 통치하실 분이시다.

 

메사야를 부정한 대적자들 (마태복음 26장 65 -68절)

26: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26: 66   너희 생각은 어떠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26: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26: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26장 65절 – 가야바가 나타낸 반응을 보면, 그가 예수님의 진술이 신성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하는 말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신성모독”에는 하나님의 일을 악하게 말하거나 하나님의 특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 등이 포함되었다.

가야바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 자신의 말로 정죄를 받으셨다.

이 조롱거리 재판은 더 이상의 증인이 필요치 않았다.

가야바와 다른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두 증인이 거짓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야바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며” 소리쳐 말하기를,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라고 하였다.

당시 히브리문화권에서 옷을 찢는 일은 극심한 슬픔과 혐오감을 나타내는 관습이었다 (창 37: 34; 삼하 1: 11 -12; 욥 1: 20).

그러나 가야바가 옷을 찢은 것은, 쇼를 하는 것처럼, 군중 앞에서 연출한 사기극이었다.

26장 66 -68절 – 그 드라마는 미리 결정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연출된 것이었다.

대제사장은 계속해서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들었도다”고 하면서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고 물었다.

대제사장은 자신의 계획에 합법성을 창출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의한 결정을 요구한 것이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해 정죄를 받았던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그들은 상황을 역전시켜 예수님을 정죄하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그 자리에는 또한 장로들과 산헤드린 회원들을 포함한 관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료 및 다른 선한 사역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모세는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자는 누구든지 죽음에 처해야 한다고 명했다 (레 24: 16).

신성 모독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정죄를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즉시,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합법적인 법원의 모습만이라도 유지하는 대신, 그들은 예수님을 폭행하고 모욕하였다.

이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품위와 존엄성마저도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들은 손바닥으로 때리기 까지 하였다.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준비시키셨을 때 그 같은 능욕과 굴욕을 당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막 10: 34).

예수님은 방어하거나 반격하지 않으셨다.

그는 말을 하거나 외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진정한 힘을 나타내어 이들 위선적인 재판자들이 자신에게 강요한 모든 굴욕적인 행동을 잘 견디셨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폭행을 당하시는 동안에 한 때는 눈이 가리워졌던 것을 기록하고 있다 (막 14: 65).

예수님을 때리는 자들은, 그를 조롱하면서, 예수님에게 그를 친자가 누구인지를 말함으로 예언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행한 일들은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먼저,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알고 있어야 했고 또 이를 옹호했어야 마땅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았다.

둘째로, 그들은 예언의 본질을 잘못 적용하였다.

셋째로, 그들은 메시야로서의 예수의 본성을 믿지 않았고, 그의 말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의 주장을 의심하고, 그분의 이름을 손상시키며, 그의 사명을 몹시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라는 그의 정체성을 사람들이 부정한다고 해서 그의 정체성이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메시야를 버린 친구들 (마태복음 26장 69 -75절)

26: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26: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26: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26: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26: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26: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26: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26장 70절 – 요한은 예수님을 쫓아 대제사장 뜰로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가까이에 있었다 (요 18: 15 -16).

심문과 재판이 진행될 때에, 베드로는 바깥 뜰에 앉아 있었다.

마태는 요한이 한 일은 기록하지 않고, 요한과 함께 있지 않고 혼자 앉아 있던 베드로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제자들은 도망을 치고 만 것을 생각하면,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을 그곳까지  예수님을 쫓아온 것은 칭찬을 받을만하다.

그것은 특별히 베드로에게 큰 위험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붙잠히실 때 칼을 꺼내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 귀를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이제 그는 대제사장의 뜰에 와서 병사들과 종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베드로가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여종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요한은 그 사람을 문지키는 여종으로 기록하였다 (요 18: 16 -17).

베드로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때에, 그 여종을 알고 있던 요한은 그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뜰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아랫 뜰에서 불을 쬐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막 14: 67).

베드로가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고 있던 그 여종은 베드로를 요한과 연결시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하였다. 

그 여종은 예수님이 자라나고 살았던 곳을 가리키는 뜻으로, 예수님을 “갈릴리 사람”으로 불렀다.

그 여종은 특별히 베드로를 정죄하거나 고발하는 어조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는 말로 강하게 부인하였다.

베드로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였다는 말은 모든 병사들과 종들이 그 근처에 있었던 것을 뜻하고 있다.

어쩌면, 베드로는 그 여종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의식하고 두려워했을 수 있다.

26장 71 -72절 - 베드로는 앉아있던 곳에서 일어나 다시 앞문까지 나아갔다.

그것은 베드로가 쉽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을 수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안뜰에있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심문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말했을 때, 베드로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첫번째 여종은 베드로에게 직접 말했는데 반해, 두번째의 여종은 베드로를 보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안뜰에 있던 병사들과 하인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여종의 말은 베드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비난이었다.

그 여종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로 불렀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선지자가 나사렛에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요 1: 16).

그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이 붙잡혀 왔으며 그 순간에 관정 안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분위기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말은 무장한 군사들에 의해 붙잠혀 온 사람과 관계가 있는 것을 뜻하였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체포될 위험이 있었다.

모든 눈이 자기에게 집중되자, 베드로는 감정적으로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맹세하며 부인하기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로 하였다.

예수님은 이전에 제자들에게 도무지 어떤 것이든 맹세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간단하고 진실하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마 34 -36).

그러나,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위험에 맞추어져 있었다.

베드로는 심지어 예수님을 “그 사람”으로 지칭하였다.

그가 한 말을 보면, 매번 주님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26장 73 -75절 –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고 하며 그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들은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하면서, 그가 말하는 억양을 들으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제자들 대부은 갈릴리 지역 출신이었고, 그들은 그 지역 억양을 갖고 있었다.

갈릴리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사셨던 예수님도 그 지역 억양을 사용하셨다.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는 방법으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였다.

저주하였다는 말은 ‘만일 자기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그 저주가 자기에게 임할 것'을 구하는 뜻이 되고 있다.

베드로는 맹세하기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세번째로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자마자, 곧 닭이 울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날 이른 저녁에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였다.

충성에 대한 베드로의 담대한 선언에 대해, 예수님은 그날 밤 닭이 울기전에 베드로가 세 번 자기를 부인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마 26: 31 -35).

예수님을 위해 죽기까지 하겠다고 자랑하며 장담을 했었는데, 그는 한 시간 동안 예수님과 함께 깨어서 기도하는 데도 실패했고, 예수님이 붙잡히셨을 때 두려워서 도망쳤으며, 무서워서 예수님을 아는 것을 부인하였다.

두 번씩이나 부인한 후에, 베드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달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닭이 운 후에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눅 22: 61).

아마 그 시각에, 예수님은 뜰이 내려다 보이는 관정의 열린 공간에서 심문을 받고 계셨거나, 아니면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려가시는 중이었을 수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돌이켜 보셨을 때, 주와 제자는 사로 눈을 마주 친 순간을 가졌다.  

실패의 죄 책감이 베드로를 강하게 사로 잡았다.

그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어쩌면, 베드로는 군중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만큼이나 주님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실망시켜 드린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심히 통곡하였다”는 말은 그가 깊이 후회하며 회개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서기 위해 돌아 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밖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그는 회복되겠지만, 이 밤은 그에게 수치와 통회의 밤이 되었다.

그날 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헌신으로 인해 갖가자 박해와 죽음을 견디어 오고 있다.

오늘 날, 여러 나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재산과 생명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일시적인 실패를 기억할 때, 우리는 어떤 희생이 따를지라도 그리스도께 계속 충성해야 된다.

 

말씀의 적용:

  • 예수님은 영원히 통치하실 약속된 메시야이시다.
  • 그리스도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부인한다고 해서 그의 정체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 믿는 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도더라도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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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복음에 사로 잡힌 삶 - 제 1과 - 2020년 3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장 1 -7, 13 -17절 강호길 2020.02.22 143
193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 제 10과 - 2019년 11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에베소서 5장 1 -14절 강호길 2019.10.26 146
192 하나님은 의롭게 하신다 - 제 11과 - 2020년 11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53장 1 -12절 강호길 2020.11.08 147
» 충성을 다하고 있는가? -제 11과 - 2017년 5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5.13 148
190 모든 죄에서 정결케 되다 - 제 12과 - 2017년 11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11.12 149
189 모든 사람이 초청을 받음 - 제 6과 - 2017년 4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4.03 151
188 계시하시는 하나님 - 제 7과 - 2017년 7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7.08 151
187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 - 제 2과 - 2017년 3월 1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3.05 156
186 시련을 통한 믿음 - 제 12과 - 2017년 2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2.14 158
185 정결함을 받은 사람들 - 제 11과 - 2017년 8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32편 강호길 2017.08.06 158
184 잘못 사용된 잠재력 - 제 11과 - 2017년 2월 1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사기 강호길 2017.02.06 159
183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 - 제 13과 - 2020년 2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신명기 32장 48 -52절; 34장 4 -7절 강호길 2020.02.18 159
182 화평을 누리자 - 제 5과 - 2020년 3월 2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5장 1- 11절 강호길 2020.03.22 160
181 여호와의 길 - 제 1과 - 2017년 6월 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5.29 161
180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 제 7과 - 2020년 1월 1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32장 20 -32절 강호길 2020.01.04 162
179 지난 날의 교훈 - 제 2과 - 2017년 6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6.04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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