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하게 하시는 예수님 - 제 10과 - 2019년 5월 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마가복음 11장 15 -19절; 12장 41 -44절

by 강호길 posted May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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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5월 5일 주일 용  

 

10과

 

 

정결하게 하시는 예수님  

 

 

학습구절: 마가복음 11장 15 -19절; 12장 41 -44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과 신뢰심이  나타나는 순수한 예배를 원하신다.     

 

주요교리: 청지기 직분

하나님은,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과 그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포함하여,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신다 (행 17 : 24-25).

 

암송구절마가복음 12장 44절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They all gave out of their wealth;

but she, out of her poverty, put in everything –all she had to live on.”      

 

 

 

시작하는 글:

 

 

어떤 사람이 ‘일하는 시늉’만 하고 있으면, 대부분의 우리는 그것을 곧 알아챈다.

그것은 일을 바르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열심이나 생각이 없는 일이 되고 있다.

그같이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같은 일을 안다.

그 같은 일은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혹은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 같은 일이 생길 경우, 우리는 단순히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기대되는 행동을 수행할 뿐이다.

 

직장에서 일할 때나 혹은 중요한 행사 중에 ‘일하는 시늉’만 하다가 들킨 적이 있는가?

그같이 하는 것은 왜 위험한 일인가?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11장 1절 – 12장 44절까지

 

금주 학과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성경말씀은 마가복음 11장과 12장이 되고 있다.

마가가 매일의 사건을 추적함으로 이들 두 장에 무엇을 포함시키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음의 사건들은 성경 학자들이 따르고 있는 일반적인 기준에 의해 조직된 것이다.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하루 혹은 요일은 오늘 날의 시간 계산 법을 따르고 있다.

 

일요일:

  • 예수님은 자신이 계획하신 의도적이고도 신중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혹은 종려나무 가지들을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찬양하며 환영하였다.  그 같은 일로 인하여, 종료주일을 지키는 기독교 전통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 보신다음, 열두 제자를 데리고, 그날을 시작했던 곳인 “베다니”로 돌아가셨다 (11: 1 -11).   

 

:

 

  • 이튿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중에, 예수님은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는 말씀으로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  그것은 영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사 5: 1 -7 참조).  그 것은 백성의 종교지도자들이 메시야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을 때, 완전히 드러날 것이었다 (11: 12-14).
  • 예수님은 성전 뜰에서 매매(賣買)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다.  그는 또한 돈을 바꾸어 주는 것을 금하셨다.  예수님은 그 같은 활동들에 수반되고 있는 당시의 위선적인 종교적 관행을 정죄하셨다 (11: 15 -19).

 

:

 

  •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전날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보신 예수님은 그것을 열 두 사도를 위해 가르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 삼으셨다 (11: 20-26).
  • 성 안으로 들어오신 후에, 예수님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그가 무슨 권한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상인들을 쫓아내었는지를 대답해 보라는 도전을 받고 그 도전에 응답하셨다 (11: 27 -33).
  •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포도원  주인과 악한 소작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심으로, 포도원 주인인,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하는 그들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예언해 주셨다 (12: 1 -12).
  • 예수님은 그를 함정에 빠뜨릴 목적으로 바리새인들이 제기한 질문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라는 까다로운 정치적 질문에 능숙하게 대답하셨다 (12: 13 -17).
  •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그를 함정에 빠뜨릴 목적으로 제기한 부활의 본질에 관한 까다로운 신학적인 질문에 답하셨다 (12: 18 -27).
  • 예수님은 또한 성경의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는 서기관의 까다로운 질문에 대답하셨다  (12: 28 -34).
  • 예수님은 공세를 취하셔서,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고 물으시면서, 시 110편 1절을 인용하신 다음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반문하셨다.  그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12: 35 -37).
  •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외식하며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시고 그들은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12: 38 -40).
  •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적은 액수의 헌금을 하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고 칭찬하셨다 (12: 41 -44).

이번 주의 학습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존이 나타나고 있는 순수한 예배를 원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과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심을 더 잘 나타낼 수 있는지를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자.

 

 

학습구절 연구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1장 15 -17절]

 

1115 -16절

  •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이야기는 네 복음서 모두에 포함되어 있다.

마태 복음, 마가 복음, 누가 복음은 그 사건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간 동안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 21: 12-13, 누가 복음 19: 45-48 참조).

그런데, 요한복음서만은 그 사건을 예수님의 공 사역 초기에다 포함시키고 있다 (요 2: 13 -22 참조).

성경 학자들은 요한 복음서의 그 기록은 이전에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이 되거나, 요한이 그 사건을 앞에다 기록함으로 예수님에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적대가 초기부터 있었던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일 자체는 하나님 백성이 예배를 더럽히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해 주고 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입성하셨던 예수님이 베다니로 나가셨다가 다음 날 다시 돌아오신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 전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 보시며, 성전 뜰에서 진행되고 있던 장사하는 일들을 목격하셨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막 11: 11).

그러므로, 그는 월요일에 무슨 일을 하실지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성 안으로 돌아오셨던 것이다.

그는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그 같은 일이 일어난 곳은 경건한 이방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큰 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온 대부분의 예배자들은 먼 지역에서 온 순례자들로, 속죄 제물로 바칠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고 올 수 없었다 (레 5: 6).

율법은 또한 가난한 예배자들에게 짐승 대신에 “비둘기”를 속죄 제물로 드리도록 허용하였다 (레 5: 7).

그같이 먼 곳에서 온 예배자들에게 속죄물로 드릴 짐승이나 비들기를 파는 것은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 되었다.

돈 바꾸는 자들”은 일년에 한 번씩 내는 성전 세를 위해 로마 돈을 유대인의 돈으로 바꾸어주는 사람들이었다.  

부정직한 사람들은 불공평한 수수료나 환율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원래 그 같은 상 거래는 오랫동안 감람 산 지역에서 행해 졌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경건한 이방인들이 기도하며 예배하던 장소인 ‘이방인 뜰’로 옮겨서 행해짐으로, 성전이 시끄러운 장마당으로 변했던 것이다.

성전 뜰들은 일종의 시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은 또한 성읍의 한 편에서 다른 쪽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지름길이 되었다.

예수님은 성전 뜰을 지름 길로 삼아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성전 구내는 매우 크고 여러 개의 부분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성전 건물은 분향단과 떡상 그리고 황금 촛대가 있는 성소와 법궤가 있는 지성소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건물 밖에는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뜰이 있었다.

그 바깥 쪽에는 유대인 여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며 예배하는 “여인의 뜰”이 있었다.

그리고 제일 바깥 쪽에는 경건한 이방인들이 모여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이방인의 뜰”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방인의 뜰은 속죄물로 바칠 짐승들을 팔고 사며, 성전 세를 낼 돈을 바꾸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1117절

  •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깨끗게 하신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일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같이 행한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같은 일을 성전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셨다.

그는 성경말씀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의 존경 받는 두 예언자인,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말을 인용하셨다.

그 두 선지자는 똑 같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 성전의 참 목적을 이해하고 있었으면, 그 목적을 더 잘 알고 있었어야 할 사람들이 그릇되게 사용한 것을 정죄하였다.

첫 번째 인용문은 이사야 56장 7절인데, 거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직접 말하기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고 하였다.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전에서 기대하신 주된 활동이 강조되고 있다.

하나님의 집은, 부패와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장소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결코 시장으로 계획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의 장소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으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며, 교제하고, 그의 길을 가르치시겠다고 약속하신 거룩한 장소가 되었다 (Deut. 12: 5 -7; 왕상 8: 29).

또한 성전은 이스라엘의 혜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목적으로 이스라엘을 그의 언약 백성으로 세우셨다 (창 12: 2 -3).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만방이 (여호와의 전으로) 모여들” 때를 내다보았다 (사 2: 2 -3).

이사야 선지자는 특별히 하나님의 메시야적 종이 “이방의 빛”으로 이스라엘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 49: 6).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언급하신 다음, 예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인용하셨다.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는 말은(렘 7: 11 참조) 기원전 6 세기의 예언자가 성전 문들 중의 하나에 서서 전달한 예언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제사장들과 예배자들이 사악하고 부패한 생활을 하면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을 정죄하였다.

예수님은 당시의 성전 제사장들과 예배자들이 똑 같은 위선을 행하고 있는 것을 정죄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예배에서의 순결뿐 아니라 삶의 순결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죄를 범하면서, 주일 날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예수님을  두려워한 종교지도자들 (가복음 11장 18 -19절]

 

1118절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대제사장들”은 주로 사두개파 출신들이었다.

서기관들”(율법서와 예언서의 전문가들)은 주로 바리새파 출신들이었다.

신학적 배경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두 그룹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협동하여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합의하고 죽일 방도를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만 있은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큰 무리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속죄 제물을 드리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환전상들과 상인들을 내쫓으실 때 놀라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예언적 정죄를 듣고 놀랍게 여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두려움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동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즉각 체포하는 것을 미루게 한 이유가 되었다.

14장 1절을 보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였으나.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하였다.

 

1119절

  •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열두 사도들이 “성밖으로” 나가게 한 가능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예수님이 성 안에 머물러 계시는 것이 안전하지 않았을 수 있다.

둘째로, 유월절 인파로 인해 성 안에 숙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셋째로, 예수님은 베다니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를 원했을 수 있다.

 

 

예배자들을 지켜보신 예수님 [마가복음 12장 41 -42절]

 

1241절

  •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마가복음 11장 20절부터 12장 44절에 기록 된 사건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주 화요일에 일어난 것들이다.

그것은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리며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되는 날이었다.

예수님은 성전 경내에서 여기 저기로 옮겨 다니시기는 했지만, 사건의 대부분은 성전 뜰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하루를 마치고 성전 지역을 떠나시기 직전에, 예수님은 “헌금함” 맞은 편에 앉아계셨다.

예수님께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신 것을 보면, 그 “헌금함”은 여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여인의 뜰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앉아 계셨다는 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첫째로, 그것은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과 적대가 잠정적으로 끝난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박 할 수 없었던 종교 지도자들은 일시적으로 후퇴했던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의 앉은 자세는 그가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과정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유대인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앉아서 가르쳤다.

셋째로, 예수님이 앉아 계셨다는 말은 그가 예배자들을 지켜보시면서 잠시 쉴 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을 나타낼 수 있다.

 “헌금함”은 나팔 모양의 그릇으로, 예배자들은 거기에다 돈을 넣었다.

예수님은 예배자들이 “헌금함에 돈 넣는 (것)”을 지켜보셨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어떤 예배자들은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돈을 던져 넣었을 수도 있다.

어떤 예배자들은 자기가 얼마를 바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넣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여러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많은 돈을 헌금하였다.

 

1242절

  •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배자들로 붐비는 무리 가운데서, 한 가난한 과부는 사람들 가운데 쉽게 묻혀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과부를 눈여겨보셨다.

그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었다.

과부의 헌금은 부자들이 드린 큰 액수와 비교할 때 하찮게 보였다.

두 렙돈은 성전을 유지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과부의 헌금을 다르게 평가하셨다.

주님은 순수한 예배 행위를 지켜보시고 알아보신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와 찬양 그리고 말씀선포로 뿐만 아니라, 헌금으로 예배할 때,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참 예배자를 칭찬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2장 43 -44절]

 

12장 43 -44절:

  •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제자들을´불러다가”라는 말은 예수님이 그의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적용시키시기를 원한 뜻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려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를 원하실 때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을 상용하셨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것을 칭찬하셨다.

그의 전지(全知)하심으로, 예수님은 과부의 생활 형편을 알고 계셨다.

더구나, 그녀의 외모를 보더라도 그녀의 형편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혼란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따진다면, 과부의 두 렙돈은 부자 예배자들이 바친 엄청난 액수의 돈과 비교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의 놀라운 가치 평가의 기초를 설명해 주셨다.

부자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헌금은 그들의 생활에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의 특징을 밝혔다.

첫째로,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드렸다.  

큰 부담감 없이 낼 수 있는 것을 드린 부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과부는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

그 과부는 자신의 삶과 미래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의 거룩함은 우리로 하여금 경외감을 갖고 그에게 나오도록 요구한다.     
  •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순수한 예배 행위를 지켜보시고 알아보신다.
  • 예수님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하는 사람들을 칭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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