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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부

 

2017년 12월 10일 주일

 

2과

 

잘못된 예배

 

학습구절: 사도행전 14장 8 -20절

 

성경진리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주요교리: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암송구절: 사도행전 14장 15절하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We are bringing you good news, telling you to turn from these worthless things to the living God, who made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the sea and everything in them.

 

시작하는 글:

예배를 드릴 때, 사람들은 예배의 대상보다 예배의 형식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다.

모든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지, 청중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음악이나 예배의 다른 요소들을 선호하여 그것들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예배의 초점으로 삼는 과오(過誤)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대신에, 우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인지를 항상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며 찬양해야 한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잘못된 예배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절름발이를 고쳐 주신 도구로 쓰임을 받은 후에, 군중들은 그를 신들 중의 하나로 착각하여 그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군중들의 무지한 반응을 보았을 때, 바나바와 바울은 심한 비탄에 젖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군중의 오해를 바로 잡아주었을 때, 숭배의 분위기는 증오와 핍박으로 바뀌었다.

 

배경설명:

 

사도행전 14장 1 -28절

지난 주에 우리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며, 예수님이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메시야로 그 만이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가르친 것을 배웠다.

회당 예배가 끝난 후에, 많은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

두 사도는 그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하였다 (행 13: 43).   

그 다음 안식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그 같은 상황을 본 유대인들은 시기심과 질투심에 가득 차서 바울이 한 말을 반박하고 비방하며 적대하였다 (13: 45).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것이 마땅하고 필요하지만, 유대인들이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14: 36).

복음에 대한 이방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복음의 메시지는 온 지역으로 퍼졌다.

그러나, 그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박해를 받고 그 지역에서 쫓겨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두 선교사는 이고니온에서도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복음을 믿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14: 1).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두 선교사에게 악감정을 품게 하였다 (14: 2).

고로, 그 성읍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서, 한 편은 유대인들을 따르고 한 편은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

복음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나누는 방법이 되고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들을 모욕하며 적대하는 자들이 돌로 쳐 죽이려 하는 것을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다 (14: 4 -7).

루스드라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사용하여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을 고쳐주셨다.

군중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사람의 모습을 한 신으로 잘못 생각하고 그에게 제사하려고 하였다.

군중의 그 같은 잘못된 반응을 보았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놀라움과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 잡아주려고 하였다.

사람들의 예배의 초점(焦點)이 되기를 거부하면서, 바울과 바나바는 군중을 홀로 예배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신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하였다 (8-18 절).

진정한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적대하며 핍박했던 유대인들이 루스드라에까지 따라왔다.

그들은 다시 사람들을 선동하여 사도들을 핍박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하지만 바울은 살아나서 성 안으로 되돌아왔다 (14: 8 -20).

어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그같이 살아난 것을 기적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 이튿날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았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본거지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길을 출발하였다.

좀더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복음을 전한 곳인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 들려서 제자들을 격려하며 믿음을 세워주기로 하였다.

그들은 믿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세움으로 교회를 튼튼히 하였다 (14: 21 -25).  

마침내 안디옥에 도착한 그들은 이 일차 선교여행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14: 26 -28).

 

학습구절연구

 

기적적으로 병을 고쳐 줌 (사도행전 14장 8 -10절)

14: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14: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4: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4장 8 -9절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한 번은 발을 쓰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한 사람이 청중 가운데 있었다.

루스드라에 회당이 있었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공공장소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그 사람이 걷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했던 사실과 그것은 결국 치료의 기적적인 성격을 입증해 주는 사실이 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주었다.

누가는 그의 걸을 수 없는 상태를 세 가지 다른 표현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1)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2)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었고, 3)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같은 설명은 이 사람의 장애가 얼마나 심각하며 확실한 것인지를 나타내주고 있다.

그런데 그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와서 앉아 있었던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표적과 기사”를 행했던 소문이 루스드라에도 전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14: 3).

이 사람도 그 소문을 듣고 자기도 그 같은 기적을 체험했으면 바라는 마음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 자리에 나와 앉아있었을 수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그는 “바울이 말하는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들었고, 바울은 자기 말을 경청하는 그를 “주목하여” 보았다.

사도 바울은 그에게 치유를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았다.

누가는 바울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성령님이 이를 그에게 알려주셨다고 가정할 수 밖에 없다.

복음과 사도 행전에서 똑같이, 믿음은 영적 및 육체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바울은 그에게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명령하였다.  

그 사람은 바울의 명령에 즉각 순종함으로써 그의 믿음을 나타냈다.

평생 동안 “걸어 본 적이 없는” 그 사람은, 조금의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이, 벌떡 “일어나” 걸었다.

바울의 이 이야기와 베드로가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서 만난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을 고쳐 준 사건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 (행 3: 2 -8).

고침을 받았을 때, 성전 문에 있던 사람도 마찬가지로 걷기 시작하였고,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러나 군중들의 반응과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현저하게 달랐다.

성전 경내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게 됨으로, 그것은 베드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 정황이 되었다. 

루스드라에서, 이교도 청중들은 자기들의 신이 찾아온 것으로 잘못 알고 바울과 바나바를 예배하려고 하였다.

 

바울의 기적적인 치유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 (사도행전 14장 11 -13절)

14: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4: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4: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기적적인 치유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열광적인 것이었지만, 바울과 바나바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대부분이 이방인들이었던 청중은 신들이 사람의 형태로 그들 가운데 온 것으로 믿고, 그들은 선교사들을 예배 할 준비를 하였다.

14장 11 -12절 - 앉은뱅이가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은 것에 대한 놀라움은 군중들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은 흥분에 가득차서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고 소리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바울과 바나바는 당시 세계 공통어였던 헬라어를 사용해 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지역의 방언을 사용한 것은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예배하려는 준비를 하며 계획들이 이미 진행될 때까지 바울과 바나바가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고 있다 (14: 13 참고).

선교사들은 군중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로, 바울은 “헤르메스”로 부르기 시작했을 때 혼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헬라어 명칭으로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불린 이 신들은 라틴어로는 각각 “주피터”와 “머큐리”로 불렸는데, 서로 결합된 형태로 이교(異敎) 종교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제우스는 그리스의 만신전(萬神殿)에서 우두머리 신이었고, 헤르메스는 신들의 전령자 혹은 대변자였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나바가 좀더 위엄 있게 보였기 때문에 그를 제우스로 보았고, 바울은 주로 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헤르메스로 불렀었을 수 있다.

14장 13절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그들을 방문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지역 주민들은 신들을 섬기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심지어 성밖에 있던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들은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무리들과 함께 제사하고자 하였다.

황소들은 신들에게 바치는 짐승들로 어울리게 축제 용 화환으로 장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바울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들었고,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도 이미 목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요점을 놓치고,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믿기 원하는 방법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깨닫지 못하였거나 싫어하였던 것이다.

 

제 우 스 와 헤 르 메 스

제 우 스

헤 르 메 스

 

  • 하늘의 신
  • 헬라 신들의 우두머리
  • 그의 신봉자들은 일기의 요소들이 그의 통제하에 있다고 믿었다.
  • 로마신인 주피터와 동등한 헬라 신

 

  • 웅변과 연설의 신
  • 신의 전령과 그들의 대변인
  • 웅변과 관계 되고 있음
  • 로마신인 머큐리와 동등한 헬라 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줌 (사도행전 14장 14 -18절)

14: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4: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4: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4: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4: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군중들이 자기들을 신으로 예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알게 되었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악감(驚愕感)의 표시로 “옷을 찢(었다).”  

그들은 즉시 청중의 초점을 바로 잡아주어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려고 하였다.

14장 14절 –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행하시는 일에 대한 찬사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군중의 반응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하며 그것을 겉옷을 찢는 것으로 나타냈다.

유대인들이 겉옷을 찢었을 때, 그것은 강한 감정을 전달하는 극적인 반응이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해 “내가 그니라”고 대답하시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격한 감정을 나타낸 이야기를 볼 수 있다 (14: 61 -65).

선교사들은 그러한 오해를 용인 할 수 없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의 옷을 찢은 후,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큰 소리로 그들의 잘못된 것을 고쳐주었다.

14장 15절 -  바나바와 바울은 먼저 군중들을 향하여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고 소리치면서 그들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들은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로, 군중 속의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 본성을 가진 사람들임을 단언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나바와 바울에게는 복음이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전파된 된 복음의 메시지는 사도행전 17: 22 -34의 경우처럼, 구성원들이 주로 이교도인들인 청중에게 전달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좀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를 청중의 이해의 틀에 넣었다.

우리는 종종 이것을 상황화 선교(contextualization Mission)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바울이 비시디아의 안다옥에 있는 회당에서 유대인 청중에게 설교를 했을 때, 그는 구약의 사건들과 예언의 말씀에 호소하였다 (13: 16 -41).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이방인의 이교도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회중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구약의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는 적게 그리고 창조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에 대해서는 더 많이 호소하였다.

청중의 성격 때문에 강조점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의 메시지는 기본적인 성경진리와 일치하고 있다.

바울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는 말로, 유대인들조차 단언했을 것을 먼저 단언하였다.

우리는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그 같은 강조점을 보게 된다 (롬 1: 19 -20).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4장 16 -18절 바울은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해 두셨다”고 하였다.  

우리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전한 바울의 메시지에서도 비슷한 진술과 강조점을 발견하게 된다.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 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확언한 후에, 바울은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행 17: 30 -3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看過)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일반 계시의 충족 조건을 제시하는 한편 특별 계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였다.

 

배척을 당하다 (사도행전 14장 19 -20절)

14: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14: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14장 19절 – 비시디아 안다옥과 이고니온으로부터 바울을 적대하는 유대인들이 루스드라로 와서 군중들을 충동하자 바울에 대한 적대는 격렬해졌다.

군중의 감정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변할 수 있는지는 놀라운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군중들에게 신으로 환호를 받으며 예배의 대상이 되었던 바나바와 바울은 이제 폭도로 변한 군중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으로 끌어내어 내쳐버렸다.

후에 바울은 그같이 당한 일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겪은 모욕 중의 하나로 언급하였다 (고후 11: 25; 딤후 3: 11).

그는 돌에 맞고 채찍에 맞아 몸에 생긴 상처를 “예수의 흔적”으로 생각하였다 (갈 6: 11).

바꾸어 말하면, 루스드라에서 군중들이 행한 일들은 단순히 두 사람에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대한 배척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14장 20절 - 20 절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표현의 단순성과 간결함이다.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버려져 있었다.

본문은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그가 행한 것들을 보면, 기적적인 치유가 암시되고 있다.

또한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라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께 바울을 살려주도록 기도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이 더베 성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다는 21절의 기록을 보면, 그들이 생명의 위협이 따른 적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사역을 계속한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상황에 말씀을 적용하기

  • 하나님은 신자들을 자신의 은혜와 자비의 도구들로 사용하신다.
  •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혹은 주위에서 행하시는 일을 잘못 해석하는 때가 많다.
  •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의 도구로 사용된 신자들은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모든 공로를 그에게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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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복음을 나타내는 삶 - 제 10과 - 2018년 5월 6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4장 5 -18절 강호길 2018.04.30 114
139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삶 - 제 9과 - 2018년 4월 29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1장 1 -14절 강호길 2018.04.22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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