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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9과

 

어떻게 주님을 기념하는가?

 

학습구절:  마태복음 26장 17 -30절

성경진리:

예수님의 희생과 그와 맺은 새 언약은 주의 만찬을 지키는 것을 통해 경건하게

기념되어야 한다.

주요교리: 주의 만찬

주의 만찬은 교회의 회원들이 떡과 포도즙을 함께 나눔으로, 구세주의 죽음과 그와 맺은 새 언약을 기념하며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상징적인 순종의 행위이다.

암송구절:  누가복음 22장 19절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And he took bread, gave thanks and broke it, and gave it to them saying,

“This is my body given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시작하는 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제단에서 만나서 남편과 아내가 되기로 언약을 할 때, 그 날은 두 사람의 달력에 첫 번째로 포함시키는 기념일이 된다.

해 마다 그 날이 오면, 두 사람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그들은 결혼생활로 서로 헌신하며 사랑하기로 한 날을 기념하며 축하한다.

해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헌신을 약속한 순간을 귀중하게 여길 더 많은 이유를 발견한다.

그들의 결혼 기념일은 그들이 또 다른 한 해를 함께 걸어갈 때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며 그들에게 희망을 준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날들을 축하하고 있는가?  그것들을 어떻게 축하하고 있는가?

그 같이 하는 일은 앞날에 대한 우리의 안목이나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 주는가?

 

어떤 면에서, 주의 만찬은 기념일 축하와 목적이 같다.

주의 만찬은 경건한 기억의 때이다.

우리는 주의 만찬을 거행할 때, 우리를 위한 주님의 희생을 기억한다.

떡을 뗄 때, 우리는 우리가 나음을 얻도록 찢겨진 그의 몸을 회상한다.

잔은 우리가 죄 사함과 영생을 얻도록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의 피를 마음에 생각나게 한다.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과 맞은 새 언약을 기억하며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린 사실도 기억한다.

주의 만찬은 또한 주님께 대한 충성심을 새롭게 다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똑같이 중요한 것으로는, 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게 격려한다. .

 

배경설명:

유월절 이틀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26: 2).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님을 죽일 모의(謀議)를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를 원하였으나. 그같이 하면 예수님을 좋아하는 군중들이 민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였다 (26: 3 -5).

이 무렵, 예수님은 그가 사랑하는 세 남매인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는 동네인 “베다니”로 가셨다.

예루살렘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 예수님은 종종 그들의 집에 가셔서 묵으셨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 예수님은 나병환자였던 “시몬”의 집을 방문하셨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의 의해 나병을 고침 받았는데, 이를 감사하며 존경하는 뜻으로 만찬을 준비하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초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팔꿈치로 비스듬히 기대어 음식을 들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값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그 뒤로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주님에 대한 그 여인의 사랑을 칭찬하는 대신에 “무슨 의도 이것을 허비하느냐”며 비난하며 분개하였다.

심지어 어떤 제자는 그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자가 보여준 넘치는 사랑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행동에 담겨있는 상징(象徵)을 높이 평가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며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셨다.

곧 임할 십자가의 처형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그 여인이 한일을 자기의 장사를 위한 준비의 상징으로 받아들이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며 그를 기억하리라”고 하셨다 (26: 13).

그 때에” 열 두 제자들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돈을 받는 댓가로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줄 것을 제의하였다.

그들은 유다에게 “은 삼십”을 달아 주었다.

유다는 그 때부터 예수님을 넘겨 줄 기회를 찾았다 (26: 14 -16).

이번 주의 학습구절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이틀 후에 모였을 때 일어난 일을 서술하고 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며 축하하는 절기였다.   

희생 제도의 다른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절정을 이루었다.

유월절에 관한 오늘의 학습은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와 찢겨진 몸을 통해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게 된 것을 더 깊이 깨닫게 해 준다.

 

학습구절연구

유월절의 준비 (마태복음 26장 17 -19절)

26: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26: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26: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6장 17절 – 유월절은 무교절과 연관이 있었다 (출 23: 15).

레위기 23장 5 -6절에 보면, 유월절 다음날부터 칠일간의 무교절이 시작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하루 동안 지키는 유월절과 칠일 동안 지키는 무교절은 본래 독립된 두 절기였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두 절기는 팔일 간의 한 절기로 합쳐져서 의미상 아무 구별 없이 “유월절” 혹은 “무교절”로 불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무교절의 첫날”은 유월절 음식을 먹는 날이 되고 있다.

출애굽을 준비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빵을 만들 때 누룩을 사용하지 말아야 되었다.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는 것은 출애굽 때 집을 급히 떠나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빵에 누룩을 넣어 부풀게 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과 관계 되고 있다.

다른 한편, 누룩 혹은 발효효소는 어떤 것이든 세상적인 것이나 죄가 섞여있는 것을 상징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은 빵을 누룩 없이 만들 뿐 아니라, 무교절 기간 동안에는 그들의 집에 누룩이 없어야 하였다 (출 12: 19).

유월절은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열 번째 재앙을 내리셔서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실 때)” 문 설주에 양의 피가 발려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은 넘어가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출 12: 12 -14).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예루살렘은 그들의 고향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로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유월절 축제를 함께 먹기에 충분한 크기의 집이 필요했던 것이다.

26장 18절 – 몇 일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의 승리의 입성을 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인근 마을로 보내셔서 나귀를 빌리신 적이 있었다 (마 21: 1 -2).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서 어떤 한 사람을 만나서

그에게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고 말라고 하셨다.

누가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라고 좀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눅 22: 10 -11).

예수님이 그 주인에게 자신을 “선생”으로 부르시고 자기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언급하신 것을 보면,

그 주인은 예수님과 그의 가르침을 익히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26장 19절 – 충성된 제자의 표는 무조건적인 순종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순종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다.

유월절 만찬은 특정한 음식물들을 포함하였다.  

그것들은 어린 양의 고기, 무교병 (누룩 없는 빵), 쓴 나물, 포도주 그리고 단 과일 잼 등이 되고 있다.

그 같은 음식물들은 상징적인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어린 양은 희생양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가리키고 있다 (요 1: 29: 고전 5: 7).

쓴 나물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겪은 고통과 쓴 경험을 상징하고 있다.  

무교병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죄나 세상의 것이 섞이지 않은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마음으로 생활해야 됨을

상기시켜 주었다(고전 5: 8).    

 

가룟 유다의 배반 (마태복음 26장 20 -25절)

26: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6: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6: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6: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6: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6: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다 하니라

 

26장 20 -21절 – 유월절 만찬을 위한 준비는 끝났고 하루의 시작을 가리키는 “저물 때”가 되자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들기 위하여 앉으셨다.

유대인의 하루는 창세기 1: 1의 하 반절의 글자 그대로의 뜻을 따라, 해질녘에 시작되었다.

유대인의 식사 관습은 사람들이 팔꿈치에 기대어 몸을 작은 식탁 쪽으로 향하게 하여 반 누운 자세로 앉은 다음 다른 한 손으로 음식을 들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그의 순회 여행을 따라 다닌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단지 “열두 제자”만이 예수님과 함께 하였다.

놀라운 것은,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배반할 가롯 유다가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분위기가 평온해 보였을 지라도, 제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별히 예수님께서 자신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때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들 제자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대제사들이 예수님을 끊임 없이 공격해 오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의 적대자가 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26장 22 -23절 – 필시 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큰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그 자리에 직접 있었던 마태는 그것을 “몹시 근심하여”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몹시 근심하여’로 번역된 용어에는 깊은 슬픔과 무거운 마음이 담겨있다.

그들은 동료중의 하나가 그들의 주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에 당황해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 각자는 충격과 경악을 이기지 못하여, 동시에 서로 말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 모두는 그런 끔찍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하였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는 표현에서는 그들이 서로를 의심하기보다는 자신의 결백을 선언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로 불렀다.

“주”라는 호칭은 랍비나 교사에게 자주 사용되는 전형적인 용어가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를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 자리에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요한은 베드로가 자기에게 누가 배신자인지를 예수님께 물어보라고 했던 일을 회상하였다 (요 13: 22 -25).

마태는 단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그가 나를 팔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대답만을 기록하였다.

요한은 더 자세히 설명하기를 예수님께서 “내가 떡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고 대답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유다에게 주셨다고 기록하였다 (요 13: 26).

26장 24절: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배반자 때문이 아니라 성경말씀의 성취로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을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라는 말로 표현하셨다.

“인자”라는 용어는 메시야로서의 그의 역할을 강조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구약에는 그에 대한 많은 구절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별히 그가 배반과 고난 그리고 죽음을 당하시게 될 일이 자세히 밝혀지고 있다 (시 22편; 사 53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배신할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한 결과를 인정하셨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는 말씀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두려운 유죄 판결을 선포하고 있다.

26장 25절 – 예수님의 그 같은 말씀을 듣고서도, 유다는 다른 제자들처럼 자기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고 혼자 빠지는 경우, 그것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 문제에 대한 자인이나 다름이 없지 않겠는가?

유다도 예수님에게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26: 22에 기록된 것처럼,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로 불렀는데 반해 유다는 예수님을 한 교사를 지칭하는 일반 명칭인 “랍비”로 불렀다.

유다에게 예수님은 주님이 아니라, 교사였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마태가 유다를 “예수를 파는 유다”로 지칭하고 있는 점이다.    

그날 밤 이후로, 유다는 유일하게 그리스도를 판 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 앞에서 유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으시고, 단지 “네가 말하였도다”는 말로 유다의 질문에 대답하셨다.

신적인 전지하심으로, 예수님은 유다가 그를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그는 배반자를 사도들의 그룹에 포함 시키셨고 그를 재무담당자로 세우셨는데,

그는 이를 악용하여 돈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곤 하였다 (요 12: 6).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유다에게 그의 계획을 알고 계셨던 것을 분명하게 밝혀주셨다.

우리가 유다의 반역에 반응할 때, 우리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죄를 지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충성심에 항상 성실해야 한다.

 

기념하라 (마태복음 26장 26 -30절)

26: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6: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6: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26장 26절 – “그들이 먹을 때에”라는 말은 우리가 주의 만찬으로 알고 있는 것이 유월절 축하만찬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해마다 지키는 유월절 만찬에다 새 의미를 부여하심으로 다가오는 자기의 죽음의 뜻과 목적을 설명하셨다.

실제로,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고 성취하실 일에 대한 예표(豫表)가 되었다.

한 예로, 구약의 유월절 음식을 나눌 때, 사람들은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자유를 얻은 것을 회상하였다.

주의 만찬을 나눌 때, 믿는 자들인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노예 생활에서 자유케 된 것을 상기한다.

유월절의 어린 양은 또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예시(豫示)해 주고 있다.   

성서의 관점에서 볼 때, 주의 만찬은 깊은 신학적 및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유월절 음식을 들 때,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빵 혹은 떡을 사용하셔서 자기의 몸을 인간의 죄를 위한 희생물로 상징하셨다.

누가 복음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이라는 말을 포함시켜, 예수님의 죽음의 속죄 본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는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의 몸은 우리의 부서진 영혼이 치유 될 수 있도록 찢겨지고 상함을 받았다 (사 53: 5).

26장 27 -28절 – 제자들이 빵(떡)을 먹은 후에, 예수님은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고 하셨다.  

요한복음은 유다가 이미 유월절 만찬 자리를 떠난 것을 밝혀주고 있다 (요 13: 26 -30).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잔”은 “언약의 피”를 상징한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야곱, 다윗 등을 비롯한 여러 개인들과 맺은 언약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예수님께서 그의 “피”로 맺으려고 하시는 “언약”과 같은 성격이나 희생이 없었다.

구약의 언약 혹은 옛 언약은 양과 소의 피에 기초되고 있다.

유대교 제사에서 짐승을 희생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은 대제사장으로 하여금 그 피를 제단에 뿌려 백성의 죄를 속죄 받게 하셨다 (레 17: 11).

이는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기 때문에 (롬 6: 23), 오직 죽음만이 죄를 속할 수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한다 (히 9: 22).

주의 만찬에서 드는 “잔(盞)”은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대표한다.

예수님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죽으셨다( 요 3: 16).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지는 않을지라도, 예수님의 보혈의 피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26장 29절 – 예수님은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내 아버지의 나라”라는 말이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셔서 다스리실 때인 천년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른 성경해석자들은 그 말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믿는다.  

그것이 어느 때를 가리키고 있든 간에,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것과는 전혀 다른 “새 것”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그 만찬은 유대인의 출애굽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그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새로운 성격과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고전 11: 23 -26).

26장 30절 – 일반적으로 유월절 만찬은 시편을 찬미하는 순서가 포함되었다.

시편 115 ~ 118편이 식사가 끝날 때 찬양하는 찬송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감란 산”으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찬미를 하셨다.

그들이 찬미를 할 때, 제자들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말씀의 적용:

  •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시며 공급해 주시는 것들을 알 수 있으며, 그같이 해 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 우리들 중 누구든지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도를 배반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님께 충성하기를 힘써야 한다.
  • 믿는 자들은 항상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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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은총을 베푸는 삶 - 제 5과 - 2018년 7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9장 1 -13절 강호길 2018.06.24 88
147 영원히 견고하게 될 왕위 - 제 4과 - 2018년 6월 2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사무엘하 7장 8 -21절 강호길 2018.06.16 90
146 축하하며 예배하다 - 제 3과 - 2018년 6월 1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5장 9 -12절; 6장 12 -19절 강호길 2018.06.10 406
145 왕위에 오르다 - 제 2과 - 2018년 6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3장 8 -21절 강호길 2018.06.06 427
144 존경을 받다 - 제 1과 - 2018년 6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 하 1장 22 -27절; 2장 1 -7절 강호길 2018.05.24 66
143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다 - 제 13과 - 2018년 5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12장 7 -10절; 13장 2 -8절 강호길 2018.05.19 112
142 믿음으로 드리는 헌금 - 제 12과 - 2018년 5월 2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9장 1 – 15절 강호길 2018.05.13 433
141 새롭게 된 삶 - 제 11과 - 2018년 5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5장 16 – 21절; 6장 1 -2절 강호길 2018.05.06 87
140 복음을 나타내는 삶 - 제 10과 - 2018년 5월 6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4장 5 -18절 강호길 2018.04.30 114
139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삶 - 제 9과 - 2018년 4월 29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1장 1 -14절 강호길 2018.04.22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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