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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6

 

창조주 하나님

학습구절: 시 95편 1 -11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창조주와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주요교리: 하나님

살아 계시고 참 되신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유일무이하신 분이시다.

 

암송구절:  시 95편 6절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Come, let us bow down in worship,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Maker.

 

시작하는 글:

공공도로들은 각종 경고표지판으로 가득 차 있다.

교통신호등, 정지표지판, 양보표지판 등은 교통의 흐름을 통제한다.

깜박거리는 노란색 신호는 잠재적인 위험을 경고해 준다.

 속도제한 표지판은 최대 안전 주행 속도를 나타내주고 있다.

우리가 그 같은 경고들에 주의하지 않거나 무시할 때마다, 무서운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

시 95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는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는 그의 창조물들을 돌보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게 지켜 주는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편기자에게 영감을 주셔서 갑자기 찬양 시를 중단하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경고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자 주권자가 되시며 백성들에게 인자를 베풀어주셨으므로, 백성들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되었다.

우리는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한다.

 

배경설명:

 

95편

성경에서, 음악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은 지엽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후에,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하였다 (출 15장).

다윗 왕은 레위 사람들을 세워 악기를 연주하게 하고 한 사람을 대장으로 삼아 노래 부르는 일을 책임지게 하였다 (대상 16장).

역대상 23장은 밝히기를, 이스라엘에서 사천 명의 레위인들이 찬송을 드리는 일에 참여하였다.

역대 하 5장은 또한 초막절 동안에 백이십 명의 레위인들이 나팔을 분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5: 12).

다른 레위인들은 다른 악기들을 연주하였다.

4,000 명의 목소리가 합쳐진 합창단과 수백 명의 악기 연주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냈을 때 그것은 천지를 진동하는 것 같이 들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인상적인 뮤지컬 제작의 목적은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있었다 (대하 5: 13).

여호와를 찬송하라는 권면의 말은 시편에서 자주 발견하게 된다.

시편을 설명하는 표제가 처음에 나오지 않을 경우, 성경해석자들은 시편의 내용을 가능한한 멀리까지 추적하여 그 시가 기록된 배경을 측정한다.

시 95편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와 “맛사”에서 겪은 일들이 암시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95: 8).

두 곳은 시내 광야에 위치해 있었으며,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불평한 악명 높은 장소가 되고 있다.

맛사” 또는 “므리바”라는 이름은 시내 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르비딤 근처의 장소로 언급되고 있다 (출 17: 1, 7).

다른 곳에서 므리바라는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곳은 가데스바네아가 있는 신 광야의 북 쪽 지역이 되고 있다 (민 20: 1 -13; 27: 12 -14; 신 32: 50 -51).

그러니까, 므리바로 불려지고 있는 두 지역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랑생활을 한 광야의 남과 북의 두 끝이 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 두 지역에서 하나님께 불평 한 두 경우는 그들이 광야에서 방황생활을 시작한 때와 거의 끝날 때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시 95편이 므리바와 맛사를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전체를,

즉 남쪽에서부터 북쪽까지 그리고 시초부터 마지막 까지를, 포함시키는 방법이 되었을 수 있다.

시 95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황했던 생활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시는 초막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사용했던 것이 가능하다.

그 절기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낸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 한 후,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들과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방법으로

예배 인도자들은 백성들에게 과거에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를 지었던 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기억하도록 촉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습구절 연구

무엇으로 (시 95편 1 -2절)

95: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95: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95편 1절 시 95편의 처음 구절들에서 인칭대명사들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회중 예배 때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권하며 예배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대부분의 공동예배는 예배의 부름으로 시작되고 있다.

때때로 예배의 부름은 찬양대나 찬양 팀 혹은 회중들이 부르는 노래가 되고 있다. 

때로는 예배인도자가 회중들에게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돌리자고 권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 시편의 첫 구절들과 같이 성경을 읽기도 한다.

시편 기자는 일련의 명령형 동사들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예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 첫 번째가 “오라”는 말이다.

공동예배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의 장소로 나아와 예배의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요구하였다.

다음으로, 시편 기자는 ‘외치라’라는 뜻인 두 개의 평행 어구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여호와를 예배하라고 하였다.

첫 번째 단어는 구약에서 즐거이 외치는 것을 가리키는 형태로 되어 있는 것으로,

일부 번역자들은, 본문에서처럼, 그것을 “노래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두 번째 단어는, “즐거이 외치자”로 번역되고 있는데, 구약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외치는 것을 언급하는 경우가 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들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군중 속에 있는 어떤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해, 혹은 큰 기쁨이나 슬픔에 찰 때 외친다.

어떤 교파에서는 예배시간에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배시간에 크게 외치는 것을 불편하게 느낀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케 하거나 주의를 하나님으로부터 딴 데로 돌리게 하는 어떤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큰 소리로  "아멘"이라고 외치는 것은 설교나 찬양 혹은 간증으로 선포되는 진리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이다.

예배를 드리러 모이는 사람들이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흥분과 감격에 차 있다면,

예배 시작 전과 후는 물론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도 큰 소리가 날 수 있을 것이다.

시편기자는 사람들에게 외치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구원의 반석”으로 불렀다.  

우리가 회중 가운데 섞여있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나 단위에 있는 사람들 혹은 자신에게 신경을 쓰기가 쉽다.

그러나 예배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찬양과 기도 그리고 생각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관심의 중심이 되신다.

95편 2절 – “그 앞에 나아가며”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본래 두 단어로 되어있다.

첫 번째 단어는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문제로 대면하는 것을 가리킨다.

두 번째 단어는 어떤 사람의 ‘얼굴’을 뜻하는데, 그 말은 보통 그 사람 앞에 혹은 그의 얼굴 앞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 앞에 나아가며”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직접 나타나는 것, 즉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편기자는 또한 “감사함으로”라는 말로, 예배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을 지시해 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를 바라는 필요나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는 문제들을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가면서도 하나님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 같은 예배태도는 불만이나 자기 중심주의 혹은 이기심을 표출시키는 일이 된다.

예배에 나아가는 적절한 방법은 하나님의 크심과 그가 우리를 얼마나 넘치게 축복해 주셨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시 100편 4절에서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중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는 말로 그 같은 감정을 표현하였다.

회중 예배에는 다른 신자들에게 사랑과 격려를 나타내는 것도 포함되고 있지만,

예배의 주인공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으로 삼는다.

 

누구를 (시 95편 3 -5절)

 

95: 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다.

95: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95: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고 심지어 찬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그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처음 두 명령은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예배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츨 20: 1 -4).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때까지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없다.

일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진다.

시편 책의 한 가지 특징은 시편기자들이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높이며 찬양하는 것이다.

95편 3절 - 시편기자는 “크신”이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사용하여 하나님을 묘사하기 시작하였다.

이 구절의 첫 소절은 여호와를 “크신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

어떤 사람은 크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여러 신들 중에 크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다음으로 “하나님이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고 기록함으로 그 뜻을 분명하게 하였다.

그것은 실제로 다른 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신명기 4장 35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신 일을 상기시킨 후에 그 목적을 밝히기를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거짓 신들은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교도 종교의 교리와 의식에만 존재한다.

95편 4절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곳”은 지구의 양극단을 대표하고 있다.

첫 번째는 땅 밑에 숨겨져 있다.

지구의 중심은 땅 표면에서 약 3,950마일이 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높이가 29,028피트인 에베레스트 산이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높이가 9,100 피트인 헤르몬 산이다.

그 산은 120마일 떨어져 있는 사해에서 볼 수 있다.

그들 두 극단의 수치가 어떻든 간에, 그들의 창조주와 비교할 때 그들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모두 “그의 손 안”에 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우월성을 의미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두 가지 면을 확실하게 통제 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95편 5절 – “땅의 깊은 곳”처럼, “바다도” 숨겨진 신비의 장소가 되고 있다.

근대의 발달된 조사도구들과 기술들을 갖추고 있는 오늘 날에도, 바다는 미개척의 엄청난 비밀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언급은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에 새로운 면을 추가시켜 주고 있는데, 바다는 위험한 곳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고대 시대에 지중해는 9 월 중순부터 2 월까지 항해하는 것이 위험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사람들이 아니었다.

손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며 다른 많은 기능을 수행 할 수 있는 인체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성경은 손을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는 관용어(慣用語)로 하나님에 대해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구절의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마른 땅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기술(記述)과 모순되지 않고 있다 (창 1: 9).

오히려 그것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창세기의 기술을 보충해주고 있다.

바다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는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그가 말씀하시자 바다는 복종하였고 뭍을 드러내었다.  

바다와 땅은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바다와 땅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어떻게 (시 95편 6 -7상)

 

95: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끓자

95: 7a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95편 6절 시편기자는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라”는 말로 사람들을 예배로 계속 초대하고 있다.

그러나 6 절의 분위기는 1-2 절의 것과는 다르다.

처음 두 구절의 것은 축제분위기로, 감사와 기쁨과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6 절의 것은 깊은 생각에 잠긴 분위기가 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오라”고 초청한 후,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끓자”고 하였다.  

예배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끓어 엎드리다”라는 뜻이 되고 있다.

그것은 예배를 가리키는 가장 보편적인 용어가 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끓고 머리를 숙이는 것은 겸손과 경건의 자세가 되고 있다.

처음 두 구절은 예배의 일부는 하나님 앞에 있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며

그의 모든 구원의 사역에 대해 큰 소리로 감사하는 일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6 절은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경외심을 갖게 하는 놀라운 분이 되시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예배의 또 다른 면이 됨을 나타내고 있다.

예배의 시간은 단순히 축제분위기가 되거나 혹은 단지 깊이 생각에 잠기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배는 두 가지가 다 될 수 있다.

5절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 하셨기 때문에 그를 찬양한다.

6 절은 하나님을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로 부름으로 그가 우리를 지으신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를 육체적으로 지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하신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고후 5: 17),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이다 (엡 2: 10).

95편 7절 상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다 (창 17: 8).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었다.

시편기자가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라고 했을 때, 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관계를 확언하였다.

목자와 그의 양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생생하게 모사해주는 표현이 되고 있다 (시 23: 1; 100: 3).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기르시는 백성”과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으로 표현하였다.

예수님 역시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양으로, 그리고 자신을 “선한 목자”로 부르셨다 (요 10: 11).

 

언제 (시 95편 7하 -11절)

95: 7b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95: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5: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95: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95: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7절 후반에서 시편의 음조가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과 그가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상기시키며 하나님을 예배하자고 권유하였다.

이제 그는 긴급 경고를 내고 있다.

그는 예배자들에게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고 있는데, 그 경고는 “오늘”이라는 말로 인하여 긴급함이 나타나고 있다.

95편 7절하 – 시편기자는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라는 말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예배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

그 같은 사실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한 사무엘의 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삼상 15: 22).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이라고 하셨다 (요 4: 23).

우리의 예배를 인도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95편 8 -9절 – 시편기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며, 바르게 예배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였다.

그는 실례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있었던 과거의 실패를 들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변화시켜 주시며 빚어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다”라는 말에서는 백성들의 마음이 너무나 굳고 고집이 세기 때문에 변화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이 암시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 그들은 두 차례에 걸쳐 하나님께 반역하고 그가 필수적인 물을 제공해 주시는 것을 믿지 않았다.

두 번 다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해 주셨다.

한 사건은 출애굽 직후에 일어났다 (출 17: 1 -7).

다른 사건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일어났다 (민 20: 1 -13).

두 사건 사이에, 하나님은 수 없이 많은 이적들을 행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돌보아 주시고 보살펴 주셨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하였(다).”   

시험하다는 말은 어떤 것의 품질 혹은 진가를 증명하는 것을 뜻한다.

모세는 “맛사” 혹은 “므리바” 사건 때 그 용어를 사용하였다 (출 17: 2, 7).

“므리바”라는 말은 “다투다” 혹은 “논박하다”는 뜻이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논쟁을 벌리며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출 17: 7).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다 (신 6: 16).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즉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시험하고 조사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이며 우리의 평가를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대신 우리는 예배, 사랑, 순종, 무조건적인 신앙으로 그를 대해야 한다.

95편 10 -11절 –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근심”하시며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근심한다”는 말에는 강한 혐오감이 내포되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에서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노하여 맹세하시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났을 때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나 되었는데 (출 12: 37), 단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여기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축복을 전적으로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3 -4장에서 시 95편의 말씀을 네 번에 걸쳐 인용하였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한 “안식”을 가지고 계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안식을 얻을 수 있다.

 

말씀의 적용:

  •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를 찬양해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로 예배해야 한다.
  • 모든 사람들은 창조주를 예배하러 나아갈 때 겸손과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 믿는 자들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예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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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순종의 믿음 - 제 12과 - 2018년 11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4장 6 – 17절 강호길 2018.11.14 119
167 절제의 믿음 - 제 11과 - 2018년 11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3장 1 – 12절 강호길 2018.11.06 964
166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는 믿음 - 제 10과 - 2018년 11월 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2장 14 – 26절 강호길 2018.10.27 364
165 순종의 삶 - 제 9과 - 2018년 10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1장 19 – 27절; 2장 1 -4절 강호길 2018.10.22 268
164 인내의 삶 - 제 8과 - 2018년 10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1장 2 -15절 강호길 2018.10.16 66
163 참된 사랑의 삶 - 제 7과 - 2018년 10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6장 1 10, 14 -15절 강호길 2018.10.06 211
162 참된 열매 - 제 6과 - 2018년 10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5장 13 -26절 강호길 2018.10.01 198
161 참된 자유 - 제 5과 - 2018년 9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4장 8 -20절 강호길 2018.09.22 80
160 참된 상속자들 - 제 4과 - 2018년 9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3장 23 -29; 4장 1 -7절 강호길 2018.09.15 89
159 참된 구원의 삶 - 제 3과 - 2018년 9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갈라디아서 3장 1 -14절 강호길 2018.09.13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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