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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5월 13일 주일

 

 

새롭게

 

학습구절: 고린도후서 5장 16 – 21절; 6장 1 -2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새로운 피조물들로서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겨야 한다.     

 

주요교리:  구원    

 중생 또는 새로 태어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가리킨다.   

 

암송구절: 고린도후서 5장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God made him who had no sin 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시작하는 글: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로 태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삶의 가장 큰 기쁨을 건전한 인간 관계에서 찾는다.  

반면에, 깨어진 관계나 관계의 단절은 사람을 우울증이나 절망상태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관계가 깨어지면, 가까운 관계일 수록, 아픔이나 상처가 더 크게 마련이다. 

 

 

깨어진 관계는 회복될 수 있는가?  설명해 보라.

한 번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는 일은 서로 관계가 나쁘던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하나님은 인간을 서로 관계를 맺고 살도록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도 관계를 맺고 살도록 지으셨다.

인간의 가장 큰 필요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다.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장벽이 생겨 났으며,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그 장벽이 제거되어야 한다.

인간들 사이에도 또한 죄로 인하여 장애물들이 생겨났다.  

이번 주의 학습구절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화목한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진정한 화목은 예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더욱이 본 학습구절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금이 간 관계를 화목하게 하는 교회가 복음의 메시지를 더 힘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본문배경설명

 

고린도후서 5장 11절부터 7장 16절까지

고린도 전서와 후서를 계속 학습해 오고 있다면, 바울이 이 부분에서 화목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 몇 가지 요인을 상기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바울이 제기한 한 가지 쟁점은 교회 분열의 문제였다 (고전 1: 10 -4: 21).

교회 내에서의 파벌 경쟁은 차이점들을 제쳐놓고 화목을 도모해야 했다.

 그런 다음, 고린도 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과 자신과의 사이에 생긴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바울과 이들 사이에는 화목한 관계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수평적인 관계의 회복보다 더 큰 필요가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고린도인들이 수직적인 화목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 수직적인 화목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중요한 진리를 기록하였다.

그는 그의 사역을 다루는 서신 본문의 첫 번째 주요 부분에 이 가르침을 포함 시켰다 (고후 1 : 12-7 : 16).

그의 사역의 목적에 관한 그의 가르침의 일부로서 (5 : 11-7 : 16), 바울은 이번 주의 학습의 주제가 되고 있는, 화목의 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포함시켰다.

우리는 바울이 전개시킨 그의 사역목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화목하게 하는 직분 (5: 16 -6: 2) – 이번 주의 학습구절이 되고 있다.
  • 바울 사역의 특징 (6: 3 – 13) – 자신이 겪은 갖가지 어려움과 고난을 담대하게 밝힘.
  • 거룩한 삶을 살라 (6: 14 -7: 1) –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 회개와 기쁨 (7: 2 -16) –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함.

오늘의 공과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에 대한 학습구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가 학습구절들을 함께 공부할 때, 다음의 원칙에 유념하도록 하자:  

신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새로운 피조물들로서 그리고 화목의 말씀을 맡은 사신으로서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대표해야 한다.  

 

 

신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새로운 피조물들로서 그리고 화목의 말씀을 맡은 사신으로서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대표해야 한다

 

 

 

학습구절 연구: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고린도후서5 16 -17)

5: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5: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것이 되었도다           

 

5장 16절 앞 구절에서(5: 15) , 사도 바울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이란 말로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와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라는 말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 대신 죽으신 것을 믿고 받아들일 때 생기는 변화를 묘사하였다.

바울 자신의 경우,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하였다 (5: 14).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십자가의 죽음으로 입증된,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혔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그 같은 해석은 바울의 관점을 바꾸어주었다.

구원을 받고 영적인 눈이 뜨이게 되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안목도 바뀌게 되었다.

바울은 그 같은 변화를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때, 사람들 모두가 다 귀하고 중요하게 보인다.

세속적인 안목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기심과 편견의 눈으로 보게 된다.

이제부터는”이라는 말은 세상적인 관점이 영적인 안목으로 바뀐 때를 가리키고 있다.

그 같은 관점에서 바울은 다시 말하기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바울은 예수님을 똑같이 “육신을 따라” 알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약속된 메시야이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함으로 신성을 모독하며 십자가의 처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났고, 예수님에 대한 그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한때 예수님을 육신을 따라 알고 판단했던 바울의 관점은 주님과의 진정한 구원의 관계로 바뀌었다.

오늘날 많은 불신자들은 바울이 회심하기 이전에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극심할 정도의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육신을 따라” 알고 있어서, 예수님을 선한 사람이나 현명한 교사 또는 고대 종교의 창시자의 하나로 여긴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예수님께로 돌이켜 그가 베풀어주시는 죄 사함의 은혜와 새 생명을 받으면, 모든 세상적인 관점은 곧 사라지고 만다.

 

5장 17절  -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엡 2: 8)을 새롭게 창조되는 관점으로 설명하였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 구원을 받는 것을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표현하셨다 (요 3: 1 -3).

바울은 그 같은 극적인 변화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로, 필수조건과 충분조건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덧붙여 설명하기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다.  

바울은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을 때 생기는 변화로 완전히 이해하고 파악하기를 원하였다.

이 멋진 구절의 각 부분을 탐구해보도록 하자.

첫째,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는 말로 필수조건을 제시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믿는 가정과 같은 가족의 유업이나 선행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것들은 칭찬할만한 일은 되지만, 구원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이 바울의 구원 신학에 열쇠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둘째,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로, 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나타나는 결과를 나타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표현은 회심의 순간에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바울의 방법이 되고 있다.

그 말에서는 또한 구원은 믿는 자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지, 신자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

셋째, 바울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라는 말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의 뜻을 믿는 자의 이전 삶의 관점에서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이전 것”이란 말은 믿지 않았을 때의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관점과 행동 및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이전의 삶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와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특징이 되었다.

그런데, 그 같은 삶은 지나가 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옛날의 바울은 죽고 새 바울이 태어난 것 같았다.

그 변화는 너무도 심오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은 참으로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넷째,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은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자들의 새로운 삶의 관점에서 밝히고 있는 말이 되고 있다.

그 것은 내적인 개심이 아니라, 외적인 변화를 강조하는 말이 되고 있다.  

바울이 신자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신자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보았다.

불신자들을 바라보았을 때, 바울은 그들을 구세주가 필요한 사람들로 보았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삶 (고린도후서 5장 18 -21절)

5: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5: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5: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5: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5장 18절  -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라는 간단한 말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도권이 되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그 같은 사실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롬 5: 8).

“모든 것”이란 말은 “이 모든 것”이란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그 말에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실 때 우리를 위하여 행해 주신 모든 것, 특별히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면, 하나님께서 ‘새 생명’을 주신 것과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주신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화목하게 (한다)”는 말에서는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인간의 죄가 거룩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고 원수가 되게 하였다 (롬 5: 10; 골 1: 21).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죄인들을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로 제공하심으로 죄인들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는 일을 시작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인간과 화목하게 한다고 하지 않고,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다고 말한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은 죄를 지은 죄책감을 없애 버리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화평의 관계를 맺게 하였다 (롬 5: 1).

바울은 또한 사도로서의 그의 부름에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는 일을 주도하셨을 뿐 아니라, 믿는 자들을 통해 구원의 복음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는 일도 주도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호소하는 직분을 받았다.

 

5장 19절 – “”이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바울이 18절에서 말한 것을 다시 강조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단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실제로는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는 것이다.   

“세상”으로 번역된 용어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들로 대표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계 5: 9).

그것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 구원설’ (universalim)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말은 구원의 길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실 때, 그는 모든 사람들을 염두에 두 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선물을 받는다.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실 때 베풀어 주시는 큰 은혜의 하나는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는 것)”이다.

그 말이 나타내고 있는 개념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은 그 죄인이 지고 있는 죄의 부채를 탕감해 주신다는 것이다 (마 18: 23 -3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도말해 (씻어내) 주시고” (사 43: 25)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신다 (렘 31: 34).

죄를 사함 받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질 수 없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는 말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으로 구원을 받는 신자들 모두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5장 20절  - 바울은 자신을 포함하여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모든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하였다.  

사신” (ambassador)으로 번역된 헤라어에는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믿는 자들을 두 나라의 시민이 되고 있다.

즉, 우리는 세상 부모에게서 태어난 덕분에 이 세상의 시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을 때, 우리는 또한 천국 시민이 되었다 (엡 2: 19; 빌 3: 20).

우리의 기본적인 시민권은 하나님 왕국의 것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시민권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이다.

사신 혹은 대사들은 국가나 통치자를 대표하는 권한을 받아가지고 다른 나라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은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권세를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 28: 18).

대사들은 그들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국가 지도자의 말과 의도를 가지고 가서 전달한다.

그러므로 신자로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그를 믿는 자들을 제자로 삼아 그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마 28: 19-20).

성경학자들은 고린도후서 5장 20절의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한 마지막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울이 그 말을 누구에게 한 것이냐 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그 말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그들의 현재 행동을 보면 참된 믿음이 결여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그 같은 사실을 강조하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성경학자들은 그 말이 모든 불신자들에게 하는 일반적인 권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5장 21절  -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이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요약한 가장 중요한 구절들의 하나로 생각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일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 진술은 심오하면서도 역설적이다.

  • 하나님이 삼으셨다 – 화목의 창시자(創始者)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하나님께서 화목을 주도하셨다.
  • 죄를 알지 못하신 이(예수) - 예수님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동시에, 또한 완전한 인간이셨다
  • 죄로 (죄 있는 자로) 삼으신 것은 - 예수님은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 죄인이 되신 것이 아니다. 바울이 뜻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의 대속물이 되셨다는 것이다 (롬 5: 8; 민 6: 14; 사 53: 4 -5).
  • 우리를 대신하여 – 여기서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교환 혹은 대체의 뜻이 되고 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자원해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자신의 몸에 지셨으며 (요 10: 11, 18),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우리 죄에 대한 대속 물로 받아주셨던 것이다.  구약의 희생제물 제도는 그것을 예시(豫示)해 주고 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 하나님과의 화해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 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난다. 예수님의 죽음의 은혜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설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의”란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법적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무죄”를 뜻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이다. 그러나, 그 말이 뜻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무죄하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빚을 갚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 

항상 준비하고 있는 삶 (고린도후서 6장 1 -2절)

6: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6: 2     이르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희에게 듣고 구원이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6장 1절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였다.

바울은 먼저 자신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보았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화목의 사역을 통해 자기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셨고, 사도로 불러주셨으며, 그 일을 하도록 성령님을 통해 능력을 힘 입혀 주시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은 그것을 큰 특권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신자들인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구속의 계획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고전 3 : 9).

우리는 지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님을 위해 일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신자들은 새로운 피조물로 신실하게 살며 하나님의 일을 충실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비해 버리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괸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6장 2절  - 바울은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1절에서 밝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특별히, 그는 이사야서 49장 8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 하면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였다.   

이사야 49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종인 메시야가 나타나실 것을 미리 보았다.

더욱이, 그는 주께서 장차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될 그의 백성들을 구해내 주실 것도 보았다.

이 예언들은 궁극적으로 구원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줄 구세주의 출현으로 성취 될 것이었다.

신약 성경 저자들은 예수님이 이 예언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심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마 12: 14-21, 행 3: 13,26).

어떤 성서 해석자들은 이사야의 사역과 바울 사역 사이의 유사점들을 보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회개하고 우상숭배로부터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한 백성에게 예언하였다.

바울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관해서 고린도교인들을 경고하였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불신자들에게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라는 경고가 될 수 있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부차적인 일이나 문제들로 인하여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 버리지 말고 기회가 가기 전에 하나님의 일에 충성을 다하라는 격려의 말이 될 수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옛 사람에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될 수 있다. 
  •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다.
  •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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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다시 살리심을 받다 - 제 3과 2019년 9월 15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에베소서 2장 1-10절 강호길 2019.09.08 117
210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 제 2과 2019년 9월 8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에베소서 1장 15 -23절 강호길 2019.09.01 84
209 기뻐하라 - 제 1과 2019년 9월 1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에베소서 1장 1 -14절 강호길 2019.08.26 106
208 선한 일을 힘쓰는 믿음의 삶 - 제 13과 2019년 8월 25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도서 3장 1 - 11절 강호길 2019.08.18 79
207 정직하고도 성실하게 사는 믿음의 삶 - 제 12과 2019년 8월 18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도서 2장 1 -15절 강호길 2019.08.11 84
206 반대를 피하지 않는 믿음의 삶 - 제 11과 2019년 8월 11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도서 1장 1 -5절, 10 -16절 강호길 2019.08.07 869
205 오래 참고 견디는 믿음 - 제 10과 2019년 8월 4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모데후서 3장 12 -17절; 4장 1 -8절 강호길 2019.07.28 105
204 주님의 일에 힘쓰는 사역자들 - 제 9과 2019년 7월 28일 주일 용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모데후서 2장 14 -26절 강호길 2019.07.21 65
203 집중(集中)하는 믿음의 삶 - 제 8과 2019년 7월 21일 주일 용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모데후서 2장 1 -13절 강호길 2019.07.14 85
202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확신 - 제 7과 2019년 7월 14일 주일 용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모데후서 1장 3-14절 강호길 2019.07.09 50
201 영원한 투자 - 제 6과 2019년 7월 7일 주일 용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모데전서 6장 1 -19절 강호길 2019.07.05 86
200 서로 돌보아야 하는 신자들의 책임 - 제 5과 - 2019년 6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디모데전서 5장 1 -8, 17 -21절 강호길 2019.06.23 68
199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 - 제 4과 - 2019년 6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디모데전서 4장 1 -13절 강호길 2019.06.17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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