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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9년 1월 6일 주일 용  

 

6과

 

 

변화되다  

 

 

학습구절: 창세기 32장 24 -32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사람들을 변화시키셔서 그의 거룩한 계획에 사용하신다.         

 

주요교리:  구원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거듭남 혹은 영적인 새 출생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암송구절:  창세기 32장 28절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Then the man said, ‘Your name will no longer be Jacob, but Israel,

because you have struggled with God and humans and have overcome.’”     

 

 

시작하는 글:

 

우리는 삶의 위기를, 기쁨을 빼앗아가며 꿈을 훔쳐가는 원치 않는 침입자로 생각할 때가 있다.

우리는 삶이 불공평하다거나 하나님은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같이 싫어하며 불평하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키워주시며 그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보다 영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며 관심을 두고 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듣고 배울 수 있는 위치에 우리를 두신다.

 

자신의 삶 속에서 시련과 역경을 겪었던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어려움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그 같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 당신은 영적으로 어떻게 변하고 성숙하였는가?

 

 

본문배경설명 

 

창세기 32장 1절부터 31절까지

창세기 32장은 야곱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쌍둥이 형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20년 전에, 야곱은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威脅)하는 형 에서 때문에, 하란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피했었다.

20년 동안에,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큰 가족을 이루게 되고, 많은 재물도 모이게 되자, 야곱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지만, 야곱은 고향을 떠나게 되었던 주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있었다.

형은 아직도 복수심에 불타고 있을까?

야곱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고향을 찾아가는 야곱의 마음은 불안하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 같은 야곱을 먼저 하나님께서 만나주셨다.

야곱이 길을 떠나서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앞에 나타났다.

야곱은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으로 불렀다.

마하나임”이란 이름은 “두 진영(진영)”이란 뜻으로, 야곱의 떼와 하나님의 떼를 가리키는 말이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야곱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가 함께해 주시는 것을 상기시켜 준 일이 되었다.

야곱의 가족은 얍복강의 북쪽에다 진을 쳤다.

얍복 강은 그 물줄기가 요단강의 동북쪽에 있는 길르앗 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흘러내려, 사해에서 북쪽으로 약 15 마일 떨어진 지점의 요단 강으로 들어가는 작은 강이었다.

일단 얍복강을 건너기만 하면, 그 곳은 “세일 땅 에돔 들”로 에서가 사는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은 거기서 형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하였다.  

야곱은 자기가 고향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었다.  

야곱은 사자들에게 자기가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려주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로 용서를 구하는 뜻을 전하게 하였다 (32: 3 -5).

그들 사자들이 돌아와 전한 것은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라는 보고였다 (32: 6).

그 같은 보고를 들은 야곱은 마음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다).”     

그는 가족과 가축들을 “두 떼”로 나누었는데, 이는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32: 7 -8).

야곱은 세 가지 추가 조치를 취하였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32: 9 -12).

그는 여호와께서 자비롭고 신실하신 분이심을 고백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형의 손에서 구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여호와의 언약의 약속을 확고히 믿고 있음을 단언하였다.

야곱은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하면서 간절히 기도하였다 (32: 12).

둘째로, 야곱은 그 소유 중에서 가축들을 택하여 에서를 위한 예물을 준비하여 세 떼로 나누어 먼저 보내었다 (32: 13-31).

그 선물은 에서의 노여움을 풀어주고 야곱이 20 년 전에 에서에게 행했던 배신 행위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예물을 가지고 앞서가는 자들에게 명령하기를, 에서를 만나면 “이것은 모두 주인의 종 야곱의 것인데, 야곱이 그 형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라고 말하라고 하였다 (32: 18 –표준새번역).

셋째로, 야곱은 또한 밤 중에 그의 가족들과 소유물들은 얍복 강 건너편으로 건너 보내고 “홀로 남았(다)” (32: 22-24).

야곱은 에서가 자기를 목표로 삼고 있으며 자기만 붙잡으면, 추격을 끝내고 그의 가족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줄 것으로 믿고 따로 혼자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혼자 남아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했을 수 있다.

에서를 만나기 위한 야곱의 마지막 준비는 야곱에 의해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었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야곱이 변화되는 결과가 되었다.

그날 밤 얍복 나루터에 홀로 남아있던 야곱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을 만나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였다 (32: 24 -32).  

동이 틀 무렵에, 그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다.

 

학습구절 연구 

 

씨름 시합을 벌린 야곱 (창세기 32장 24 -26절)

 

32장 24 -25절: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한 계획과 필요한 조치들을 취한 야곱은 북쪽에 있는 얍복 나루터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같이 홀로 남아있던 야곱은 갑자기 나타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32: 24-29).

그 두 사람은 서로 맞붙어서 밤이 새도록 씨름시합을 벌리게 되었는데, 어느 쪽도 상대를 이길 수 없었다.

여기서 “씨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먼지”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 단어서 경기자들이 서로 맞붙어 먼지를 일으키며 딩구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경우의 씨름은 야곱이 앞에 놓여있는 큰 문제들을 감당하며 해결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성격의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야곱을 시험하셔서, 그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는 것을 얼마나 강하게 원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인정하게 하셨다.

야곱의 씨름 상대는 여기서 단순히 “어떤 사람”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 32장 28 -30절에서는 이 사건이 하나님 자신과의 만남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단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셨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 뼈를 쳐서 엉덩이 뼈가 어긋나게 되었다.

 

32장 26절

  •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새벽이 다가 오자, 그는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면서, 떠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야곱은 다리를 절면서도 상대를 붙들고 늘어졌다.

야곱은 자신의 상대자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하였다.

축복하다’라는 히브리 동사는 ‘승리 혹은 성공을 위한 힘을 부여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축복하셨을 때, 그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삶을 개선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을 뜻하고 있다.

 

새 이름을 받은 야곱 (창세기 32장 27 -29절)  

 

32장 27절:

  •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야곱의 상대자가 이름을 묻는 것은, 특별히 그 같은 시점에서,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질문에는 더 깊은 목적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야곱이 자신과 그가 그때까지 행한 일들에 대한 진실을 인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성경 시대 당시에는 특별히 사람들과 장소의 이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갓난 아이가 출생할 때 종종 그들이 자라나기를 바라거나 관찰한 특성들을 나타내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야곱”이란 이름은 그와 그의 쌍둥이 형인 에서가 태어날 때 지어준 것이다.

야곱은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창 25: 26).

야곱”이라는 히브리 이름은 "뒤꿈치"를 의미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속이는 자” 혹은 “빼앗는 자”를 뜻할 수 있다.

후에, 에서는 두 번째의 뜻을 강조하면서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나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라고 하였다 (창 27: 36).

오랫동안, 야곱은 그의 이름의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야곱이 상대자에게 큰소리로 자기 이름을 말해주었을 때, 그것은 자신의 교활한 성격과 삶을 고백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한 고백이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삶의 방향,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새로운 장을 열어 줄 것이라는 것을 그는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또한 야곱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에 비추어 그가 지난 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밝혀주는 일이 되었다.

 

32장 28절:

  •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

그 사람”으로 밝혀지고 있는 씨름 상대자는 야곱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라고 하면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한 사람에게 이름을 주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권한 혹은 지배력을 나타내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왕들은 종종 그들이 정복한 사람들의 이름을 바꾸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단 1: 6-7).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실제로 두 가지 히브리어 단어를 결합한 형태이다.

첫 번째 단어는 ‘포기하지 않는다,’ ‘힘을 다하다,’ ‘인내하다’는 뜻의 동사이다.

두 번째의 단어는 ‘’이라는 말로,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의 단축된 형태가 되고 있다.

야곱의 씨름 상대자는 야곱에게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의 뜻을 밝혀주는 말이 되고 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말은 씨름 경기나 힘으로 이겼다는 뜻이 아니라, 축복을 받으려는 열망과 소원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 성공했다는 뜻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음으로, 야곱은 여호와와 그의 언약의 목적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또한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야곱의 새 이름은 그의 삶 속에서 중요하고도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 새 이름을 주신 여호와께서 야곱이 맡아 행할 중요한 역할이 있는 것을 알리는 일이 되었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태어나는 전조가 되었다.

때가 되면,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은 큰 지파들을 이루게 될 것이며, 종국에 가서는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32장 29절:

  •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야곱은 자기의 이름을 묻은 다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준 분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라고 간청하였다.

본문에서는 야곱이 왜 그 같은 사실을 알고 싶어했는지에 대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는 도리어 야곱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고 반문하였다.

그의 말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비추어 볼 떼, 그의 이름이 이미 분명해 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누구라고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야곱은 자신이 만난 분이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 그는 야곱이 요청한 대로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다.

 

하나님을 만난 장소를 기념한 야곱 (창세기 32장 30 -32절)

 

32장 30절:

  •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은 정체를 밝히지 않는 상대자의 이름을 얻어낼 수 없었지만,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놀라운 체험을 한 장소를 기억하고 기념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브니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 되고 있으며, 그것은 야곱이 자기를 찾아와 씨름 시합을 벌린 분이 누군지를 깨달았던 것을 드러내 주고 있다.

야곱의 상대는 "어떤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32: 24),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야곱의 상대자는 천사였는가?

수세기 후에 이 사건을 주목하면서, 호세아 선지자는 야곱이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라고 주장하였다 (호 12: 4).

그렇지만, 바로 전 구절인 3절에서는, 호세아 선지자는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라는 말로, 야곱이 하나님과 겨룬 것으로 표현하였다 (호 12: 3).

실제로 야곱은 브니엘에서 일어난 일이 하나님을 직접 만났던 일이 되고 것으로 결론지었던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고백하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하였다.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자는 죽을 것이라는 구절들을 찾아보게 된다 (출 33: 20; 삿 13: 22).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고도 생명이 보존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가장 대표적인 예는 예수님이 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다 (요 14: 9).  

씨름의 사건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 준 값진 경험이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이 경험에서, 야곱으로 불린 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하나님은 그 죄인을 살아남게 해 주셨다.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것은 그의 힘이나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

 

브니엘에서 승리한 것은 야곱의 힘과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

 

32장 31절:

  •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브니엘을 지날 때”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변화시켜 주신 때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제, 야곱은 새로운 변화의 삶을 시작해야 하였다.

둘째, 야곱은 아직 지리적으로 가나안 땅의 경계 밖,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그리고 이제는 야곱의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의 영역 밖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가는 그의 여정을 계속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다 마치려면 브니엘을 떠나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필요하였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인으로서의 임무를 계속하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였다.

해가 돋았고”라는 말은 전날 밤 그의 갈등과 싸움의 길이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야곱을 변화시켜 주신 것을 나타내는 언어인 동시에 비유적인 표현이 되고 있다.

야곱은 반항적인 삶의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고 있었다.

벧엘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것을 강하게 깨달았다 (창 28: 10 -22).

마하나임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것을 깨달았다 (창 32: 1 -2).

브니엘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다.

본문은 야곱이 “절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엉덩이 뼈가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야곱이 절은 것은 씨름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 것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남는 결과가 되었다.

더욱이 야곱의 승리를 바른 관점에서 보게 해 주고 있다.

야곱이 상대를 실제로 굴복시킨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야곱의 상대가 야곱의 엉덩이 뼈를 쳐서 엉덩이 뼈가 어긋나게 되었고 절뚝거리며 걸었다.

그러나, 야곱이 그 씨름 경기에서 이기고 승리를 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 굴복했기 때문이었다.

그 체험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변화시켜 주셨던 것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대가가 따르는 것이었지만, 야고보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였다.

그러므로, 야곱의 씨름은 실제로 자신과의 씨름으로, 영적인 것이었다.

영적 변화는 종종 역경과 고난 및 시련을 통해온다.

 

32장 32절:

  •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여기서 역사적인 기록을 삽입하였다.

후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가지 전통을 지켰는데,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과 겨룬 후, 변화된 사람이 되어서, "이스라엘"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을 기념한 것이었다.

즉, 그들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짐승을 잡을 때,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않았다.

그 전통은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전통은 모세의 율법에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초기부터 그것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야곱에게 생긴 변화는 세 가지 중요한 상징으로 표시되었다.

첫째로, 야곱의 이름이 바뀌었다.

야곱의 후손들은 그의 새로운 이름인 “이스라엘”로 불려지고 알려질 것이다.

둘째로, 야곱은 그 곳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기 때문에, “그 곳 이름을 브니엘”로 지었다.

셋째로, 야곱은 그 이후부터 걸을 때마다 “절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면서 얻는 중요한 영적 깨달음이나 교훈을 상기시켜 주는 삶의 지표(指標)들을 만들거나 세우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기념물이나 축하행사는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상기하거나 기념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을 후세대들에게 상기시켜주는 표적이 되었다 (출 13: 7 -10).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홍해와 요르단 강을 마른 땅을 밟고 건넌 역사적인 사건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개의 돌을 길갈에다 세워서 표적을 삼았다 (수 4: 19-24).

사무엘은 미스바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한 하나님의 역할을 기념하기 위해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다(삼상 7: 12-13).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재림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주의 만찬을 행한다 (고전 11: 23-26).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참된 변화는 신자들로 하여금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찾게 한다.      
  • 신자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길 때 변화가 생긴다.   
  • 신자들은 주님과 동행하면서 얻은 중요한 영적 깨달음과 체험을 일깨워주는 삶의 지표를 만들고 기념할 수 있다.

 

당신은 이번 주간에 하나님과 정기적으로 더 자주 만나기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가?  그같이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무엇이며 그 같은 장애물들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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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전도(傳道)하는 신자들 - 제 14과 - 2020년 5월 3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5장 14 -21, 30 -33절 강호길 2020.05.24 115
247 서로 용납하며 격려하는 신자들 - 제 13과 - 2020년 5월 2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4장 1-12절 강호길 2020.05.17 186
246 그리스도인의 시민권 - 제 12과 - 2020년 5월 1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3장 1 -14절 강호길 2020.05.11 54
245 헌신적인 삶을 살라 - 제 11과 - 2020년 5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2장 1 -2, 9 -18절 강호길 2020.05.02 249
244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 제 10과 - 2020년 5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1장 17 -32절 강호길 2020.04.26 244
243 구원을 받다 - 제 9과 - 2020년 4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0장 5 -15절 강호길 2020.04.19 98
242 보증 받은 구원 - 제 8과 - 2020년 4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8장 12 -25절 강호길 2020.04.12 651
241 부활하시다 - 제 7과 - 2020년 4월 1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 12절 강호길 2020.04.04 85
240 자유함을 얻다 - 제 6과 - 2020년 4월 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6장 1- 14절 강호길 2020.03.31 194
239 화평을 누리자 - 제 5과 - 2020년 3월 2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5장 1- 11절 강호길 2020.03.22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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