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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7과

 

충성을 다 하라

학습구절: 사도행전 5 25 -35, 38 -42

 

성경진리:

믿는 자들은 적대와 반대에 직면해서도 복음의 멧시지를 충성스럽게 전해야 한다.

 

주요교리: 종교의 자유

하나님 혼자만이 선악의 판단력인 양심의 주가 되시며,

하나님은 양심을 그의 말씀에 반대되거나 포함되지 않은 인간의 교리나 명령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셨다.  

 

암송구절: 사도행전 5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replied: “We must obey God rather than men.” 

 

시작하는 :

우리들 대부분은 충성을 귀중하게 여긴다.

우리는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제의 받고도 이를 거절하고 현재의 직장에 그대로 남아 계속 일하는 종업원에게서 충성심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일생을 통해 계속 서로 사랑하며 충성한 남편과 아내와 함께 중요한 기념일들을 축하한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팀의 선수가 경쟁상대 팀의 유혹을 물리치고 계속 남아 있기로 결정하면,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그의 충성심을 높이 사며

좋아한다.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타협하라는 강한 압력에 직면했을 때에도 그리스도께 계속 충성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자유와 생존의 위협을 계속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다.   

참으로, 많은 성경학자들은 믿는 자들에 대한 박해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될 뿐 아니라, 더 심해질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성경의 예언을

이해하고 있다. 

이 과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 박해와 순교의 위협에 직면해서 어떻게 행했는지를 살피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얼마나 용기 있게 그리고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도록 도전을 받으며 오늘 날 세계 각 처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믿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격려를 받을 것이다.

본문 배경설명:

사도행전 5장 17 -42절

큰 무리의 사람들이 고침을 받으려고 병든 자들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나왔다 (행 5: 12 -16).

기적적인 치유는 사도들에게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선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결과적으로, 신자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그 같은 교회의 급성장과 사도들에게 나타낸 백성들의 놀라운 반응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위협과 시기의 요인이 되었다.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먼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위협하였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행 4: 1 -22).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단념하지 않았다.    

특별히 대제사장과 그의 지지자들인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에 해해 위협 감과 시기심이 가득 차서 들고 일어나 사도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었다.

대제사장은 유대의 최고법정인 산헤드린의 의장이었다.

이 공회의 나머지 70명의 회원들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사두개인들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민중반란을 방지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로마정부는 유대인들의 종교기관인 산헤드린에게

어느 정도 법적 권력을 부여해 주며 공생관계를 유지하였다.

첫 번째 때는 베드로와 요한만이 붙잡혔었는데, 이번에는 사도들 모두가 공회에 의해 체포되었고 옥에 갇히게 되었다 (5: 17 -18).

그런데 밤중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기적적으로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가서 성전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라”고 하였다 (5: 20).

사도들은 천사의 지시에 따라 다음날 아침 일찍 성전으로 돌아가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쳤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중인이 되리라”고 명하셨는데(행 1: 8),

이것은 그 명령의 첫 단계인 “예루살렘”이 되고 있다.

사도들이 놓여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던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부하들을 보내어 사도들을 끌고 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와 전하는 보고는 황당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옥 문은 아주 단단히 잠겨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는데, 문을 열어보았더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보고였다.

성전 경비대장과 제사장들이 그 말을 듣고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와서 옥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고 전하였다.

그래서 성전 경비대장은 경비대원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학습구절 연구:

공회로 다시 돌아옴 (사도행전 5 25 -28)

5: 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5: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5: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5: 28    이르되 우리가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5 25: 종교 지도자들에 붙잡혀 옥에 갇혀있던 사도들은 “주의 사자”의 도움으로 옥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공회가 그 다음 날 모였을 때, 첫 번째로 한 일은 사도들을 데려다가 심문하기 위하여 경비병들을 감옥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경비병들이 돌아와서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사람도 없더이다”고 보고하였다.    

그 말을 들은 성전 경비대장과 대제사장은 당황해 하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없어진 사도들에 대한 불가사의는 곧 풀렸다.

어떤 한 사람이 와서 보고하기를 그들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

사도들은 도망한 것이 아니었다.

성전 경비대장은 경비병들을 끌고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백성들이 두려워서 강제로 끌고 오지 않았다.  

5 28: 이전에는 베드로와 요한만이 공회 앞에 섰었다.

이번에는 사도들 모두가 체포되었고 그들 앞에 다시 끌려 나와 서게 되었다.

공회가 모였을 때, 이 공회의 의장은 관례대로 대제사장이 맡았다.  

대제사장은 먼저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던 산헤드린의 명령을 사도들에게 상기시켰다 (행 4: 18).  

그런 다음 대제사장은 사도들이 그 명령을 어긴 사실을 지적하였다.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라는 말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거한 것을 가리킨다.

대제사장은 또한 “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라는 말로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돌리려 한다고

비난하였다.

피를 우리게 돌린다는 말은 구약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기술적인 표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실 때, 빌라도는 군중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리라”고 하였다 (마 27: 24).

그러자 군중들은 “ 피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대답하였다 (마 27: 25).

베드로와 사도들은 산헤드린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에 책임을 지고 있는 당사자의 하나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도들은 산헤드린에 대한 폭력을 선동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그 같은 사실을 지적한 것은 그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자기 주장을 견지함 (사도행전 5 29 -32)

5: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5: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5: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5: 32    우리는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5 29:  다시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변인으로 말하였다.

그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말로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해 침묵하라는 공회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였다

성경은 권세의 계층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은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확립하신다.

결혼생활에서 남편들은 그들 가정의 지도자로서의 권세를 갖고 있다 (엡 5: 22 -23).

남편과 아내는 그들 자녀들에 대한 권세를 갖고 있다 (엡 6: 1).

정부는 질서를 유지하고 무정부상태를 막기 위해 국민을 통치할 권세를 갖고 있다 (롬 13: 1 -4).

이 모든 권세와 통치권 위에는 그 모든 것들을 확립하신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의 권세는 절대적이며, 그 보다 낮은 권세들은 결코 하나님의 권세를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낮은 권세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어떤 일을 하도록 명령을 한다면, 우리는 낮은 권세에 불복종해야 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권세가 산헤드린의 권세보다 더 높고 상반되기 때문에 산헤드린의 권세를 거부하였다.

신실한 신자들이 정부의 통치권에 불복종할 때, 그것은 보통 시민 불복종으로 불려지고 있다.

다리오 왕이 금령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시민 불복종의 한 전형적인 실례가 되고 있다 (단 6: 10).

우리는 단지 어떤 규칙이나 법에 동의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것으로 인해 합법적인 권세에 불복종할 수 없다.  

세상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직접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될 때,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에 불복종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산헤드린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은 그 같은 경우가 되고 있다.

그들은 산헤드린의 권위를 존중하였지만, 복음을 전파하지 말라는 그들의 명령은 따를 수 없었다.

5 30-31: 베드로는 이 기회를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다시 전파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하였다.

그는 부활의 사건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인정하시고 구세주라는 그의 주장을 입증해주신 증거로 지적하였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받게 하려고 오셨다는 말은 베드로가 산헤드린의 회원들에게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초청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도록 초청을 받았다.

5 32: 베드로는 그의 설교를 자신과 다른 사도들이 그가 전한 진리의 증인이 되고 있는 사실을 선포하는 말로 끝마쳤다.

베드로는 주로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말하였다.

자신들의 증거 외에도, 그는 또한 성령님의 증거도 언급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가외의 증거로 오순절 날의 사건들을 제시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이 행한 기적들은 그들의 멧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입증하는 일이 되었다.

 

심의 기다림 (사도행전 5 33 -35, 38 -39)

5: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5: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5: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5: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사상과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5: 39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5 33 -35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지 않고, 도리어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하였다.

사도들을 경고하고 협박하는 것이 실패하자, 사도들을 침묵시키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을 죽일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섭리로 예기치 않은 곳으로부터 사도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미치게 해 주셨다.

산헤드린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사두개파 사람들이었지만, 바리새파 사람들도 대표되고 있었다.

사두개파 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중요한 교리적인 면에서 크게 다른 점들이 있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사후의 생명을 부인하고 있었는데 반해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구약의 처음 다섯 책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는데 반해,

바리새파 사람들은 구약의 삼십 구권 책 모두를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그들 두 파 사람들은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자주 충돌하였다.

사두개 사람들은 산헤드린에서는 다수를 점하고 있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일반 백성에서 더 많은 수를 대표하였다.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제거해 버리기를 원했을 때,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인 지도자가 다른 해결책을 제안하였다.

그는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먼저 공회 중에서 일어나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말하기를 “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고 하였다.

흥미 있는 것은 이 가말리엘은 다소에서 태어나 자란 사울(바울)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이다 (행 22: 3).

가말리엘은 또 다른 유명한 바리새인인 랍비 힐렐의 손자였다.

랍비 힐렐과 랍비 샴마이는 당시에 유대인들의 사상에 서로 다르게 큰 영향을 끼친 두 학파를 형성하였다.

힐렐 학파는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샴마이 학파는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대표하였다.

5 38 -39: 당시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의 수는 수 천명에 달하였고,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사도들이 행하는 기적적인 치유의 사역으로 인해

호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 같은 사실을 알고 있던 랍비 가말리엘은 전에 잠시 인기를 얻어 추종자들을 모았던 두 인물의 일을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들은 잠시 동안 인기를 누리며 성공하는 것같이 보였으나 마침내 죽임을 당하고 따르던 사람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5: 36 -37).   

그런 다음 가말리엘은 본문에 기록된 대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사상과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놀랍게도 산헤드린은 가말리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사두개인들은 물론 가말리엘 까지도 사도들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대신해서 설득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그의 조언이 산헤드린으로 하여금 사도들을 죽음에 처하게 되는 결과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말리엘의 설득력을 인정하지만, 그의 말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행해주셨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역사 초기에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셔서 그의 일꾼들을 보호해 주셨다.

하나님은 어떤 때는 기적적으로 천사를 보내어 사도들을 도와주기도 하셨고, 가말리엘 처럼 사람들을 사용하여 사도들이 풀려나게도 해 주셨다.

하나님은 오늘 날도 그의 주권으로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그의 뜻에 따라 사건들을 이끌어 가신다.

 

기회를 기뻐함 (사도행전 5 40 -42)

5: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5: 41    사도들은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5: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더라

 

5 40: 사도들은 죽음을 피하기는 하였지만, 벌을 받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전에,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의 이름으로 더 이상 전도하지 말라는 엄한 경고를 받은 후에 풀려났었다 (행 4: 21).

이번에 산헤드린은 사도들을 채찍질함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전도하지 말라고 한 그들의 명령을 강화하였다.

유대 관원들은 관례적으로 그릇된 행동을 처벌하거나 바로잡기 위하여 채찍질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사도들 각자는 아마도 소 가죽 가닥으로 만든 채찍으로 서른 아홉 번씩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관습대로라면, 그들은 끓어 앉은 자세로, 1/3인 열 세 번은 가슴에다 그리고 2/3인 스물 여섯 번은 등뒤에다 맞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관습은 어떤 특정 범죄에 대해 40까지 때리는 벌로 처벌했던 신명기 25장 3절에 근거한 것이었다.

40대 이상 때리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 40보다 한 대가 적은 매를 때리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 체벌은 “사십에서 하나 감한 ”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서 말하기를 그 같은 체벌을 다섯 번이나 당했다고 하였다.

5 41: 사도들이 매를 맞은 일은 그들이 겪은 최초의 신체적 박해가 되고 있다.

전에는 위협을 받고 감금을 당하는 벌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처음으로 심한 육체의 상처를 입는 벌을 받았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들을 때리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사도들이 매를 맞을 때마다 움츠러들며 고통스러워했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분노심이나 두려움울 나타내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였다.

그들은 고통 당하는 것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세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다.

즉 그들은 “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  

바로 그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셨을 때는 그 같은 형벌을 받게 될까 두려워서 도망을 쳤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환영하였다.

현재 상황에서 사도들이 육체적인 고통에 그같이 다른 반응을 나타낼 수 있었는데 에는 적어도 네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고 있으며 그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둘째, 사도들은 자신들이 받는 고난은 결코 예수님의 고난에 비교될 수 없는 것을 알았다.

셋째,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넷째, 우리는 오순절 날 후에 그들에게 임한 성령님의 능력을 인정하야 한다.     

5 42: 공회에서 풀려난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어떤 인간 권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던 것이다.

여기서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라는 말은 복음을 전달하는 상호 보완적인 방법이 되고 있다.

그들의 형태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의 기능과 목적은 같다.

‘전도하다’ 혹은 ‘설교하다’라는 말은 주로 복음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뜻하고,

‘가르친다’는 말에서는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며 듣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뜻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 두 가지는 똑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을 깨우쳐 주고 설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한 사건은 교회 역사를 통해 계속 강조되고 있는 한 가지 원리를 밝혀주고 있다.

하나님은 종종 신실한 신자들이 악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거나 순교를 당하도록 허용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때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해를 받지 않도록 구해 주시고, 다른 때는 해를 받도록 허용하신다.

왜 어떤 사람은 구출을 받는데, 다른 사람은 구출을 받지 못하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경우든 하나님은 이를 통해 그의 목적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믿는 자들은 개인적으로 적대나 핍박을 받을 때에도 충성스럽게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복음의 진리는 믿을 수 있으며 확신 있게 전할 수 있다.

핍박을 받을 때도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믿는 자들은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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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유용한 사람이 되라 - 제 10과 - 2016년 11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0.31 184
61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 - 제 9과 - 2016년 10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베드로전서 공부 강호길 2016.10.24 408
60 치욕을 당할 때 - 제 8과 - 2016년 10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베드로전서 강호길 2016.10.16 640
59 영적 무장을 하고 살라 - 제 7과 - 2016년 10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6.10.09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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