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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6 주일 장년성경연구

 

1

 

준비된 주의

 

학습구절: 마태복음 3 1 -12

암송구절: 마태복음 3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This is he who was spoken of through the prophet Isaiah: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성경진리: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약속의 왕으로 땅에 오셨다.

 

시작하는 :

뒤 뜰에 정원을 만들기 위해 땅을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은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땅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져서 파기 힘들다.

잡초가 많을 수도 있다.

땅을 준비하는 첫 단계가 가장 힘들어서, 경운기나 삽 혹은 다른 도구들이 필요할 수 있다.

일단 그같이 힘든 일이 끝나면, 그 다음 단계들은 덜 힘들다.

그래도 잡초나 돌멩이들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제거해야 한다.

잡초 뿌리들을 그냥 놔두면, 밭은 금방 잡초나 찔레들로 다시 덮이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작업이다.

그같이 하면, 딱딱하고 굳었던 땅이 부드러운 땅으로 변하여, 그곳에서 싹이 나고 채소나 꽃나무들이 자라서 예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시려는 세상은 도덕적 및 영적으로 가시 밭이 되었다.

수 세기에 걸쳐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백성들에게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직면하게 될 결과에 대해 경고를 하였다.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400년이 지나도록 이스라엘에는 예언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는 사실을 경종으로 삼는 대신에,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더 많이 지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임박한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시간 표에 따라, 세상에 오시는 때가 되었다.  

그 같은 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침례 요한을 보내시어 백성들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하게 하셨다. 

요한은 메시야의 오심을 알리는 자 혹은 그의 사자가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오시는 길을 준비할 것이다.

 

본문 배경설명 (마태복음 3 1 -12):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였던 말라기와 예수님의 탄생 (주전 4년 경) 사이에는 400여년간이라는 시간의 차가 나고 있다.

그 4세기 동안에 유대인들과 관계된 사건들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은 마태복음서의 귀중한 배경설명이 될 수 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유대인들은 고국에서 이전의 삶을 다시 확립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과 함께 헬라의 세력과 문화가 유대지역까지 미치게 되었다.

후에 유대인들은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의 권력투쟁에서 앞잡이 놀음을 하였다.

유대인들은 격전 끝에 마침내 100년동안 독립을 얻게 되었다.

다른 한편, 세계의 패권 다툼에서 득세한 로마제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진출하여 지배권을 얻게 되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당시에는, 로마제국이 유대 지역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제국 당국자들과 불편한 화평 관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역학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서로가 필요하였다.

반면에 백성들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당시 백성들의 삶은 정치적 억압과 지나치게 요구하는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

그 같은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마태는 새로운 종류의 왕국에서 통치할 새로운 종류의 왕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메시야의 왕국이 되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때부터(마 1 -2장) 그가 공 사역을 시작하신 때까지 약 30년간의 시간이 흘렀다.

마태는 3장에서 예수님의 공 사역에 대한 준비로 침례 요한이 한 사역과 전한 멧시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회개하라는 침례 요한의 설교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는 일이 되었다.

예수님과 침례 요한의 관계는 그들의 출생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친척이었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여섯 달 일찍 출생하였다. 

하나님은 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 시기를 완벽하게 짜 맞추셔서, 요한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공 사역을 시작하는 길을 준비하게 하셨다.

 

학습구절 연구:

주의 길을 준비함 (마태복음 3 1 -6)

 

3: 1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3: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3: 4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3: 5      때에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사방에서 그에게 나아와

3: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3장 1 -6절에서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구약성경의 율법과 예언을 성취한 일이 되고 있다’는 마태복음서의 중요한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오심의 신호로 예언자들 중의 하나가 돌아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 18: 18).

좀더 일반적으로는,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말 4: 5).

그 믿음에 맞게, 하나님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예언자로 “침례 요한”을 보내셨다. 

3 1: 마태복음 2장과 3장에서 일어난 사건들 사이에는 거의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3장 1절에서 “침례 요한”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멧시지를 “전파”하였다. 

전파하다”는 용어는 왕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멧시지를 받아 전달하는 것을 가리켰다.  

그 전달자는 왕의 전권을 지닌 사람이었다.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였다.

그 지역은 예루살렘의 남쪽 유대 언덕으로부터 사해 쪽으로 경사진 곳이었다.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예언자들인 모세와 엘리야는 광야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윗 왕도 광야 생활을 하였다.

광야는 한 사람이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3 2: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간단하고도 직설적인 멧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파하였다.

구약의 주제인 “회개하라”는 말은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될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회개라는 말은 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참된 회개에는 또한 마음과 행동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요한이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뜻하는 “회개”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천국이 가까이 ()” 때문이다.  

왕국은 왕이 다스리는 곳이다.

유대인들은 지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기반이 있는 메시아의 왕국이 세워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시아의 왕국을 직접 보기를 원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주권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다 그의 통치권을 확립하셨다.

예수님은 그 같은 사실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는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눅 17: 20 -21).

하나님의 통치는 이미 임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은 절박성의 필요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3 3:  마태는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하여 요한이 예언자로 준비하는 일을 설명하였다.

그 말씀에서는 요한과 엘리야 사이의 유사점이 강조되고 있다.

엘리야처럼, 요한도 광야에서 전파하였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전파하였다.

침례 요한도 왕의 도착을 알리는 포고자처럼 하나님의 멧시지를 전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 말씀을 전한 본래의 배경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때 하나님은 유대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해 주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이 승리감에 차서 돌아오는 것을 왕의 방문에다 비유하였다.

옛날에, 왕의 행차는 도로 공사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준비과정이 요구되었다.

울퉁불퉁하고 구부러진 길들은 왕이 행차하는데 불편하였다.

그래서 왕이 안전하고도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일꾼들이 먼저 가서 왕이 가는 길을 준비하였다.

마태복음 저자는 요한을 메시야가 오는 길을 준비하는 자로 보았던 것이다.   

3 4: 더 나아가서 요한의 거친 옷과 음식은 구약의 거친 광야의 예언자들, 특별히 엘리야 (왕하 1: 8)와 동일시 되고 있다.

침례 요한은 “낙타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요한이 먹었던 “메뚜기와 석청”은 광야에서 얻을 수 있는 특유한 음식물이었다.

석청은 들의 벌들이 만드는 꿀을 가리키는 말이다.

메뚜기에는 필요한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같이 열악하고 단순한 생활환경은 도리어 맡겨진 영적 일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3 5: 침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고 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주변으로부터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 들었다.

그같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절박하고도 단호한 멧시지는 확실히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말라기 이후 지난 400년 동안은 예언자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암흑의 시기였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을 갈망하였고, 침례 요한을 이를 전하였다.

3 6: 사람들은 요한이 전파하는 말씀에 대해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는 것으로 응답하였다.

그 같은 이유로 인해, 그는 “침례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요한이 그같이 침례를 베푼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다른 고대 문화권은 침례 의식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을 다음과 같은 정황에서 침례 의식을 행하였다.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경우, 그들은 이방인의 부정함을 씻어내는 한 방법으로 침례를 받았다.

어떤 유대인들은 침례를 정결의식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침례 요한은 당시 그같이 알려져 있던 침례행위를 가지고 그것에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침례 요한이 베푼 침례는 회개의 결단을 상징하였다.

그것은 마음의 변화를 나타냈다.

그것은 또한 회개를 함으로 죄에서 깨끗이 씻김을 받은 것을 나타냈다.   

그것은 또한 변화된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공적인 약속이 되었다.

침례”라는 말은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을 뜻한다.

침례에는 “죄를 자복”하는 매우 중요한 행위가 동반되었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죄인임을 자복하기까지는 죄에서 돌이킬 수 없었다.

죄를 자복함으로,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기 위하여 침례 요한에게로 오셨다 (마 3: 13).

물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히 4: 15), 회개의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셨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것은 먼저 자신의 사역을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 되었다.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시고 침례의 뜻을 넓게 확장시키셨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의 사진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침례는 죄를 사함 받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을 상징하고 있다.  

 

진리를 전파함 (마태복음 7 -10)

 

3: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배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3: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3: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3: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리라

 

3 7: 침례 요한이 전파하는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의 한 종파로, 구약의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들을 해석하며, 그 요구조건에 따라 사는 것을 강조하였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강한 헌신과 율법을 새로운 상황에 기꺼이 적응시키려는 마음으로 인하여 그들을 존경하였다.

그같이 하다 보니, 그들은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경향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외적 요구조건들을 지키고 따르는 것으로 구원을 얻는 것으로 믿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성경해석 방법을 받아 들이지 않으셨기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충돌을 빚게 되었다.

사두개인들”은 일반적으로 부유하고 귀족들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그들은 제사장 직분과 성전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

한 편으로, 그들은 율법에 대해 바리새인들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다.

사두개인들은 토라, 즉 모세의 오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매우 자유스러웠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와 사회적인 특권을 계속 누리기 위하여 로마 통치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특권적인 위치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충돌을 빚었다. 

유대교의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은 이들 두 그룹의 하나에 속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의회 겸 법원이었던 산헤드린은 대부분이 사두개인들이었다.   

침례 요한은 그 같은 종교 및 사회 지도자들이 자기가 예언의 말씀을 전파하며 침례를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았다.

침례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로 불렀다.

요한은 그들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들이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요한은 그들이 그릇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것에 대해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다.

침례 요한이 신랄한 질문으로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물었을 때, 그것은 도리어 위선에 대한 경멸을 나타냈다.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은 오직 이방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에게 분명하게 적용시켰던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을 옳게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였다.

3 8 -10: 요한은 무엇을 기준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하였는가?

요한은 그들 종교 지도자들이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요한은 믿음에 대한 참된 시험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으로 밝혔다.

구원에는 변화된 삶의 증거로 선한 일이 따른다.

요한은 또한 그들 종교지도자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은 잘못 알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죄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으로서의 유산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유대인의 조상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은 특별하며, 다른 죄인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침례 요한은 그 같은 생각은 그릇 되다고 주장하였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지를 정하는 것은 하나님이신 것을 종교지도자들은 잊고 있었다,

침례 요한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그 같은 사실을 밝혔다.

그는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였다.  

유산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는 비유의 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였다.

불은 심판의 상징이 되었다.

예수님은 같은 비유를 사용하여 거짓 교사들을 묘사하였다 (마 7: 19).

 

왕을 가리킴 (마태복음 3 11 -12)

 

3: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

3: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3 11요한은 사람들을 동요시켜 회개케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회개하기 위하여 요한이 베푸는 침례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마음의 변화를 상징하였다.

뒤에 오시는 ”라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그 말이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회의적인 종교지도자들이 그 용어를 문제 삼았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침례 요한은 자기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광야의 놀라운 부흥운동으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흥분에 휩싸이지 않았다.

요한은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는 말로, 예수님의 높으심과 자신의 낮은 상태를 대조시켰다.

신을 들고 다니는 것은 노예들이 하는 비천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대하게 보였을지라도,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의 비천한 노예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특유의 힘과 권세는 침례 요한처럼 물로 침례를 베푸는데 있지 않고, “성령과 ”로 침례를 베푸는 것에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물로 침례를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권장하였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로 침례를 베푸신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풀 것이요”라고 한 말에서, “성령침례”와 “ 침례”는 같은 것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것이다.  

성령 침례”는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고, 요엘 2: 28 -29에 예언된 것처럼,

영원한 선물로 성령님을 받는 경험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 13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몸이 되었고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대신에, “ 침례”는 심판 혹은 영원한 형벌을 가리킨다.

그것은 불신자들이 경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알기 쉽게 바꾸어 말하면, 침례 요한은 메시야가 오시면 모든 사람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하였다.  

죄를 회개하고 메시야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성령의 침례를 받고,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가리키는 불의 침례를 받을 것이다.

3 12: 3: 10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심판을 도끼로 열매 맺지 않는 나무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에다 비유하였다.

이 구절에서 요한은 심판을 추수 때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는 과정에다 비유하였다.

옛날에 농부들은 손에든 낫으로 밀 줄기들을 잘라서 단으로 묶은 다음 말렸다.

나중에 “타작마당”으로 가지고 와서 이삭들을 잘라내었다.

농부들은 키질하는 삽으로 이삭들을 공중에 높이 던지기를 반복하여, 깍지들과 쭉정이들이 바람에 불려 옆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알곡은 무거워서 날아가지 않고 타작마당에 떨어졌다.

농부는 알곡은 따로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렸다.

요한은 그 같은 비유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였다.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듯이, 오시는 왕은 모든 사람들을 두 가지 종류로 분리하실 것이다.

축복을 받는 자와 저주를 받는 자, 회개하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침례 요한은 메시야가 오시는 길과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도록 준비하는 임무를 위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언자였다.

 

나의 상황에 말씀을 적용하기: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피조물을 구속하시는 계획을 펼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 외의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 것은 거짓 희망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전능하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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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여리고성의 정복 - 제 2과 - 2016년 12월 11일 장년성경연구 - 여호수아서 공부 강호길 2016.12.05 459
66 임무를 맡고 보냄을 받음 - 제 1과 - 2016년 12월 4일 장년성경연구 - 여호수아서 공부 강호길 2016.11.27 313
65 기다리는 삶 - 제 13과 - 2016년 11월 27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22 219
64 주의하라 - 제 12과 - 016년 11월 20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15 214
63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라 - 제 11과 - 2016년 11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1.07 419
62 유용한 사람이 되라 - 제 10과 - 2016년 11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베드로후서 공부 강호길 2016.10.31 184
61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 - 제 9과 - 2016년 10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베드로전서 공부 강호길 2016.10.24 408
60 치욕을 당할 때 - 제 8과 - 2016년 10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베드로전서 강호길 2016.10.16 640
59 영적 무장을 하고 살라 - 제 7과 - 2016년 10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6.10.09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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