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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7일 주일 장년 성경연구

 

제 7과

기름 부음을 받다

학습구절: 

사무엘 상 16장 4 -13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마음을 다 하여 자기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을 원하신다.

주요교리: (교회)

각 교회는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민주적인 과정으로 운영된다.

그같이 운영되는 교회에서 구성원 각자는 주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책임을 지며 그의 판단을 받는다.

 

암송구절:  사무엘 상 16장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로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니라

But the LORD said to Samuel, “Do not consider his appearance or his height,

for I have rejected him. 

The LORD does not look at the things man look at.  Man looks at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시작하는 글:

연구조사에 의하면 한 사람의 키와 그가 버는 급여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특별히 판매직이나 관리직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인상이 중요한 직종에서는 더 하다.

키는 또한 사회적인 자산이자 한 사람의 역량을 나타내는 표로 인식되고 있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지만, 키 큰 사람이 그 같은 인식을 실제로 충족시켰다는 연구조사는 없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사람들을 판단하는 한 방법에 불과하다.

선지자였던 사무엘도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의 준수한 외모와 다른 사람들보다 큰 키에 마음이 끌렸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삼상 9: 2).

사울이 왕으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사무엘이 그의 후계자를 찾는 영적인 일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앞서 일어난 일이 새 왕을 위한 사무엘의 기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궁금하게 여길 수 있다.

사람들은 외모나 출생 순서에 기초한 나름 대로의 추측을 하기가 쉽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훈계하신 것을 보면, 경건한 선지자도 지도자의 적합성으로 용모와 키에 마음이 더 끌렸던 것으로 보인다 (16: 6 -7).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다음 왕에게서 특정한 형태의 마음을 찾으셨다.

다른 사람들이 택함을 받지 못한 것은 마음에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꼭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신 것은 그에게

하나님을 무조건 따르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본문 배경설명:

사울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것은 꽤 긴 기간으로, 수 십 년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무엘이 사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 나귀들을 찾으러 나갔던 소년이었다 (삼상 9: 1 -24).

그때 사울을 만난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다 붓고 입맞추며 그를 여호와께서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신 것을 알려주었다 (삼상 10: 1).

후에 사울은 미스바에서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왕으로 뽑혔고,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며)” 환호하였다 (삼상 10: 24).

이때만해도 사울은 어떤 면에서 수줍음을 타는 젊은이였다.

왕으로 뽑혔을 때, 그는 사람들의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어있었다 (1); 20 -22).

다른 한편, 그는 더 이상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 한 일의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암몬 사람 나하스를 맞아 싸운 일이었다 (삼상 11: 1 -11).

이 일이 있고 나서 백성들은 사울의 지도력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삼상 11: 12).

그래서 사무엘은 백성을 길갈로 모은 다음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렸다 (삼상 11: 15).

사무엘 상 14장은 사울이 왕이 되고 나서 훨씬 이후의 일이 되고 있다.

14장에서 그의 아들 요나단이 군사로 근무하면서 혼자 힘으로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한 것을 보면, 사울의 나이가 많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맥으로 보아, 10장에서 14장까지 사이에 적어도 15년 정도가 흘러갔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처음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울은 도리어 자기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다)”면서 거절의 뜻을 나타내기까지 했었다

(9: 21).

그러나 왕이 되어 오랫동안 권력을 누리다 보니 사람이 변하게 되었다.

심지어 사무엘은 사울이 권좌를 지키기 위해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하였다 (삼상 16: 2).

오늘의 학습구절은 그같이 정치적으로 긴장된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한때 겸손했던 사울은 이제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고 있으며, 사무엘이 자기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삼상 15: 28).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기름을 부어 새 왕을 세우라는 임무를 맡기셨다.    

 

학습구절 연구:

사무엘의 임무 (사무엘 상 16장 4 -5절)

16: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들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16: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중의 하나에게 기름을 부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다.

예기치 않은 사무엘의 도착으로 인해 그 성읍의 장로들은 무서워 떨며 그를 영접하였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가 예배를 드리러 왔다고 하자, 그들의 불안은 수그러들었다.  

16장 4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to의 아들들 중의 하나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고 지시하셨을 때, 처음에

그는 주저하였다 (16: 1 -3).

기름을 붓는 일은 그 의식의 성격으로 보아,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한다 할지라도,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기름을 붓는 일은 선택된 사람의 머리에 그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능력을 받은 것을 확인하는 표로 올리브 기름을 붓는 절차이다 (10: 1 참조).

사무엘은 자기가 베들레헴을 방문하는 목적을 사울 왕이 전해 듣고, 기름을 부어 새 왕을 세우는 것을 반역행위로 생각하며, 그 보복으로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일을 성읍을 위하여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리러 온 것으로 하라고 지시하심으로 그의 선지자를 안심시키셨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로 그리고 제사장으로 섬겼던 사무엘은 희생제물을 드릴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한 성읍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은 전례가 없거나 율법을 어기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이 생긴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렀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대략 5마일정도 떨어져 있던 성읍이었다.

당시에 예루살렘은 아직 여부스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 1: 21; 삼하 5: 6).

그러므로 베들레헴은 그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전략적 정착지였다.

장로들”은 성읍과 인근지역에 있는 가문과 가족들의 지도자들이었다.

장로들로 번역된 말은 수염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문자적으로 그 말은 “노인들” – 즉 나이와 지혜 그리고 권위를 나타내는 흰 수염이 길게 난 남자들을 뜻하고 있다.

복수로 사용될 때, 그 말은 부족이나 가문 혹은 가족 수준에서의 지역 통치위원회를 가리키는 기술적인 용어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울이라는 왕이 있기는 하지만, 중앙집권적인 일상적인 통치는 솔로몬 왕에 와서야 실현되게 되었다(왕상 4: 1 -6).

사무엘 당시에는 다양한 가문이나 가족 그룹들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은 성문에 정기적으로 모여 소송사건들을 듣고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문제들을 의논하고 결정하였다.      

위대한 선지자가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장로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갖게 한 요인이 되었다.

성읍 장로들은 “떨며”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본문은 장로들이 그 같은 반응을 나타낸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들은 사무엘이 암송아지를 끌고 온 것을 (16: 2) 적으로부터 혹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오는 임박한 위협의 신호로 해석했던가?

어쩌면, 또 다른 가능한 설명은 베들레헴의 장로들은 사무엘과 사울 왕 사이의 불화를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사무엘의 방문이 그들 성읍에 대한 사울 왕의 보복을 야기시킬 것을 두려워했을 수 있다.

16장 5절:  사무엘은 “샬롬”이라는 한 마디의 히브리 말로 장로들의 두려움을 진정시켰다.

이스라엘의 문화권에서 샬롬의 개념은 갈등이나 분쟁의 부재(不在)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완전 혹은 온전하게 되다”이다.

구약에서 이 용어는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생기는 내적 조화를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샬롬의 원천이 되시기 때문에, 참된 평강은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고 그의 의를 누릴 때 생기는 것이 되고 있다.

그의 방문이 베들레헴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장로들에게 확신시켜 준 후에, 사무엘은 “여호와께 제사하러” 온 뜻을 밝혔다.  

제사하다”라는 말은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며 예배하는 것을 뜻하고 있다.  

여기서 여호와라는 명칭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고 있다 (출 3: 13 -15).  

사무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려는 제물은 어떤 것이었을까?  

문맥으로 보아, 그것은 “화목제의 제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레 3: 1 -17).

화목제의 제물을 드릴 때는 가장 좋은 부분은 제단 위에 불살라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레 3: 11),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과 예배자들이 함께 먹었다.

화목제는 음식을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 그와 가까운 교제를 나누는 것을 나타냈다.

사무엘은 화목제에 장로들을 초청하며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고 하였다.

여기서 “성결하게 한다”는 말에서는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든지 목욕을 하고 의복을 깨끗이 빨아 입는 것 등의 외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말에는 내적인 면도 포함될 수 있다.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도 성결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기준 (사무엘 상 16: 6 -10절)

16: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16: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16: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6: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6: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온 주요 임무는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자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는 일이었다.

이새는 보아스와 룻의 손자가 되는 사람이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일곱이나 보았으나, 그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않았다.   

16장 6-7절: 사무엘은 아직까지도 하나님이 이새의 어느 아들을 왕으로 택하셨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자신의 기준을 사용하여 이새의 아들 중에서 가장 적합한 후보자를 찾기 시작하였다.

엘리압”을 보았을 때, 사무엘은 흥분하여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말씀 하신 것을 보면, 사무엘은 엘리압의 외모에 마음이 강하게 끌렸던 것이 분명하다.   

사울 왕 때도 사무엘은 그의 큰 키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삼상 10: 23 -24).

그러나 사무엘이 맡은 일은 어떤 사람을 인간의 기준에 따라 왕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찾아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이었다.

오늘 날 우리도 종종 외모나 외적인 조건들만 보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선택하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꾼들을 택하여 세울 때도 세상적인 기준을 사용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였다 (고전 4: 2).

하나님의 거절의 뜻인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는 말은 엘리압 개인보다는 내적인 면보다는 외적인 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의 판단 기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성경학자들도 있다.

다른 한편, 그 것은 또한 엘리압을 택하지 않으신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라기서에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라고 하신 말씀이 에서보다는 야곱을 더 사랑하신 것을 뜻하는 것과

흡사하다 (말 1” 2 -3).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는 말은 본 학습 단원의 핵심적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게 크시다.

인간은 창조된 우주만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주위의 것들이나 일어나고 있는 일들만 보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볼 수 없거나 보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의 기본 진리나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복음 전파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방법의 주요한 예가 되고 있다 (고전 1: 18 -2: 5).

누가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처형과 부활이 수반되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계획을 감히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단순한 믿음을 결합시키는 일을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누가 복음이 믿는 자들에 의해 전파되게 하는 것으로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 구원을 선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게 할 수 있었을까?

“중심”이라는 말이 마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히브리어로 ‘심장’으로도 표기되고 있는데, 그것도 의미 있는 말이다.

사람들이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가슴이 뛰며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그 같은 현상을 가슴이 뛴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말에 담겨있는 뜻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을 보실 뿐 아니라, 그같이 행하는 동기도 아신다는 것이다.

16장 8절: 이새의 둘째 아들인 “아비나답”이 사무엘 앞을 지나갔다.

이새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지시를 잘 따른 것을 보면, 젊은 그들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잘 지킨 것을 알 수 있다 (출 20: 12; 신 5: 16).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는 말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평가를 귀담아 잘 들은 것을 나타내고 있다.

16장 9- 10절: 이새가 이번에는 셋째 아들인 “삼마”를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했으나, 여호와께서 삼마도 택하지 아니하셨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넷째, 그리고 그 다음은 다섯째 그렇게 해서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다.    

 

택함을 받은 다윗 (사무엘 상 16장 11 -13절)

16: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 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6: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6: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6장 11절: 사무엘은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지시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새의 일곱 아들 중에서 하나를 택하셨는데, 그것을 알지 못했는가?

그러자, 사무엘은 이새에게 그들 말고도 다른 아들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이새는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고 대답하였다.

이새의 막내 아들인 다윗은 그때 들에서 양떼를 치고 있었다.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러 아들들을 둔 한 가정에서 막내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나 무시당하는 존재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궂은 일은 막내의 몫이 되곤 하였다.

어떤 이유 였건간에, 아버지와 형들은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였는데, 다윗은 빠졌던 것이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 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다윗이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고 하였다.

16장 12절: 에새는 사무엘이 지시한대로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데려왔다.

다윗을 “빛이 붉고” (볼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눈이 부리부리 하며), "얼굴이 아름(다운)” (용모가 준수한) 청년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다.   

당시에 기름을 붓는 일은 특별하게 구별을 하여 하나님께 봉헌하는 방법이었다.

16장 13절: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다음 왕으로 삼았다.

기름 뿔병은 기름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던 짐승의 뿔로 된 병이었다.

그의 형제 중에서” 혹은 “그의 형제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말은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그의 일곱 형들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가 되면, 그들은 막내 동생이 그들의 새로운 왕으로 자리에 앉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왕으로 하나님의 인정과 능력을 받은 증거로, 다윗은 그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구약에서 성령의 역할은 특정한 역할을 완수하도록 성령이 한 개인이나 개인들에게 임하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 이후부터는, 성령님은 믿는 자들에게 임하실 뿐 아니라,

그들 안에 영구히 거하신다 (행 2: 16 -17; 롬 8: 9 -11).

성령님은 믿는 자들 안에서 역사하셔서 기독교인의 인격체를 개발하게 해 주신다.

성령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적 은사를 베풀어 주셔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신다.

성령님은 또한 마지막 구속의 날까지 믿는 자들의 인침과 보증이 되어 주신다 (고후 1: 22).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후에, 사무엘은 베들레헴을 떠나서 “라마”로 돌아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과업을 완수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계획에서 베들레헴의 특별한 역할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수백 년 후에 미가라는 선지자는 베들레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였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 5: 2).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다스릴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있다 (마 2: 4 -6; 눅 2: 4 -7).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일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온 마음을 다하여 그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을 원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말씀을 상황에 적용하기: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 지도자들을 선택하신다.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선택하실 때 그들이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떤 동기로 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우리는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을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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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계명을 주신 하나님 - 제 6과 - 2017년 10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20장 1 -17절 강호길 2017.10.02 423
109 충분하게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 제 5과 - 2017년 10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16장 1 -5절, 11 -20절 강호길 2017.09.24 375
108 승리의 하나님 - 제 4과 - 2017년 9월 2일4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14장 13 -28절 강호길 2017.09.22 235
107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 - 제 3과 - 2017년 9월 1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12장 1 -13절 강호길 2017.09.09 360
106 바로와의 대결 - 제 2과 - 2017년 9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7장 1 -13절 강호길 2017.09.03 211
105 부적당하다고 주저한 모세 - 제 1 과 - 2017년 9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3장 4 -14절; 4장 13 -16절 강호길 2017.08.26 192
104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함 - 13과 - 2017년 8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42편 강호길 2017.08.19 213
103 보호자이신 하나님 - 12과 - 2017년 8월 2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141편 강호길 2017.08.15 368
102 정결함을 받은 사람들 - 제 11과 - 2017년 8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32편 강호길 2017.08.06 158
101 죄의 고백 - 제 10과 - 2017년 8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51편 1 -17절 강호길 2017.07.31 180
100 진실하신 하나님 - 제 9과 - 2017년 7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146편 강호길 2017.07.24 194
99 하나님의 사랑 - 제 8과 - 2017년 7월 23일 장년성경연구 - 시 136편 강호길 2017.07.16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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