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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2일 장년성경연구

 

제 12과

 

믿음의 공동체로 받아 들이다

 

학습구절: 사도행전 10 9 -15, 43 -48

암송구절사도행전 10 34 -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나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받으시는 깨달았도다.

 

Then Peter began to speak, “I now realize how true it is that God does not show favoritism

but accepts men from every nation who fear him and do what is right.” 

 

성경진리:

복음은 배경이나 경험 혹은 유산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주요교리: 구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값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시작하는 :

중국의 만리장성은 본래 중국의 북방 경계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세기에 걸쳐 연속적으로 건축된 견고한 성벽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후에 왕들은 각기 떨어져 있던 성벽들을 결합시켜 더 크고 튼튼한 벽으로 만들었다.

고고학 탐사 자들은 그같이 결합된 모든 벽의 길이가 장장 1만 3천 마일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해 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 벽들은 방어목적으로 건설되었지만, 그것들은 종종 의도하지 않은 부차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 벽들은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고립된 집단으로 만드는데 공헌하였다.

그 같은 물리적인 구조물만이 항상 분리와 고립의 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 종교, 피부색, 교육, 사회적 지위 등도 기호와 편견에 따라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그 같이 다른 점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적으로 사람들을 갈라놓는 장벽들이 될 수 있다.

그 같이 보이지 않는 장벽들은 실제로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 물리적인 구조물보다 무너뜨리기가 더 힘들다.

이과에 나오는 성경구절들은 베드로가 복음에 대해 증거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을 극복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일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자신이 싫어하는 다른 믿는 자들을 받아들이거나 문화와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저해하는 장벽들을

무너뜨리도록 도전하고 있다.

 

본문배경설명: 사도행전 10장 1절 – 11장 30절

복음이 진정으로 유대 지역 밖으로 퍼지기 위해서는, 유대인 신자들은 교회에 이방인들을 포함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되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은 이방신자들을 받아주시는 것을 베드로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셨다.

베드로는 도르가의 죽음 때문에 욥바로 오게 되었다.

도르가를 살려낸 후에, 베드로는 욥바에 남아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이 있었는데, 그는 환상 중에 주님으로부터 가까이에 있는 욥바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0: 1 -8).

다른 한편, 욥바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는 환상 중에 하늘로부터 보자기같이 생긴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갖가지 짐승들이 담겨 있었는데, 음성이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주여 그럴 없나이다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고  

대답하였다.

또 두 번째 소리가 들리기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같은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은 곧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

베드로가 자신이 본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하였다.

가이사랴로 가서 고넬료를 만나고 백부장이 본 환상에 관해 들었을 때, 베드로는 욥바에서 자기가 본 환상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신자들은 물론 이방인 신자들도 같은 믿음의 공동체로 받아 들이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았다(10: 9 -33).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와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와 주로 믿었다.

하나님은 오순절 날에 유대인 신자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이 이들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셨다.

고넬료와 다른 이방인 신자들은 예수님과 연합되고 교회에 전적으로 받아들여진 구원의 증거와 표로 침례를 받았다 (행 10: 34 -48; 롬 6: 1 -14).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돌아 왔을 때, 유대인 신자들은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이방인들과 교제한 일을 문제로 삼았다 (행 11: 1 -3).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신 일과 이방인 신자들이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을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고 하였다.

그 같은 설명을 듣자, 많은 유대인 신도들은 하나님께서는 할례나 모세의 정결 법이 요구하고 있는 다른 어떤 조건들과는 관계 없이, 오직 믿음에 기초하여

이방인들을 받으시며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11: 4 -8).

이방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 시작하였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가 부흥되고 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까지 전해지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보내어 그곳 형편을 알아보게 하였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곳에 남아 계속 사역을 하였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바나바의 사역으로 인하여 교회는 수적으로는 물론 영적으로도 크게 성장하였다.

바나바는 또한 다소에 있는 사울을 찾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 함께 동역하였다 (행 11: 19 -26).

당시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흉년이 들것을 예언했었는데, 글라디오 황제 때에 흉년이 들었다.

유대에 사는 성도들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된 안디옥 교회는 힘대로 헌금을 하여 구제금으로 보내 그들을 돕기로 하였다 (행 11: 27 -30).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신자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전환은 어려운 일이었다.

베드로가 겪은 일은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 문제는 후에도 계속해서 표출되는 잠재적인 문제로 남아 있었다.

하나님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갈라놓는 장벽을 허물고 계셨던 것이다.

 

학습구절연구:

베드로가 환상 (사도행전 10 9 -15)

10: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각은 육시더라

10: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0: 11   하늘이 열리며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보자기 같고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0: 12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0: 13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0: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0: 15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0 9 -10: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욥바에 이르렀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 있었다.

당시 그 지역의 대부분의 집들은 지붕을 평평하게 지어서 문간방이나 안뜰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층계는 집 밖으로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같은 지붕은 예배나 기도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왕하 23: 12; 느 8: 16; 렘 19: 13).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간 때는 “ 육시”, 지금 시간으로 따지면 ‘정오’ 혹은 ‘낮 열 두 시경’이었다.

그는 점심 식사가 준비되고 있는 동안 기도하러 그곳에 올라갔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베드로가 시장하였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주님은 그의 시장기를 이용하여 그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가르치려고 하셨던 것이다.

베드로는 너무 시장해서 먹는 꿈을 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10 11 -14: 환상 중에 베드로는 땅의 각종 동물들과 공중에 나는 새들이 가득 찬 보자기 같이 생긴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그것들을 “잡아 먹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보자기 안에 든 많은 동물들은 정결 법에 의해 부정하거나 금지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주여 그럴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고 대답하면서 먹기를 거절하였다.    

모세의 정결 규례는 식생활과 관련하여 아주 구체적인 규정들을 마련하였다 (레 11: 1 -47; 신 14: 3 -21).

짐승은 첫째 굽이 갈라지고 둘째 새김질 하는 것이어야 정결하여 먹을 수 있었다.

돼지처럼, 그 같은 기준에 맞지 않는 짐승들은 부정하게 여겨졌고 먹을 수 없었다.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짐승들을 먹는 것은 정결의식 규례들을 어기는 일이 되었고, 그같이 금하는 음식을 먹은 사람은 부정하게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음식에 대한 정결 규례는 유대인들이 사회적으로 이방인들을 차별하며 관계하지 않는 주요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교제의 중심은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이 되었으므로, 경건한 유대인들은 모세의 정결 법을 범하지 않으려고 이방인들의 집이나

이방인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장소에 가는 것을 피하였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정결 법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의 정결 법을 포기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었으며, 도리어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계속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같이 음식정결 법을 지키는 일은 초대 교회에서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들과 교제하는 데에 주요 문제가 되었다.

10 15: 어쩌면 베드로는 부정한 짐승들을 먹으라는 말을 하나의 시험으로 생각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그릇에 담겨있는 짐승들은 모두 깨끗하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셨으므로, 베드로는 그들을 더 이상 부정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였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 즉 생각이나 말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 (막 7: 15 -16).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정결의 문제에 대해 강조하신 것은 외적인 상징보다는 내적인 정결의 중요성이 되고 있다.   

모세의 율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로, 성적 윤리나 진실을 말하는 일, 혹은 보모를 공경하는 일등과 같은 도덕률은 영원하고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율법들이 되고 있다.

그것들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본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할례나 음식 규범같이 외적으로 지키는 규례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특정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지키는 성격의 것들이었다.

그 같은 정결 법의 한 가지 목적은 주위에 있는 족속들의 우상숭배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복음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들 규례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고, 실제로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교회에서 하나가 되는데 장애물이 되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환상을 보았을 때 그러한 차이점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복음의 선포 (사도행전 10 43)

10: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힘입어 사람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환상을 본 직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집에 도착하여 그들을 따라 가이사랴로 갈 것을 간청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설명하기를 자기들은 고넬료라는 백부장이 보내서 왔는데, 그는 의로운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유대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인데,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고 하였다 (행 10: 22).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하시려는 일의 목적과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였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나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받으시는 깨달았도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10 43: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힘입어 사함을 받는다”는 이 구절은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멧시지의 핵심이 되는 말이다.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라는 말로, 베드로는 구약의 이전 증언들도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예언한 사실을 밝혔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며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실 것을 밝혔다 (사 53: 11).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야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영적 샘을 열 것이라고 하였다 (스 13: 1).

말라기는 메시야가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 주실 것을 예언하였다 (말 4: 2).

 

증거로 성령이 임하심 (사도행전 10 44 -46 )

10: 44   베드로가 말을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 45   베드로와 함께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10: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 이러라

 

10 44: 베드로가 말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 

내려오시니”라는 말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오순절 날에 처음 겪었던 일을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정점을 이루며 완성되는 일이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으로 복음의 전달자인 베드로를 그리스도가 필요한 자들인 고넬료의 집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데려오는 일을 하셨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으로 간 이야기는 하나님의 주권과 전도를 하는 자들의 인간적인 책임을 똑같이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복음의 진리를 직접 계시해 주실 수 있으셨지만, 베드로를 보내는 방법을 택하셨다.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는 선교와 전도 사역을 교회가 수행하게 하는 것이 되고 있다.

복음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후에 바울이 밝힌 것처럼, 복음은 “전파하는 ”가 필요하다 (롬 10: 14).

이 경우에는 전파하는 자는 베드로가 되어야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10 45 -46 : 베드로가 욥바에서 가이사랴로 갈 때 혼자 가지 않았다.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를 따라 함께 갔다.

할례 받은 신자’란 말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유대인을 가리킨다.

할례에 대한 언급은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주요 장벽을 상기시켜 준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언약 밖에 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분쟁의 쟁점이 되어오고 있었다.

할례는 모세의 율법보다 앞선 것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리고 그의 후손들과 맺으신 언약의 상징이 되었다 (창 17: 10).

유대인들은 할례가 신실한 유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유대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을 같은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전환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베드로와 할례 받은 다른 신자들이 놀란 것은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집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성령을 선물로 부어주시는 것이었다.   

성령님은 그들 이방인 신자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한 것처럼 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일은 종종 ‘이방인 오순절 사건’으로 불려지고 있다 (행 2: 1 -12 참조).

그것은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 처음으로 유대인 믿는 자들에게 임하신 사건과 같은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행 2: 1 -13).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유대인 신자들을 받아주신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이방인 신자들도 받아주시는 것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이방인 신자들은 이제 할례를 받거나 음식 정결 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순절 날 유대인 신자들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신 바로 그 성령님은 고넬료의 집에 있는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능력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는 또한 이 두 가지 일이 특별한 사건이 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마다 일어나는 일반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믿는 자로 받아 들임 (사도행전 10 47 -48)

10: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를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10: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머물기를 청하니라  

 

10 47-48: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똑같이 이방인들을 구원으로 받아들이셨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베드로에게 주셨다.

 

짐승들로 가득 찬 보자기 그릇의 환상, 가이사랴에 있는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의 도착, 그리고 이방인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일은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의 친교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시려는 하나님이 뜻과 목적을 나타내는데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욥바로부터 베드로와 함께 왔던 유대인 신자들은 환상을 보지 못하였지만, 그들은 고넬료의 집에 있던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전적인 믿음의 성도로 받아 들이는데 반대하지 않았다.

이방인 신자들은 할례나 모세의 다른 정결 법의 규제를 받지 않고 믿음의 성도로 받아들여졌다.

이들 이방인 신도들을 그같이 받아들인 일은 장차 이방인들을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기념비적(記念碑的)인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침례 베풂을 금하리요라고 말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명하였다.

침례는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 가입하는 표가 되었다.

물 침례는 구원을 얻는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처음 믿는 모든 사람에게 기대되는 믿음의 상징과 표현이 되고 있다.

물 침례는 영적 축복을 주는 성례가 아니라,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규례이자 의식이다 (마 28: 19 -20).

베드로가 이방인 신자들에게 ‘침례를 베풀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베드로가 직접 침례를 베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욥바에서부터 베드로를 따라왔던 유대인 신자들이 침례를 베푼 것으로 생각된다.

복음을 믿고 침례를 받아 새 신자가 된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머물기를” 청하였다.

그것은 영적으로 거듭 태어난 그들에게 베드로와 더 많이 교제를 나누며 복음에 대해 좀더 깊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오늘날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즉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들 모두는 일세기 당시에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에 존재해 있던 장벽을 경험한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도들을 갈라놓은 다른 종류의 장벽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같은 장벽들은 서로 다른 인종이나 언어 또는 문화적 배경, 혹은 사회계층이나 교육의 차이 등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을 배움으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는 갖가지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모두 한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구원은 문화적 유산이나 전통 혹은 인종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는다.

신자들은 지역 교회 내에서 다른 배경에서 온 새 신자들의 대변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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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바로와의 대결 - 제 2과 - 2017년 9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7장 1 -13절 강호길 2017.09.03 211
105 부적당하다고 주저한 모세 - 제 1 과 - 2017년 9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3장 4 -14절; 4장 13 -16절 강호길 2017.08.26 192
104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함 - 13과 - 2017년 8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42편 강호길 2017.08.19 213
103 보호자이신 하나님 - 12과 - 2017년 8월 2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141편 강호길 2017.08.15 368
102 정결함을 받은 사람들 - 제 11과 - 2017년 8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32편 강호길 2017.08.06 158
101 죄의 고백 - 제 10과 - 2017년 8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51편 1 -17절 강호길 2017.07.31 180
100 진실하신 하나님 - 제 9과 - 2017년 7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시 146편 강호길 2017.07.24 194
99 하나님의 사랑 - 제 8과 - 2017년 7월 23일 장년성경연구 - 시 136편 강호길 2017.07.16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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