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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3월 21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3과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것은?                  

 

 

학습구절: 누가복음 18장 9  -17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겸손하고 순진한 믿음으로 그에게로 나아오는 사람들을 환영하신다.

 

주요교리: 구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세주로 믿는 개인적(個人的)인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요 14: 6).    

 

암송구절:  누가복음 18장 17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Truly I tell you,

 anyone who wi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like a little child

 will never enter it.”

 

 

시작하는 글:  

 

거울을 들여다 보면, 우리는 얼굴을 만지며 고치기 시작한다.

거울은 우리의 얼굴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단순히 성경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주 성경이 우리를 읽는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좋게  그리고 더 높게 평가(評價)하려는 경향(傾向)이 있다.

진정한 믿음은 겸손 안에서 그리고 겸손을 통해서 입증된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단순한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환영하신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우리에게 격려가 되는 동시에 낙심이 되는 요인이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17장 1절로부터 18장 30절까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지속적으로 관계하신 사람들을 들라면, 우리는 그들을 세 부류로 구별할 수 있다.  

예수님의 여정 길에 계속 등장하는 한 그룹은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과 함께 여행한 것 같이 보인다.

그들은 모든 기회(機會)를 이용하여 예수님의 가르침과 죄인들과 소외 당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사역을 트집잡으며 조롱하였다.

예수님은, 어떤 때는 책망(責望)으로, 어떤 때는 영적 진리(靈的 眞理)를 가르치심으로, 그들에게 단호하게 대응(對應)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그들을 가르치며 준비시키는 일을 계속하셨는데, 심지어 바리새인들에게 말씀 하셨을 때에도 그같이 하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갈등을 일으켰을 때에도, 그것을 하늘 나라의 방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기회(機會)로 삼으셨다.

17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가르치시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다.

바리새인들을 지칭하시면서, 예수님은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같이 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눅 17: 1).

동시에, 신자들은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고 하셨다 (눅 18: 4).

사도들은 그같이 행할 만큼 믿음이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라고 간구하였다 (눅 18: 5).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의 비유를 드셔서(눅 17: 6), 믿음의 질(質)이 양(量)보다 더 중요(重要)함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또한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들’이 지녀야 될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가르치셨다 (눅 17: 10).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시고 관계하신 세 번째 그룹은 다양(多樣)한 사람들이 되고 있다.       

그는 가시면서, 성읍과 마을에 들려 그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전파와 치유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남쪽의 사마리아로 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다].”

가시다가, 예수님은 “나병환자 열 명”을 만나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에게 고쳐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고쳐 주셨지만, 겸손한 사마리아인 하나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感謝)를 표하였다 (눅 17: 11-19).

     누가는 예수님의 여정(旅程)을 시간에 따라 차례로 기록하지 않았다.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 중요한 사건(事件)들을 포함시켰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것을 임박한 그의 죽음의 때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하고 있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기회(機會)로 삼으셨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는 독선적(獨善的)인 사람들을 책망(責望)하며 겸손한 믿음의 필요성(必要性)을 강조하며 요약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겸손(謙遜)을 중요(重要)하게 여기기를 원하셨다.

아무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왕국에 들어갈 자격을 주신다.

 

 

학습구절 연구

 

종교적 교만에 찬 사람들 (누가복음 18장 9 -12절)  

 

예수님은 기도하러 성전에 간 두 사람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세리이다.

바리새인은 독선(獨善)과 오만(傲慢)에 차서 기도하였고, 자신을 높게 평가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누가복음 18장 9절

  •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되   

누가 복음 18장 1절부터 8절까지에서, 예수님은 끈기 있는 기도의 중요성(重要性)에 대해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그 주제(主題)를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셨는데, 그 비유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한 과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바르게 재판을 하여 자기의 원한을 풀어줄 때까지 계속 찾아가며 괴롭게 한 것이 내용이 되고 있다.

그 재판장은 과부가 자기를 번거롭게 하기 때문에,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고 한다.

예수님은 그 비유를 신자들의 기도생활에 적용(適用)시켜 가르치시기를,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하신다 (눅 18: 7).

그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기도생활과 관련된 또 다른 중요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자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 혹은 태도가 되고 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이 장의 두 번째의 비유이자 이번 주의 학습구절인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특별히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신 것으로 강조(强調)하고 있다 (눅 18: 9).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종종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견해(見解)를 반영한다.  

교만(驕慢)은 사탄과 아담과 하와의 원죄(原罪)가 되고 있다(사 14: 14; 창 3: 1 -7).

그것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죄(罪)의 원천(源泉)이 되고 있다 (요일 2: 16).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罪人)이자 부족(不足)한 존재(存在)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나아갈 때, 우리는 같은 인간(人間)들에게도 똑같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 반대의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누가복음 18장 10절

  •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예수님의 비유는 “두 사람”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들은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첫 번째 사람은 “바리새인”으로, 독선적(獨善的)이며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關係)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표(代表)하고 있다.

두 번째의 등장인물은 “세리”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不足)함과 죄(罪)를 인정(認定)하는 자로, 사회적으로 소외(疏外)된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다.   

이 비유는 모든 바리새인들을 정죄하며 모든 세리들을 칭찬하려고 의도된 것은 아니다.

세리는 직업적(職業的)인 면이나 전통적(傳統的)인 면에서, 혹은 행실(行實)인 면에서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경멸(輕蔑)의 대상이 되었던 죄인들을 상징하였다.

     예수님은 그 두 사람을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 ]”으로 소개(紹介)하신다. 

그 설명에는 두 가지 주목할만한 점이 포함(包含)되고 있다.

     첫째로, 두 사람은 “거룩한 성전”(聖殿)이라는 행선지(行先地)가 같았다.     

그들이 간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臨在)하시는 장소가 되었다.

두 사람은 아무도 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성소 바로 밖에 있는 ‘이스라엘 뜰’까지만 올 수 있었다.

     둘째로, 두 사람은 훌륭한 목적(目的)을 갖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기도하러 성전(聖殿)에 올라갔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기도를 하루에 세 번에 걸쳐 했는데, 그것은 제 삼시 (오전 9시), 제 육시 (12시 정오) 그리고 제 구시 (오후 3 시)가 되고 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단지 제 삼시와 제 구시만을 기도 시간으로 언급하고 있다.

기도의 시간은 기도의 목적만큼 중요하지 않고 있다.

비유가 진행됨에 따라, 바리새인이 기도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려는 것이 되고 있다.

세리의 기도는 겸손하게 하나님과 그의 자비(慈悲)를 구하는 것이 목적(目的)이 되고 있다.

 

누가복음 18장 11 -12절

  •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기도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두 사람은 모두 “서서” 기도하였는데, 그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기도 자세였다.

우리는 성경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한 것을 것을 볼 수 있는데, 무릎을 끓거나, 땅에 끓어 엎드리거나,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펴고 있는 자세 등으로 겸손과 간절함을 나타내는 자세가 되고 있다 (창 17: 3; 왕상 8: 54). 

바리새인의 경우, 그의 자세에서는 겸손(謙遜)보다 교만(驕慢)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도는 예배와 찬양처럼 하나님에 관한 것이거나, 중보 기도처럼 다른 사람에 관한 것, 혹은 자백(自白)이나 회개(悔改) 또는 간구(懇求)처럼 자신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바리새인은 그들 중 어느 방법으로도 기도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인정(認定)하고 있는 자신의 의(義)를 자랑하고 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에게 감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감사(感謝)하셔야 하는 이유(理由)들을 열거(列擧)하고 있다.

      바리새인의 독선적(獨善的)인 태도는 “다른 사람[]”을 부정적(否定的)으로 보는 결과(結果) 이다.

바리새인이 다른 사람들로 열거한 목록은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목록은 포괄적(包括的)인 것이 아니라, 광범위(廣範圍)한 범주(範疇  )를 상징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을 일반화(一般化)하여 혐오스러운 죄인이며 자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였다.

자신의 독선으로 인한 바리새인의 우월감은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 세리에게 집중(集中)되고 있다.

그 바리새인은 옆에 서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을 그 같은 마음의 자세로 주목(注目)할 뿐 아니라, 그가 듣고 부끄러워할 만큼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 바리새인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칭찬할만한 일들을 행한 방법에 대해 자랑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 바리새인은 “이레( 주일) 번씩 금식”하였다.

금식(禁食)은 바리새인들에게 기대(企待)되는 미덕(美德) 혹은 선행(善行)의 하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금식의 진정한 뜻과 목적을 가르치셨다 (막 2: 18 -22).

그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 위해 금식하는 사람들과 같았다 (마 6: 16 -18).

     그 바리새인은 또한 “소득(所得) 십일조”를 드린다고 주장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십일조는 여러 가지로 광범위하게 드리는 것을 자랑하면서도, “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리고 있다고 경고하셨다 (마 23: 23).  

그 때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부르셨는데, 그들을 그같이 ‘위선자’로 부르신 것은 십일조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동기(動機)와 태도가 틀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는 말씀으로, 십일조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같은 인간은 사랑과 존경으로 대해야 한다고 단언하셨다.

예수님은 “ 있을진저”라는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을 부당하게 대하면서 의로운 행동을 위선(僞善)으로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임박한 심판의 경고를 선언하셨다.

     신자들을 종교적 교만(驕慢)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비유는 선한 일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겸손한 마음에서 나와야 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함으로 의를 이를 수 없다.

우리는 참된 의를, 우리가 죄인임을 자백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얻는다. 

 

우리는 종종 비유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을 닮아가는 위험성을 인정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를 경멸하려고 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종교적 교만과 위선에 빠지지 않을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들 (누가복음 18장 13 -14절)

 

성전에서 바리새인이 기도한 독선적(獨善的)인 자세와 태도를 묘사한 후에,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묘사하셨다.
두 사람은 똑같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을지라도, 두 사람의 목적(目的)과 기도의 내용은 전적(全的)으로 달랐다.  

 

누가복음 18장 13 -14절:

  •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비유에 등장하는 두 번째의 인물은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세리”가 되고 있다.
13절은 세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기도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첫째로, 세리는 “멀리 서서” 기도하였다.

그것은 성소(聖所)로부터 멀리 떨어져 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그는 성소가까이 나갈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둘째로, 세리는 바리새인의 모욕적인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하였다.

셋째로, 그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 보지도 못하[였다.]

머리를 숙였다는 말은 그가 기도하면서 까지도 하늘을 바라 볼 자격이 없다고 느낀 것을 보여주는 일이 되고 있다.

넷째로, 그는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하였다.

가슴을 [치는 것]”뉘우침’을 나타내는 유대인의 표현방법(表現方法)이다 (눅 23: 48).   

      “이르되”라는 말로 번역된 동사의 시제는 지속적인 행동을 나타내고 있다.

세리는 한 번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거듭 간구하였다.

‘자비’를 뜻하는 그 용어는 우리가 “속죄” 혹은 “화해”(propitiation)라는 말을 얻은 어근(語根)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를 자비롭게 여기셔서 그의 진노(震怒)를 풀어달라는 진정 어린 탄원이 되고 있다.

세리는 또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말로 자신이 죄인임을 자백하였다.

그는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며 자비에 근거하며 오직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며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직접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기가 말하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을 그들이 이해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를 대조(對照)시켜 말씀하시기를,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의롭다 하심을 받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것을 뜻한다.

세리는 아무 공로나 가치도 없이 성전에 왔다.

그는 자신이 죄인(罪人)이며 하나님의 용서(容恕)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 갔느니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그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를 자신과 올바른 관계(關係)를 이루게 해 주신 것을 밝혀주셨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과 같았다 (눅 16: 15).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잠 3: 34).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처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그 세리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신다.

신자들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아버지께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제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어떤 공로나 업적을 주장 할 근거가 없다.

의를 이루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단 한가지의 죄도 상쇄(相殺)시킬 수 없다.

 

당신은 경건한 겸손을 어떻게 설명 하겠습니까?

당신은 “성결”(聖潔)이라는 하나님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볼 때에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아이같이 겸손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 (누가복음 18장 15 -17절)

 

이 단원에 나오는 구절들은 마가 복음 10 장 13 -16 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어린 아이들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과 같은 내용이 되고 있다.

그 사건과 금주의 학습구절들이 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연결시켜주는 주제(主題)는 “겸손”(謙遜)이 되고 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 세리의 회개(悔改)와 자비의 간구(懇求)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는 올바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는 말씀으로, 예수님은 겸손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본질을 보여 주셨다.

 

누가복음 18장 15절:

  •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위에서 언급(言及)했듯이, 이 구절은 마가 복음 10장 13절과 같은데, 누가 복음은 부모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을 “어린 아기”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부모들이 연령층(年齡層)이 다른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 부모들은 예수님이 자녀들에게 손을 얹어 주심으로 (“만져 주심[으로]”) 축복하기를 원하였다.

일부 성경 주석가들은 부모들이 속죄 일에 축복을 받기 위해 자녀들을 제사장이나 다른 종교 지도자에게 데리고 오던 유대인의 관습(慣習)에 주의(注意)를 환기시킨다.

구약 성경은 또한 안수(按手)를 통해 축복을 전수하는 관행을 묘사하기도 한다 (신 34: 9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모들이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을 “꾸짖[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같이 한 것은 더 중요한 사역을 위해 예수님의 시간을 지켜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1세기 유대 문화권에서 아이들은 사회적(社會的)인 위치(位置)가 매우 낮고 힘 없는 존재로 취급되었다.  

아이들은, 특별히 남자(男子) 아이들은, 가계(家系)를 잇거나 가업(家業)을 이어 받는 면에서 필요한 존재로 취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가치면 에서 성인들처럼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부모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아기를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은 그것이 예수님을 번거롭게 하며 더 중요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누가복음 18장 16 -17절:

  •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를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를 불러 가까이” 오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그에게 오는 것이 그를 번거롭게 하거나 그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겸손에 대해 강조하셨는데 (18: 9 -14 참고), 어린 아이들이야 말로 그 특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어린 아이들이야 말로 아직 어른의 자존심이나 교만으로 차 있지도 않고, 주제 넘지도 않고,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 하늘 나라의 참된 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중요한 점을 말씀하시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과 “들어가[는 것]”으로 설명하신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복음 전파사역으로 신자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統治)가 점점 더 확장되며 이루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성경해석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종말론(終末論的)적 관점(觀點)에서 이해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로 완성(完成)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 (막 1: 15).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의 통치권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 같은 믿음과 신실함 위에 그의 왕국을 세우신다.

모든 사람들 중에, 어린 아이들은 가장 의존적인 존재이다.

세리가 자비와 은혜를 위해 하나님만을 의존한 것처럼, 어린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전적으로 부모를 의존한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한 믿음과 신실함 위에다 그의 나라를 세우신다.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당신은 이번 주에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경험하였습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종교적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신자들은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아버지께 자백해야 한다.     
  • 하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한 믿음과 신실함 위에다 그의 나라를 세우신다.

 

모든 사람이, 심지어 신실한 신자들까지도, 종교적 자만과 교만에 빠지기 쉬운 문제를 반원들과 함께 이야기 해 보십시오.
비유 속의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도록 조심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들은 무엇입니까?

 

시간을 내어 지난 한 주간 동안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하나님께 자백하지 않은 죄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그 죄들을 하나님께 자백하는 기도문을 작성해 보십시오.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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