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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10과

 

사울의 회심과 개종

학습구절: 사도행전 9 3 -9, 15 -20

 

암송구절사도행전 9 20

즉시로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At once he began to preach in the synagogu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성경진리: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러 그의 복음의 전달자로 삼으신다. 

그 부르심의 첫 단계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마음의 결단으로 시작한다.

중요교리택함

택함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거듭나게 해 주시고(중생), 의롭다 함을 얻게 해주시며(칭의), 거룩하게 해주시고(성화),

영광스럽게 해주시려는(영화) 은혜의 목적이 되고 있다.

 

시작하는 :

잭(Jack)은 20세기 전환기에 아일랜드에서 자라났다.

그는 15세 때에 무신론자가 되어, 현대 사고에서는 초자연적인 신을 믿는 신앙의 자리가 없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향후 15년간에 걸쳐, 잭(jack)은 종교 서적들을 읽고 두 사람의 기독교인과 우정을 쌓아가는 중에 그들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무신론을 포기하게 되었다.

33세에, 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하고, 어릴 때 다녔던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자신도 인정했듯이, 그 같은 신앙고백으로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잭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C. S. 루이스(Lewis)로 알고 있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설득력 있는 기독교변증가의 한 사람이자 시대를 초월하는 많은 문학작품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C. S. 루이스보다 훨씬 이전에 다소 출신의 사울은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고백하였다.

당시에 사울은 초대교회의 맹렬한 박해자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할 때 이를 지켜보며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하게 여겼다 (행 8: 1).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신자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올 목적으로 여러 회당에 가져갈 대 제사장의 공문서를 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다.

그 때 사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영은 주님께 온전히 붙잡히게 되었다.

본문 구절들을 함께 공부해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울을 구원해 주시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길을 걷게 하셨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며 그들을 부르셔서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본문배경설명사도행전 9 1 -31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최초의 교회가 형성되었다.

성령님은 스데반처럼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강하게 전파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교회의 사역을 확장시켜 주셨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한 후에, 믿는 자들은 심해지는 핍박을 피하여 도망가야 했다.

하나님은 빌립 같은 제자들을 사용하셔서 사마리아지역에서 전도운동을 시작하셨고 에디오피아 내시 같은 새 신자를 만드셨다.

유대교의 열광적인 옹호자였던 사울은 사도행전 7장 58절에서 스데반을 돌로 치는 자들의 겉옷을 지킨 자로 간단히 소개되었는데, 9장 1절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는 유대교에 위협이 되고 있는 새 신앙을 힘으로 억압하기로 작정하였다.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선자들을 잡아올 수 있는 공문서를 대제사장에게서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떠났다.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비치어 그가 땅에 엎드리니 음성이 들려왔다.

말씀하는 분은 자신을 예수라고 밝히고 사울에게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가 행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동행자들의 손에 이끌리어 다메섹으로 들어갔다.

사울은 사흘 동안이나 볼 수 없었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9: 1 -9).

다른 한편, 다메섹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께서 환상 중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직가라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 만나라고 하셨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찾아가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피하려고 했지만, “사람은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주님의 설명을 들은 후에 그는 사울을 찾아가 만났다.

그러자, 사울은 시력을 다시 찾게 되었고, 침례를 받았으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얻게 되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일은 그의 삶을 전적으로 변화시킨 놀라운 경험이었다 (9: 3 -9).

불신자들과 신자들이 똑같이 놀란 것은, 사울이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9: 19하 -21).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은 당황하여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하였다.

사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게 된 제자들은 밤 중에 몰래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밖으로 달아내려 피하게 하였다 (9: 22 -25).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사울은 그곳 제자들과 사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울을 무서워하며 그의 회심을 의심하였다.

사울의 생애에서 그같이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때에, 바나바가 그를 믿고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의 신도들에게 그를 추천해 주었다 (행 9: 26 -31).

사도행전 13장 3절부터 헬라식 이름인 바울로 불려지기 시작한 사울의 회심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회심으로 기술되어오고 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사울의 삶을 바꾸어서 이방인들에게 보내는 사도로 부르셨다.

사울의 인생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부터는 결코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를 사용하실 것이다.

신약성경에 포함된 그의 서신들은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 길잡이와 위로자가 되고 있으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대면 (사도행전 9장 3 -6절)

9: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9: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9: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9: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9장 3: “다메섹”은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점령을 당한 가장 오래된 도시로 불려져 오고 있다.

다메섹은 한 때 고대 아람 왕국의 주요 도시였다 (삼하 8: 5 참조).

그 도시는 연속적으로 앗수르 왕국, 바사 제국, 헬라 제국, 톨레미 왕국, 셀루시드 왕국, 그리고 마침내는 주전 64년에 로마 제국에게 점령당하였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1: 32 -33에서 한 말에 의하면, 그가 회심했을 당시에 다메섹은 나바티안 왕국의 통치자인 “아레다 ”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한 후, 예루살렘에서 기독교회에 대한 핍박의 회오리 바람이 불어 닥쳤는데, 바울은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행 8: 1 -3).

그때 많은 믿는 자들이 핍박을 피해서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행 8: 1).

그 중 일부는 큰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던 다메섹으로 간 것이 확실하다.

사울은 남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잡아올 권한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아가지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다.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을 때, 사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되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개입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후에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회심 경험을 이야기할 때, 사울(바울)은 그 빛의 강도를 당시 정오였을 때의 “해보다 밝은 ”으로 표현하였다 (행 26: 13).

9장 4 -5: 그 경험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사울은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사울아 사울아”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사울은 “주여 누구시니이까”라는 질문으로 대답하였다.

주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사울은 막연하게나마 그 소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알고 있은 것이 암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음성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음성의 주인공이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그것은 사울에게 너무도 놀랍고도 가슴을 찌르는 말이 되었다.

자기가 지켜보는 앞에서,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교자 스데반이 “예수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를 드렸던 바로 그 예수가 살아계시고 하늘에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울은 예수님을 박해할 임무를 띠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단지 예수를 믿는 자들과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열을 내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교회에 대한 사울의 핍박을 자신에 대한 핍박과 동일하게 여기셨다.

예수님과 신자들이 하나인 사실은 신약성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기술되고 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안에 거하라”고 하시면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다.

후에 바울(사울)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하였다 (엡 5: 23).

참된 교회는 유기적으로 예수님께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실한 교회의 멧시지를 반대하는 것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일이 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적대하는 일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적대하는 일이 된다.

흠정 영역 성경에는 5절 하 반절과 6절 상 반절에 “”가시채를 차기가 네게 고생이라”는 말과 “그가 떨며 놀라서 가로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나이까”라는 말이 나와있는데, 우리 말 개역 성경에는 빠져있다.

헬라어로 ‘가시채’라는 말은 ‘몰이 막대기’ (goads) 혹은 ‘가시채’ (pricks)라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다 (행 26: 14).

몰이 막대기나 가시채는 똑같이 끝이 뾰족하게 나있었다.

특별히 가시채는 말이 끄는 수레 앞에다 부착시켜 고집 센 말이 앞으로 가지 않고 반항적으로 뒷발질을 하면 차여서 고통을 주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 말에서 사울이 기독교의 진리 문제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울은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나타냈던 강한 신앙심을 본 이후부터 신앙 양심에 찔림을 받아오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다메섹으로 가는 노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사울은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심을 깨닫게 되었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9장 6: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을 때, 바울의 반응은 즉각적인 것이었다.

그는 어떤 지시이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개역성경에는 빠져 있지만, 사울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나이까”라는 말로 그 같은 뜻을 나타냈다.

예수님은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하셨다.

사울은 전적으로 다른 의제를 가지고 다메섹으로 들어갔다.

예수님께서 그의 목적과 사명에 대한 모든 것을, 다메섹에서 뿐 아니라 그의 남은 일생을 위해서도,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이었다.

 

동행자들 (사도행전 9장 7 -9절)

9: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있더라

9: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9장 7: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사울은 혼자가 아니고 동행자들이 있었다.

그의 동행자들은 기적적인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다.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자기와 동행자들을 두루 비추었을 때, “우리가 땅에 엎드러” 졌다고 하였다 (26: 13 -14).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었다.

그 환상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은 사울을 위한 것이었다.

동행자들이 경험한 것은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어난 것이 사울의 상상이 아닌 것을 증거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환상의 일부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환상이 단순히 사울의 마음 속에서 생긴 사적인 현상이 아닌 것을 입증해 주었다.

그들은 사울의 신체적 및 정서적 상태에서 일어난 즉각적인 변화에 혼란을 느꼈을 것이 확실하다.

9장 8:  사울의 환상의 한 가지 육체적인 결과는 시력을 상실한 것이다.

어떤 성결해석자들은 시력의 상실은 환상으로 인한 육체적 혹은 정서적 충격의 결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 것을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으로 인한 일시적인 시력의 상실로 보인다 (9: 18).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사울은 육체적으로는 보았으나 영적으로는 장님이었다.

이제 그는 육체적으로는 장님이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동행자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사울이 마음에 그리고 있던 다메섹으로 들어갈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열심에 가득 차서 그리고 믿는 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른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어린 아이처럼 성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후에 “내가 약한 때에 강함이라”는 말로 자신의 삶 속에서 약함의 힘을 증언하였다 (고후 12: 10).   

그는 약할 때 하나님을 더 많이 의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니라”고 고백하였다 (고후 12: 9).

우리도 삶 속에서 그 같은 태도를 계속 가져야 한다.

9장 9:  사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기간 동안에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면서)” 금식에 들어갔다.

우리는 사울이 금식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에 전념했을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깨닫고 그를 믿었지만, 예수님이 그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임무 (사도행전 9장 15 -20절)

9: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사람은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9: 16    그가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9: 17    아나니아가 떠나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9: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9: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지니라

9: 20    즉시로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9장 15: 다른 한편 주님께서는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고 부르는 제자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셨다 (행 9: 10).  

아나니아는 ‘하나냐’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헬라어 형태로,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이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에게 거짓말을 했던 사람인 ‘아나니아’와 혼동되지 말아야 한다 (행 5: 1).

아나니아는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피해 다메섹으로 왔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전도를 받아 신자가 된 유대인들 중의 하나였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고 하셨다.

주님은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고 하였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행한 일들과 다메섹으로 오고 있는 목적을 잘 알고 있던 아나니아는 바울을 가까이 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사울이 다메섹 성에 들어오기 전에 실명하였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아나니아는 도리어 안도하며 사울의 그 같은 실명은 교회의 핍박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 만나 그에게 안수하여 보게 하라는 임무을 주신 것이다.

아나니아가 그 같은 임무를 띠고 사울을 찾아가게 하는 데에는 주님의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였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람은 이름을 이방인(들)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다 (행 9: 15).

이 말씀에서는 세 가지 그룹의 전도대상자들이 강조되고 있다.

첫째로, 사울은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다.

처음에 복음은 거의 전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전파되었다.

에디오피아 내시의 경우처럼, 소수의 이방인 개종자들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사울은 로마제국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둘째로, 사울은 임금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할 것이다.

사도 행전의 나중 장들에서 묘사되고 있는 대로(행 24 -26장), 사도 바울이 체포되어 통치자들 앞에서 그가 믿는 도에 대해 심문을 받고 변호를 한 일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한 일이 된다.

셋째로, 주님은 사울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라고 하셨다.

바리새인이자 과거 교회를 박해했던 자로서의 전력에 근거하여, 그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9장 16: 바울은 또한 일생 동안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수 많은 고난을 받게 될 것이다.

박해자였던 그는 이제 박해를 받는 자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실제로 사울(바울)은 수없이 매를 맞았고, 파선을 당하였으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고, 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그는 그 외에도 수많은 역경을 겪었다 (고후 11: 23 -27).

주님은 위험이나 갈등이 없는 안일한 삶으로 우리를 부르지 않으신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십자가의 군사로 자원 입대한다.

주님의 제자가 되면, 우리는 편안한 삶이 아니라, 죄의 본성, 악한 세상, 그리고 사탄과 맞서 싸우는 갈등의 삶을 기대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 우리 죄를 위해 고난을 받도록 허용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어떻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9장 17 -19: 환상중에 주님의 말씀을 들고 확신이 생긴 아나니아는 사울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아나니아는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아”라고 불렀다.

아나니아는 더 이상 사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울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였다.

그는 사울에게 그가 오는 도중에 그에게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자기를 보내신 사실을 밝히고, 이는 그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임을 말하였다.

사울이 시력을 회복한 사실은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같은 묘사는 그의 실명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시력의 회복은 사울의 새로운 삶과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상징하였다.

시력회복과 동시에, 사울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매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하였다 (엡 5: 18).

사울은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복음의 설교자로 부름 받은 자신의 사명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다음 사울은 “일어나 침례를” 받았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었고 침례를 받음으로 교회와 하나가 된 것을 나타냈다.

그 같은 일들이 있은 후 사울의 금식은 끝나고, 사울은 육체적으로는 물론 영적으로도 강건해 졌다.

9장 19하 -20: 누가는 사울이 며칠 동안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일을 기록하였다.

그는 아마도 이들 제자들로부터 믿음의 삶의 기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울은 그 같은 개념들을 빠르게 이해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에 바리새인이었던 그는 구약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다른 신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사울은 곧 강력한 복음전파자가 되었다.

다메섹에 있는 회당들은 사울이 복음전파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가 되었다.

즉시로 그는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9: 20).

많은 유대인들은 전에 예수 믿는 자들과 그들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가 회당에 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후에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갈 1: 16’ 롬 1: 1 -4).

사울의 회심과 개종의 사건은 생각 없이 그냥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사울의 회심과 개종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고백이 되고 있다.

사울이 구원을 받고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두 요소가 결합되고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은 사울의 삶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셨고 사울은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복종하였다. 

사울의 회심의 이야기는 다른 것들과 다를 수 있지만, 모든 구원의 경험에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길 잃은 영혼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택함’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들 각자를 부르시며, 그 같은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그의 영광을 위해 성취하는 것은 우리들 삶의 가장 보람되고

기쁜 일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하나님은 그의 왕국 일에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사용하시며, 또한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그같이 하신다.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선교 사역에 집중하게 하신다.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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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모든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라 - 제 8과 - 2018년 1월21일 장년성경공부 - 사도행전 16장 16 -19절; 시 139편 13 -16절 강호길 2018.01.15 22555
295 죄를 사하는 권세(權勢)가 있는 예수님 - 제 10과 - 2021년 2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17 -26절 강호길 2021.02.04 18386
294 두려워하다 - 제 5과 - 2016년 7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6.06.26 5247
293 하나로 연합되다 : 2016년 3월 20일 주일 장년성경 연구 - 제 3과 사도행전 공부 1 강호길 2016.03.13 2349
292 이기심 없이 섬기는 사역 - 2016년 4월 2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제 8과 - 사도행전 공부 강호길 2016.04.17 2184
291 불완전한 가정 - 제 3과 - 2018년 12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창세기 29장 16 -30절 강호길 2018.12.08 2152
290 변화되다 - 제 6과 - 2019년 1월 6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2장 24 -32절 강호길 2018.12.30 1738
289 선지자보다 크신 예수님 - 제 4과 - 2017년 3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강호길 2017.03.19 1575
288 왕이 임하시다 - 2015년 12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2과 마태복음 공부 강호길 2015.12.02 1502
287 죄에 대한 징벌과 용서 - 제 13과 - 2018년 8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24장 10 -25절 강호길 2018.08.19 1280
286 유혹을 받다 - 제 11과 - 2019년 2월 10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9장 3 -12, 19 -21절 강호길 2019.02.04 1053
285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다 - 2015년 9월 6일 장년성경공부 교사용 창세기 제 1과 2 Hokil 2015.10.10 1043
» 사울의 회심과 개종 - 2016년 5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10과 - 사도행전 공부 강호길 2016.04.30 1006
28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 제 2과 - 2018년 3월 11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전서 6장 12 -20절 강호길 2018.03.06 929
282 절제의 믿음 - 제 11과 - 2018년 11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3장 1 – 12절 강호길 2018.11.06 882
281 참된 은혜 - 제 2과 - 2018년 9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2장 11 -21절 강호길 2018.09.01 874
280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 2015년 11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제 11과 창세기 공부 3 강호길 2015.11.06 714
279 모든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라 -제 7과 - 2017년 1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생명존엄 주일 강호길 2017.01.08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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