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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0일 주일 장년성경 연구

 

제 3과

 

하나로 연합되다

학습구절: 사도행전 2장 41 -47절

 

성경진리:

복음의 영향력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다른 믿는 사람들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핵심 교리: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교회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침례를 받은 신자들이 자율적으로 모인 지역 신앙공동체로서,

믿음의 언약과 복음의 교제에 의해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두 가지 규례(침례와 주의 만찬)를 지키며, 주님의 말씀에 의해 통치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권리 그리고 특권을 행사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쓴다.

 

암송구절: 사도행전 2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Every day they continued to meet together in the temple courts.

They broke bread in their homes and ate together with glad and sincere hearts.

 

시작하는 :

그룹 내에서의 분열은, 그 그룹이 가족이나 회사, 혹은 국가나 교회이든 간에, 안녕에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분열은 의견의 차이와 혼동되지 말아야 한다.

의견의 차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특별히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는 단체나 그룹들은 더 하다.

물론, 의견의 차이가 있는 중요한 문제들이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으면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룹이나 단체 내에서 분열이 생기면, 몸이 암세포에 의해 공격을 받듯이, 자신과의 싸움을 일으키게 된다.

1858년 6월에 일리노이 주 공화당 전당대회의 대의원들은 아브라함 링컨을 미 상원위원 후보자로 지명하였다.

당시 미국은 노예제도를 주장하는 주들과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주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당시 노예문제는 후보자가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간에 분쟁의 요인이 되었다.

후보자 수락 연설에서, 링컨은 대회 대의원들에게 “집이 갈라지면(House Divided)”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는데,

그때 그는 잘 알려진 예수님의 말씀인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없고”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막 3: 25).   

그는 미국이 분열된 상태로는 설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했던 것이다.    

링컨은 상원의원 경쟁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2년 후에 그는 상원위원이 아니라, 미합중국의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나머지는 역사가 밝혀주고 있다.

링컨 대통령의 특징은 자유와 자치의 이념에 기초한 연합된 하나의  나라를 보존하려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었다.

미합중국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했던 일이 있기 오래 전에,

초대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더 큰 형태의 화합을 이루었다.

사도행전 2장 41 -47절에서 누가는 신자들이 하나가 된 일이 초대 교회의 신자들의 삶과 행한 일들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기술하였다

믿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들이 더욱 더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하나가 되게 하려는 조치들을 취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행한 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본문배경설명: (사도행전 2장 41절부터 47절까지)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성령님의 강림하심을 기다렸고 오순절 날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전에 알지 못하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2: 4).

예루살렘 주민들과 방문자들은 제자들이 자기들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2: 6).   

많은 사람들은 “어찌된 일이냐”고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고 하였다.

그들이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면서 제자들을 일축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베드로는 설교로 성령님께서 행하게 하심으로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을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사도행전 2장 14절부터 39절까지에는 베드로의 강력한 설교의 일부가 기록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살리심을 받은 그리스도가 되심을 설명하는 내용이 되고 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며 그들이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사함을 받으라”고 하였다

그러면 “성령의 선물을 받(것)”이라고 하였다.

그날 약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되었다.

그들은 침례를 받고 120명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되었다.

침례를 받고 교인이 된 새 신자들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믿음의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은 알고 있었다.

이번 주 학과에서 우리는 초대 신앙공동체의 특징들의 몇 가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오늘 날까지 계속 교회의 특징들이 되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힘쓰다 (사도행전 2장 41 -42절)

2: 41: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2장 41: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순절 날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성경학자들은 인구가 비교적 작았던 예루살렘은 축제 기간 동안에는 약 2십만명 정도까지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후 약 삼천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침례를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침례 요한은 침례를 회개의 상징으로 사용하였지만 (눅 3: 3),

오순절에 사람들이 받은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최초의 것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이 후에 로마서에서 설명했듯이,

기독교의 침례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에 동참함으로 그와 연합되는 것을 상징한다(롬 6: 3 -5).

물로 침례를 받는 것은 구원에 필요한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엡 2: 8).

침례는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를 믿는 상징으로 침례를 받는다.

침례는 또한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지상 대 명령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마 28: 19ㅡ-20).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해 요단 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다 (마 3: 13 -17).

새로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에 대한 증거로 침례를 받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2장 42: 이 구절은 오순절 후에 믿는 자들이 행한 일들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힘쓰니라”고 번역된 동사는 끈기와 전념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누가는 같은 동사를 사용하여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동안 기도에 전념한 것을 묘사하였다 (행 1: 14).

그들은 교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일에 힘썼다.

그들 네 가지는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면보다는 신앙공동체가 함께 하는 일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교회는 하나가 되었으며, 교인들은 이들 네 가지 일에 힘을 다하여 전념하였다.  

첫째로, 교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일)”에 힘썼다.  

사도들은 본래의 열 한 명과 가롯 유다 대신에 뽑힌 “맛디아”를 더 하여 열 두 명이 되었다 (행 1: 26).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그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에 관한 것을 직접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순절 날에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은 그들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의 계획에 관해 배우기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리고 삶을 위한 그의 가르침에 관한 모든 것을 알기를 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는 열정은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의 결합력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삶에 적용하며 믿지 않는 세상에 전파하는 일은 항상 교회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초대교회 교인들은서로 교제”하기를 힘썼다.

이것은 “교제”라는 용어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되고 있다.

코이노니아”라는 헬라어는 물건을 공유하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 우리는 그 용어를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먹거나 사귀는 것을 표현하는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말은 좀더 포괄적이고도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도들 서로가 관계를 맺는 것을 기초로 삼고 있다.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사랑은 성도들 서로의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삶의 스타일이나 취향 등 사소한 일로 인해 사람들이 자주 편을 가르며 분열하고 있는 오늘 날,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본을 받아 주님과 그리고 성도들 서로가 하나가 되는 성도의 교제에 힘써야 하겠다.

셋째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떡을” 떼는 일에 힘썼다.

떡을 떼는 일은 “교제”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가정생활과 일반 사회에서 서로 사귀는 일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지킨 후에 떡을 뗀 것으로 묘사하였다 (행 20: 7; 고전 11: 20 -34).

믿는 사람들이 집집이 돌아가면서 떡을 떼었던 일에는 그 두 가지가 다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 믿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기를” 힘썼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기도라는 명사가 복수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말은 예루살렘 성전의 정해진 기도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고 제안해 오고 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받은 후에도 성전에 지주 찾아가는 일을 계속하였다 (행 2: 46; 3: 1).

더 가능한 것으로는, 그 말은 믿는 사람들이 서로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시간을 정하여 함께 기도에 힘쓴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시간을 정하여 기도에 힘쓴 것과 교회가 하나가 된 일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아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함께 하다 (사도행전 2장 43 -47상)

2: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2: 44     믿는 사람이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2: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 47상  하나님을 찬미하며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2장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는 말은 무서움이나 공포심 같은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경외감을 나타내는 뜻이 되고 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잠언은 우리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가르친다 (잠 9: 10).

경외감은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과 능력에 대한 인간의 겸손한 반응이 되고 있다.  

믿는 사람들의 경외감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들로 인하여 더 강하게 나타났다  

2장 44 -4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수가 수 천명에 이르긴 했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소수에 불과하였다.

또한 믿는 사람들은 아직 폭력적인 박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 새로운 신앙 공동체는 주위의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갖가지 압력을 받았다.

당시 유대교는 종교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사회 및 경제적인 면에서도 백성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유대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이단자로 여겼고, 이들 초대 믿는 사람들이 지불한 값은 사회적 및 경제적인 고립이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과부들은 그들의 회당에서 지원해주던 경제적 도움이 끊어질 수도 있었다.

교회는 그같이 지원이 끊어진 과부들을 돌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야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생겼을 수 있다.

상인들은 신앙 때문에 고객들을 잃었을 수도 있다.

그 같은 사회적 및 경제적 불이익들과 다른 사회적 요인들로 인하여 초대 교회는 심각한 빈곤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믿는 사람들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법을 찾았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도록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원하여 그같이 하였다.

그들은 동료 신자들을 위한 사랑의 동기에서 그같이 하였다.

우리는 이 구절의 내용을 근거로 삼아 초대 교회의 믿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의 재산과 소유를 팔았다고 결론짓지 말아야 한다.

여기 나오는 헬라어 동사의 시제를 보면, 그들이 재산과 소유를 기회가 생길 때마다 팔았다는 의미가 암시되고 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물건을 서로 통용한 이야기에서, 누가는 “함께 있어”라는 말로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된 사실을 더 강조하였다.

그들은 진정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다른 믿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들의 필요는 단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 정서적 및 정신적인 것이 되었을 수 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의 일원으로 대하였다.

2장 46 -47: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매주 한번씩 교회에 모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초대교회 교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성전 뜰을 예배와 교제 그리고 기도를 위한 모임 장소로 사용하였다.

성전에서 그같이 모일 때, 사도들은 구약의 희생제물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해 주었을 수 있다.

또한 성전에서 모이는 일은 믿는 사람들이 다른 유대인들을 만나 예수님에 대해 증거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성전은 믿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유일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들은 또한 집집이 돌아가면서 모여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이들 가정 교회들은 첫 번째 교회건물이 건축되기 이전에 모임장소가 되었다.

사도행전에 있는 가정교회에 대한 묘사에서 우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맺고 있던 새로운 관계와 그들의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고, 예배하였다.

누가는 덧붙여서 믿는 사람들이 “백성에게 칭송”을 받은 사실을 기록하였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도와주는 것을 칭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다 (요 13: 35).

초대교회가 보였던 사랑과 하나가 되는 모습은 유감스럽게도 오늘 날 많은 교회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중요한 교리에 대한 논쟁같이,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정당한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날 많은 교회가 갈라지고 분열되는 주요 요인은 교만과 이기심이 되고 있다.

현대 교회는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 교인들이 나타내었던 사랑과 하나가 되었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자라나다 (사도행전 2장 47장하)

2: 47하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장 47절하:  누가는 초대교회가 행한 일들과 자라난 모습을 47절 하 반절의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는 말로 종결하였다.

그는 먼저 성공적인 전도의 열매가 맺게 된 것을 주님의 은덕으로 돌렸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렸다 (눅 24: 49).

결과는 주께서 능력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게 하시는 놀라운 일이었다.

2장의 마지막 문장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

첫째로, 전도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고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그들은 먼저 복음을 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믿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해야 한다 (롬 10: 14 -15).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의 죄를 책망하며 회개하게 해 주는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믿는 사람들이 성경의 진리를 어떤 사람에게 잘 설명해 주고 깨우쳐 주는 것은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믿지 않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논쟁을 하여 이기는 방법으로 전도를 하여 믿지 않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라고 하였다 (고전 2: 1).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은 씨 뿌리는 자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고 그것을 믿도록 권하는 방법으로 그 씨를 뿌려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씨가 자라나게 하신다 (고전 3: 6).

교회가 전도를 하여 교인의 수가 늘어나면, 그같이 더하게 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다.

구원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의 부담감을 덜어준다.

전도를 할 때, 많은 성도들이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데, 성경말씀을 잘 알지 못하는데, 혹은 내가 전하는 말을 믿지 않고 도리어 따지고 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며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은 단지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분명하게 전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그 모든 걱정과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공적인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식을 갖춘 신학도나 수준 높은 변론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강한 믿음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단순한 진리를 제시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지식이다.    

2장의 마지막 문장에서 암시되고 있는 두 번째의 사실은 사람들이 “날마다” 구원을 받은 일이다.

그 말은 최근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나누며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베드로의 설교 후에 삼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믿게 되었지만, 교인의 수는 믿는 사람들의 개인 전도를 통하여 계속 늘어났다.

전도는 교회 지도자들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가 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 구원을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한다.

초대교회에서의 전도는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하루의 행사로 시행되지 않았다.

믿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매일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초대 교회는 오늘 날 우리들에게 복음전도의 중요한 본을 보여주고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건강해 지려면 다른 믿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은 삶을 함께 나누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며,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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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섭 2016.03.17 08:28
    목사님, 오랜만에 들어와 읽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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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 2015년 11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제 11과 창세기 공부 3 강호길 2015.11.06 714
279 모든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라 -제 7과 - 2017년 1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생명존엄 주일 강호길 2017.01.08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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