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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1월 19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8과

 

 

소중하게 여기다         

 

 

학습구절: 신명기 5장 17절; 19장 4 -13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시며 그의 백성들도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기대하신다.        

 

주요교리: 사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물이다 (창 1: 26).

     

암송구절:  신명기 5장 17절  

살인하지 말지니라     
“You shall not murder.” 

 

 

시작하는 글:

 

한 사람이나 물건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오늘 날의 시장 주도형 사회에서 가치는 종종 경제적인 혹은 금전적인 조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업의 가치는 부채와 비용을 뺀 후 자산과 소득으로 계산된다.

고용인(雇傭人)의 가치는 회사에 대한 그의 기여도와 그에게 지불하는 급여와 혜택 비용을 비교하는 것으로 평가(評價)될 수 있다.

     대중 문화는 한 개인의 가치를 그들 개인의 기술이나 교육수준 및 모든 장애들을 살펴봄으로써 사회에 대한 그들 개인의 사회 기여도라는 측면에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종종 추억이 담겨있거나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들과 관계 되고 있는 물건들을 가치 있게 혹은 소중하게 여기기도 한다.

어떤 예술 작품들은 그 작품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을 창작한 예술가의 명성 때문에 큰 가치를 지니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는 ‘피에타’(Pieta)로 알려진 귀중한 조각품을 만들었다.

1500년경에 조각된 이 작품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각품을 그같이 가치 있게 만들고 있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그것이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직접 서명한 작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적 견해는 세상적인 관점과 다른 방법으로 이 질문에 대답한다.

심지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 조차도 그것을 조각한 예술가 때문에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의 손으로 놀랍게 지으심을 받은 인간들 각 자는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그 같은 사실을 깨달았던 다윗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감사하며 고백하였다 (시 139: 13 -14).

주께서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영혼이 아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각 생명이 잉태될 때 당신의 형상을 각인시켜 그의 창조물에다 “서명”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각자를 유일한 존재로 지어주셨다 (창 1: 26 -27).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하셨으며, 그는 그의 백성들이 각 개인을 태아 때부터 소중하게 여기기를 기대하신다.  

 

 

본문배경설명

 

신명기 5장 6 -21절; 19장 1 -13절

 

      신명기의 대부분은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 일련의 설교 또는 연설로 구성되어 있다 (신 1: 1 -30: 20).

이 과의 본문 배경이 되고 있는 5장 6절부터 21절까지와 19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두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요약하고 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호렙 산 혹은 시내 산에서 그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핵심인 십계명을 반복해서 언급하였다 (출 20 : 1 -17 참조).
     하나님은 십계명을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밝히는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그 이름과 그 이름의 중요성을 불타는 떨기나무 덤불에서 밝혀주셨다 (출 3: 14-15 참조).

"여호와" 또는 "야웨"라는 이름은 외적인 원인이나 영향이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스스로 있는 자”인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

창조주와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의 품성을 나타내야 하는지를 밝히며 규정짓는 권세를 갖고 계신다.

     여호와께서는 또한 자신을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 구속 주로 소개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십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사랑을 나타내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었다.
이들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상기시켜 줄뿐만 아니라 그들을 인도하여 내 주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 주었다.

     인간 생명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 과는 먼저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여섯째 계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명기 19장 1절부터 13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모든 행위가 살인의 구성요건이 되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사례별로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한 사람이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경우, 가해자는 그의 사건이 판결을 받을 때까지 도피성에 피하여 안전을 얻을 수 있었다 (민 35: 9 -34 참조).

     여호와는 한 예를 드셔서 의도치 않은 살인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주셨다.
가령 두 벌목 꾼이 숲 속으로 들어가 함께 나무를 찍고 있었는데,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나가 친구를 쳐서 그를 죽였다.

그 경우에, 그 살해 자는 도피성으로 피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여서 해치려고 숨어 있다가 그를 살해 했을 경우, 죄를 지은 자는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학습구절 연구

 

하지 말아야 될 살인 (신명기 5장 17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호렙 (시내) 산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십 계명을 상기시켜주었다.

십 계명의 여섯 번째는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말로 살인을 금하고 있다.

 

신명기 5장 17절

  • 살인하지 말지니라

     "살인"으로 번역 된 히브리어 단어는 항상 인간의 생명을 취하는 것과 관계되었다.

살인”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랕삭’ (ratsach)이라는 용어가 되고 있는데, 그 단어는 합법적인 사형 집행이나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서는 사용되지 않았고 법적 허가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리켰다.

그러므로, 신명기 5장 17절의 말씀에 대한 가장 정확한 번역은 ‘법적인 허가 없이 살인을 하지 말라”는 뜻이 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분명히 정상적인 살인 행위가 포함되고 있다.

     그렇다면, 낙태(落胎)나 안락사(安樂死) 같은 경우는 어떤가?

만일 어느 사회나 문화권에서 낙태나 안락사가 불법이 아니라면, 낙태나 안락사를 하고서도 자기는 제 육 계명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의 법과 문화적 전통에 종속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한 예를 들어, 어느 특정한 땅이나 문화권에서 가문에 용서할 수 없는 수치를 끼친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합법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도 어떤 문화권에서는 소위 ‘명예 살인’이라는 것이 합법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럴 경우, 우리는 그 살인자가 계명을 어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한 인간의 생명을 취하는 행위는, 그것이 성경에 의해 구체적으로 허가되지 않는 한, “살인”이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 허용되는 두 가지 조건이 제시되고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는 말씀으로 (창 9: 6) 살인에 대한 사형제도가 되고 있다.

두 번째의 경우는 본질적으로 방어적 성격의 것이거나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 것으로, 군인이 적군과 싸우는 전쟁의 경우가 되고 있다.

그 같은 예는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라고 한 느헤미야 4장 13절을 들 수 있다.

느헤미야가 배치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공격을 당했을 때 치명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단순한 허용을 받고 있은 것이 아니라, 그들은 암묵적으로 명령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취하는 것은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몰라도 그같이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한 생명을 죽이느냐 죽이지 않느냐는 것은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의 문제, 즉 각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특별히 낙태문제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성경은 결코 인간의 생명을 죽일 수 있느냐 혹은 죽일 수 없느냐는 문제를,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문제가 되는 것처럼, 개인의 “선택권”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 인간의 생명(生命)이 되고 있느냐이다.

안락사(安樂死)의 경우, "삶의 질"에 대한 논쟁이 교묘하게 요점을 피하게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살해당한 사람이 인간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안락사는 계획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취하는 일이 되고 있다.

성경은 적군도 아니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도 아닌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살인”으로  정의(定義)하고 있다.

     물론 주요 질문은 낙태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태아는 인간 생명체인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 날 그 것은 여기에서 자세히 다루어질 수 없는 매우 광범위한 주제와 법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 모두가 분명하게 알고 인정하고 있는 사실은 태아는 심장 박동이 있고, 엄지 손가락을 빨며, 통증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아기는 태어날 때 갑자기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아기는 한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성경은 태아들이 외적 자극에 반응할 수 있으며 (눅 1: 41)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이 되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시 139ㅣ 14).

암몬 자손들이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라서 아기를 죽이는 잔악한 행위를 했을 때 그들의 죄와 악은 두 배가 되었다(암 1: 13).

우리는 성경이 태아를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고의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 되고 있다.

성경은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거나 그 문제를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여섯째 계명은 오늘날 신자들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최소한, 그것은 우리가 결코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살인을 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산상 수훈을 전하실 때 이 계명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것으로 끌어 올리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하셨듯이, 행동 뒤에 숨겨있는 태도나 감정의 문제를 가지고 문제의 핵심을 다루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셨다 (마 5: 21 -22).

그 같은 감정은 살인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은혜의 대상이 되는 경우의 살인 (신명기 19장 4 -10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부지중에” 혹은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도피하여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피난처로 “도피성”을 약속의 땅 전역에 세우라고 지시하셨다.

이들 도피성의 목적은 피해자의 가족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신명기 19장 4 -6절:

  •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살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이 단원은 과실치사(過失致死) 혹은 우발적인 살인 사건에 대한 지침을 제공해주고 있다.  
4절은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인 다음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도피성으로 피한 한 사람의 판례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구절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일어났다는 설명으로, 이 살인 사건이 과실치사 혹은 우발적인 살인이 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5절은 우발적인 살인 사건의 구체적인 한 예를 제공해주고 있다.

두 명의 이웃 혹은 친구가 벌목을 하러 살림에 들어갔다.

손에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나가 부지중에 함께 간 사람을 쳐서 죽였다.

그런 다음, 율법은 살아남은 사람은 도피성의 하나로 피신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이를 목격한 증인이 있으면, 그는 살인 사건이 고의적이나 의도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이고 부지중에 일어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실수로 혹은 부지중에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이 보호를 받기 위해 도피성으로 도망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6절은 그 이유를 “그 사람(살해자)이 그에게 (살해당한 자)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구약의 세계에서, 피해자의 친척들은 일반적으로 복수심에 불타서 복수를 하려고 들었다.

이는 또한 가족이나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되었다.

실제로, 율법은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라는 말로 ‘피의 복수 자’는 친척에 대한 범죄에 대해 적절한 보복을 할 수 있는 법적 책임과 권리가 허용되고 있었다 (신 19: 21).

살인 또는 계획적인 살인 사건의 경우, 율법은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라는 말로 피의 복수자에게 사악한 죄를 범한 죄인을 죽일 권리를 허용하였다 (19: 11 -13).

     그러나 피의 보복자는 적절한 절차 없이 행동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민수기 35장 24절은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라는 말로, 살인 사건에 대한 고의성의 유무를 가리며 결정하는 객관적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그 살인 사건이, 장로들이나 제사장들 혹은 증인에 의해서든,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라고 결정이 나면, 살인자는 보호를 받고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고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수 있었다 (민 35: 25).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피의 복수와 도피성에 대해 분명한 지시를 해주셨다. 

율법은 우발적인 살인의 경우 피의 복수를 금하였다.

그러나 살인범이 손에 무기를 들었거나 희생자에게 악의를 품은 것이 발견되면, 복수자는 살인범을 죽일 수 있었다 (민35: 16 -21).

그 가는 일이 멀면”이라는 말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도피성이 여러 지역에 필요한 점이 되고 있다.

 

신명기 19장 7 -10절:

  •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 말씀하신 땅을 네게 주실 때
  •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의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라는 말은 19장 2절의 명령을 반복하는 말이 되고 있다.

신명기 19 장 7절에서 세 개의 도피성을 구별하여 세우라고 한 이 명령은 신명기에서 두 번째의 것이 되고 있다.

신명기 4장 41절부터 43절까지에서, 모세는 요단 강 동쪽에 세 개의 도피성을 구별하여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은 르우벤 지파를 위한 “베셀”과 갓 지파를 위한 “길르앗 라몬”과 므낫세 지파를 위한 “바산 골란”이 되고 있다 (수 20: 7 -8 참조).

     도피성에 대한 개념은 출애굽기 21장 12절부터 14절에 처음 나타나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민수기 35장 9절부터 15절까지에서 아주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도피성은 부지 중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피하여 어느 정도 일상적인 생활이 허용되는 장소가 되었지만, 사람이 죽은 일에 관계된 혐의에 대한 처벌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 약속의 땅을 영적으로 더럽힌 것을 제거하는 일이 되었다.

     본문인 19장 7절에 언급되고 있는 세 “도피성”은 가나안 땅을 차지한 후 추가로 구별하여 세운 것들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호수아 20장 7절에 의하면, 요단 강 서쪽에 세워진 이들 세 개의 도피성들은 갈릴리 지역의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헤브론”이 되고 있다.

     19장 8절과 9절은 7절에서 언급된 세 도피성 외에, 즉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 만들라는 명령이 되고 있다.

그 시기는 8절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가 되고 있다.

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땅의 경계가 그같이 넓혀지는 조건으로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로 제시하셨다.

성경에는 도피성들이- 요단 강 동쪽에 3개 그리고 서쪽에 3개 이상이 세워졌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도피성은 단지 6개만 존재해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절은 “네 하나님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는 말로, 도피성에 대한 지시의 핵심을 밝혀주고 있다.

성경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또는 “모든 생물과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라는 말로, 피가 생명을 대표하고 있음을 단언하고 있다 (레 17: 11, 14; 신 12: 23).

그러므로, 피를 흘리는 것은 생명을 제거하는 일을 뜻했다.

전략적으로 위치한 지역에 “도피성”들을 구별하여 세우는 것은 구약이 인간 생명의 신성함을 옹호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옹호하는 방법이 되었다.

 

정의의 처벌이 요구되는 경우의 살인(신명기 19장 11 -13정)

 

이 구절들은 미리 계획된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그 같은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도망 쳤다면, 그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 도피성에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주어 죄에 대한 공정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였다.  

 

신명기 19장 11 -13절:

  •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이 구절들은 다시 살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번에는 고의적인 살인을 포함하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즉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들 기다리다가” 살해하고 그것은 실수로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하면서 도피성으로 도망칠 수 있다.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살인이 사고인지 아니면 고의적인 살인인지를 결정하였다.  

그 살인이 후자의 경우, 그들은 사람들을 보내어 그 살인자를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주어] 죽이게” 하였다.

     이 단원의 본문은 엄한 경고의 말씀과 축복의 약속으로 끝나고 있다: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폭력적인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은 값싼 소모품이 되고 있다.

 

사형제도가 오늘 날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지금은 그 모든 찬반론을 다루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구절에서 성경이 사형제도를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밝힌 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상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명기는 실제로 인간의 생명이 신성하기 때문에 살인자들에게 바로 그 죽음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일은 너무나 가증스럽고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 같은 죄를 범하는 사람은 계속 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폭력적인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은 값싼 소모품이 되고 있다.

신명기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 대가를 매우 높게 만들고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은 고의적인 살인(殺人)을 금하신다.     
  • 하나님은 은혜와 보호를 베풀어 주신다.   
  •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의를 이루기 위해 일해야 한다.   

기도 외에, 당신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된 살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신자들과 불신자들 모두가 깨달을 수 있도록 취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 같은 방법들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가?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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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믿음의 시험을 받은 욥 - 제 1과 - 2021년 6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욥기 1장 8 -22절 강호길 2021.06.09 358
295 주님의 지상 명령 - 제 13과 - 2021년 5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36 -49절 강호길 2021.05.29 312
294 자신의 정체를 밝혀주신 예수님 - 제 12과 - 2021년 5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8 -31절 강호길 2021.05.24 253
293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 제 10과 - 2021년 5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54 -62절 강호길 2021.05.17 274
292 기꺼이 순종하신 예수님 - 제 9과 - 2021년 5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41 -53절 강호길 2021.05.07 293
291 기억하고 기념하는 믿음 - 제 8과 - 2021년 4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7 -20절 강호길 2021.04.27 120
290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 제 7과 - 2021년 4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0장 9 -19절 강호길 2021.04.20 292258
289 복음이 필요한 죄인들은 누구인가? - 제 6과 - 2021년 4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1 -10절 강호길 2021.04.10 93
288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 제 5과 - 2021년 4월 4일 부활절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 -12절 강호길 2021.04.03 85
287 찬양과 예배를 받으신 예수님 - 제 4과 - 2021년 3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29-40절 강호길 2021.03.28 81
286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것은? - 제 3과 - 2021년 3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8장 9 -17절 강호길 2021.03.20 94
285 신자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하나? - 제 2과 - 2021년 3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5장 20-32절 강호길 2021.03.13 92
284 누가 이웃인가? - 제 1과 - 2020년 3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0장 25 -37절 강호길 2021.03.06 86
283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제자 - 제 13과 - 2021년 2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9장 18 -23절 강호길 2021.02.27 823
282 은혜에 대한 사랑의 응답 - 제 12과 - 2021년 2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7장 40 -50절 강호길 2021.02.20 79
281 예수님의 통치권 - 제 11과 - 2021년 2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6장 1 -11절 강호길 2021.02.12 78
280 죄를 사하는 권세(權勢)가 있는 예수님 - 제 10과 - 2021년 2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17 -26절 강호길 2021.02.04 129796
279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 제 9과 - 2021년 1월 3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4 -11, 27 -32절 1 강호길 2021.01.26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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