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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11월 17일 주일 용  

 

12과

 

 

가족관계의 삶         

 

 

학습구절: 에베소서 5장 22절 – 6장 9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한나님의 사랑을 그들의 가족 관계에서 나타내야 한다.      

 

주요교리: 가 족     
하나님은 가족을 인간 사회의 기본 제도로 제정하셨다 (창 2: 15 -25).

 

암송구절:  에베소서 6장 2 -3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 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 –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                

 

 

시작하는 글:

 

종종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인간관계, 복잡한 거예요.”

실제로 그 말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말은 진정한 헌신 감이 결여된 관계를 나타낼 수 있다.

반면에, 그 말은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항상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 관계는 복잡한 것이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보다 그 같은 설명이 필요한 것은 없다.

 

결혼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그 같은 요소들이 다른 가족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본문배경설명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6장 9절까지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로마 정치 지도자들은 가족이 사회와 국가의 기본 구성 요소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은 가정에서의 권위와 종속 관계의 문제에 대해 아주 많이 강조하였다.

그들은 가정의 질서가 사회의 질서를 만드는 것으로 믿었다.

로마 제국은 부계(父系)사회로, 남자의 지위와 권리는 여자와 어린이, 그리고 노예의 것을 훨씬 뛰어넘는 막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1 세기의 여자들은 이전 세기의 여자들에 비해 법적으로나 가정에서 좀더 많은 권리를 얻고 있었다.

아이들과 노예들은 권리가 거의 없었고, 가정에서의 남편의 지위와 권리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노예는 가정의 일부로 여겨졌으며, 심지어 그들의 종교적인 선호(選好)도 일반적으로 가장의 지시에 따라 결정되었다.

만일에, 노예들이 유대교나 기독교로 개종했을 경우, 그것은 로마인들에게 미움을 사고 몹시 화가 나게 하는 일이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 따르던 결혼 유형은 똑같이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이긴 했지만, 로마 사회에서의 부부관계의 신실함과 충실함에 대한 기준은 크게 달랐다.

로마문화권에서, 매춘과 간음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가족에 대한 로마 제국의 사회 제도를 배경으로 삼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6장 4절을 기록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의 교훈을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그리고 ‘주인과 노예’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바울이 이들 관계들의 각 범주에 대해 쓴 것은 그의 사회 규범과는 완전히 달랐다.

실제로, 그는 가족 관계에 대한 전체 교훈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다 집중(集中)시켰다.

              

 

아내들에게 주는 교훈(5장 22 -24절)

 

바울은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가족을 하나로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교훈하였다.

바울은 아내들에게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였다.

바울은 그 모범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가리켰다.   

 

5장 22 -23절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이 본문은 흥미 있는 내용으로 많은 토론의 주제가 되어 오고 있다.
우선, 22절의 “복종하[라]”라는 동사는 헬라어 본문에는 실제로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5장 21절에서 소개된 “피차 복종하라”는 원리는 5장 22절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 바른 해석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번역판들은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어떻게 그 순복의 원리를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바울의 교훈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5장 22절에다 “복종하[라]”는 동사를 삽입하였다.

복종하라”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의 문자적인 뜻은 ‘아래에 두다’가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그 동사는"지배를 받다” 혹은 "어떤 사람의 권위적인 지도력을 받아 들인다"는 의미를 취한다.

그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바울이 그리스도인 아내들을 보고 그들의 남편들에게 순종하라고 한 말에 담겨있는 뜻을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그들의 남편들에게 순종하는 일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한 5장 21절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하나의 예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피차 복종하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삶의 분명한 증거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아내가 남편의 영적 지도력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은 그 아내가 일상 생활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결과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기독교 가정에서는, 아내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남편의 영적 지도력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도록 기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아내들이 - 또는 모든 여자들이 - 모든 남자들의 지시에 기꺼이 복종하라고 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질서와 연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정에서 바른 질서와 연합을 확립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로,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복 하는 것은 “주께 하듯 하[는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남편들이 주님과 동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은 주님께 대한 순종에 기초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아내의 겸손한 마음과 행동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바울은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나”라는 말로, 그리스도인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였다.

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은유(隱喩)는 논의(論議)의 주제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성경 주석자들은 그 말이 가정에서의 남자들의 지도력과 권위를 가리키거나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지음을 받은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의 해석을 따를 경우,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남편들이 섬기는 지도자의 역할을 하도록 정해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여자보다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그 같은 책임들을 맡기 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능력이나 가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두 번째의 해석을 따르면, 그 비유는 어떤 지도력이나 권위를 부여하는 것과는 관계 없이 창조 질서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앞서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바울은 결혼이 어떻게 복음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두 가지 해석 방법 혹은 시도는 비유의 본래의 뜻을 놓치고 있을 수도 있다.

머리와 몸은 그들이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서로 돕는 같은 한 몸의 지체가 되고 있다.

바울은 한 폭의 글씨로 결혼이 어떻게 복음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바로 몸의 구주시라”고 하였다.

그는 남편이 아내의 구주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남편과 아내의 구주가 되신다. 

 

교회 내에서의 그리스도의 지도력은 가정 내에서의 남편의 지도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5장 24절

  •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먼저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상기시켜주었다.

그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고 하였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 교회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교인들 각자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들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이다.

건강한 교회는 교인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교회이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아내들을 보고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가르친 근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됨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는 것에다 두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말은 영적 지도력을 뜻한다.

바울은 가정에서의 남편의 지도력을 강조하였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지도력은 ‘섬기는 지도력’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가르치시면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밝히셨는데(막 10: 44 -45), 그는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다 (요 13: 14 -15).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따르라고 가르치시고 (마 7: 21),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본을 보여 주셨다 (마 26: 36).

예수님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기가 가장 이상적인 전제조건(前提條件)은 남편도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자가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남편은 영적인 지도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바울은 아내들에게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하였다.

실제로, 그 같은 순종의 믿음은 부부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6장 5절부터 8절에서 종들에게 말하기를,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하며,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고 하였다.     

 

순종이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남편에게 주는 교훈 (에베소서 5장 25 – 33절)

 

바울은 그리스도인 남편들에게 가족을 하나로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교훈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그들의 아내들을 사랑하라고 하였다.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본보기가 되고 있다.   

 

5장 25 -27절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자기 앞에 영광스로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1 세기 당시의 남편들은 아내에게 군림하며 위세를 부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남편의 위신을 세우는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권에 살았다.

여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남편들이 그같이 생각하며 행동하는 가정들이 많은 것을 보면,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 남편들이 아내를 대하는 상태가 어느 정도였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같이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당시의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바울의 말은, 그것이 비록 그리스도인 남편들에게 한 것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선언이었다.

요즘도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은 실제로 성적 매력이나 타산적인 이해관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살다가 그 같은 기대치가 없어지면, 그 사랑은 곧 식어버리고 만다.

바울은 사랑에 대한 그 같은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남편이 아내에게 베풀어야 될 “사랑”의 성격과 개념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리스도인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바울의 명령은 계속적이고도 지속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는 일은 마음에 들 때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먼저, 바울은 “사랑”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아가페”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배우자를 위한 사랑은 자기 희생적이며,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것이 되고 있음을 밝혔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4 -8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남편에게 자신에 대해서는 죽고 아내를 섬기라는 요구가 되고 있다.

 

     다음으로,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다.

십자가위에서의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은 남편이 가정의 지도자로서 취해야 할 태도와 행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그림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남편에게 자신에 대해서는 죽고 아내를 섬기라는 요구가 되고 있다.

     26절에서, 바울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는 말로, 십자가위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에는 또 다른 사랑의 목적이 있음을 밝혀주었다.

예수님이 그의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또 다른 목적은 신자들이, 곧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거룩해 지는 것이 되고 있다.

거룩하다”로 번역된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용도를 위해 따로 구별되다’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별된다는 말에는 사람들의 삶에 도덕적이고 영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이 바로 믿는 자들의 거룩한 삶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신다 (레 11: 45; 벧전 1: 16).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라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의 속죄 결과를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은 그들의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다.

신부가 결혼하는 날에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목욕을 하는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믿음도 주님을 위해 순결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라는 말은 믿는 자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을 하나의 의식으로 극적으로 표현하는 침례의식을 가리키거나 불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람을 받게 되는 복음의 강한 메시지를 가리킬 수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 남편들에게 주는 하나의 암시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남편은 아내의 죄를 속죄하거나 아내의 영적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을지라도,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가 일상 생활에서 더 거룩한 삶을 살거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갈망하는 방식으로 아내를 사랑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일에는 장기적인 목적이 담겨있다.

그 목적은 마지막 때에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19 장에는 어린 양의 신부가 그리스도에게로 나오기 위해 단장하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 19: 8).  

바울의 신학적 이해로는, 현재의 교회시대는 약혼과 준비의 기간이 되고 있다.

다가올 시기는 결혼기간이 될 것이다.

지금(현재의 삶)은 신자들이 낡은 삶의 모든 특징들 벗어버리고(“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옷]”(태도 및 행동)을 입을 때이다.       

 

5장 28 -30절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 우리는 그 몸의 지체니라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놀라움과 그 목적을 묘사 한 후에, 바울은 그가 가르친 것을 본보기로 그리스도인 남편들에게 적용시켰다.

그는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을 다시 반복하였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바울은 덧붙여 말하기를, 아내를 사랑하되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라고 하였는데, 바꾸어 말하면 그 말은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하라”는 뜻이 되고 있다.

앞의 비유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다]”고 하였다 (5: 23).

그런 다음 바울은 남편들에게 말하기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하였다 (5: 2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말은 “자기의 몸을 사랑하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 같은 맥락에서 추론할 때, 아내는 남편의 몸이 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남편과 아내는 결혼을 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되었으므로,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이다 (창 2: 24).

    

몸의 비유는 결혼생활의 영속성에 대한 견해에 왜 중요한가?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잘 돌본다.

이는 몸이 건강해야 머리도 건강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를 더 이상 돌보지 않기로 결정할 수 없다.

오히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신 것처럼, “양육하고 보호”한다.

보호하다”라는 말은 본래 어미 새가 보금자리에서 알을 부화하기 위해 안전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품고 있는 것을 가리켰다 (신 22: 6).

바울은 다시 한번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하신 것을 규범으로 제시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인 교회를 “양육하고 보호[함으로]” 모든 남편들이 따라 행하여야 할 본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이 교회를 그같이 “양육하고 보호[한]” 실제의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몸의 지체”가 되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는 모든 면에서, 즉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관계 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고 있다.

  

5장 31 -33절

  •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그러나 너희도 각각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바울은 창세기 2장 24절을 인용하여 두 사람이 어떻게 “한 육체”가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결혼의 신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신 다음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 24).

바로 전 구절인 2장 23절에서, 아담은 하와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고백하였다.

하와는 아담에게 추가로 더해진 존재가 아니라, 그의 일부였다.

남편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결혼 관계가 되고 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두 물체를 함께 접착하거나 떨어지지 않게 갖다 붙인다는 뜻이 되고 있다.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은 한 몸의 관계로 함께 결합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결혼 관계를,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셨다 (마 19: 6).   

그것은 부부관계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남자와 여자의 성적, 육체적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 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그것은 단순한 성적 결합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남편과 아내는 모든 면에서, 즉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관계 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바울은 “비밀”이라는 용어를 에베소서에서 이미 네 번에 걸쳐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실 때까지 숨겨져 있던 어떤 것을 묘사하는 말이 되고 있다 (엡 1: 9; 3: 3, 4, 9).

그 말은 6장 19절에서 다시 사용되고 있는데, 매 번마다 그 용어는 복음의 메시지와 관계되고 있다.

그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된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이었다.

바울은 그 비밀이 “크도다” 혹은 “깊도다”고 하였다.

바울은 최초의 결혼 관계 (창 2:24)가 앞으로 있게 될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예시(豫示)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바울이 묘사한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와 그리스도 자신의 관계를 가리키고 있는 모든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을 제시한 것이 되고 있다.

    바울은 33절에서 남편과 아내의 책임을 요약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결혼생활에 대해 교훈하는 것을 마쳤다.

먼저, 바울은 남편들에게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그는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앞에서 말한 순종의 의미를 밝혀주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는 아내의 모든 권리와 의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순종하라 혹은 복종하라는 말로, 그는 가정에서의 남편과 그의 영적 지도력에 대한 건전한 존경심을 의미하였다.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 (6장 1 – 3절)

 

바울은 자녀들에게 교훈하기를,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였다.

그는 독자들에게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을 상기시키시면서,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겠다고 약속 하신 것을 지적하였다. 

 

6장 1 – 3절

  •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나
  •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사도 바울은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아주 분명하고도 간단한 명령이 되고 있다.

그럴 경우, 부모가 자녀에게 나쁜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간혹 가다가 자기 자녀를 악용하는 악한 부모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일이 되고 있다.

만일 그런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순종하라”는 이 명령에는 “주 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이 따르고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같이 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였다.

자녀가 지속적으로 부모에게 불순종한다면, 건전하고도 안정적인 가정이 이루어 질 수 없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도 바울은 또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이유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십계명의 가르침을 들었다 (출 20: 12).

그러면서, 바울은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라는 말로, 십계명의 제 오계명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따르고 있는 것을 상기시켰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모를 잘 공경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약속해 주셨다 (출 20: 12).

그것은 장성한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약속의 말씀이 되고 있다.

바울은 그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다.  

 

부모에게 주는 교훈 (6장 4절)

 

바울은 부모들에게, 특별히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을 교육하는 문제에 대해 교훈하였다.

그는 부모들에게 경건하게 징계하며 하느님의 방법으로 양육하라고 하였다.  

 

6장 4절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처럼,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아비들아”라는 말로, 바울은 이 명령을 특별히 가정의 영적 지도자인 아버지들에게 하였다.
분명히 그리스도인 어머니들도 자녀들을 지도하고 훈련시켜야 할 책임을 아버지와 공유하고 있다.
바울의 이 명령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는 그 당시에 아버지들이 자녀들에 대해 얼마나 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를 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로마 법에 의하면, 아버지가 아기를 원치 않을 경우 죽게 내버려 두어도 죄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자녀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거나 악용하는 일이 자주 생길 수 있었다.
그 같은 문화권에서, 바울은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다.
교훈”이란 용어는 공식적인 교육 환경을 강조하는 반면에, “훈계”라는 용어는 말로 충고해주며 권고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부모는 “주 안에서” 공식적인 방법과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자녀들을 교육하고 양육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양육하다”는 말에는 자녀들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성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돌보며 지원해 준다는 폭 넓은 의미가 담겨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경건한 아내들은 가정에서 남편의 지도력에 순종해야 한다.
  • 경건한 남편들은 희생적이고도 사심 없는 마음으로 그들의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 경건한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를 공경하며 그들의 훈계와 지시를 따라야 한다.
  • 경건한 부모들은 사랑으로 자녀들을 훈계하며 지시해야 한다.          

 

반원들이 다 함께 모여, 당신의 반이 어떻게 하면 지역 사회에서 경건한 결혼생활을 장려 할 수 있는지를 토론해 보자.
그같이 하기 위하여 반원들 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해 보자

 

당신은 삶의 이 시점에서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2월 1일부터 시작되는 겨울 학기 (12, 1, 2)에는 민수기 신명기 배우게 됩니다기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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