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 따르는 삶 - 제 6과 - 2018년 7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12장 1 -14절

by 강호길 posted Jul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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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7월8일 주일

 

 

6과

 

책임이 따르는 삶

 

 

학습구절: 사무엘하 12장 1 -14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

 

주요교리:  구원

진정한 회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암송구절:  시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Create in me a pure heart, O God, 

and renew a steadfast spirit within me.  

 

 

시작하는 글:  

 

대부분의 사업체들이나 조직체들은 재정적인 책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어떤 제도를 만들어 놓고 있다.

금전을 지출하거나 쓸 때에는, 아주 작은 액수일지라도, 그것이 의도된 목적이나 예산에 비추어 사용되었는지 설명되어야 한다.

금전을 출납하는 사람들은 모두 재정적인 결정에 책임을 지게 마련이다.

때로는, 회계사(會計士)가 그들 각자에게 그들의 지출이 정당하고 바른지를 설명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당신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  설명해 보라.

당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문제에 대한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자유와 책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할 수는 있지만, 자기가 행한 일의 결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이유는 성경에 근거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기 때문이다.

 

 

본문배경설명

 

사무엘하 11장 1절부터 12장 31절까지

11장 1절은 다윗의 추락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운명적인 말이 되고 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이스라엘의 모든 군인 들과는 대조적으로, 다윗 왕은 암몬 자손에 대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왕의 나태함은 개인 및 국가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라는 말을 읽을 때 (11: 2), 우리는 그 말에서 이스라엘 왕의 지도력이 안일에 빠져 있던 것을 느끼게 된다.

그 같은 다윗에게 한 여인이 자기 집 안 마당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여인이었다.

다윗은 전령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그 전령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그 여인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다윗은 전령을 보내어 밧세바를 데려오게 하여 동침함으로, 그녀와 간음을 하였다.  

밧세바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다윗은 자기의 죄를 숨기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다윗은 요압에게 기별하여 전쟁터에 나가 있는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불려드렸다 (11: 6).

다윗의 계획은 우리아로 하여금 그의 아내와 함께 지내게 함으로 그를 속여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가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아는 자기의 상관인 요압과 동료 군사들이 전쟁터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함께 자리이까” 하면서 자기 혼자만 집에 가서 쉬기를 거절하였다 (11: 8 -9).

다윗 왕은 우리아의 충성심을 과소 평가했던 것이다.

우리아를 전쟁터로 돌려보내면서, 다윗 왕은 요압에게 보내는 비밀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편에 전하게 하였다.

그 편지에 담겨있는 내용은 우리아를 앞장 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싸우다가 다른 군사들은 뒤로 물러나서 그가 전사를 당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11: 15).

그 전투에서 우리아는 다른 몇 명의 병사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밧세바는 남편을 위하여 곡하였다.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자,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다가 아내로 맞았다.

표면상으로는 그리고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 그 일은 칭찬할 만한 일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 것을 전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보셨다 (11: 27).

하나님은 다윗이 행한 일을 악하게 보셨다.

 

학습구절 연구

 

다윗의 죄를 고발한 나단 (사무엘하 12장 1 -4절)

12: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12: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많으니

12: 3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12: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12장 1절 - 여호와 하나님은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셔서 그가 지은 간음죄와 살인 죄를 고발하게 하셨다.

나단은 조언자로 다윗 왕을 섬긴 신하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 선지자였던 것이다 (삼하 7: 2).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었다 (삼하 7: 4; 히 1: 1).

선지자는 그같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된 청중이나 대상에게 신실하게 전하는 책임이 있었다 (신 18: 15-22).

나단의 고발은 어떤 “한 성읍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므로 나단의 고발은 고발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예화식”으로 된 것이었다. 

나단은 다윗 왕이 그 이야기를 왕의 심판을 요구하는 실제적인 법적 문제로 이해하도록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소송 사건이 생기면 먼저 성읍의 성문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성읍 지도자들에게로 가지고 가서 증언을 하고 판결을 들었다 (신 17: 8 참조).

성읍 장로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소송당사자들은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17: 9).

그러나, 궁극적으로, 인간 중재자로서 가장 높은 역할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따라서 다윗은 자기의 판결이 요구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단의 말을 주의 깊게 자세히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 두 가지 세부 사항의 하나는 한 사람은 부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강자와 약자 혹은 특권층과 취약 층이 서로 겨루는 사례가 되고 있다.  

12장 2 -3절 – 나단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부유한지를 설명함으로써 두 사람을 대조시켰다.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았다).”

유목(遊牧)과 농업 문화권에서 양과 소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히 당시에는 부의 척도와 통용화폐가 되었다.

그렇다고, 선지자는 재물 자체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부자가 행한 것이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이 되고 있음을 밝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그 부자와는 정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 양 한 마리뿐"이었다.

암 양 한 마리를 가지고는 양 떼를 생산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다.

나단이 가난한 사람과 그의 양을 그같이 자세하게 설명한 것은 희생자를 위한 다윗 왕의 동정심과 죄에 대한 분노심을 불러 일으키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12장 4절 – 나단은 이 구절에서 부자가 한 행동에 초점을 맞춤으로 그의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게 하고 있다.

어떤 행인”이 하루 밤을 지낼 곳이 필요하여 부자 집을 찾아왔다.

당시에는 교통수단이나 숙박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여행자를 접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였다.

손님을 잘 접대하는 일은 선한 행실의 증거가 되었다 (딤전 5: 10; 히 13: 2).

그 부자는 여행자를 접대하는데, 자신의 양이나 가축은 아까워서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다)”.   

부자의 행동은 분명히 비난을 받을 만 하였다.

어떤 것도 그 같은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착취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출 23: 6-7, 신 15: 7-11 참조).

왕으로서, 다윗은 특별히 취약한 계층의 백성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는 그같이 분명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같은 일이 일어나게 허용해서는 안되었다.

신자들은 그들의 죄에 대하여 성령님의 책망을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요 16: 8).

우리는 그 같은 책망을 성경말씀을 읽을 때 (딤후 3: 16 -17),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요 16: 8), 다른 믿는 신자들을 통해 (약 5: 19 -20) 들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죄 된 행동을 할 때, 좌시하지 않으신다.

 

죄에 대한 다윗의 판결 (사무엘하 12장 5 -6절)

12: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지니라

12: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12장 5 -6절 우의적(寓意的)인 이야기를 사용하여, 나단은 다윗이 자신의 죄가 얼마나 극악한지를 보고 자신에 대한 판결을 선언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 이야기가 실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격노한 다윗은 나단에게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지라”고 하였다.

성경해석자들은 그 말이 범죄자에 대한 사형 선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폭발로 보고 있다.

다윗 왕이 부과하려는 실제의 형벌은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또한 출애굽기 22장 1절에 있는 ‘배상에 관한 법’에 근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나단의 이야기에 대한 다윗 왕의 반응은 자신에 관해 무엇을 나타내 주고 있는가?

죄에 대한 한 사람의 반응은 그 사람에 관해 무엇을 나타내 주는가?

 

어떤 주석가들은 다윗이 그의 삶 속에서 네 가지 큰 비극을 겪는 것으로 인해 자신의 죄에 대해 네 배로 죄 값을 치른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들은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죽은 일, 그의 딸인 다말이 강간을 당한 일, 그의 아들이 암논이 살해당한 일, 그리고 그를 배반하였던 압살롬이 죽임을 당한 일이 되고 있다.

 

죄를 징벌하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12장 7 -12절)

12: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12: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12: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2: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2: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2장 7절 나단은 그의 비유적인 이야기가 다윗의 눈을 열어 마음에 찔림을 받게 되기를 희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윗 왕에게서는 비유의 진정한 뜻과 목적을 이해하고 있는 증거가 조금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윗은 도리어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며 부자를 정죄하며 매우 격노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의 왕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담대히 선언하였다,

그 말은 비수처럼 다윗의 마음을 찔렀음이 틀림없다.

그런 다음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것은 다윗의 과거를 상기시켜 주며, 그가 행한 죄와 그가 받을 죄과(罪科)를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로 이스라엘 왕이 된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시고, 찾으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으셨다 (삼상 16: 4 ~ 13 참조).

더욱이, 사울 왕이 다윗을 경쟁자로 보기 시작하여 그를 죽일 음모를 꾸몄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 번에 걸쳐 사울의 손에서 그를 “구원”해 주셨다.

구원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육체적인 구출과 영적인 구원 두 가지를 다 가리킬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을 육체적인 위험과 죽음으로부터 구출해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언약은 영원한 구세주와 왕이 되실 분이 다윗의 계보에서 오실 것을 예시하고 있다 (삼하 7: 16; 눅 1: 31 ~ 33 참조).

12장 8 -9 절 - 8절은 다윗이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내용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다스리는 왕이 되게 해 주셨다.

그러시면서,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나단은 다윗 왕의 죄를 간단하게 요약하여 설명하였다.  

죄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윗이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한 것이다.

업신여기다”로 번역된 말은 ‘쓸모 없게 여기다’ 혹은 ‘과소 평가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어느 신자가, 그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서도,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슬픈 일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 모두는 악마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윗에 대한 죄과는 사형에 처할 만큼 중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인 죄가 되었다.

다윗이 칼을 직접 휘두르지 않고 “암몬 자손의 칼”에 맞아 죽게 했을지라도, 그 같은 계획을 짜고 우리아를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점에서 다윗은 우리아를 죽인 죄를 면할 수 없었다.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을 하고 그녀의 남편이 죽자 데려다가 자기의 아내로 삼은 것은 간통죄와 절도죄를 지은 일이 되었다.

“암몬 자손”이 행한 일은 전투행위였지만, 다윗의 소행은 살인이었던 것이다.

12장 10 -12절 – 다윗이 지은 간음죄와 살인죄의 결과는 심각하고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칼을 사용하였다.

이제 하나님은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으로, 그 칼이 그를 벌하는 방법이 될 것을 알려주셨다.

다윗 왕조는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계속 될 것이지만, 폭력과 유혈이 그의 통치 끝까지 왕을 따를 것이다.

다윗은 국가적으로는 전쟁을 겪게 될 것이며, 그의 집 안 내에서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폭려과 음모 및 반역이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다윗이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한 것처럼, 그의 아내들도 빼앗겨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나단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은밀히 행하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하였지만,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고 하셨다.

나단 선지자가 전한 이 메시지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죄는 결코 은폐할 수 없으며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예수님도 그 같은 뜻으로,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눅 8: 1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죄가 반드시 찾아낼 줄 알라”고 경고하였다 (민 32장 23).

   

죄는 실제로 비밀에 부쳐질 수 있는가?  답을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예를 들 수 있는가?

 

자신의 죄를 자백한 다윗 (사무엘하 12장 13 -14절)

12: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의 죄를 사하였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2: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2장 13절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는 말로 다윗은 즉시 자기의 죄를 자백하였다.

죄를 범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과녁이나 표적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통치자로부터 기대하시는 도덕적 규범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율법에 의하면, 다윗은 실제로 죽을 죄를 범한 것을 알 수 있다 (레 20: 10; 24: 17).

그같이 큰 죄를 범하였지만, 다윗은 죄를 회개하고 자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윗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께 자백하자,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라는 말로 다윗이 죄를 사함 받은 것을 알려주었다.

본문에는 다윗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백한 것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시 51편에서 우리는 다윗이 훨씬 더 자세하게 그리고 고통에 차서 고백한 것을 보게 된다.

거기서 다윗은 자신이 범한 중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간청하였다.

다윗은 자기의 죄악을 말갛게 씻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였다 (2절).

다윗은 자기가 죄악 중에서 출생한 것을 인정하였다 (5절).

다윗은 또한 하나님께 우슬초로 자기를 “정결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7절).

그는 또한 한님께서 “구원의 즐거움을 (자기에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12절).

다윗은 자기의 “피 흘린 죄”를 자백하고 그 죄에서 자기를 건져주시기를 간구하였다 (14절).

다윗은 다시 주를 찬송하여 주를 전파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15절).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고 한 말은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되고 있다 (17절).

12장 14절 - 나단은 다윗이 그의 악한 행동으로 인해 그의 가족이 비참한 결과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앞에서 이미 선언하였다.

이 구절에서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은 그 같은 비참한 결과의 하나가 다윗의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어려서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큰 죄를 지을지라도, 그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영원히 사해주신다.

그럴지라도, 그 죄로 인해 생긴 결과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그들이 지은 죄들이 밝혀질 것을 기대하고 있어야 한다.
  • 사람들은 죄를 깨달을 수 있으며 죄에는 심판이 따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 죄에는 결과가 따르며, 결코 비밀로 할 수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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