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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3월 11일 주일

 

 

2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학습구절: 고린도전서 6장 12 -20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거룩한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주요교리: 가정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유일하고도 독특한 선물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하나가 되는 관계를 상징해주며,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여,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가까운 동반자의 삶과 성 관계를 맺게 하는 기틀과 인간의 출산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6장 14절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By his power God raised the Lord from the dead, and he will raise us also.  

 

 

시작하는 글:

 

자기 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못생겼다거나 뚱뚱하다고, 혹은 키가 너무 작다거나 혹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몸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운동을 하며 몸을 가꾼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몸을 특별히 사랑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그 중간쯤이 되고 있다.

이 땅에 사는 한, 우리는 몸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우리는 폭식으로 몸을 해치거나 약물이나 성적 문란 등으로 몸을 더럽히거나 욕되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바른 삶이나 선행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며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한다 (롬 12: 1).

사람이 자기 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몸과 당신의 영적 생활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 몸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나의 일이지, 다른 사람이 상관할 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같은 주장은 특별히 낙태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자들의 슬로건이 되고 있다.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 같은 사고방식에 익숙해 져 있다.

일세기 당시에 고린도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식도락이나 혹은 성적 방종 등의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생활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들이 이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되었는데도, 옛날에 하던 생활이 허용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바울은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이들 신자들이 그들의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자신의 마음대로 행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들의 몸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 (6: 19 -20).

 

본문배경설명

 

고린도전서 5장 1절 – 6장 20절까지

고린도 교회 내에서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언급 한 후, 바울은 자신이 들은 다른 문제에 초점을 돌렸다.

그것은 교회 내의 “음행”의 문제로,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일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아내는 계모였거나 일부다처였을 경우 아버지의 첩들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같은 일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었다 (5: 1).

그같이 비윤리적이고 악명 높은 성적 부도덕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6장 1절부터 11절에서, 바울은 신자들 사이의 소송의 문제에 대해 말하였다.

그들은 성도들 간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해서 세상 법정에다 호소하는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서로 평가하고 판단할 모든 권리가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5: 12).

바울은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고 힐문하였다.

한 교회 성도들이 서로 고발할뿐더러, “그 형제 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없어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하였다(6: 5).

바울은 형제끼리 이방 법정에 나가 피차 고발하기보다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났고 “차라리 속는 것”이 났다고 하였다 (6: 7).

바울은 6장 9 -11절에서 성적 부도덕에 대한 문제를 다시 거론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금주의 학습구절에 대한 설명이 되고 있다 (6: 12-20).

이번 주의 학습구절들은 바울이 5장부터 11장까지에서 다루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주제 속에 포함되어 있다.  

고린도 교회의 신도들 각자는 자신과 자신의 기쁨이나 신분에만 관심을 두었다.

주제가 성적 부도덕이거나, 결혼생활, 또는 먹고 마시는 일이거나 주의 만찬이건 간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으로서 이기심 없이 삶으로 서로 존경하라고 권면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그리스도의 주권에 초점을 맞추는 삶 (고린도전서 6장 12 -14절)

6: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이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6: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6: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6장 12절 -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인기 있는 슬로건들을 사용하여 삶의 방식이나 모습을 표현할 때가 많다.

고린도 (Corinth)시에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던 슬로건 중의 하나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 슬로건을 네 번에 걸쳐 인용을 하였는데, 6장 12절에서 두 번, 그리고 10장 23절에서 두 번을 인용하였다.

고린도 신자들 중에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라는 이 슬로건을 잘못 적용하여, 경건치 않은 행동과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는데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구절은 사도 바울이 그같이 하려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과 생활 태도를 지적하며 그릇됨을 깨우쳐 주는 내용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바울의 핵심적인 신학 주제가 되고 있다 (갈 5: 1참조).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허용은 결코 죄를 지어도 된다는 면허증이 아니다.

만일 그같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은혜와 복음에 대한 오해이다.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였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 1 -2).

바울은 또한 신자들이 누릴 수 있는 허용과 자유라는 개념에 두 가지 검증을 거치게 하였다.   

첫째로,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하였다.

첫째의 검증은 그것이 “유익한 것”이냐 이다.

그것은 신자들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일을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나 주님의 일에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좋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 아닌지를 물어보라고 한다,  

바울은 그 같은 ‘검증의 개념’을 성도들이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에다 적용시켰다 (8: 1 -13 참조).

거기서 바울은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하였다.

둘째로,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얽매이다’라는 말은 ‘지배를 받다’ 혹은 ‘노예가 되다’라는 뜻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식욕의 지배를 받거나 노예가 될 위험이 있다.  

오늘 날에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인터넷에 얽매이거나 종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히브리서 기자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을 알라”고 한 말도(히 13: 5) 실제로는 돈의 노예가 되거나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  

죄가 되는 일이 아닐지라도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이면, 우리는 그 같은 것들을 삼갈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며 그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억제나 도전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면, 그리스도인들이 노예로 전락되기 쉬운 영역들로 어떤 것들을 들 수 있는가?

 6장 13절 – 바울이 다음으로 인용한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라는 말은 믿지 않는 일반 사회에서 쓰이던 슬로건이었는데, 일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성적 문란과 부도덕한 생활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사람이 살기 위해 혹은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 본능이자 자연적인 현상인 것처럼,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도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같이 지으셨다는 것이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그들이 그 같은 주장을 하고 나선데 에는 당시에 유행했던 “이원론”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원론은 당시의 한 철학적인 사상으로, 인간은 영(靈)과 육(肉)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원론의 주장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영혼이 육체 속에 거하지만, 죽으면 몸은 썩어져 없어져 버리고 영혼만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원론자들은, 그 같은 전제하에, 성적인 것을 포함하여 인간의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구원의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였다.  

육체는 죽음으로 없어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몸으로 행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바울은 그 같은 생각과 주장을 강하게 반대하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인간이 몸으로 행하는 일들을 중요하게 여기시며 심판하신다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인간의 일시적인 것들은 “다 폐하시리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지으신 본래의 목적을 밝혀주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몸을 주셔서 이 땅에 살면서 그를 영화롭게 하며 섬기게 하셨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육체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자유가 없다.

인간은, 성적 욕구를 포함하여, 모든 욕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법으로 충족시켜야 한다.

6장 14절 – “부활의 교리”는 성적 순결을 요구하는 바울의 주장에 핵심이 되고 있다.

그 같은 뜻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한 그의 말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전 15: 32).  

그래서 바울은 먼저 “하나님이 주를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리라”는 말로 부활의 교리를 확언하였다.

그러므로, 신자가 이 세상에서 행하는 것은 다가 올 영원한 삶에 큰 의미를 지니며 중요성을 갖게 된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 말하기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하였다 (고전 15: 52).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신자들 (고린도전서 6장 15 -17절)

6: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6: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으니

6: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6장 15절  - 12절부터 14절까지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이 성적 부도덕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을 강하게 논박하였다.

그런 다음, 15절부터 17절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은 그리스도의 몸을 치욕스럽게 하는 일이 됨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바울은 먼저 성도들에게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구원을 얻을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의 하나는 믿는 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같이 하나가 된 것을, 포도 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 유기적이고도 뗄 수 없는 관계로 묘사하셨다 (요 15: 4 -5).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포도나무 가지들이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믿는 자들은 영적으로 예수님에게 연결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요 15: 5).    

예수님은 또한 아버지와 그가 성령님을 통해 신자들 안에 거하시며 신자들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는 것을 밝혀주셨다 (요 14: 20).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침례로 상징되고 있는 것같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장사되었다가 부활함으로 하나가 되어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사람들)”이다 (롬 6: 4).

그러니까, 믿는 자들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이다.

그 같은 가르침을 배경으로 삼아, 바울은 수사학적인 질문으로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고 질문하였다.

당시 고린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창기 혹은 매춘부가 있었다.

한 종류는 길거리에서 매춘행위를 하는 매춘부들이었고, 다른 한 종류는 이방 신전에서 종교의식으로 매춘하는 창기들이었다.

이들의 성행위는 이방 신을 예배하는 의식의 일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수입의 근원이 되었다.

신자들이 그 같은 종류의 창기들과 성적 관계를 맺을 경우, 결과적으로 그것은 성적 부정을 범할 뿐 아니라 우상 숭배의 영적 죄도 범하는 일이 되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는 말로 강하게 부정하였다.  

6장 16 -17절  -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적인 문제는 가볍게 취급할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하고도 심각하게 여겨야 될 일이다.

하나님은 성적 결합을 통하여 한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게 해 주셨다 (창 2: 24).

그 성적 결합이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행해지면,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인 동시에 귀한 선물이다.

그러나 가정의 테두리 밖에서 행해지는 성적 관계는 음행이나 우상 숭배로, 죄를 짓는 일이 되며 그리스도인의 몸인 교회를 부끄럽게 하는 일이 되고 있다.

특별히 바울은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 알지 못하느냐”는 말로, 그 같은 일을 경고하였다.

사람들이 인간적인 차원에서 성적 결합을 이룰 때, 그들은 한 몸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영적인 차원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합하게 될 때, 바울은 말하기를, “한 영이니라”고 하였다.

 

성령의 전인 신자의 몸 (고린도전서 6장 18 -20절)

6: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느니라

6: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6: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6장 18절 –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신도들에게 “음행을 피하라”고 하였다.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맞서 싸우거나 피하는 것이 일반적인 본능이다.

용감한 사람들은 투사정신을 발휘한다.

소심하거나 겁이 많은 사람들은 아예 도망한다.

성적인 죄의 유혹에 대한 바울의 명령은 “피하라”는 것이다.

믿음이 성숙한 신자는 성적인 유혹을 이길 수 있고 그 같은 유혹의 상황에 처해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 같은 종류의 거짓된 용기는 죄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성적 유혹이 있는 장소나 상황을 피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요셉이 한 것처럼 (창 39장), 지혜 있는 행동이다.  

 

성적 유혹이 있는 장소나 상황을 피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지혜 있는 행동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 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해서는 성경학자들간에 다른 견해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바울이 성적인 죄는 다른 죄들보다는 독특한 방법으로 더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성적인 죄는 먼저 하나님에게 그리고 가까운 관계를 맺고 사람들에게 범하는 일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몸에 죄를 짓는 일이 된다.

성적 결합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창 2: 24).

 6장 19 -20절 –이제 바울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로, 성도들 각자가 성적 순결을 지키는 일이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이유를 밝혀주고 있다.

이미 3장 16절과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한 지역교회의 전체 교인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의 책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고린도 시에는 신이나 신의 형상이 살고 있는 집들로 생각되었던 이교 사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같은 사상에 젖어있던 새로 믿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의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곳 6장 10절에서, 바울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는 말로 성도들 각자가 성령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전”이 된다고 하였다.  

성령님께서 신자 각자 안에 친히 거하시기 때문에(롬 8: 9), 신자의 바로 그 몸은 거룩하며 성령님에 의해 구별된 삶을 산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하나님 자신의 선물이다.

신자들이 성적 부정행위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하나님의 성령을 불명예스럽게 하며 근심되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고전 4: 2, 7 참조).

신자가 성적 부도덕에 빠지면, 그것은 신자의 몸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바울은 “성전”이라는 잘 알려진 당시의 문화적 이미지로부터 “노예”라는 다른 사회적 이미지로 주제를 바꾸었다.

당시 고대사회에서 종들은 사고 파는 상품이었다.

그런 노예들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바울의 말에는 그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말을 신자들에게 적용시켰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지면을 내어 신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하도록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엄청난 “”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복음의 중심이 되고 있음을 이미 기록하였다 (1: 17, 18, 24 참조).

로마서 6: 15-23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고, 지금은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 18 -19에서 말하기를, 신자들이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대속하다’라는 말에는 ‘값을 치르고 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사도 바울은 이 학습구절 단원을 “음행을 피하라”는 경고의 말로 시작하였다.

이제 그는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놀라운 명령으로 끝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몸을 계속 죄의 무기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몸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후에 그의 편지에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기록하였다 (고전 10: 31).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세상의 일시적인 것들이 아니라 주님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춤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
  • 신자들은 자신들의 몸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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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예수님의 명령 - 제 7과 - 2019년 4월 14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9장 14 -27절 강호길 2019.04.08 1146
283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다 - 2015년 9월 6일 장년성경공부 교사용 창세기 제 1과 2 Hokil 2015.10.10 1123
282 사울의 회심과 개종 - 2016년 5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10과 - 사도행전 공부 강호길 2016.04.30 1100
281 유혹을 받다 - 제 11과 - 2019년 2월 10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9장 3 -12, 19 -21절 강호길 2019.02.04 1087
280 임무를 맡은 제자들: 2016년 3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제 1과 사도행전 공부 강호길 2016.02.27 1024
279 절제의 믿음 - 제 11과 - 2018년 11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3장 1 – 12절 강호길 2018.11.06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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