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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4과

선지자보다 크신 예수님

학습구절:  마태복음 21장 1 -11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왕에 대한 예언들을 성취하셨다.

주요교리: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큰 사랑과 존경과 순종의 빚을 지고 있다.

암송구절: 마태복음 21장 9절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The crowds that went ahead of him and those who followed shouted,

“Hosanna to the Son of David!”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heaven!”   

시작하는 글:

대통령이 축제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군중들은 대형 경기장으로 모여들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관중석을 가득 채웠다.

경기장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벌렸다.

대통령이 무개차(無蓋車)를 타고 경기장에 들어오자,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지면서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함께 춤을 추었다. 

대통령이 일어서자 관중석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대통령이 앉을 때가지 서 있었다.

그 축제는 수 시간 동안 계속되었는데, 대통령이 경기장을 떠나고 나 후 한참이 지날 때까지 아무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마태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야의 도착을 예상하고 있던 엄청난 무리의 군중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묘사하였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으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야에 대한 기대로 인하여 흥분에 쌓여있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군중들은 그를 메시야로 맞았다.

그들은 기쁨에 가득 차서, 예수님을 맞이하는 큰 환영행렬에 참가하였다.

그들은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였지만, 그가 이스라엘이 수세기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왕이 되시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였다.

배경설명:

마태복음 21장 1 -17절

예수님은 전에 대대적인 환영 인파가 없이 여러 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

예수님은 심지어 직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가신 적도 있었다 (요 7: 1 -10).

예수님께서 한번은 북동쪽 문으로 걸어 들어가시다가 베데스다(Bethesda)라는 못에서 멈추어 서셔서 익명으로 한 병자를 고쳐 주셨다 (요 5: 1 -9).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예수님이 자신의 도착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는데도, 많은 군중이 그를 맞으려고 모여들었다.

갈릴리에서 오는 선지자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퍼지면서 군중들의 수는 불어났다.

찬양으로 맞이하면서도, 군중들은 예수님의 본성과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라고 생각했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매혹되었고, 그의 치유에 감사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지만, 그들 중 누구도 다음주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뒤 엎으시고, 또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들의 세상이 뒤집어졌을 때, 그들의 환호는 조소와 야유로 바뀌게 되었다.

요한은 예수님이 사역 초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시어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일을 기록하였다 (요 2: 13 -17).

마태와 다른 공관복음서 기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 이 사건과 다를 경우,

그 같은 세속적인 일은 그 기간 동안에도 성전 경내서 계속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유명 인사들은 단순히 군중의 환호와 과찬을 즐겨 했겠지만, 예수님은 거룩한 희생의 장소가 되는 자신을 준비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셨다.

어린이들은 진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뻐하며 온전한 찬미로 그를 맞이하였는데 반해, 유대 지도자들은 적대감으로 대했다.

그들은 성전 뜰을 매매의 장소로 만든 것에 대한 예수님의 강한 질책뿐 아니라, 예수님이 백성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인해 크게 도전을 받았다.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과 그의 권세에 강하게 적대하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학습구절연구:

왕의 특권 (마태복음 21장 1 -5절)

21: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1: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21: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21: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21: 5    시온 달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21장 1절 –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거룩한 성으로 가는 마지막 길이 되었으므로, 그는 “굳게 결심”을 하고 떠나셨다 (눅 9: 51).

그는 얼마 있지 않아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다.

세상의 어떤 것도 그가 유일한 목적을 이루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예수님의 일행은 여리고에서 떠나, 예루살렘의 동북쪽 편으로 오셔서, “감람 산 벳바게”에 도착하셨다.  

감람 산”은 예루살렘의 바로 동쪽에 있는 작은 동산으로,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 되고 있다.

에스겔은 성전을 떠난 하나님의 영광이 이 산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고(스 11: 23), 다윗은 배신한 아들 압살롬을 피하여 이 산길을 올라가며 울었다 (삼하 15: 30).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예수님은 이 산에서 성을 바라보시며 우셨다 (눅 19: 41).

예수님은 종종 기도하러 이 산에 있는 감란원에 오시곤 하였다 (눅 21: 37).

이날 후 오래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이 산 위에 앉으셔서 그의 재림과 관계되고 있는 일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셨다 (마 24: 3).

감람 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예수님은 배신을 당하시고 체포되셨다 (마 26: 36 -46).

후에 예수님은 이 산에서 승천하셨고(행 1: 11 -12), 권능과 영광 중에 그곳으로 재림하실 것이다(스 14: 4).  

예루살렘 주위에는 “벳바게”와 “베다니”를 포함하여 작은 마을들과 성읍들이 있었다.

벳바게는 합성어로, “어린 무화과 나무의 집”이라는 뜻이다.

오늘 날에는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벳바게가 성경에서 더 자주 언급되고 있는 베다니 보다 더 크고 더 많이 알려졌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특별한 임무를 맡겨서 “두 제자”를 보내셨다.

마태는 두 제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만일 예수님이 그 일을 행하도록 세베대의 두 아들을 택하여 보내셨다면,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에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그들을 그의 왕국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생각할 때, 흥미 있는 일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 20: 20 -28).

나귀를 끌어 오는 일은 예수님이 섬김에 대해 그들을 가르치실 수 있는 좋은 실물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21장 2절 –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 너희는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고 하셨다.

맞은 편 마을”이 어느 곳인지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그 마을이 베다니였을 가능성이 크다.

마가복음 11장 1절과 누가복음 19장 29절에서 두 마을이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두 마을은 같은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두 제자가 바로 이웃 마을로 가면, 나귀 한 마리가 줄에 매여 있고 그 곁에 나귀새끼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그 나귀를 풀어서 나귀 새끼와 함께 주님께로 끌어오는 것이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나귀와 나귀 새끼에 대해 아신 것은 모든 것을 아시는 그의 신적인 전지성(全智性)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님이 나귀 주인과 미리 약정해 놓으신 후 제자들에게 그같이 지시하신 것으로 생각하는 성경학자들도 있다.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지식에 기초하여 그같이 지시하셨는지 혹은 사전의 준비를 통해 하셨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지력을 갖고 계셨던 것을 알고 있다.

21장 3절 - 예수님은 또한 두 제자에게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 하였다.

그 말에서는 짐승의 주인이 예수님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 헌신하고 있던 사람인 것이 나타나고 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후원자는 예수님이 전에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에 그를 만났던 것이 분명하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말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주인은 예수님을 랍비나 선지자의 하나로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영접했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두 제자는 주께서 쓰시겠다고 대답하면 되었다.

그러면, 주인은 즉시 끌어가게 허락할 것이다.

마가복음 11: 5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실제로 그같이 물었다.

21장 4 -5절 - 예수님의 생애에서 어떤 것도 우연하게 일어난 일은 없다.

모든 것이 의도적이었고 목적이 있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의 일부였다.

당시 왕들이 수도에 입성할 때는, 평화의 시기나 전쟁의 때에 따라, 다양한 방법과 모습으로 하였다.

예수님의 입성은 시온의 왕에 대한 한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일이 되었다.

이 구절에서 언급된 “선지자”는 스가랴인데,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550년 전에 메시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하였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 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 9: 9).

이 예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단순히 나라의 수도로 보시지 않고, “시온의 딸”로 보셨다.

시온”은 한때 여부스 사람들에게 속해 있던 산성들 중의 하나였는데. 다윗이 그것을 빼앗아 그의 도성(都城)으로 삼았고 후에 예루살렘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삼하 5: 7).  

그래서 예루살렘 혹은 시온은 “다윗의 성”으로 불려졌다 (왕상 8: 1). 

시온은 또한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열왕기 하 19장 21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처녀 딸 시온” 혹은 “딸 예루살렘”으로 부르셨다.

둘째는, 시온 왕의 온유한 성격이 되고 있다.

메시야는 강한 군마(軍馬)가 아니라, “나귀”를 타고 도성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 모습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온 호전적인 침략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온유한 분이 되신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도 계속해서 자기에게로 와서 배우고 쉼을 얻으라고 사람들을 초청하신다.

이는 그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이다 (마 11: 29).

온유하다”는 말로 번역된 용어는 부드럽다는 뜻이 되고 있다.

어느 개념도 약한 것을 암시하지 않는다.

아무도 마음과 성격이 강하지 않고는 예수님이 하신 것을 할 수 없다.

오히려, 예수님은 온유할 만큼 강하고 용감하셨다.

어떤 성경 주석자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나귀와 나귀 새끼에 타고 가셨는지를 설명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소수의 주석자들만이 예수님이 나귀와 나귀 새끼를 번갈아 타셨다고 믿고 있다.

어떤 주석자들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가시고 나귀새끼는 곁에서 따라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경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귀와 그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셨지만, 그는 “아직 아무도 타보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막 11: 2; 눅 19: 30).

 

왕이 받은 축하 (마태복음 21장 6 -9절)

21: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21: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21: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21: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21장 6-7절 제자들은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행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예수님께서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도록 준비를 갖추어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제자는 예수님의 지시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왔다.

나귀와 나귀 새끼는 굴레를 쓰고 고삐가 달려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어느 것도 안장이 없었다.

제자들은 적당한 안장이나 담요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겉 옷을 벗어 안장으로 사용하였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와 나귀 새끼 위에 얹어놓았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귀와 나귀 새끼를 타시고 길을 가셨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타신 것은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로 밝히고 있다 (막 11: 2; 눅 19: 30).  

제자들은 주님이 어떤 것을 타실지 몰랐지만, 예수님은 아셨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평화로 오시는 왕의 상징이 되었다. 

이 왕은 또한 백성들에게 진정한 구원을 베풀겠지만,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전례가 없는 방법으로 할 것이다.

21장 8 -9절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 건물 바로 북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의 동쪽 성벽에 있는 성문을 통해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길은 베다니와 벳바게 그리고 감란 산에서 오는 가장 직행거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그의 목적지인 성전 가까이로 인도하는 길이 되었다.

그 부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에 모여있었다.

또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자연히 큰 무리가 모여들었다.

결국, 예수님의 명성은 그보다 먼저 퍼졌던 것이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시자, “무리의 대다수”는, 당시 왕이 지나가는 길에 양탄자를 깔아 놓듯,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그들의 겉옷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나무 가지를 꺾어 길에 깔아 놓기도 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메시야이자 왕이 되시는 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상징이었다.

백성들은 시편 118: 25 -26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환호하였다.

앞에 서서 가는 무리들과 뒤에서 따라가는 무리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면서

큰 소리로 예수님을 환호하였다.   

호산나”라는 말은 아람어로, 문자 그대로의 뜻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이다.

그 말은 그들이 예수님 앞에서 기뻐할 때 적절한 경배의 표현이 되었다.

때가 되면, 그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들이 구원받는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불렀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오심은 그가 다윗 왕의 통치하의 이스라엘 나라와 비슷한 왕국을 세울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고난 받는 구세주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왕을 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시야의 왕국이 그의 희생 위에 세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정복자가 될 왕을 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 달려 죽을 왕에 대한 인식은 조금도 없었다.

시편 118편 26절에 의하면, 메시야는 “주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오는 자로 보았지만, 그를 주와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혼동 (마태복음 21장 10 -11절)

21: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21: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21장 10절 - 예수님이 큰 무리의 환호와 찬송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들어오시자, “온 성이 소동하여” 그가 누구냐고 묻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같이 자발적이고도 거대한 축하의 중심인물에 대해 알기를 원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정치적인 퍼레이드로 인해 성읍이 그같이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자주 보았지만,

종교적인 인물로 인해 그 같은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

자연히, 사람들은 그 같은 소동의 중심이 되는 인물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어하였다.

21장 11절 – “이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해, 군중 가운데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실제로 예수님의 진짜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대답이다.

선지자”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신 메시야이자 왕이 되신다.

이 과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은 선지자의 하나가 아니라,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한 매시야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선지자보다 크신 분이시다.

지금도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나 교사 혹은 기적을 베푼 자로 생각하고, 메시야나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말씀을 상황에 적용하기:

  • 예수님은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는 주권자이시다.
  •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는 분이시다.
  • 예수님은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약속된 메시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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