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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5월 9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10과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학습구절: 누가복음 22장 54 -62절    

 

성경진리:

예수님을 부인(否認)하는 것은 슬픈 일인 동시에 죄(罪)가 되는 일이다.       

                   

주요교리: 전도와 선교     

믿음 생활로 입증되는 말의 전도와 그리스도의 복음과 조화를 이루는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믿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의무(義務)이자 책임(責任)이 되고 있다 (딤후 4: 5).    

 

 

암송구절:  누가복음 22장 70절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They all asked, “Are you then the Son of God?”  

He replied, “You say that I am.”  

 

 

시작하는 글:  

 

예수님께서 일찍이 하신 말씀 중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을 하나 들라면 그를 부인(否認)하는 것에 대한 말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가르치신다 (마 10: 33).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의 중보자(仲保者)가 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이 되고 있다.

예수님을 부인(否認)하는 것은 슬픈 일인 동시에 죄(罪)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실 때, 베드로는 그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슬프고도 마음 아픈 일을 경험하였다.

베드로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비통함과 그렇게 한 후 용서받을 수 있는 희망에 대해 배우게 된다.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당신이 느꼈던 감정을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22장 54절로부터 71절까지  
 

예수님이 체포될 것이 분명해지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어둠 속으로 도망하였다 (마 26: 56).

그렇지만, 경비병들이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관저로 끌고 갈 때,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예수님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 갔다.

또 다른 제자인 요한도 그들 무리를 따라갔는데, 그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자기는 물론  “문 지키는 여종”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대제사장의 집 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요 18: 15 -16).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며 도전(挑戰)하였다.       

깜짝 놀란 베드로는 여종의 말을 부인하여 말하기를 “나는 아니라”고 하였다 (요 18: 17).

베드로는 뜰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는 날이 추워서 종들과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놓고 서서 혹은 앉아서 불을 쬐고 있었다 (요 18: 18).

겟세마네 동산에서 경비병들을 피해 도망쳤던 베드로가 이제 대제사장의 관저(官邸) 뜰에서 그들 경비병들과 종들과 함께 어울려 불을 쬐고 있은 것은 역설적(逆說的)인 일이 되고 있다 (눅 22: 56; 요 18: 25).

다른 한 사람은 베드로를 보고 “너도 그 도당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였다 (눅 22: 58; 요 18: 25).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고 강하게 부인한다 (눅 22: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장담한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고 하였다.    

그는 베드로에게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하였다 (마 26: 73).

요한복음은 그 사람이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종의 친척으로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본 것으로 밝히고 있다 (요 18: 26).

베드로는 “저주하며” 세 번째로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강하게 부인하였다 (막 14: 71).

     베드로가 그같이 말하자 마자, “닭이 곧 울[었다]” (눅 22: 60). 

예수님께서 뜰 건너편으로부터 돌이켜 베드로를 쳐다보셨다.

베드로는 자신이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예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 (눅 22: 31 -34).    

자기가 행한 일의 심각함과 엄청남을 깨달았기 때문에, 베드로는 관저 밖으로 도망하면서 “심히 통곡하[였다.]”       

     예수님은 그날 밤에 가야바의 관저에서 심문(審問)을 받으셨다 (마 26: 57 -68).

산헤드린 앞에서의 공식적(公式的)인 재판(裁判)은 날이 새기 전에 시작할 수 없었다.

그들의 심문(審問)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시느냐에 초점(焦點)을 맞추었다.    

거짓 증인(證人)들은 예수님을 정죄(定罪)하는 증언(證言)들을 하였지만,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해서는 그의 증언이 필요하였다 (막 14: 55 -62).

주님의 적들은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주님을 대적하기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학습구절 연구

 

멀찍이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따른 베드로 (누가복음 22장 54 -55절)  

 

시몬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을 칼로 친 행동(行動)은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것인지 혹은 용기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確實)하고 분명(分明)한 것은, 예수님이 개입(介入)하셔서 폭력적(暴力的)인 상황이 중단된 후,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이 두려움에 차서 동산에서 흩어졌다는 사실(事實)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체포한 무리가 그를 이끌고 대제사장의 관저에 도착할 때까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예수님이 심문을 받기 위해 대제사장 관저 안으로 끌려 들어가셨을 때, 베드로는 요한의 도움을 받아 뜰 안으로 들어가 불을 피우고 둘러 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 사람들 틈에 합류(合流)하였다 (요 18: 15 -18).

 

누가복음 22장 54절

  •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이 구절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사건(事件)으로부터 예수님이 유대인 지도자들 앞에서 심문을 받기 위해 대제사장의 관저로 끌려가신 초기의 사건으로 바뀌는 전환점(轉換點)이 되고 있다.  

그 후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事件)들은 예수님께 일어난 일들을 묘사(描寫)하고 있는 것들이 되고 있지만, 54절부터 62절까지의 이야기는 시몬 베드로에게 초점(焦點)이 맞추어지고 있다. 

잡아”라는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動詞)는 ‘체포하다’를 뜻하는 전문용어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먼저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갔다.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신 복음서의 기록에는 ‘안나스’와 ‘가야바’ 두 사람이 대제사장으로 언급되고 있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에 대한 첫 번째 심문이 안나스 앞에서 먼저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 18: 13 참조).

안나스는 주후 6년 경에 수리아 지역의 로마 총독이었던 구레뇨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눅 2: 2 참조).

그러나 안나스는 서기 15 년에 퇴임했으며,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실 당시에는 그의 사위인 가야바가 실제로 대제사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야바는 서기 18 년부터 37 년까지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직(奉職)하였다.                 

안나스는 대제사장 직분에서 퇴임(退任)한 후에도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 위에 군림(君臨)하며 상당한 영향력(影響力)을 행사하였다.

이것이 그가 예수님을 제일 먼저 심문한 이유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누가복음 22장 54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제사장의 집”은 가야바의 관저(官邸)인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제사장의 저택은 71명이나 되는 산헤드린의 모든 구성원들이 모일만큼 큰 장소가 되었다.

     산헤드린은 종교적 문제에 대한 사법권과 형사권을 가진 유대인의 최고의회이자 의결기구였다.

그 구성원(構成員)은 71명으로, 의장인 현직 대제사장을 포함하여 모든 역대 대제사장들, 장로들(족장 및 지파의 대표들)과 서기관들이 되었다.

산헤드린의 회원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당시에 유대인들에 대한 최종적(最終的)인 법적 권한(權限)은 로마정부가 갖고 있었다.

공회(公會) 혹은 산헤드린은 어떤 사람을 처형할 권한(權限)이 없었다.

공회가 예수님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적절한 죄명과 죄목을 로마정부에 제공하여 로마총독으로 하여금 처형하게 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헤드린의 목적(目的)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직접 이스라엘의 왕인 메시야라고 주장하게 함으로서 로마정부에 대한 반란 죄를 구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있다.

 

누가복음 22장 55절

  •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 날밤이 추웠던 것이 분명하다.  

이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관저로 끌고 온 성전 경비병들과 종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부유(富有)하고 권력(權力)있는 사람들의 큰 저택들은 대부분 뜰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뜰들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에는 큰 문이 있어서 하인들이 지켰다.

예수님을 “잡아 끌고” 간 무리는 이미 뜰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었다 (요 18: 16).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요한이라고 밝히고 있는 또 다른 제자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따라왔었는데, 그는 대제사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베드로가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본 그는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올 수 있었다 (요 18: 15 -16).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며 그를 가까이 따를 때, 어떤 위험(危險)이나 손해(損害)들을 감수하게 됩니까?

당신이 믿는 기독교와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유혹을 받은 경우는 언제입니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누가복음 22장 56 -60절상)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라”고 하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否認)하였다 (요 18: 17).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그를 보고 “너도 그 도당이라”고 하자, “이 사람아 나는 아니라”고 부인(否認)하였다.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베드로를 가리켜 장담하여 말하기를,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고 하면서 제자 중의 하나가 틀림 없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며 강하게 부인(否認)하였다.    

 

누가복음 22장 56 -57절:

  •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노라 하더라     

어둠 속에 머무르는 동안, 베드로는 어느 정도 안전하였다.

그러나, “불빛을 향하여” 앉았을 때에, 그는 유심히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었다.    

한 여종이” 그를 “주목하여” 보았다.

그 여종은 조금 전에 문지기로 일하면서 요한의 요청을 받고 베드로를 안으로 들여 보낸 사람이었다 (요 18: 16 -17).

그 여종은 불을 쬐고 있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를 가리켜 말하기를,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였다.

    

누가복음 22장 58 - 60절상:

  •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이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이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조금 후에”라는 말은 베드로의 속임 수가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간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어쩌면 그가 불 옆에 안절부절 못하고 앉아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여종이 말한 것에 대해 속삭이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는 일어나 “앞문까지” 나아갔다 (마 26: 71).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하였다 (마 26: 71).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否認)하여” 말하기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마 26: 72).

     베드로는 그같이 부인한 것으로 별 문제없이 한동안 지나갈 수 있었지만, 약 한 시간 후에 다른 “또 한 사람이” 나서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더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베드로에게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고 하면서,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하였다 (마 26: 73).

더구나, 그는 베드로가 갈릴리 억양을 쓰는 “갈릴리 사람”인 것을 보면 “장담[한다]”고 하였다.

베드로가 주위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는 의심되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베드로가 부인하면서 대답하는 말을 들은 것은 확실하다 (마 26: 73; 막 14: 70).

세 번째로 대답할 때, 베드로는 저주하는 말로 맹세까지 하였다 (막 14: 71; 마 26: 74).

어쩌면 베드로는 자기가 그같이 거칠게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더 가능해 보이는 것은, 베드로가 너무나 두려움에 찬 나머지 본능적(本能的)으로 어부 시절의 저속한 언어를 다시 사영했을 수 있다.

대제사장과 알고 있던 요한은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그같이 말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으로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 되고 있음을 밝혔다 (요 18: 26).     

 

당신은 오늘날 일부 신자들에게서 베드로가 느꼈던 두려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위험은 무엇입니까?

 

패배감과 슬픔에 가득 찬 베드로 (누가복음 22장 60하  -62절)

 

베드로가 세 번째 부인하자 수탉이 곧 울어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졌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언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다.

그는 재빨리 대제사장의 집 뜰을 떠나, 밖으로 나가면서 “심히 통곡하[였다.]”

 

누가복음 22장 60하 61절:

  •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인간(人間)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전 3장) 무슨 일이나 때가 중요(重要)하다.

베드로가 세 번째로 예수님을 부인하였을 때 “닭이 곧 울[었다.]”

만일 그 일이 반 시간 후에 일어났다면, 베드로는 닭이 우는 것과 예수님의 경고를 연결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베드로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었다는 사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의심의 여지 없이 밝혀주는 일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 속에서 그 같은 방법으로 일하신다.

부모(父母)의 징계(懲戒)가 때에 맞게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자녀들이 잘못된 행동(行動)과 징계(懲戒) 사이의 연관성(聯關性)을 이해(理解)할 수 있다.

그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서 징계와 축복을 바로 적절한 때에 베풀어 주셔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시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61절은 닭이 울 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말은 ‘바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관저의 뜰로 끌려 나와 베드로의 맞은 편에 서 계셨던 것을 뜻할 수 있다.

일부 주석자들은 대제사장의 관저에 두 개의 뜰이 있었던 것으로 묘사(描寫)하고 있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던 ‘안 뜰’이고, 다른 하나는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경비병들과 종들이 불을 피워놓고 쬐고 있던 ‘바깥뜰’이 되고 있다.  

그 같을 경우, 예수님은 안뜰의 그의 위치(位置)에서 “돌이켜” 출입 문을 통해 바깥뜰에 있는 베드로를 보실 수 있으셨다.

     이른 새벽 시간에 수탉 소리가 들리자마자,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돌이켜”라는 말로 번역된 용어는 분사구로, "돌이키면서, 보셨다”는 말이 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그같이 돌이키신 행위는 그가 심문을 받고 계셨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계셨지만, 몸을 그에게로 돌리셨다.

“보시니”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똑바로 응시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때 예수님의 얼굴과 눈에는 슬픈 빛이 강하게 나타났을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과 눈이 마주 쳤을 때, 베드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주의 말씀”이 생각났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은 새벽 3시경에 이루어졌지만, 유대인의 시간 계산으로 그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전날 저녁과 같은 날인 바로 ‘오늘”이 되었다.

 

누가복음 22장 62절:

  •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에, 베드로는 자만과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그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라고 큰 소리치며 주님께 충성을 맹세하였다 (눅 22: 33).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가 사람들 앞에서 행한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슬픈 일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깊은 실패 감에 빠졌다.  

그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누가는 “통곡하다”는 동사를 사람이 죽었을 때의 슬픔을 묘사하는 용어로 사용함으로, 격한 감정을 나타내었다 (눅 8: 52).

     성경주석자들은 종종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背信)한 것과 베드로가 부인(否認)한 것 사이의 차이점(差異點)에 대해 언급(言及)하고 있다.

유다는 자신의 탐욕(貪慾)을 채우기 위해 자기가 맡고 있던 제자들의 돈궤에서 돈을 훔쳤던 것처럼 (요 12: 6),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에게 넘겨줌으로 이익을 추구하려는 탐욕에 찬 사악(邪惡)한 의도(意圖)로 갖고 있었다.

반면에, 베드로가 위험(危險)을 무릅쓰고 체포되어 끌려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관저 안에 까지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의 의도(意圖)가 선했던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과 베드로가 부인한 것의 차이는 그들의 의도가 악하냐 혹은 선하냐의 차이가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여 나를 살피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시 26: 2).

베드로가 시련(試鍊)과 시험(試驗)의 때에 실패한 것은 사악함이 아니라 연약함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시험에 들지 않게” 간절하게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였다면, 그는 시험의 때에 더 강한 믿음을 가졌을 수 있다.

유다는 자신이 행한 일을 괴로워하며 절망에 빠진 반면에, 베드로는 또한 자신이 행한 일을 슬퍼하며 회개하였다.

후에 사도 바울은 그 차이점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表現)하였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 10).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은 죄 없는 삶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고 사함을 받아 새롭게 사는 것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영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예수님과 거리를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신자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보기를 기대할 수 있다.   
  • 신자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신다

 

신자들이 예수님께 계속 충성하도록 돕는 몇 가지 영적 훈련을 말해보십시오.
당신의 삶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개발시킬 필요가 있는 영적인 훈련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개발시킬 수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예수님을 믿는 신자인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당신이 예수님을 믿고 따른 제자인 것을 알아야 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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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기꺼이 순종하신 예수님 - 제 9과 - 2021년 5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41 -53절 강호길 2021.05.07 43
291 기억하고 기념하는 믿음 - 제 8과 - 2021년 4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7 -20절 강호길 2021.04.27 59
290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 제 7과 - 2021년 4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0장 9 -19절 강호길 2021.04.20 5040
289 복음이 필요한 죄인들은 누구인가? - 제 6과 - 2021년 4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1 -10절 강호길 2021.04.10 35
288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 제 5과 - 2021년 4월 4일 부활절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 -12절 강호길 2021.04.03 32
287 찬양과 예배를 받으신 예수님 - 제 4과 - 2021년 3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29-40절 강호길 2021.03.28 25
286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것은? - 제 3과 - 2021년 3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8장 9 -17절 강호길 2021.03.20 27
285 신자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하나? - 제 2과 - 2021년 3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5장 20-32절 강호길 2021.03.13 27
284 누가 이웃인가? - 제 1과 - 2020년 3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0장 25 -37절 강호길 2021.03.06 27
283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제자 - 제 13과 - 2021년 2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9장 18 -23절 강호길 2021.02.27 39
282 은혜에 대한 사랑의 응답 - 제 12과 - 2021년 2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7장 40 -50절 강호길 2021.02.20 26
281 예수님의 통치권 - 제 11과 - 2021년 2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6장 1 -11절 강호길 2021.02.12 32
280 죄를 사하는 권세(權勢)가 있는 예수님 - 제 10과 - 2021년 2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17 -26절 강호길 2021.02.04 1503
279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 제 9과 - 2021년 1월 3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4 -11, 27 -32절 1 강호길 2021.01.2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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