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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4월 11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6과  

 

 

복음이 필요한 죄인들은 누구인가?                   

 

 

학습구절: 누가복음 19장 1 -10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죄를 회개하고 그를 간절하게 찾는 사람들을 받아주신다.      

                                  

 

주요교리: 구원    

구원은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된 온 인격체를 포함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값 없이 주어진다 (고후 5: 17 -20).    

 

암송구절:  누가복음 19장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For the Son of Man

 came to seek and to save the lost.”  

 

 

시작하는 글:  

 

우리들 대부분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유명인사나 작가, 혹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팀에서 뛰는 운동선수일 수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다면, 그들은 사진을 함께 찍자거나 사인을 해달라는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그들이 우리를 점심에 초대하거나 우리 집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한 세리(稅吏)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올라 갔을 때 일어난 일이 되고 있다.  

그 세리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받아주시며 죄를 사해 주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보십시오.

당신은 어떤 때문에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하고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18장 31절로부터 19장 26절까지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거듭거듭 밝혀주시는데, 우리는 계속 그것을 놓치고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같은 문제가 있었다.

이전에 두 번씩이나, 예수님은 그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 설명하셨다.

예루살렘이 더 가까워지자, 다시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에 어떤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셨다.

제자들에게 그것은 감히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곧 일어날 일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기를 원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그같이 준비시키신 일은 누가복음서의 마지막 장들의 골격(骨格)을 이루는 내용들이 되고 있다.

이번 주의 배경구절들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의 예들이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행하시는 기적적인 치유들과 그의 사역으로 인하여 한 죄인이 그의 제자로 변화하는 놀라운 결과의 배경에는 그의 십자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누가가 금주의 학습구절로 전개하고 있는 삭개오의 이야기는 실제(實際)로는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쳐주신 일로 시작(始作)되고 있다 (눅 18: 35 -43).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점이 많았지만, 유사점(類似點)들을 공유(共有)하고 있다.

눈먼 사람은 거지였는데 반해 삭개오는 부자였다.

눈먼 사람은 아무 힘이 없었지만, 삭개오는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예수님께서만 채워주실 수 있는 필요(必要)가 있었다.

      두 이야기는 또한 예수님이 두 사람을 어떻게 만났는지를 대조시키고 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눈먼 거지는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치면서 돈이 아니라, 자비를 구걸하였다.

사람들은 거지를 조용하게 하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눈먼 사람을 자기에게로 데려 오라고 하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주의를 끌기 위해 외치지 않고, 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려고 하였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아시고 그에게 내려오라고 하셨다.

    두 이야기의 즉각적인 결과(結果)는 모두 근본적이고도 전적인 변화(變化)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눈먼 사람을 고쳐주셔서 보게 해 주셨다.

그는 더 이상 무력하게 앉아서 구걸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예수님은 세리장인 삭개오를 극적으로 바꾸어주셨다.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돈은 되돌려주겠다고 하였다.

그 눈 먼 사람은 그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눅 18: 42).

그 세리는 회개하고 순종했을 때 “구원이 [그의] 집에 이르[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되었다 (눅 19: 9).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종교행위(宗敎行爲)를 신뢰하고, 그것을 공로로 내세우며 자랑으로 삼는 나머지, 자기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것을 부정(不定)하며 거부한다.

예수님의 마지막 비유인 “은 열 므나 비유”는 청지기 직분에 관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비와 책임의 균형(均衡)을 맞추시는 지를 가르쳐준다.

이 교훈(敎訓)들을 적용(適用)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經驗)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通路)가 될 수 있다.  

 

 

학습구절 연구

 

예수님을 간절하게 보고 싶어한 삭개오 (누가복음 19장 1  -4절)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여리고 성에 도착하셨다.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군중이 모여들었는데, 그들 중에는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있었다.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그를 보기 위하여 한 나무에 올라갔다.

 

누가복음 19장 1 -2절

  •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그의 마지막 여정에서 그가 방문하신 각 장소에는 목적(目的)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실 때, 그는 목적지(目的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부터 남쪽의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동쪽으로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하셨다.

그 길은 이스라엘의 두 지역인 갈릴리와 유대를 잇는 역할(役割)을 하였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가까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요 4: 9).

예수님은 그같이 사마리아인들을 피하려는 의도가 없으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마리아 마을 지나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 일행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눅 9: 51 -56).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요단 강의 동쪽 지역으로 건너가 (눅 17: 11)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셨다.

그런 다음 여리고 성 가까이 이르자, 예수님은 요단 강 서쪽 편으로 건너 가셨는데, 그곳에서 여리고 성으로 들어가실 때 예수님은 눈 먼 사람을 만나 그를 고쳐주셨다 (눅 18: 35 -43 참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신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올 때 여호수아가 정복했던 것과는 다른 위치가 되고 있다.   

이 여리고는 본래 장소의 남서쪽이 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그곳에서 서남쪽으로 약 15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그 길을 언급하셨다 (눅 10: 25 -37).

누가가 삭개오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예수님은 이미 “여리고로 들어가” 그 거리를 “지나가시[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성경학자들은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가는 길이 어떻게 요단강의 동서(東西)를 잇는 중요한 통로(通路)와 갈릴리와 요르단 지역을 남북(南北)으로 잇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는지를 지적해 오고 있다.

따라서, 여리고는 그 지역의 중요한 상업중심지(商業中心地)가 되었을 뿐 아니라, 헤롯 대왕이 그곳에 겨울 궁을 건축함으로 유대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成長)하였다.

그 같은 상업적(商業的) 및 정치적(政治的)인 여건(與件)과 좋은 기후조건(氣候條件)으로 인하여 여리고는 활기차고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삭개오는 그곳 여리고에서 로마정부를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하는 세리(稅吏)였다.

세리들은 상인들로부터 관세나 물품 세를 징수하기도 하였다.

당시 세리들은 정부 당국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차액(差額)을 챙기는 것으로 악명(惡名)이 높았다.

따라서, 세리들은 적대국(敵對國)에 충성(忠誠)하는 반역자(反逆者)이자 허가 받은 도둑으로 동족들에게 증오(憎惡)의 대상이 되었다.  

삭개오는 세리였을 뿐 아니라, “세리장”이었다.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자기 대신 나가서 세금을 징수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삭개오는 “또한 부자였다.      

 

누가복음 19장 3 -4절

  •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모여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빨리 그리고 널리 퍼졌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그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특별히 삭개오를 만나시기 바로 전에, 예수님은 눈먼 거지를 고쳐 주셨다 (눅 18: 35 – 42).

그같이 고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 같은 기적적인 사건을 본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을 따라오기 시작하였다 (눅 18:43).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오셔서 지나가실 때, 삭개오는 간절하게 예수님을 보기를 원하였다.

누가는 그 세리가 예수님을 그같이 간절하게 보기를 원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삭개오가 재물이 많은 부자였을지라도, 그의 삶은 참 만족과 기쁨이 없었다.  

세리들은 또한 죄인들과 동일(同一)하게 취급을 받고, 사람들에게 비난과 기피(忌避)의 대상이 되었다 (마 11: 19).

삶의 참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는 강한 동기(動機)와 필요(必要)에서, 그는 예수님을 보기를 간절히 원했을 수 있다.  

삭개오는 또한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며, 심지어 바리새인들로부터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난까지 받고 계시다는 소문을 들었을 수 있다 (눅 5: 27; 15: 1 -2).
그런데 바로 그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 것을 알고, 그는 이를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을 수 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가실 때, 삭개오는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지 보려고 하였으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고, 그의 키가 작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 속을 밀치고 뚫고 가는 대신에, “앞으로 달려가서”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볼 수 있게 해줄 “돌무화과나무”를  발견(發見)하고 그 나무에 올라갔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보려고 한 삭개오의 결의(決意)와 노력(努力)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이 계시는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중풍병자를 메고 지붕 위로 올라갔던 그의 친구들을 연상케 한다 (눅 5: 17 -26).

 

당신은 어떤 면에서 삭개오와 동일시(同一視) 있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장벽들을 제거해야 합니까?

          

삭개오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 (누가복음 19장 5 -7절)

 

예수님은 삭개오가 올라가 앉아있는 바로 그 나무 밑에 멈추어 서신 다음 그에게 지시하시기를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다.

삭개오는 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영접”(迎接)하였다.

반면에, 군중 속의 어떤 사람들은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고 하면서, 그같이 죄 많은 사람과 교제하려는 예수님의 뜻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누가복음 19장 5 -6절:

  •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예수님은 무슨 일이든 목적(目的)을 갖고 행하였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신 것은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 곳,” 즉 “돌무화과나무”가 있는 장소에 “이르[실]” 때까지 걸어오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무 위에 앉아있는 삭개오를 “쳐다 보시고” 말씀하셨을 때, 그의 제자들과 그를 따라온 군중들이 경험한 놀라움을 상상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 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을 수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고 웃지 않으셨다.

대신에, 예수님은 그를 “쳐다 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세리에게 행하신 일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전도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문맥을 통해 우리는 이 세리장이 이전에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한 개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삭개오”라는 이름으로 부르신 점이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아시고 있었다. 

물론 예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미리 다 아신다고 말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아시며 관심을 갖고 계시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절박감”과 “긴급성”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시는 것을 매우 중요하고도 긴급한 일로 여기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바로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는 말로 바로 그 점을 강조한다 (고후 6: 2).

     예수님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으로 삭개오가 속히 내려오기를 원하시는 놀라운 이유를 밝혀주셨다.

그것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招請)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을 삭개오의 집으로 초대(招待)하는 말로, 언뜻 이해(理解)되지 않는, 혹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그러나, 19장 10절은 예수님의 방문목적(訪問目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방문의 실제적인 혜택자(惠澤者)는 집 주인인 삭개오였다.

아마도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기와 같은 사람과 함께 있지 않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가 먼저 삭개오에게 다가가셔서 자기를 그의 집으로 초대하는 방법을 취하셨던 것이다.            

삭개오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다.

 

누가복음 19장 7 절:

  •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뭇 사람이 보고”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눈먼 거지를 고쳐 주신 이후부터 그를 따르던
군중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다음으로 어떤 일을 하실지를 보려는 호기심에 차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에게 손을 내밀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삭개오를 죄인(罪人)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세리는 직업(職業) 이상의 것이 되었다.  

그들에게 세리(稅吏)는 혐오의 대상이자 적대국인 로마 제국에 의해 고용되어 비열하고도 부정직한 일을 하는 죄인(罪人)이었다.

많은 경우 그들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삭개오를 받아들이신 것은 인기가 없는 일이었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수군거리다”라는 말로 번역된 동사는 계속 진행중인 행동을 묘사하고 있다.

그 말은 또한 ‘투덜거리다’ 혹은 ‘불평을 말하다’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들은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도다”고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삭개오와 같은 사람들과 관계한다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비난에 전혀 동요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구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큰 관심을 갖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친구가 없는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나타내 주셨습니까?

 

회개한 삭개오 (누가복음 19장 8 -10절)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관심과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삭개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회개의 징표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언하셨다.

 

누가복음 19장 8절:

  •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침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침례를 베풀 때 그가 요구한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다 (눅 3: 3, 8).

그때 세리들이 침례를 받고자 하여 요한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물으니, 침례 요한은 그들에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대답하였다 (눅 3: 12).

즉 침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증거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에게 “주여 보시옵소서”라고 하면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회개의 마음에서 나오는 결단과 고백의 말이 되고 있다.

 

누가복음 19장 9 -1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즉각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 흐르는 신학적(神學的)인 맥락에서 이해(理解)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선행(善行)으로 그의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그 해석은 무수한 성경의 가르침에 상반(相反)되고 있다 (엡 2: 9; 딛 3: 5).

또한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침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눅 3: 8).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가리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하신 것은 그가 아브라함과 같은 종류의 믿음을 보여 주었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부르고 있다 (갈 3: 6 -7).

    우리가 피해야 할 또 다른 오류는 삭개오의 그 같은 결단과 고백이 그의 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집”이라는 말은 단지 그 집의 주인인 삭개오를 가리키는 표현이 되고 있다.

동시에, 주인인 삭개오의 믿음과 증거는 그의 가족과 종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가 또한 유의해야 될 중요한 말은 “오늘”이다.

삭개오의 구원이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는 한 가지 증거는 삭개오가 실제로 어떤 일을 행하기를 예수님께서 기다리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에서 반영되고 있다.

삭개오는 바로 그날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야의 호칭인 “인자”로 부르시면서, 자신의 사명과 목적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당신의 회개와 믿음은 당신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예수님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며 바라보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바른 반응과 응답이다.  
  • 예수님께서는 과거(過去)를 묻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맞아주시며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게 하는 동기나 자극이 될 수 있는 내적 갈등이나 외적 상황들은 어떤 것들이 되고 있는지를 반원들과 함께 토의해 보십시오.
당신은 그같이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습니까?  

 

당신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가능성이 가장 적게 생각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들을 예수님께 소개하고 인도하기 위하여 어떻게 기도하며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처음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회상해 보십시오.

당신이 예수님을 만난 일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일과 어떻게 비교되고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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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자신의 정체를 밝혀주신 예수님 - 제 12과 - 2021년 5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8 -31절 강호길 2021.05.24 32
293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 제 10과 - 2021년 5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54 -62절 강호길 2021.05.17 46
292 기꺼이 순종하신 예수님 - 제 9과 - 2021년 5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41 -53절 강호길 2021.05.07 43
291 기억하고 기념하는 믿음 - 제 8과 - 2021년 4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7 -20절 강호길 2021.04.27 59
290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 제 7과 - 2021년 4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0장 9 -19절 강호길 2021.04.20 5037
» 복음이 필요한 죄인들은 누구인가? - 제 6과 - 2021년 4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1 -10절 강호길 2021.04.10 35
288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 제 5과 - 2021년 4월 4일 부활절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 -12절 강호길 2021.04.03 32
287 찬양과 예배를 받으신 예수님 - 제 4과 - 2021년 3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29-40절 강호길 2021.03.28 25
286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것은? - 제 3과 - 2021년 3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8장 9 -17절 강호길 2021.03.20 27
285 신자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하나? - 제 2과 - 2021년 3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5장 20-32절 강호길 2021.03.13 27
284 누가 이웃인가? - 제 1과 - 2020년 3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0장 25 -37절 강호길 2021.03.06 27
283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제자 - 제 13과 - 2021년 2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9장 18 -23절 강호길 2021.02.27 39
282 은혜에 대한 사랑의 응답 - 제 12과 - 2021년 2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7장 40 -50절 강호길 2021.02.20 26
281 예수님의 통치권 - 제 11과 - 2021년 2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6장 1 -11절 강호길 2021.02.12 32
280 죄를 사하는 권세(權勢)가 있는 예수님 - 제 10과 - 2021년 2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17 -26절 강호길 2021.02.04 1501
279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 제 9과 - 2021년 1월 3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4 -11, 27 -32절 1 강호길 2021.01.2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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