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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4월 4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5과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학습구절: 누가복음 24장 1 -12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부활하신 구세주이자 주님이시다.    

 

주요교리: 성자 하나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요 20: 26 -28).    

 

암송구절:  누가복음 24장 3절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When they entered,

 they did not find the body of the Lord Jesus.”  

 

 

시작하는 글:  

 

어떤 질문들은 다른 질문들보다 대답하기 어렵거나 힘든 것들이 있다.  

예수님의 무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대답하기 가장 힘든 것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다.

성경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구세주이자 주님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궁극적(窮極的)으로, 빈 무덤은 우리에게 현재(現在)와 영원(永遠)한 미래(未來)에 대한 소망(所望)이 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중 누구도 소망이 전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날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影響) 변화(變化) 주고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23장 50절로부터 24장 12절까지
 

     누가복음 23장 50절부터 56절까지는 유대인들의 최고 법적 의결기구인, 산헤드린의 일원이면서도 (눅 23: 50) 예수님의 은밀한 제자로서 (요 19: 38 참조),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 하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눅 23: 51) 당시의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로부터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묻도록 허락을 받았음을 밝혀주고 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는데, 마태복음은 그 무덤을 요셉이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으로 밝혔다 (마 27: 59 -60).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왔던 몇몇 여인들이 무덤이 있는 곳과 예수님의 시신이 어떻게 안장되었는지를 지켜보고 시내로 돌아와 시신에 바를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안식일이 시작되는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여인들은 시신에 향유를 바르고 향료를 발라드리는 일을 안식일 후에 하기로 하였다.

     누가복음 24장 1절부터 8절까지에서, 복음서 기자인 누가는 “안식 후 첫날”, 즉 주일 (일요일) 새벽에 그 여인들이 무덤에 다시 찾아온 일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기를 기대하고 찾아왔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무덤의 입구를 막아두었던 돌이 옮겨지고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갑자기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인들이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상기시켜 주며 그 말씀대로 부활하신 사실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러자,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다.

     누가복음 24장 9절부터 12절에서, 누가는 그 여인들이 성 안으로 돌아가서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에게 그들이 목격하고 들은 것을 알려주었다고 기록하였다.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은 여인들의 말을 터무니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무덤에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확인하기로 하였다.

그는 빈 무덤에 시체를 쌌던 세마포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예수님의 무덤을 다시 찾아온 여인들 (누가복음 24장 1 -5절 상) 

 

일련의 재판과 육체적인 구타 및 조롱을 받으신 후 (마 26: 57 -68),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의 시체는 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십자가에서 내려 자기의 무덤에다 장사하였다 (요 19: 38 -41).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여러 명의 여인들이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료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왔다.

그들은 무덤의 입구가 열려져 있고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누가복음 24장 1절

  • 안식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서 무덤에다 장사 지냈을 때, 사도들은 그 장소에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왔던 여러 명의 여인들은 멀리서 그들을 따라 가서 “그 무덤과 [예수님]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지켜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 하였다 (눅 23: 55 -56).

     예수님이 무덤에 묻힐 때 무덤까지 따라왔던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즉 오늘 날 우리가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 새벽에, 무덤을 다시 찾아왔다.

신약성경 당시에 유대인들이 시간을 계산 할 때, 하루는 전날 저녁 6시에 시작되어 다음날 저녁 6시에 끝이 났다.

"새벽”이라는 말은 일출 전 일요일의 이른 새벽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마 28: 1, 막 16: 2; 요20: 1 참조).

그들 여인들은 시체를 장사하는데 필요한 향료를 준비하여 가지고 왔으므로, 예수님의 시체만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들 여인들이 향료를 그같이 준비하여 가지고 온 것은 니고데모가 유대인의 장례 법에 따라 이미 예수님의 시체를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싼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요 19: 39 -40).

그것은 또한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주님에 대한 여인들의 마지막 공경과 섬김의 표현이 되었을 수 있다.

향료에는 시체를 매장할 때 자주 사용되었던 몰약과 침향이 포함되었을 수 있다.

그러한 향료들은 값 비싼 것들이었는데, 그것은 여인들이 예수님께 마지막 선물로 드리는 것이 되었을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 일요일은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유대교의 안식(安息)과 예배(禮拜)의 날은 지금의 토요일인 “안식일”이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지금의 일요일인 “안식 후 첫날”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주의 날”로 알려지게 되었다 (계 1: 10 참조).

믿는 자들이 기독교의 가르침과 교제를 위해 일요일에 모인 것이 성경에서 직접 언급된 것은 사도 행전 20장 7절에 나타나 있다.

오늘날 믿는 자들이 매주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 한 부활의 기쁨을 상기하는 일이 되고 있다.

 

누가복음 24장 2 -3절

  •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면서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돌 때문에 무덤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걱정하였다 (마 27: 60; 막 15: 46; 16: 3 참조).

그러나, 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았다.]

누가는 실제로 입구에서 돌을 굴려낸 지진이나 천사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지 않고 있다 (마 28 : 2).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었을 때 그것을 보고 경비병들이 기절을 했었는데, 여인들은 그 경비병들을 보지 못하였다 (마 28: 4).

경비병들은 당시의 상황을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떠났기 때문에 그 자리에 없었다(마 28: 11).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발라드리려고 준비해 온 향료를 가지고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무척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누가가 “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라는 말로, 예수님을 “[]”으로 부른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누가는 예수님의 부활과 죽음과 무덤에 대한 그의 지배권을 연결시켰다.  

 

누가복음 24장 4 -5절상

  •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이로 인하여”라는 말은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에 없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무덤이 비어있는 것으로 인해 여인들은 크게 당황해 하며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아주 놀랍고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여인들은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그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이었다 (마 28: 5; 눅 24: 23).

     여인들은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들은 두려움에 차서 땅에 엎드렸다.

그러나, 그것은 경배의 행위가 아니라, 두려움의 반응이 되고 있다.

천사는 인간의 경배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계 22: 28).

 

여인들은 무덤의 입구가 닫혀있을 것으로 예상 했습니까?

우리는 무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여인들 (누가복음 24장 5하 7절)

 

그들 여인들에게 두 천사가 나타나 빈 무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단원에서, 천사들은 복음의 메시지에 필수적(必須的)인 영적계시(靈的啓示)를 제공해 주고 있다.

천사들은 그들 여인들에게, 그리고 여인들을 통해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누가복음 24장 5하 -6절:

  •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종종 질문(質問)이 단순한 질문이 아닐 때가 있다.

두 천사가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물었는데, 그 질문은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여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 도전(挑戰)하는 말이다.

그들 여인들은 장례 절차에 따라 예수님의 시체에 향료를 발라드리려고 무덤을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 있는 자”를 찾을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믿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시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의 시신이 무덤에 놓여지는 것을 지켜 보았던 것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말은 그 무덤에 다른 시체들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매장지를 가리키고 있다.

또한 근처에 다른 무덤들이 있었을 수 있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천사들의 음성을 직접들을 수 없을지라도, 기쁨과 감격에 차 있을 그들의 음성을 상상할 수 있다.

여인들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지라도, 실제로 그들은 천사들이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를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라는 그들의 선언은 수 세기에 걸쳐서 반복적인 후렴으로 신자들에게 공명을 불러일으켜 오고 있다.

그는 참으로 다시 사셨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여인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이 순례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 시키려고 노력하셨다.

"기억하라"는 명령형(命令形) 동사(動詞)는 여인들에게 그 당시를 회상하고 기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에 놀라지 말아야 하였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그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이전에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십자가의 고통(苦痛)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榮光)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복음 24장 7절:

  •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하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시고 겪으실 일에 대해 예언하신 것을 인용하면서,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풀이 하였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모든 것은 꼭 필요한 것이 되고 있다.

첫째로, 예수님이 겪으신 일은 성경(聖經)의 예언(豫言)을 성취하기 위해 꼭 필요하였다.

창세기로부터 예언서를 통해, 성경은 인간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메시야가 어떻게 배반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인지를 계시하고 있다.

죄의 형벌을 이행하는 방법인, 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한다 (히 9: 22).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죄를 사함 받는 방법은 피의 속죄가 되었다 (레 17: 11).

그것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피로 죄 값을 치르고 깨끗이 씻는 방법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먼저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질 것]”을 예언하셨다.

인자”라는 용어는 예수님을 ‘메시야’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가리키는 말이다.

시편 기자는 메시야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에 의해 배신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시 41: 9).

배신의 대가는 한 노예의 가치인 “은 삼십 개”로 명시되고 있다 (출 21: 32; 슥 11: 12).

     예수님은 또한 성경에 예언된 대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말씀하셨는데, 십자가의 처형은 선지자들 당시에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처형방법이었다.

시 22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신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다윗이 이 시편을 기록하였을 당시에 십자가의 처형방법은 그에게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자의 무덤에 장사될 것도 예언되었다 (사 53: 9).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예수님은 또한 자신의 부활에 관한 성경의 예언이 성취될 것을 밝히신 것으로 (시 16: 10; 30: 3),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그같이 말씀하셨던 일을 천사들이 상기시켜 주었을 때, 여인들은 그 순간이 바로 제 삼 일째 되는 날이라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을 수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신자들이 예수님의 어렵고 힘든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들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에게 어떻게 격려가 됩니까?

 

부활의 소식을 전한 여인들 (누가복음 24장 8 -12절)

 

그 여인들은 무덤을 떠나 사도들과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에게 그들이 목격하고 겪은 일들을 보고하였다.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이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렸으므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무덤을 찾아가서 여인들의 말이 참인지를 확인하기로 하였다.

그가 무덤으로 달려가서 안을 들여다 보니, 시신을 감았던 세마포만 놓여있었다.

베드로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돌아왔다.   

 

누가복음 24장 8 -10절:

  •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제 삼 일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던 일을 상기시켜 주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해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여인들의 생각과 태도는 바뀌었다.

그들은 슬픔에 가득 차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고, 그의 빈 무덤에 들어갈 때는 혼란에 빠져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의 죽음에 대해 말씀 하셨을 때, 그들은 그것을 인정(認定)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이 죽으셨지만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였다.

     “무덤에서 돌아가”라고 한 말은 그들 여인들이 “열한 사도[들]”과 예수님을 가까이 따랐던 “다른 모든 [제자들이]”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함께 모여있던 곳에 있다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다시 찾아 갔던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

만일 그들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는 그들 여인들의 목적(目的)을 알았다면, 어째서 그들은 여인들을 따라가지 않았을까?

사도들과 남자 제자들은 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옮기는 것을 도와줄 수 있었고 여인들을 안전(安全)하게 지켜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인들의 증언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서 나타나고 있는 동기감의 결여가 그 대답이 될 수 있다.

그들은 무덤에 찾아간다 할지라도, 봉인 된 무덤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여인들이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알려주었을 때에도, 그들의 말들은 귀머거리와 불신(不信)의 마음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란 말은 그들 여인들이 무덤에서 듣고 목격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이 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에 동행했던 여인들 중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다.

예수님은 그 녀에게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눅 8: 2) 그녀의 삶을 변화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의 도움을 직접 받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눅 8: 2).

     “요안나”는 갈릴리 지역의 왕이었던 헤롯 안다바의 청지기였던 “구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다른 여러 여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사역을 재정적으로 도왔다 (눅 8: 3).

     본문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는 마태복음에서는 “다른 마리아”로 불려지고 있다 (마 27: 61; 28: 1).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로도 불려지고 있다 (막 15: 40).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 중에는 “살로메”도 등장하고 있는데 (막 16: 1), 살로메는 세배대의 아내이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로, 누가복음서에서는 “다른 여자들”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눅 24: 10).

10절의 “알리니라”라는 동사는 진행중인 행동을 묘사하는 불완전시제로 되어 있다.

그들 여인들은, 흥분해서, 계속해서 쉴새 없이, 그리고 어쩌면 몇 사람이 동시에 말했을 수 있다.  

그 장소에는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도 있었지만, 여인들은 특별히 사도들을 보고의 주 대상으로 삼았다.   

 

누가복음 24장 11 -12절:

  •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어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이 “허탄한 [말로] 들려 믿지 아니하[였다.]”

“허탄한 말”로 번역된 용어는 ‘어리석은 말’이나 ‘쓸데 없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은 여인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보고를 무시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다.]”

요한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를 보기 위하여 베드로를 따라갔다.

요한은 실제로 베드로보다 앞서 달려갔지만, 무덤에 들어가지 않았다(요 20: 3 -6).

누가복음서의 기록에서 요한이 빠진 것은 요한복음서의 기록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복음은 이 시점에서 단순히 베드로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다.

베드로는 항상 충동적이었지만, 이 행동은 더 진지하고 사려심이 깊은 것처럼 보인다.

빈 무덤에는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만” 놓여 있고, 또 얼굴과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있지 않고, 접혀져서 예수님의 시체가 있던 선반에 따로 놓여 있었다 (요 20: 5 -7).

     여자들에게 나타났던 천사들은 더 이상 무덤에 있지 않았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이 발견 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무슨 일이 일어 났을 지에 대해 서로 질문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들이 즉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제자나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성경말씀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요 20: 9).  

     “집으로 돌아가니라”는 짧고도 간단한 문장으로,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이 다른 제자들에게로 돌아간 과정을 요약하고 있다.

베드로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겼다.

그의 마음은 그 일어난 일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낙심한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워준다.      

죄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있다. 

신자들은 우리의 구세주께서 살아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복음을 믿지 않는 세상에 소망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구세주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당신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여인들의 증언을 선뜻 믿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이번 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해 줄 수 있습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빈 무덤에 응답해야 한다.
  • 예수님은 그가 약속하셨던 대로 부활하셨다.     
  •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      

 

당신은 예수님의 빈 무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겠습니까?
빈 무덤은 오늘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반원들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논의하십시오.
이번 주간에 어떻게 하면 한 팀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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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지금은 무엇을 할 때인가? - 제 9과 - 2021년 8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전도서 3장 1-15절 강호길 2021.07.31 34
297 무엇이 유익(有益)한가? - 제 1과 - 2021년 7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전도서 1장 12 -15절; 2장 18 -26절 강호길 2021.07.18 21
296 믿음의 시험을 받은 욥 - 제 1과 - 2021년 6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욥기 1장 8 -22절 강호길 2021.06.09 77
295 주님의 지상 명령 - 제 13과 - 2021년 5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36 -49절 강호길 2021.05.29 38
294 자신의 정체를 밝혀주신 예수님 - 제 12과 - 2021년 5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8 -31절 강호길 2021.05.24 32
293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 제 10과 - 2021년 5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54 -62절 강호길 2021.05.17 46
292 기꺼이 순종하신 예수님 - 제 9과 - 2021년 5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41 -53절 강호길 2021.05.07 43
291 기억하고 기념하는 믿음 - 제 8과 - 2021년 4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7 -20절 강호길 2021.04.27 59
290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 제 7과 - 2021년 4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0장 9 -19절 강호길 2021.04.20 5037
289 복음이 필요한 죄인들은 누구인가? - 제 6과 - 2021년 4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1 -10절 강호길 2021.04.10 35
»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 제 5과 - 2021년 4월 4일 부활절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 -12절 강호길 2021.04.03 32
287 찬양과 예배를 받으신 예수님 - 제 4과 - 2021년 3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29-40절 강호길 2021.03.28 25
286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것은? - 제 3과 - 2021년 3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8장 9 -17절 강호길 2021.03.20 27
285 신자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하나? - 제 2과 - 2021년 3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5장 20-32절 강호길 2021.03.13 27
284 누가 이웃인가? - 제 1과 - 2020년 3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0장 25 -37절 강호길 2021.03.06 27
283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제자 - 제 13과 - 2021년 2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9장 18 -23절 강호길 2021.02.27 39
282 은혜에 대한 사랑의 응답 - 제 12과 - 2021년 2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7장 40 -50절 강호길 2021.02.20 26
281 예수님의 통치권 - 제 11과 - 2021년 2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6장 1 -11절 강호길 2021.02.12 32
280 죄를 사하는 권세(權勢)가 있는 예수님 - 제 10과 - 2021년 2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17 -26절 강호길 2021.02.04 1501
279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 제 9과 - 2021년 1월 3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4 -11, 27 -32절 1 강호길 2021.01.2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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