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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3월 14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2과  

 

 

신자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하나?

 

 

학습구절: 누가복음 15장 20-32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축하해야 한다.     

 

 주요교리:  전도와 선교    

 사람이 성령님에 의해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 [행 10 : 42-43].    

 

암송구절:  누가복음 15장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When he came to his senses, he said.

 ‘How many of my father’s servants have food to spare,

 and here I am starving to death.’”  

 

 

시작하는 글:  

 

다시 만나는 ”은 특별하다.

우리는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다시 만나는 장면을 뉴스를 통해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만일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자녀들이 있다면, 부모들은 자녀들보다 더 휴일이나 봄 방학 혹은 여름 방학을 기다릴지 모른다.

가족이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그렇지만, 만일 헤어진 일이 잘못을 행한 것이나 신뢰가 깨어진 결과로 비롯되었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다시 만나는 일은 다른 종류의 강도(强度)와 감정(感情)을 띄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의 자녀로 영접하여 들이실 때 우리가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야 할 것을 예시(例示)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어 집을 나갔던 아들이 다시 돌아와 가족과 다시 만나는 재결합에 대해 말씀하셨다.

 

당신은 다시 만남의 어떤 점들을 기뻐합니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 화해(和解) 이루어질 우리는 축하해야 합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13장 22절로부터 16장 31절까지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집중(集中)하셨지만, 가시는 길에 그는 시간을 내어 마을과 성읍에서 가르치며 병자들을 고치는 등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고 싶어하는지를 설명하셨는데, 문제는 천국에로의 그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금주의 본문에서는 특별히 세 가지의 이야기가 그 같은 사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첫째로, 주인이 문을 한번 닫은 후에 손님들이 늦게 도착한 비유의 이야기는 회개(悔改)의 절박성을 강조하고 있다 (눅 13: 24 -30; ).

주인은 그들에게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각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한다 (13: 27).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고 하신다 (13: 30).  

     둘째로, ‘큰 잔치’의 비유는 핑계나 변명으로 잔치초대를 거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14: 15  -24).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으나 “다 일치하게 사양하[였다].”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함으로 올 수 없다고 하였다 (눅 14: 18).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으[므로] 시험하러” 가야 한다고 하였다 (눅 14: 19).

또 한 사람은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고 하였다 (눅 14: 20).

     셋째로,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는 너무 늦어서 회개할 수 없는 위험성을 강조한다 (눅 16: 19 -31).

그래서 성경은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만한 때”이자 “구원의 날”이 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사 49: 8; 고후 6: 2).

각 비유에서, 응답하지 하지 않은 사람들은 왕국에서 제외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실수록 위험은 더욱 심해졌다.

바리새인들 중에는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고 경고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눅 13: 31).

동시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계속해서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였다.

한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한 연회에 초대하였다 (눅 14: 1 -6).

예수님은 그 곳에서 “수종병 든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고 물으셨다.

그들이 잠잠히 있자, 예수님은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헤롯에게 위협(威脅)을 받거나 바리새인들에게 위축(蝟縮)이 되지 않으셨다.

그는 예루살렘을 향해 여정을 계속하시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하심으로 용기를 나타내셨다.

     이번 주의 본문 배경이 되고 있는 누가복음의 네 장들은 비유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도전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예수님의 이야기들은 영적이고도 실질적인 원리들을 다루고 있다.

예수님은 비유 중 일부를 사용하여 적대 자들의 교만을 정죄하시고 회개하지 않는 마음의 결과에 대해 경고하셨다.

다른 비유 이야기들은, 특별히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잘 알려진 세 가지의 비유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구원받은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을 선포한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는 양 백 마리가 있는 한 목자가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고 한다 (눅 15: 3 – 4).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잃은 양을 찾은 것으로 인해 기뻐한다고 한다 (눅 15: 6).

예수님은 그 비유를 하나님께 적용(適用)시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다 (눅 15: 7).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는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었을 때 그것을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았고,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기뻐하였다 (눅 15: 8 -9).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는 금주의 학습구절들로,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이다.

금주의 학습구절은 이야기의 중간부분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 전까지의 이야기는 두 아들 중에 작은 아들이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는데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 즉 유산(遺産)을 달라는 내용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의 오만(傲慢)함은 “허랑방탕하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탕진한 것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어 궁핍하게 되자, 그 아들은 결국 돼지를 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유대인에게 그것은 끔찍한 결과(結果)였다.

마침내, 그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 왔다.

 

 

학습구절 연구

 

죄를 사함 받은 작은 아들 (누가복음 15장 20 -24절)  

 

     누가복음 15장은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으로 시작하고 있다 (눅 15: 2).

이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을 “죄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비난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셔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두고 계신 가치(價値)와 모든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사함 받아야 될 필요성(必要性),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같은 죄인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며 축하(祝賀)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는 세 가지 비유의 세 번째에서, 예수님은 두 아들이 있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셨다.

두 아들 중 작은 아들은 거리낌 없이 자기가 상속받을 몫을 요구하여 미리 받은 다음 곧 집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어리석은 삶으로 그의 유산을 탕진(蕩盡)하였다 (15: 13). 

그는 궁핍한 처지에 처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집에 거처하면서, 자기가 치고 있는 돼지들이 먹는 먹이로 배를 채우는 신세가 되었다.           

그같이 절박한 상황에서 그 젊은이는 제정신이 들어서 아버지 집에서 자신이 얼마나 축복된 삶을 살았던 지를 깨달았다.

그는 심지어 자신에게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하였다 (눅 15: 17).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자기를 집의 “품꾼의 하나로” 만들어달라고 간청(懇請)하기로 하였다 (눅 15: 18 -19).

 

누가복음 15장 20 -21절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이번 주의 학습구절은 비유 이야기의 중간에서 시작되고 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도,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인 상속(相續)을 요구하였다.

당시의 문화권에서 그 같이 오만한 요구는 상속권을 완전히 박탈당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은혜롭게 작은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다 낭비하였다.

무일푼이 되자, 그는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들을 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웠고,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깊이 몰락했는지를 깨달았다.

작은 아들의 반전(反轉)은 “이에 일어나서”라는 짧은 말 한마디에 담겨 있다.

작은 아들이 일어났다는 말은 몸이 일어났다는 사실(事實)이 되고 있는 반면(反面)에, 그것은 또한 그의 영적 상태를 비유로 표현한 말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회개(悔改)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는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갔지만],” 그가 떠났던 상태로 회복 될 것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풍족(豊足)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아버지 집의 종이 되겠다고 요청하려고 하였다.

그는 아버지께 할 말을 미리 연습(演習)까지 하였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고 하였다 (눅 15: 19).

돌아올 때의 그의 유순한 태도는 떠날 때의 도도했던 태도와 전혀 달랐다.

     “아버지”는 집을 나갔던 탕자가 집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들이 오래 전에 집을 떠나 걸어나갔던 길을 매일 정기적으로 내다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는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반응하였다.

그는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서둘러서 달려가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입을 맞추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거듭거듭 입을 맞추었다는 형태가 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남루한 행색을 볼 수 있었지만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들이 돌아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옷에서 나는 돼지 냄새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에 돌아온 것에만 신경을 썼다.

아버지가 껴안고 “입을 맞추[었을 때]” 아들의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아들의 설명(說明)이나 변명(辯明)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작은 아들은, 계획한 대로, 돼지우리에서 연습(演習)한 말을 하였다 (눅 15: 18 -19).

그는 자신을 껴안고 있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탄원하였다.

그는 더 이상 제멋대로 굴며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던 이전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행한 행동을 합리화(合理化)하거나 변명(辯明)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먼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궁극적인 죄가 하나님께 대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계속해서,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고 하고 그 다음의 말을 하려고 하였다.   

 

누가복음 15장 22 -24절

  •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들은 미리 연습했던 대로, 앞에서 한 말에 이어 아버지에게 “품꾼의 하나로” 삼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들이 그 말을 하기 전에, 아버지가 말하였다.

아버지는 너무나 감정에 복받친 나머지 아들이 말을 끝내기를 기다릴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는 대신에, 종들에게 지시하기를, “[빨리 가서]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하였다.

그 같은 일에서, 우리는 다 헤어지고 더러워진 옷을 입은 아들의 모습과 가장 좋은 것들로 아들의 모습을 바꾸어주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신을 가져다 아들의 발에 신기게 한 것은 그가 맨발이었음을 암시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나, 당시에 종들이 맨발로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종들과 구별시키는 일이 되었을 뿐 아니라 아들에 대한 특별한 표가 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또한 종들에게 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라]”고 지시하였다.

이 비유에서 반지를 끼어준 것은 아버지가 집을 나갔던 아들에게 그가 계속 아들이 되고 있음을 밝혀주는 방법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실제로 아들을 본래의 위치로 회복(回復)시켜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종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고 지시하였다.           

살진 송아지”는 보통 송아지가 아니라, 잔치나 크게 축하할 때를 대비해서 특별하게 기른 송아지를 가리키고 있다.

아버지가 볼 때, 작은 아들이 돌아온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 같은 기쁨과 감사가 가득 넘치는 놀라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먹고 즐기자”고 하면서,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하였다.     

탕자라 할지라도,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아버지에게, 그 어떤 일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었다.   

송아지를 잡아서 음식을 만드는 동안, 아들은 목욕을 하고 쉬면서 자기를 기쁘게 맞아준 아버지와 함께 즐거워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는 말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눅 15: 24), 실제로 온 집안이 아버지와 함께 작은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그에게로 돌아 오면 죄를 사해주시고 기쁘게 맞아들이신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죄인들이 거역의 파괴적인 결과들을 깨닫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그에게로 돌아오도록 부르신다.

그같이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쁘게 맞아 주시고 그의 아들과 딸로 바꾸어주신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신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 나라"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왔을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분노(憤怒)한 맏아들 (누가복음 15장 25 -30)

 

잃은 양과 동전의 비유에서, 이야기의 절정(絶頂)은 곧장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후의 것이 되고 있다. 

그 순서는 위기(危機), 회복(回復), 그리고 축하(祝賀)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탕자의 비유에서는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요소가 추가되고 있는데, 그것은 작은 아들이 돌아온 것을 아버지와 온 가족이 기뻐하며 축하하는 것에 대해 맏아들이 보인 반응(反應)이다.

 

누가복음 15장 25 -27절:

  •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 대  
  •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 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맏아들”은 동생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밭에” 있었다.

그는 밭에서 농작물을 치는 일꾼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을 감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큰아들은 밭에서 덥고도 피곤한 긴 하루를 보내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맏아들은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웃음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축하(祝賀)의 소리가 안뜰로 흘러 나왔다.

그것은 확실히 그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에, 맏아들은 한 종을 불러내어 “이 무슨 일인가”라고 물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맏아들은 화를 내지 않았고, 단순한 호기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물었을 수 있다.  

어떤 친척이나 예상하지 않았던 손님이 도착했을 수 있었다.

     하인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맏아들에게 알려주었다.  

종이 아들 주인에게 알려준 것은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며, 그가 “건강[하게]” 돌아왔기 때문에, “당신의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맏아들에게 더 놀랍고도 충격적인 것은 아버지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작은 아들이 돌아온 것을 축하(祝賀)하기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 “살진 송아지”는 가정에서 큰 잔치를 베풀거나 특별한 손님이 올 때를 위해 준비된 특별한 것이었다. 

맏아들은 그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맞아들이게 [되었다]”는 말은 작은 아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의 상태로 돌아왔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건강(建康)한 몸으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을 자책(自責)하며 통회하는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누가복음 15장 28 -30절:

  •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동생이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는 대신에, 맏아들은 “노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집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단순히 짜증을 낸 것이 아니라,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그의 분노에 대한 이유는 29 절에 설명(說明)되어 있다.

아버지가 나와서” 맏아들에게 권한 것을 보면, 맏아들은 종에게 자신의 불평불만을 털어놓았거나, 아니면 분이 나서 안뜰을 여기저기 내리 밟으면서 불공평하게 생각되는 것을 혼자 토로했을 것으로 보인다.

맏아들이 어떻게 했든지 간에, 종은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에게 맏아들이 밭에서 돌아온 것과 그가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을 상세히 보고하였음이 분명하다.

     아버지는 맏아들이 그와 함께 동생이 집에 온 것을 기뻐하며 축하하기를 깊이 원하였다.
그는 맏아들에게 “권[하였다.]”

우리는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화를 참고 안으로 들어 오라고 간절히 권한 것을 쉽게 추측 할 수 있다. 

     큰아들은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로 인해 깊은 분노 감을 품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분노 감과 불평을 토로하여 말하기를,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라고 하였다.

맏아들이 한 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내가,” “내게는,” 및 “나와”라는 말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자신”이 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을 중심(中心)으로 삼을 때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관점(觀點)에서 판단(判斷)하게 된다.

     다음으로 맏아들의 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을 어기지 않고, “여러 해[동안] 아버지를 섬[긴]” 사실이다.  

‘아버지를 섬겼다’는 말에는 노예처럼 일했다는 뜻이 담겨있다.

맏아들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희생적으로 열심히 일한 공로를 내세우면서 이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토로하였다.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불평하기를,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아버지의]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의 동생을 “[아버지의] 이 아들”로 부름으로 동생에 대한 미운 감정을 표현하였다.  

맏아들은 동생이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대신에, 아버지가 이를 기뻐하는 것에 대해 시기심과 질투심을 갖게 되었다.

     맏아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죄악에 빠져서 생활하던 죄인들 보다는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며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신자들을 더 많이 축복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같이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 될 때,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지 못할 수 있다.

    

왜 어떤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른 신자들보다 더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실제적인 상황을 설명해준 아버지 (누가복음 15장 31 -32절)

 

대부분의 우리는 가족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理解)할 수 있다.

훌륭한 부모가 된다고 해서 자녀양육(子女養育)이 쉬워지거나 문제(問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비유의 끝에서,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그의 동생이 집에 돌아온 것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祝賀)할 것을 촉구(促求)한다.

 

누가복음 15장 31 -32절:

  •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 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 구절에서 아버지가 맏아들을 “얘”라고 부른 것으로 되어있는데, 본문에서 그 것은 “아이야” 혹은 “아들아”라는 말이 되고 있다.  

첫째로, 아버지는 맏아들을 그같이 부름으로, 그가 자기의 “아들”임을 상기시켰다.

동생이 돌아 왔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맏아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다.  

둘째로, 아버지는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라고 말함으로 맏아들과 항상 함께 살고 있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아버지는 맏아들이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認定)을 받지 못하고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랬다.

종종 사람들은 일상적인 평범한 것보다 특별한 것에 더 큰 반응을 나타낼 때가 있다.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아버지가 보인 반응이 바로 그 같은 경우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모두 귀중한 일이 되고 있다.

셋째로,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는 말로, 맏아들에게 그의 유산(遺産)이 온전한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동생이 돌아온 일은 형에 대한 아버지의 책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작은 아들이 집을 떠나기 전에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 즉 유산(遺産)을 달라고 요구(要求)했을 때, 아버지는 두 아들 사이에 돌아갈 분깃을 이미 나누었던 것이다.

그 말은 남아 있는 모든 것은 맏아들의 몫으로, 그의 소유가 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눅 15: 12).

역설적인 것은, “살진 송아지”조차도 엄밀한 의미에서 형의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특별히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여, 맏아들에게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형은 자기의 동생을 아버지에게 “[당신의] 이 아들”로 묘사했던 것에 반해 (눅 15: 30), 아버지는 두 아들이 같은 혈육인 형제가 됨을 강조하여 맏아들에게 작은 아들을 “네 동생”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형은 동생이 집에 돌아온 것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 종들에게 했던 말을 맏아들에게 다시 하였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다]”고 하였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을 기뻐하며 축하해야 한다.

우리들 모두는 한 때 탕자들이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시고 영생을 주셨다 (엡 2: 1).

우리는 길을 잃은 양 같았지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서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 오셨다.

 

당신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신자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을 크게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은 우리가 죄(罪)를 회개(悔改)하고 그에게로 돌아오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다.
  • 신자들은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오는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할 수 있다.      
  • 신자들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며 축하해야 한다.      

 

다른 신자들이 더 좋은 은사를 받았거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축복하신 것으로 인해 그들에 대해 시기심이나 질투심을 가진 적이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시간을 내어 그 같은 시기심이나 질투심을 하나님께 자백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 행하시는 것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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