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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2월 28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13과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제자

 

 

학습구절: 누가복음 9장 18 -23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리기를 기대하신다.     

 

주요교리: 성자 하나님    

성자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모습 그대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눅 24: 44 -46).     

 

암송구절:  누가복음 9장 23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Then he said to them all:  

‘Whoever wants to be my disciple must deny themselves and

 take up their cross daily and follow me.’”  

 

 

시작하는 :  

 

어떤 사람들은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믿으며 따르는 신앙생활을 선호(選好)한다.  

니고데모처럼, 그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들은 어떤 특정 그룹과 어울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해 침묵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직장 동료들을 의식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주저하거나 꺼려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은 공개적인 사건이 되고 있으며,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를 위해 공개적인 생활을 하도록 요구하신다.

 

신자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하거나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9 1절부터 62절까지
 

     누가복음 9 장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서 중요(重要)한 전환점(轉換點)을 이루는 기록이 되고 있다.

누가복음 이전의 장들은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의 예수님의 공적 사역에 초점(焦點)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9 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여정과 그곳에서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사건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시키신 일에다 그들의 관심을 돌려 좀더 집중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0장부터 19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에 일어난 사건들과 그의 가르침에 대한 기록이 되고 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데는 무엇이 포함되며 요구되고 있는가?
이 질문(質問)은 9 장의 다양(多樣)한 사건(事件)들과 연결시키고 있다.  

9장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도록 열두 제자들을 보내신 일로 시작하여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갖가지 변명을 대며 따르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립적인 장면으로 끝나고 있다.

그 중간에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사도”로 임명하셨다 (눅 6: 13).  

사도”라는 말은 특별한 임무나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그같이 보냄을 받은 제자들은 그들을 보낸 예수님을 대표하고 있다. 

예수님은 비유(比喩)와 교훈(敎訓)과 모범(模範)을 사용하여 그들을 가르치셨다.

9장의 첫 번째 부분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에게 맡겨주신 현장 훈련을 묘사하고 있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지켜 보았던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는 배우고 목격한 것을 실천할 때가 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가룟 유다가 귀신을 쫓아 내고 병자를 고칠 수 있는 권세를 받은 사도들 가운데 포함된 것이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와 사도로서 실패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가를 진지하고도 냉철하게 생각하도록 상기시켜 준다.

     9장의 끝 부분에서, 예수님은 그를 따를 기회(機會)가 있는데도, 이것저것 변명을 늘어놓은 사람들을 만나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불편(不便)을 겪는 것조차 원치 않았다.  

     9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使命)에 참여하는 것에는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제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그를 따르는 일이 포함(包含)된다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를 부끄러워하는 위험(危險)에 대해 경고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는 또 다른 주제(主題)는 예수님의 참된 본성(本性)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을 바로 잘 아는 것은 그를 따르기로 결정하는데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 명 이상의 사람들을 먹이심으로 그의 신적 능력(神的 能力)을 보여주셨다(마 14: 13 -21; 막 6: 30 -44; 눅 9: 10 -17; 요 6: 1 -15).

그는 또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너무나 유명해서 그 소문을 들었던 헤롯도 예수님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알기를 갈망했었다 (눅 23: 8).

그런데도,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어떤 분인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告白)했을 때(눅 9: 20)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같이 보였지만, 얼마 후 그가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와 똑같은 범주에 두고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참된 본성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눅 9: 28 -36).

사람들은 예수님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도 신학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다.    

     열두 사도를 지도자로 준비시키셨을 때, 예수님은 또한 그의 죽음과 부활을 위한 기초(基礎)를 놓으셨다.

그는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다 (눅 9: 33).

당시 그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이를 기억하고 그를 따르는데 더욱 헌신하게 되었다.

 

 

학습구절 연구

 

베드로의 고백 (누가복음 9장 18 -20절)  

 

베드로의 고백(告白)은 예수님의 지상사역에서 중심이 되는 중요(重要)한 부분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되고 있다.

제자의 삶에서 그 같이 중추적(中樞的)인 고백(告白)을 하도록 영감(靈感)을 준 질문(質問)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핵심질문(核心質問)이 되고 있다.

그 질문은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9장 18절

  •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보리 떡 다섯 개와 물 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이 있은 후 (눅 9: 10 -17),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무리들에게서 떠나 조용한 곳으로 가서 예수님은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함께” 있었다.

같은 사건에 대한 마태 복음과 마가 복음의 기록은 그 장소를 “빌립보 가이사랴”로 밝히고 있다 (마 16: 13; 막 8: 27).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은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25 마일 떨어진 곳으로, 요단계곡 상류의 헬몬 산 기슭에 있었다.

이 지방은 갈릴리 바다 주변 지역과 가버나움이나 베데스다와 같은 해안 마을들보다 인구가 적었다.

또한 빌립보 가이사랴는, 그 이름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이방인 문화가 강한 지역이었다.

    기도를 마치신 후, 예수님은 그의 관심을 제자들에게로 돌리셔서, 그들에게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셨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 같은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실제로, 예수님의 질문은 후속조치로, 좀더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인 답변을 얻기 위한 무대를 설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누가는 이전 문맥에서 이미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한다고 하였고 (7: 16 참조),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거나 침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였다 (9: 7-8 참조)고 하였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기에 죄 사함을 선포하며 신성모독을 하느냐고 하였다 (눅 5: 20 -21).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라고 하였다 (눅 8: 25).

 

누가복음 9장 19절

  • 대답하여 이르되 침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제자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되고 있다.  

한 가지 대답은 일부 사람들이 예수님을 “침례 요한”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분봉 왕 헤롯도 침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헤롯은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전한 것과 같은 소문을 잘 알고 있었다 (눅 9: 7-8).    

     예수님에 대한 또 다른 견해(見解)는 “더러는”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생각하거나 “ 선지자 중의 사람이 살아났다고 하는 것이었다.     

엘리야의 예언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과 생각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행하시는 일에 주목하였을 때, 그들은 엘리야의 사역이 예수 안에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리니”라고 한 말라기 4: 5의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에 의해 성취된 것으로 믿었다.

예레미야도 구약 시대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예언한 선지로 취급되고 있었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을 메시야보다 먼저 와서 엘리야의 능력과 사역으로 백성을 준비시킬 자로 분명히 밝히셨다 (눅 1: 17; 마 11: 14).

    큰 무리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능력(能力)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같지 않고, 권위가 있었다 (막 1: 22).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 즉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9장 2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예수님은 실제로 무리가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關心)이 없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들 자신의 결론(結論)에 도달(到達)하기를 원하셨다.

그들은 그때까지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함께 생활했으며, 그의 말을 듣고, 그가 행하시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온갖 일을 함께 겪은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었다.

예수님은 질문의 초점(焦點)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제자들에게로 돌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질문에 대해 제자들이 직접 대답하기를 원하시고 그 대답을 듣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그 질문은 제자들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믿고 있는 바를 고백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예수님의 그 질문은 아직도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직접 답변해야 될 신앙고백이 되고 있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는 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변화 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 사이의 초자연적인 만남을 가로막고 나선 적이 있다 (눅 9: 33).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러 오셨을 때, 오직 베드로만이 예수님께 “나를 명하사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간청하였다 (마 14: 28).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큰 소리를 치며 나섰던 적이 있다 (마 26: 33).

     베드로답게 그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마태복음은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마 16: 16).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막 8: 29).   

마가와 누가는 단순히 핵심적(核心的)인 내용을 제시하는 반면에, 마태는 베드로의 고백을 더 자세하게 가장 잘 표현(表現)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측면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 한 것인데, 그 말에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포함되고 있다.

헬라어로 “그리스도”는 히브리어의 “메시야”와 같은 뜻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단지 선지자나 교사 또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상처받는 사람이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선한 사람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능가하며 초월(超越)하는 그리스도이시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의 참된 본성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할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를 수 있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어떤 면이 그의 본성(本性)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르도록 어떻게 도울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 (누가복음 9장 21 -22절)

 

베드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말로,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제자들의 확신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메시야가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한 의견(意見)은 예수님이 누구이신 가에 대한 견해(見解)만큼이나 다양(多樣)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명하시며 경고 하였다.

 

누가복음 9장 21-22절:

  •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마가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에게서 기적적인 도움을 받는 것을 목격하였거나 받은 사람들에게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막 1: 44; 3: 12; 5: 43; 9: 9).  

이곳 누가 복음에서 베드로의 담대한 신앙고백 이후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고하시며 자기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 같은 사실에 함축되고 있는 뜻은,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믿고 있는 바를 널리 알리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확증하고 기뻐하며 칭찬하셨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마 16: 17 -19), 그 시점(時點)에서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메시야에 대해 그릇된 개념(槪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들을 본 군중들은 예수님이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자, 즉 메시야라고 하면서 이전에 이미 그를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기까지 하였다 (요6: 14 -15 참조).

그들은 메시야가 어떤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오셨는지를 이해(理解)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야임을 확실하게 밝히셨다는 사실이 너무 일찍 발표되고 알려질 경우, 그것은 도리어 그의 사역을 진척(進陟)시키는 것이 아니라, 방해(妨害)하는 일이 되었다.

또한 그것은 예수님의 사명(使命)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의심할 여지없이 이미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많은 잘못된 생각과 견해를 고착시키며 예수님의 반대자들과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끝나기 전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계획하신 일을 다 마치시기 전에 부정적(否定的)인 반응(反應)들이 그 모든 상황을 위태롭게 만들었을 위험이 있었다.

     심지어 제자들 자신들도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확인하신 후,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자신이 하시려는 일을 제자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제자들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다니엘 7 장 13-14 절에서 사용되고 있는 의미로,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기대했던 메시야는 고난 받는 종이 아니라, 강한 통치자(統治者)였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고난 받는 종"을 묘사하는 이사야서의 구절들을 메시야에게 적용하지 않고,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시켰다 (사 53장).

대신에, 메시야는 백성들을 집결시켜, 하나님의 깃발 아래 연합하여 승리로 이끄는 백성들의 정치적(政治的) 및 군사적(軍事的) 지도자(指導者)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로서 사람들의 환영을 받자 않고, 오히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을 때, 제자들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했음이 틀림 없다.

여기서 “장로들”이란 말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통치자들인 70 명으로 구성된 공회, 즉 산헤드린을 대표하고 있다.

그 해의 대제사장은 자동적으로 산헤드린의 지도자가 되어, 공회의 구성원은 71명이 되었다.

대제사장들은 전에 대제사장으로 섬긴 사람들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재판에 참여하여 그의 죽음을 요구한 영향력 있는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서기관들”은 본질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문화에 적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율법교사들이었다.

      예수님은 또한 많은 고난을 받고 배척을 당한 후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밝히셨다.

여러 차례에 걸쳐, 예수님은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을 언급하셨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담대하게 고백했던 시몬 베드로까지도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를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하면서 항변하였다 (마 16: 22).

결국, 그들 제자들은 그들의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는가 (눅 18: 28)? 

예수님이 죽임을 당한다면,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다가올 일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시키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예상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부활(復活)이라는 기쁜 소망(所望)을 제시해 주셨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셨다.           

살아나[다]”라는 헬라어 동사는 수동태(受動態)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셔서 예수님이 부활하게 되셨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골 2: 12; 딤후 1: 10; 벧전 1: 21).

예수님은 심지어 어느 날에 살아나실지를 밝히셨다.

부활사건 이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직접 볼 때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그 모든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요 20: 9, 20).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    

부활의 현실이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주었습니까?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신앙 (누가복음 9장 23 -27절)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고백하였다.

제자들이 그같이 고백한 후에, 예수님은 메시야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님의 어려운 가르침과 그가 제시하신 제자(弟子 )의 힘든 길을 감안할 때, 그것이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이 될지라도, 제자들은 그를 계속 따를 것인가?

 

누가복음 9장 23절: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인자(人子)인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포함하여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후, 예수님은 방향을 바꾸어 그의 제자들이 직면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문맥으로 보아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그를 믿고 따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표준 새 번역 -9: 23).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그의 부르심을 받아 들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아셨다 (마 7: 13).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이란 조건부(條件附) 진술(陳述)로 시작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는 어떤 요구조건들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제자의 삶에 필요(必要)한 세 가지 요구조건(要求條件)을 제시하신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첫 번째 요구조건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인생과 의사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도록 허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정치적인 권세를 달성하기 위해 혹은 대중적인 명예를 얻기 위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하기를 거부하셨다 (눅 4: 1 -13).  

예수님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거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가는 자들을 찾아 구원하는 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섬기도록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우선시하지 말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의 요구조건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이 되고 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예수님 당시에, 로마 사법제도 아래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하였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한 번의 사건으로, 끔찍한 사형 선고를 받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거절과 학대, 조롱과 구타 혹은 수치등과 같은 십자가의 처형과정들을 육체적 죽음이라는 궁극적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겪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행하려는 헌신감으로 인해 겪게 되는 희생과 고난을 가리킨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또한 십자가가 마지막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부활생명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도전에 대비해야 한다.

     세 번째의 요구조건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마 4: 19; 눅 5: 27), 그 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뜻이 되고 있는 반면에, 세 번째의 요구조건으로 “따[르라]”는 말은 평생 동안의 제자의 삶으로 부르시는 뜻이 되고 있다.

제자들은 그들의 주님이 겪으신 일들을 경험할 것을 기대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본으로 나타내 보여주신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자들의 삶은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면과 부정적이고도 소극적인 면의 양면성을 지니게 된다.

 

누가복음 9장 24 -27절: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9장 24절과 2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의 삶에 따르는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그들은 세상적인 권력과 재물을 얻고 성공을 거둘지 모르나, 그 것들은 영원한 가치(價値)가 없는 것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게 마련이다.

인간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신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반문적(反問的) 질문법을 사용하셔서, 이 세상의 것들을 얻는데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은 근시안적(近視眼的)이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강화(强化)하셨다.  

일시적인 세상의 것들을 얻으려고 하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아(自我)와 영원한 것을 잃게 된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거래(去來)를 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심판(審判)의 요소(要素)를 추가함으로써 제자의 요구조건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확장하셨다.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눅 9: 23)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려는 사람이다 (9: 24).

마찬가지로, 제자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을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선뜻 나서서 말하지 못하거나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잠시 주저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말은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적대에 직면하는 것이 너무나 실망이 되거나 두려워서 그를 따르는 것을 포기하거나 멀어지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나중에 누가 복음에서,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박해에 대한 또 다른 가르침을 하신 후 (눅 2: 4-7), 예수님은 같은 경고를 하셨는데, 그때에는 “부끄러워한다”는 말 대신에 “부인한다”는 말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고 하셨다 (눅 12: 9).

     예수님을 따르거나 부인하려는 한 사람의 결정(決定)은 영원한 결과(結果)를 가져온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이 세상에서 많은 희생이 따르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그의 말씀에서 부끄러워할 원인을 찾아서 그를 부인하면, 궁극적으로 심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제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고무적(鼓舞的)인 약속(約束)의 말씀으로 끝나고 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려는 약속의 말씀이 확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그 것을 신뢰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때, 그것은 제자들에게 장수(長壽)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의 통치(統治)가 가까운 것을 강조(强調)하는 뜻이 되고 있다.

     이 문맥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특정한 장소의 개념(槪念)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통치(統治)의 개념이 되고 있다.   

보통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궁극적으로 온전하게 이루실 그의 왕국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권의 개념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우리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는 자들을 통해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경우, 그의 제자들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이 되고 있는가?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건과 오순절 날 성령님이 임하신 것을 들고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시고 8일이 지난 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변화산에서 인자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을 본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눅 9: 28 -36).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특정한 사건이 무엇이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사건들이 하나님의 통치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동일시 되는 것을 피하려는 유혹을 어떻게 극복 하였습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을 것이다.     
  •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당신과 당신의 성경 반원들이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일들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그 일은 왜 중요합니까?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위험을 깨달을 필요가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그 사람이 그러한 위험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오늘 배운 성경 구절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이 세 가지 영역에서 성장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입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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