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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1월 31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9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학습구절: 누가복음 5장 4 -11, 27 -32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다양(多樣)한 배경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을 그의 사역에 사용하신다.   

 

주요교리: 전도와 선교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뒷받침되는 전도의 말과 그리스도의 복음과 조화를 이루는 다른 방법들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를 끊임없이 노력하며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의 책임이자 의무(義務)이다 (딤후 4: 5).  

 

암송구절:  누가복음 5장 32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시작하는 글:  

 

소셜 미디어로 인해 지금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쉽고도 편리하게 옛날의 급우들이나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다시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에 못지 않는 더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어떤 특별한 일을 할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던 사람이 그가 결코 할 것으로 생각되지 않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실지 결코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가능성(可能性)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그의 제자(弟子)로 부르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게 보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당신이 어린 시절에 알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같은 변화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어떤 것이 되고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5장 1 -11, 27 -32절
 

사역초기(使役初期)부터,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를 소수의 사람들을 그의 제자로 부르셔서 그의 사역의 지도자들로 훈련시키고 준비시키셨다.

특별히,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육체적(肉體的)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를 바라보며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전파하는 말씀을 듣고 여러 곳에서 그를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은 그들 중에서 진정으로 그를 믿고 헌신할 소수의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근처 해변에서 시몬과 다른 제자들을 처음 만나신 때는 언제인가?

그 같은 시간표(時間表)를 한 복음서의 기록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우리가 서로 관계되고 있는 다양(多樣)한 장소들과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을 식별(識別)하기 위해서는 네 복음서의 기록이 모두 필요하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시몬과 다른 어부들을 만나신 일이 일어난 시간 대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40절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직후 안드레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다.

안드레는 자기의 형제인 시몬을 예수님에게 소개하였다 (요 1: 41 -42).

나중에, 누가 복음 4장과 5장의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최초의 제자들을 부르신 배경이 되고 있다.

예수님이 그같이 최초의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은 이 과의 학습구절에서 다루게 될 내용이 되고 있다.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다시 돌아 오신 후에,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그 성읍 사람들 중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며 사역하셨다.

예수님은 갈릴리 전역을 다니시면서, 그가 나중에 “사도”(使徒)로 칭하신 “열둘을 택하여” 훈련하기 시작하셨다 (눅 6: 13).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선택은 무작위적(無作爲的)인 것이 아니었다.      

전지(全知)하신 예수님은 그가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셨다.

    예수님의 초기 순회사역(巡廻使役)의 대부분은 갈릴리 바다로도 알려지고 있는 게네사렛 바다 주변에서 이루어졌다.

갈릴리는 서쪽의 지중해와 동쪽의 갈릴리 바다 사이에 위치한 넓은 지역이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의 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었고, 게네사렛은 서쪽 해안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누가복음 4장의 뒷부분과 5장의 앞 부분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1차로 부르신 몇 명의 제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최소한 네 명의 제자들은 이 해안 마을에 거주하면서 어부로 일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항상 그들이 있는 장소에서 부르셨지만, 그들이 있는 상황에 그들을 그대로 남겨두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들 중 일부에게는 새 이름을 주셨고, 그들 모두에게는 새로운 사명과 삶의 목적을 주셨다.

어부들은 그물과 가족, 그리고 안전한 생계수단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셨다.      

 

예수님을 따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누가복음 5장 4 -11절)

 

누가는 이 단원에서 “시몬”과 “세베대의 아들”로 형제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누가복음서에서 처음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이 사건 이전에 예수님을 만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요한 복음은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가 그보다 이전에 예수님을 그의 형제인 시몬 베드로에게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야로 소개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요 1: 40 -42 참조).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시몬 베드로의 어업 동업자(同業者)였기 때문에 (눅 5: 10 참조), 그들도 안드레와 시몬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곧 이어, 예수님에 대해 들었거나 직접 만났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누가복음 5장 4 -5절

  •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다 하고

예수님이 “호숫가에” 있는 것을 보시고 사용하겠다고 부탁하신 배는 “시몬의 배”였다 (5: 3).  

배의 크기를 감안할 때, 배를 육지에서 바다로 진수(進水)시켜 노를 저어 떼어 놓으려면, 더 많은 사람이 필요했을 수 있지만, 최소한 두 명의 어부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의 하나가 “시몬”이었다.

     5장 3절은 예수님이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라고 하고 있는데, 본문(本文)은 이 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內容)이 무엇인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가르치셨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어찌 되었든,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그 같은 말씀을 하신 배경으로, 우리는 두어가지 이유(理由)를 생각해 볼수 있다.

예수님은 그같이 배를 사용하도록 허락해주고 시간을 내 준 것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어부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느끼셨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는, 예수님은 기적적인 고기잡이를 통해 시몬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려는 영적인 목적을 갖고 계셨던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시몬은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부르며 예수님의 지시를 공손한 태도로 대하긴 하였지만, 아주 강한 회의적(懷疑的)인 반응을 나타냈다.

“랍비”라는 말로, 존경심을 나타내는 이 호칭은 문자 그대로 한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며 강조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다.

     시몬은 먼저 “우리들이”라는 말로, 자기와 동료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물고기를 잡기에 가장 적절한 때는 밤이었다.

그리고 물이 아주 깊은 곳보다는 깊지 않은 곳에서 고기가 더 잘 잡혔다.

특별히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횃불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배와 그물가까이로 유인(誘因)하여 잡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것도 물고기를 잡기에 좋지 않은 때인 대낮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물에 대해 말한다면, 이미 깨끗하게 씻어내고 수리한 상태였다.

직업적인 어부였던 시몬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같은 작전과 계획은 잘 들어맞을 것 같지 않았지만,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물을 내렸던 것이다.

 

누가복음 5장 6 -7절:

  •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
  •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어부들이 예수님의 지시에 순종했을 때, 결과(結果)는 엄청나고 놀라운 것이었다.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하였다.

어부들은 그물을 귀중하게 여겨서 매일 고기잡이를 한 후에는 그물을 수리하고 깨끗이 씻어서 보관해 두곤 하였다.

그물이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면 소중한 수의 물고기들이 도망칠 수 있다.

이 경우, 그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물고기가 너무나 많이 잡힌 것이다.

     어찌할 줄 몰랐던, 시몬과 그의 동료는 “다른 배에 있는 동무[동업자]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10절은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시몬의 동업자들을 “야고보와 요한”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시몬의 배에 타고 있던 어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시몬과 함께 있던 어부를 시몬의 형제인 안드레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그들이 고기를 끌어 올리니, 두 배가 잠길 정도로 물고기가 가득 채워졌다;  

 

누가복음 5장 8 -9절:

  •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이 이야기에서, 누가는 처음으로 시몬을 “시몬 베드로”라고 부르고 있다.

예수님이 안드레의 소개로 시몬을 처음 만나셨을 때 그를 “게바”라고 부르셨기 때문에, 그 이름은 특별한 의미(意味)를 지니고 있다 (요 1: 42).

게바”는 아람어 이름인데, 헬라어로 번역하면 “베드로”이다. 

두 용어(用語) 모두 반석(盤石)이란 뜻이 되고 있다.

시몬 베드로”라는 복합(複合) 혹은 이중(二重) 이름은 예수님께서 그를 어떻게 만드실 것인지를 나타내주고 있다.

예수님은 나중에 “베드로”라는 시몬의 새 이름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셨다 (마 16: 16 -18).

     시몬 베드로는 “이를 보[았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많은 고기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대와 한계를 벗어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힌 물고기는 잊은 채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리고]” 말았다.  

베드로의 그 같은 자세는 그가 예수님께서 권위(權威)있는 교사 이상의 존재가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예수님에 대한 호칭까지도 바뀌어, 베드로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불렀는데 (5: 5), 이제는 “주여”라고 부르고 있다.

영어의 “Lord”로 번역되고 있는 그 용어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뜻이 되고 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며 “나를 떠나소서”라고 간구(懇求)하였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죄가 많은 인간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도 환상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을 때 똑같은 반응(反應)을 보이고 자신의 죄악(罪惡)에 압도당했던 것을 보게 된다 (사 6: 5).

그 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고 한탄하였다.      

시몬 베드로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고기를 잡았던 다른 어부들도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누가복음 5장 10 -11절:

  •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누가는 5장 10절에서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는 말로, 특별히 두 형제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야고보와 요한은 “시몬의 동업자”이자 “세베대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는데, 나중에 그들은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으로 불려졌다 (막 3: 17).  

그들 형제도 시몬 베드로와 그와 함께한 다른 어부들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는 것을 목격하였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시몬이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자, 다른 배에 있던 그들은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웠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는데, 이는 베드로가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예수님께 떠나시기를 간구할 정도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신다.

그것은 시몬 베드로에게 신분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목적을 바꾸어주는 놀라운 말이 되고 있다.

그는 물고기를 잡는 대신,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할 것이다.

     예수님과 시몬 베드로 사이의 대화는 다른 어부들이 그물과 물고기들을 배로 끌어 올리는 동안에 배 위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그 같은 작업(作業)이 끝나자, 그들은 “배들을 육지에” 대었다.

     마가복음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기록되고 있는데 (막 1: 16 -20), 그 기록은 그 때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은 물론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인 야고보도 제자로 부르신 것을 밝히고 있다.

누가복음은 주로 시몬 베드로가 부름을 받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11절에서는 “그들이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따른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어업에 상당한 자본(資本)을 투자(投資)한 사업가(事業家)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당신은, 시몬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를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예수님을 따른 레위 (누가복음 5장 27 -28절)

 

갈릴리 지역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 기록(記錄)하면서, 누가는 예수님이 한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신 일을 언급(言及)하고 있다 (5: 12 -16).

그 나병 환자는 예수님이 자신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큰 믿음을 나타내었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심으로 깊은 동정심을 나타내 보이시고 그를 고쳐주셨다.

그런 다음 누가는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신 일과 그같이 하시는 과정에서 그 사건을 목격한 종교지도자들이 취한 위선적인 태도를 정죄하신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5: 17 -26).

그들 두 가지 사건은 예수님께서 죄인(罪人)으로 그리고 증오와 멸시의 대상으로 사화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배경이 되고 있다.  

 

누가복음 5장 27 -28절:

  •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그 후에”라는 문구는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초기 사역으로 행하신 주요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예수께서 나가사”라고 한 말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해주시고 죄를 사해주신 곳에서 나오신 것을 가리키는 말이거나 (5: 19), 단순히 예수님의 지속적인 사역 활동을 강조하는 문학적인 표현 방법 일 수 있다.

     어떻든 간에, 예수님은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

누가가 사용한 “보다”라는 헬라어 용어는 “어떤 것을 주의 깊게 쳐다보다”는 뜻이 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레위라는 세리가 예수님의 기픈 주의를 사로 잡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 모든 세리들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사회적 추방자로 취급되었다.

이는 세리(稅吏)들이 이스라엘의 지배자인 로마제국의 협력자(協力者)들이었고, 이방인들과 자주 어울리며 거래하며, 이교 신들의 형상이 담긴 돈들을 취급하는 부정한 사람들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필요하다면 평판이 좋지 않은 특정 세리들과 거래를 할 수도 있었지만, 세리들은 결코 유대인 그룹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가는 예수님의 관심을 끌었던 세리를 레위라는 사람으로 밝혔다.

마태복음서에서 그 사람은 “마태”로 불려지고 있는데 (마 9: 9), 그는 마태복음서의 저자이다.

그리고 마가 복음은 덧붙여서 레위가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막 2: 14).

세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과 레위 사이의 대화(對話)는 단지 두 마디 짧은 말로만 구성되고 있다.  

예수님은 세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누가는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네 어부들처럼, 레위는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했던 것이다.

레위는 그 부름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초대로 이해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그리고 그를 따르는데 포함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는 어떤 대가가 따릅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인들을 부르신 예수님 (누가복음 5장 29 -32절)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은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경계와 놀라움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그룹으로는 바리새인들이었다.

슬프게도, 그들은 율법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그들의 엄격한 전통들을 고수하지 않는 사람들은 율법을 어긴 것으로 대하며 경멸적인 태도로 대하였다.  

레위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자, 인근에 있던 일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렸다고 비난을 하고 나섰다. .

 

누가복음 5장 29 -30절:

  •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레위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을 많이 초청하였다.

우리는 레위가 그같이 큰 잔치를 베푼 목적을 두어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그는 예수님께서 특별한 친절과 사랑을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기뻐하며 축하하기를 원한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 레위는 자기의 친구들도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였고,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원하였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알기를 원한다.

레위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부름을 받은 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한 나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였다.

그는,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믿지 않는 친구들을 초대함으로, 오늘날 신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전도 전략의 한 예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 가정은 믿지 않는 친구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레위는 친구들을 초대하였고, 그의 집은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즐기는 잔치 자리가 되었다.

당시에 세리와 교제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죄인”으로 불려졌다.

     30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서, 잔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세리들이나 죄인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초대를 받지도 않았다.       

그 같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죄인들과 관계하는 것만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집에 초대를 받아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며 비난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들은 불만과 비난에 찬 말을 예수님께 직접 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하였다.

둘째, 그들은 자신들이 레위의 집에 모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월등(越等)하다고 생각하였다.

셋째,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는 그들의 질문에서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라면 그같이 그릇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을 나타내주고 있다.

 

누가복음 5장 31 -32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을 비난한 후에, 예수님께 직접 비난의 화살을 돌린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니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을 비방하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직접 대답하셨을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가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있[는]” “의사”에다 비유하셨다.

의사”는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가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반드시 필요하다는 명백한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일까?

더군다나, 만일 어떤 의사가 병자를 멀리하며 만나기를 거부한다면, 그 의사는 얼마나 무가치할까?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는 간결한 말로, 자신이 비유로 드신 말에다 적용하심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셨다.

간결한 그 말에는 깊은 뜻이 가득 담겨 있다.

첫째, 그 말은 죄의 실재(實在)와 죄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주장한다.

둘째, 그 말은 죄인들이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실을 주장한다.

셋째, 그 말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부르시는 것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죄인이 하나님 자신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

넷째, 그 말은 회개가 요구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다섯째, 그 말은 죄인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장한다.

 

주님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증거하며 전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도구들을 당신에게 주셨습니까?

이번 주에 당신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전할 수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가 과거에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을 받는 자격(資格)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라고 사람들을 부르신다.     
  • 신자들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성경 공부반원들이 모든 사람을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토론하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좀더 쉽게 접근하기 위하여 반원들은 어떻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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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지금은 무엇을 할 때인가? - 제 9과 - 2021년 8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전도서 3장 1-15절 강호길 2021.07.31 34
297 무엇이 유익(有益)한가? - 제 1과 - 2021년 7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전도서 1장 12 -15절; 2장 18 -26절 강호길 2021.07.18 21
296 믿음의 시험을 받은 욥 - 제 1과 - 2021년 6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욥기 1장 8 -22절 강호길 2021.06.09 77
295 주님의 지상 명령 - 제 13과 - 2021년 5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36 -49절 강호길 2021.05.29 38
294 자신의 정체를 밝혀주신 예수님 - 제 12과 - 2021년 5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8 -31절 강호길 2021.05.24 32
293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 제 10과 - 2021년 5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54 -62절 강호길 2021.05.17 46
292 기꺼이 순종하신 예수님 - 제 9과 - 2021년 5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41 -53절 강호길 2021.05.07 43
291 기억하고 기념하는 믿음 - 제 8과 - 2021년 4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2장 7 -20절 강호길 2021.04.27 59
290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 제 7과 - 2021년 4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0장 9 -19절 강호길 2021.04.20 5058
289 복음이 필요한 죄인들은 누구인가? - 제 6과 - 2021년 4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1 -10절 강호길 2021.04.10 35
288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 제 5과 - 2021년 4월 4일 부활절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 -12절 강호길 2021.04.03 32
287 찬양과 예배를 받으신 예수님 - 제 4과 - 2021년 3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9장 29-40절 강호길 2021.03.28 25
286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것은? - 제 3과 - 2021년 3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8장 9 -17절 강호길 2021.03.20 27
285 신자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하나? - 제 2과 - 2021년 3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5장 20-32절 강호길 2021.03.13 27
284 누가 이웃인가? - 제 1과 - 2020년 3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0장 25 -37절 강호길 2021.03.06 27
283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제자 - 제 13과 - 2021년 2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9장 18 -23절 강호길 2021.02.27 39
282 은혜에 대한 사랑의 응답 - 제 12과 - 2021년 2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7장 40 -50절 강호길 2021.02.20 26
281 예수님의 통치권 - 제 11과 - 2021년 2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6장 1 -11절 강호길 2021.02.12 32
280 죄를 사하는 권세(權勢)가 있는 예수님 - 제 10과 - 2021년 2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17 -26절 강호길 2021.02.04 1517
»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 제 9과 - 2021년 1월 3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5장 4 -11, 27 -32절 1 강호길 2021.01.2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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