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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10월 25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8과  

 

 

하나님은 새롭게 하신다               

 

 

학습구절: 이사야 40장 18 - 31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새 힘을 주신다.

 

주요교리: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 최고의 사랑과 경외심과 순종을 나타내야 한다 (딤전 1: 17).

 

암송구절:  이사야 40장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시작하는 글: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과 비교되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로 활약하는 사람은 그 운동분야에서 성공한 선수와 비교되는 것을 고맙게 여긴다.
그러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나 어떤 다른 것과 비교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같은 사실을 이해하고 있던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아래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라는 말로 (40: 18),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분이 되고 있음을 선언한다.
하나님 만이 예배하며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며,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는 실망을 당하지 않는다.

 

당신과 비교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비교가 어떻게 칭찬이나 아첨이 있습니까?
비교가 어떻게 문제가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이사야 40장 1절부터 41장 29절까지

 

     이사야 40부터 66장까지와 1장부터 39장까지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差異點)이 있다.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열방(列邦)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초점을 맞추어지고 있다.  

앗수르는 이들 장들에서 똑같이 지배적인 강대국이자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道具)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앗수르는 결국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된다.

대조적(對照的)으로, 40장부터 66장까지에서는 유다가 유배된 땅인 바빌론에서 돌아오는 것에 초점(焦點)이 맞추어지고 있다.

이들 26장은 희망과 구속에 대한 약속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언어는 그같이 다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 같은 어조의 변화와 그들 후반의 장들이 이사야의 생애 이후에 펼쳐질 미래의 사건들을 예측하고 있는 사실 때문에, 일부 성경해석자들은 이사야 선지자 이외의 다른 사람이 후반부의 장들을 썼다고 추측해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증거를 따져보고 재어보면, 이사야가 썼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유일한 이유는 초자연적(超自然的)인 것을 반대하는 편견(偏見)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미래의 일을 아시며 그의 목적을 위해 미래의 일을 선지자에게 계시하셨다는 것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이사야 선지자가 그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사야서 전체 책의 저자라고 믿을 만한 모든 이유가 있다.

     40장과 41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일종의 “다시 하다”는 내용이 되고 있다.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은 이미 지불되었고, 그들은 이제 새로 시작할 기회를 가졌다.      

40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이 겪은 유배 생활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실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증거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대 근동의 대부분의 문화권(文化圈)에서, 한 민족이 파괴를 당하고 추방을 당하는 것은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힘이 의심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대조적(對照的)으로, 40장은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것은 반대의 현상이 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나님은 그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과 그 유배는 70년 동안 지속될 것을 예언하셨다.

그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에 대한 증거가 되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살아계신 하나님 (이사야 40장 18 -20절)  

 

이사야 40장 18절

  •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이과의 학습구절인 40: 18 -31은 1절부터 17절까지의 결론적인 역할이 되고 있다.

40: 12 -14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힘과 주권 그리고 이해력을 묘사한다.

다음 40장 18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종종 하나님의 자리에 두려고 하는 무력한 대용물(代用物)들에게 관심을 돌려 그들을 묘사한다.

    18 절에서 이사야가 제기한 두 가지 질문은 수사적(修辭的)인 형식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 대답을 이사야 자신도 알고, 진실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으로, 한 분이신 살아 계신 참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방의 어떤 왕이 우주만물을 창조하며 그 모든 것들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도 그같이 할 수 없다.

펼쳐지는 인류 역사의 기록에서, 어떤 제국(帝國)이 그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보장할 수 있을까?

어떤 강대국도 그같이 할 수 없다.

    이 첫 번째 질문은 두 번째의 질문을 더욱 기이하게 만든다.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는 말은 우상숭배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허튼소리를 드러내 준다.

창조(創造)의 기록{記錄}은 하나님이 오직 인간에 대해서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창 1: 26).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예배하기 위해 나무나 금속 물체를 세우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될 뿐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40장 19절부터 시작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말도 안 되는 이 어리석은 일을 공박한다 (44: 9 -20 참조)

 

이사야 40장 19 -20절

  •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인간이 관리하며 통제하는 것을 생각할 때,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게다가, 그같이 만들어진 우상은 아무 힘이 없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제조품(製造品)이다.

그것은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유배시키지도 않았으며, 그들을 유배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이 좀더 분명하게 납득할 수 있도록, 이사야는 우상을 만드는 과정(過程)을 묘사한다.

첫째로, 우상을 만드는 첫 단계(段階)는 장인(匠人)이 우상의 주형을 만든 다음 비교적 저렴한 금속(金屬)을 녹여 그 주형에다 부어 우상의 형상을 만든다.  

이 금속은 특별한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바로 그 금속은 도구나 무기 또는 동전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장인은 그 형상을 “금”과 같은 귀금속으로 입히고 “은 사슬” 같은 것으로 장식하였다.

그 같은 장식품들은 그 물건을 일상적인 물건들과 구별시키는 역할을 하였지만, 그 우상은 실제로는 값싼 장식품이나 예술작품과 다름 없는 물건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튼튼한 “나무” 혹은 목재는 받침대가 되었다.

이 받침대 나무는 우상이 넘어지거나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튼튼하고 견고하며 “썩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하였다.

어떤 번역에서는 이 나무가 우상 전체로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사야의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겼던 “다곤 신”이 다곤의 신전에서 넘어져 있던 일을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상 5: 1 -4).

     어떤 사람이든 주인이 넘어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세워놓고 붙들어 매놓아야 하는 우상에게 절하며 섬길 수 있단 말인가?

우상이 인류에게 그토록 매력적인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의 하나는 그들의 약점이다.

인간은 그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그같이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을 지배하며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같은 사실에 의혹을 품는다면,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사건들을 이끌어가시는 것을 살펴보고, 그것을 인간이 우상을 만드는 과정과 비교해 보면 된다고 한다.

 

당신은 일의 결과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기를 바라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흥정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적이 있습니까?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편으로 삼을 수 있는 우상들을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유일한 참 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그 같은 유혹을 극복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창조주 하나님 (이사야 40장 21 – 26절)

 

이사야 40장 21절:

  •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지식과 관련된 네 가지 수사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 모든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은 즉각적이고도 거침 없는 “”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사야의 도전적(挑戰的)인 질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백성들이 영적(靈的)으로 무지(無知)하다는 사실이다.

     첫째로, 이사야는 그들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고 묻는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리와 우상 숭배의 거짓을 알았거나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살아계시고 한 분이신 참 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알았던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았는데, 그 율법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들과 언약관계를 맺으신 바로 그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를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둘째로, 이사야는 그들 백성들에게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고 묻는다.

이사야는 그 질문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도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선지자들을 주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그들의 죄를 책망하며, 회개와 믿음을 추구하도록 하신 것을 인정하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백성들은 들었던 것이다.

     셋째로, 이사야 선지자는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 하였느냐”고 묻는다.

은혜에 대한 약속과 여호와께 전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언약은 전혀 새롭거나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이 이해하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능력과 공의와 목적들을 계시해 주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부터 그 같은 것들을 전해 들어오고 있다.

우상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넷째로, 선지자는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또한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천지가 창조 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고 한 시 19: 1절의 말씀은 그 같은 사실을 확증해주고 있다.

 

이사야 40장 22 -24절:

  •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자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40장 22절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이 “땅 위 궁창에 앉[아 계시다]”고 선언한다.

앉으시나니”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이사야 37장 16절에도 나오고 있는데, 거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궤 위에 있는 "그룹 사이계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40: 22).

그 용어(用語)의 문자적(文字的)인 뜻은 “앉아 있다” 혹은 “거주하다”가 되고 있다.

그러나 40장 22절의 문맥에서, 그 동사는 주권자로서 앉아 있거나 거주한다는 개념(槪念)이 분명하게 강조되고 있다.

이사야의 말에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땅 위 궁창에 앉[아 계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하나님은 우상에다 비기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만유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과는 달리,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고 한다.

이사야는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과 비교하여 인간의 상대적인 능력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사람들이 만든 우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나님의 위엄에 비교(比較)함으로, 인간(人間)을 메뚜기로 표현한 다음, 이사야는 인간지도자(人間指導者)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강조한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귀인들을 폐하[신다.]”  

귀인들” 혹은 “통치자들”은 인간 통치권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지만, 지상(地上)에서의 그들의 지위는 “땅 위 궁창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권세에 비교할 수 없다.

둘째로, 하나님은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신다.]”

여기서 사사들은 재판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그들에게는 지위와 함께 권세와 영향력이 따랐다.

그러나, 그러한 지위도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의 권세와 지위의 덧없는 본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세상의 통치자들과 지도자들은 단지 한 계절에만 피었다 살아지는 풀과 같다.

심기가 무섭게, 씨를 부리기가 무섭게,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면, 그들은 말라버리고 회오리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린다.

만 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와 비교할 때, 인간 통치자들의 통치는, 인간의 눈에는 길게 보일지라도, 눈 깜짝 할 사이에 왔다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사야 40장 25 -26절:

  •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본 학습구절인 40: 25에서 묻는 질문은 40: 18에 나오는 질문과 유사한 것이 되고 있는데, 다른 점은 여기에서는 일인칭 형태로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물으시는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비교할 수 없음과 독특함을 인정하라고 도전하신다.

질문은 수사적인 것으로, 그들 질문에서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는 대답이 기대되고 있다.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인간 통치자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하거나 감히 비교하겠다고 할 수 없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거룩하신 이”로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이사야가 즐겨 사용하는 하나님의 호칭이 되고 있다.

거룩하다”로 번역된 어원(語源)은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본질 및 도덕적인 면에서, 하나님이 다른 모든 것들과 전적으로 구별 혹은 분리되는 분이 되심을 묘사해 주고 있다.

믿는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지만 (벧전 1: 15 -16 참조), 그의 무한한 거룩함에는 결코 도달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를 그의 창조물과 구별시켜준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는 눈을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고 한다.

그것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깜깜한 밤에 밖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하늘에 가득 차 있는 방대한 천체들을 바라보며 누가 그 모두를 창조하였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라는 질문은 수사적(修辭的)인 것이 되고 있다.

이사야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로, 이사야는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라는 말로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낮에만 보이는 해를 포함하여 밤에만 볼 수 있는 모든 천체를 창조하였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천체)”을 이끌어 내실 뿐 아니라,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신다]”.

성서 시대 때에도, “묘성” 혹은 “삼성”처럼 (욥 38: 31 참조), 특정 별자리에 대한 이름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요점은 그것이 아니다.

히브리어 사상에서,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그같이 이름을 받는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갖게 되는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만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 되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아담이 짐승들의 이름들을 지은 일이나 (창 2: 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주신 일에서도 확증되고 있다 (창 17: 5; 32: 28).

셋째로, 하나님께서 만상을 수효대로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실 뿐 아니라, 존속시켜 주신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함으로 하나도 빠짐이 없[다]”는 말로 그 같은 사실을 설명한다.

여기서 이사야는 그 같은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목격한 것을 신앙적으로 설명하며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별들의 시종(始終)과 생성과정은 물론 그 모든 운행과정을 정하시며 통제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지 못했던 상황에 처한 적이 있습니까?

위의 구절구절들을 학습함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갈등이 생길 때, 놀라운 창조세계를 바라 보는 것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무한한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 (이사야 40장 27 -31절)

 

이사야 37장 27 -29절:

  •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야곱아”와 “이스라엘”아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주신 족장인 “야곱”의 후손들이다 (창 32: 28).
두 이름을 병행(竝行)하여 사용한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의 백성을 잊거나 버리지 않으신 것을 상기시켜주는 목적이 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왜 그를 계속 의심하는 지를 물으신다.

그 말씀에서는 그들이 단지 의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라고 하면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는 뜻이 암시되고 있다.

그 상황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 소리”와 비슷하였다 (출 2: 24).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못 보시거나 무시하신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고 한 말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공의를 실현하지 않고 계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고 있는 뜻이 암시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일이 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21절에서 한 것처럼, 그들에게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고 다시 묻는다.

그같이 반복되고 있는 질문에 담겨있는 뜻은 그들은 알고 있어야 하고 들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 다음,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여호와”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되시며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가 되심을 상기시켜 준다.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명칭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가시덤불’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주신 “언약의 이름”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그의] 칭호”가 되고 있다 (출 3: 2, 13 -15).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에 얽매이지 않는 분이 되심을 상기시켜 주며 강조하고 있다.

예루살렘이 멸망 당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 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은 여호와께서 패배했다거나 더 이상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지 않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더욱이, 하나님 여호와는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며, 약속의 땅뿐만 아니라 바벨론 땅을 다스리며 주관하는 분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에 비추어,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로 그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 되심을 상기시켜 준다.

여호와 하나님은 항상 전능(全能)하신 분이시며, 항상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에 대한 그 같은 사실들을 종합(綜合)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불만들은 논박(論駁)될 수 있다.  

     이스라엘을 잊거나 버리는 대신에, 하나님은 오히려 그의 백성들 중에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해 주신다].”     

사도 바울은 이 격려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에게 반영(反影)시키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믿음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롬 8: 37 -39).

 

이사야 40장 30 -31절: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소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나이 많은 사람들과 비교해서, 일반적으로 체력과 힘이 왕성한 청소년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그들의 힘과 체력은 무진장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신체적 및 정신적 압박과 억압을 받으면, “피곤하며 곤비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활력이 넘치는 “장정”이라도 지치면 “넘어지며 쓰러[질 수 있다].”

영적인 측면에서, 이사야는 바벨론의 포로와 같은 상황(狀況)에 처해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내적 자원(資源)이나 능력(能力)을 훨씬 능가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땅 끝까지 창조하신” 그리고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여호와를 앙망[할]” 필요가 있다.

     “앙망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믿다”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약속의 말씀을 지키실 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바라며 기다린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주권자(主權者)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새 힘”을 주실 것을 확신(確信)할 수 있다.

이사야는 그 같은 승리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세 가지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새 힘”을 얻는다.

이 우아하고 힘있는 새는 날개를 가지고 바람의 기류(氣流)를 이용하여 오랜 시간 동안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 때 엄청난 영적 힘을 받는다.

     둘째로, 이사야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은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곤비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40장 28절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은 결코 “곤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事實)을 밝히기 위하여 사용한 것과 동일(同一)한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영적 인내심을 키워주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 (약 1: 2 -4 참조).
     셋째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한다.

우리의 영적 여정(旅程)은 때때로 느리고 지루할 수 있지만, "피곤하지 않으시[는]” (시 40: 28)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에 하루씩 혹은 한 번에 한 걸음씩 여호와를 계속 따라가는데 필요한 힘을 기꺼이 공급(供給)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한 다음 그것에 대해 기도하려고 생각한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위의 구절들을 기초로 하여, 당신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모든 우상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로, 유일하신 하나님과 감히 비교 될 수 없다.                                         
  •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만물(宇宙萬物)을 지으신 창조주(創造主)가 되시며, 그의 모든 창조물들을 주관하신다.              
  •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며 앙망하는 자들에게 새 힘을 주신다.       

 

당신의 삶을 살펴보고, 당신이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있는 것들로 잠재적인 우상들이 무엇인지 찾아보십시오.
그 같은 우상을 하나씩 발견할 때, 당신의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삼으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반원들과 함께 이사야 40장 31절을 암송하십시오.
신자들이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그것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토론하십시오.
반원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서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공부

우리는 11월 말까지 이사야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유일한 구약의 책이자 (7: 14)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종임을 예언한 책이 되고 있습니다 (52: 13- 53: 12).
이사야서를 학습하게 되면, 이사야서가 구원의 교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예배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방법이 됨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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