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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9월 27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4과  

 

 

하나님은 통치하신다               

 

 

학습구절: 이사야 23장 8절부터 18절까지   

 

성경진리:

하나님은 나라와 권세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주요교리: 성부 하나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그의 은혜의 목적에 따라 우주와 그의 피조물들과 인류 역사의 흐름을 그의 뜻에 의한 보살핌으로 다스리신다.   

 

암송구절:  이사야 14장 24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은 반드시 이루리라  

 

“The LORD Almighty has sworn,

 ‘Surely, as I have planned, so it will be,

 and as I have purposed, so it will happen.’”       

 

 

시작하는 글:  

 

역사를 통해, 우리는 독재자들이나 폭군들 및 기타 지도자들이 국가 또는 지역을 장악하는 것을 보아오고 있다.

당시에, 그들 지도자들과 그들이 이끄는 집단들의 일부는, 더 많은 권력을 잡게 되면서 끝없는 교만에 차서 무적인 것처럼 보였다.

선지자 이사야 당시에, 드로와 시돈은 지중해 연안의 베니게 지역에 위치해 있던 해안 도시들로 거대하고 강력한 금융제국이 되고 있었다.

인간의 눈에는, 그들이 천하무적(天下無敵)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는 필적(匹敵)이 되지 못했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와 권세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다스리신다.

 

누가 진정으로 통제권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배경설명

 

이사야 13장 1절부터 23장 18절까지

 

금주의 학습구절인 23장 8절부터 18절까지는 이사야서에서 “주변의 작은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혹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불려지고 있는 말씀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  

이사야서에서 이 말씀들이 어떤 중요성이 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주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에 대한 심판(審判)과 궁극적(窮極的)인 회복(回復)을 약속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의 자연적인 질문(質問)은 주변 국가들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 같은 회복이 가능할 것인가 이다.  

유다의 아하스 왕은 앗수르와 북방 왕국들의 위협이 다가오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믿지 않았다.

심지어, 유다 주변에 인접하고 있는 에돔이나 모압, 및 블레셋 같은 작은 나라들까지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유다의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그러한 장벽들을 극복 할 수 있을 것인가?

주변 국가들의 적대에 직면하게 될 점들을 감안할 때, 이사야 9 장에 묘사되고 있는 것과 같은 메시야 왕국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고대 근동의 공통적인 믿음을 이해하면, 그러한 우려를 이해하기가 더 쉽다.

고대 근동에서, 신들은 지역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고대 근동의 다양한 국가의 신들은, 자기 본거지(本據地)에서 멀어지면 힘이 점점 약해지면서, 자기 앞마당에서 가장 강한 것으로 믿어졌다.

당시 사람들은 또한 국가들이 싸울 때, 그들의 신들이 적대 국가의 신들과 맞서서 그들을 위해 싸우는 것으로 믿었다.

그 같은 관점에서, 신들은 그들이 후원하는 국가들처럼 이기거나 질 수도 있었다.

그 같은 문화적 맥락에서, 유다 백성은 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그 지역의 다른 신들과 같은 범주에다 놓고 하나님이 정말로 그들을 구출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었다.      

     13장부터 23장까지는 이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응답이 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의 하나님이 다른 나라들을 심판할 수 있고 또 심판하실 것이라는 증거로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사야가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려고 했던 근본적인 진리는 하나님은 단지 유다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의 하나님과 (그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모든 창조 질서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열방에 대한 경고는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에 대한 증거였다.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선언으로 시작하여 두로에 대한 심판으로 끝나고 있다.

이 장소들을 열방에 대한 경고의 시작지점과 마지막 지점으로 택한 것은, 바벨론이 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두로가 서쪽의 지중해 해안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세계적으로 유다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지역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경고의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각 나라는 특정한 악행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바벨론에 대한 경고는 자기세력확장(自己勢力擴張)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두로에 대한 경고는 도시의 엄청난 부(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이 될 뿐 아니라, 그것은 또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의 경고를 담고 있다.

그들은 권력, 부, 세상적인 지혜와 같은 주변 국가들의 가치를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여호와만이 진정으로 신뢰할 가치가 있다.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공의를 수행하시며 이사야 9장부터 12장에 약속된 메시야 왕국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이사야 23장 8 -12절)  

 

이사야 23장 1절부터 7절까지는 “두로에 관한 경고라”는 말로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소개하고 있다.

주요 항구 도시였던 두로는 국제적인 무역 중심지였으며 육지로나 바다로 공격하기 어려운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화된 도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두로의 몰락이 분명하게 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사야 23장 8절

  •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8절 전체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핵심은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는 말이다.

이 일”이란 말은 이사야의 관점에서 볼 때 미래의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는 모든 가나안의 성읍들에 대해 선포 하신 멸망을 두로가 겪을 때를 가리키고 있다 (23: 11; 레 18: 24 -25 참조).

앗수르 군대는 기원전 722 년에 북왕국인 이스라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했을 때 두로를 공격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두로를 포위하고 공격만하다가 정복하지 못한채 5년 후에는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주전 6세기의 선지자인 에스겔은 나중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군대를 이끌고 두로를 치러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겔 26: 1 -14 참조).    

그들은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파괴 한 후에 두로를 침공(侵攻)하였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13년 동안이나 섬 요새를 포위했지만 두로를 정복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북 왕국과 유다의 남 왕국을 점령한 두 강력한 제국이 두로를 복종시킬 수 없었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에스겔 선지자보다 약 150년 전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는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두로에 대한 심판을 계획하실 수 있음을 예언하며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두로에 대해 세 가지로 묘사하였다.

     첫째로, 두로는 “면류관을 씌우던 자”로 불렸다.

그 같은 묘사는 두로를 왕의 성공을 거두게 하거나 무너뜨릴 수 있는 부유하고 강력한 도시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두로의 광범위한 국제적 영향력(影響力)은 군사적이나 정치적인 것보다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둘째로, 이사야는 두로를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라는 말로 묘사하였다.

한편으로, 이 표현은 두로가 귀족적인 무역중심지가 되어서 다른 나라들이 무역거래들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었을 때 많은 경우 귀족들이나 왕족의 아들들을 보냈던 것을 뜻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 말은 두로의 상인들이 왕족처럼 여겨졌거나 취급되었다는 것을 의미 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 표현은 두로의 상인 계층의 강력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로, 이사야는 두로를 “무역상들이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 되고 있는 상업도시로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두로의 상인계층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많은 국가들이 두로의 운명에 따라 얻거나 잃을 것이 많았다.

따라서, 이사야는 그 같은 두로의 멸망을 계획 할 만큼 강력한 분이 누구인지를 그의 백성들이 생각하기를 원하였다.

이사야는 그 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고 묻는다.     

 

이사야 23장 9 -10절

  •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는 9절의 말은 이사야 선지자가 8절에서 제기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직함은 하나님을 천사들(슥 14: 5; 계 19: 14)이나 하늘의 별들(사 40: 26)로 표현되고 있는 하늘의 군대를 지휘하는 최고 사령관으로 묘사하는 말이 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두로가 누리던 모든 영화를 “욕되게 하[실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교만한 자가 멸시를 받게” 하실 것이다.

     10절은 번역하기가 어려운 구절로, 성경해석자들은 그 의미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다시스”는 스페인에 있던 장소일 가능성이 크며, 무역 세계에서 가장 먼 지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곳은 바로 요나가 욥바에서 배를 타고 하나님의 뜻을 피해 도망가려고 했던 장소이다(욘 1: 3).  

실제로, 다시스는 고대 근동 세계의 끝자락이 되었다.

다시스와 두로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지중해를 통한 무역이었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말은 ‘속박함’이라는 히브리 단어가 ‘항구’라는 뜻도 되기 때문에, “이제 너에게는 항구가 없으리라”는 말로도 번역되고 있는데 (표준 새 번역), 그 말은 다시스가 무역으로 더 이상 두로에게 얽매이지 아니할 것이라는 뜻이 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번역하든 간에, 그 말에 담겨있는 뜻은 무역거래가 더 이상 선택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드로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도시 및 항구들과의 무역 관계는 끝날 것이다.

     “나일 같이 너희 땅이 넘칠지어다”라는 말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하나의 속담이 되었을 수 있다.

나일강의 정기적인 홍수는  애굽의 생존과 경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주변 땅들은 매우 건조했으며 거의 사막지대였다.

애굽의 농업은 나일강의 홍수에 떠밀려 내려오는 기름진 토사(土沙)와 물이 없이는 존속할 수 없었다.

이 큰 강에서 매년마다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홍수는 당시 두로가 있던 베니게 지역은 물론 가나안 지역과 북쪽 근동지역에까지 모든 사람에게 널리 잘 알려져 있던 친숙한 일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문 구절에서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라고 한 말은 두로 사람들이 침략군을 피하여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고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두로에서 더 이상 장사를 할수 없었고, 주요 물품들을 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농촌지역으로 흩어졌던 것이다.

 

모든 나라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펴신 강한 손 앞에서 무력하다.

 

이사야 23장 11 -12절 

  •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그의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령을 내려 그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 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다시스와 다른 나라들에게 진짜 문제는 그들이 두로의 몰락을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알고 있느냐의 여부였다.

해안 국가들에게 바다는 침략군을 막을 수 있는 보호막은 될 수 있었지만,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왕과 제국의 흥망 성쇠를 다스리시는 바로 그 하나님은 “바다 위에 그의 손”을 펴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라는 말에서는 병거부대를 이끌고 추격하는 애굽의 바로 군대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 바다를 갈라 놓은 하나님의 능력이 암시되고 있을 수도 있다 (출 14: 21 -28 참조).

두로의 부(富)의 수단과 방법이 되고 있던 바다는, 여호와의 강한 손 아래서 아무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 바다로 연결되어 두로와 무역 동업을 하고 있는 나라들은 뒤흔들릴 정도로 놀라움을 당할 것이며 두로의 몰락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더욱이, 여호와께서는 명령을 내려 베니게의 “견고한 성들[이] 무너뜨[림을 당하게]” 하셨다.

     두로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은 북쪽의 “시돈”이었다.

시돈”은 두로에서 약 25마일 정도 북쪽으로,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었다.

자매 도시처럼, 시돈도 큰 부와 영향력을 가진 해양 상업 중심지였다.

주전 9세기에 사역했던 엘리야 선지자 당시에, 북 왕국인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은 두 왕국 사이의 불경건한 결속관계를 맺기 위해 시돈 왕의 딸인 이세벨과 결혼을 하였다 (왕상 16: 31).

시돈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시돈은 “다시는 희락”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사야는 시돈을 가리켜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라고 부름으로, 시돈이 겪을 고통을 “처녀”가 폭력과 학대를 받은 것에다 비겼다.

     본문에서 “깃딤”으로 번역된 키프로스(Cyprus)는 시돈의 북서쪽으로 약 150마일 떨어져 있는 지중해의 섬나라이다.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는 말로, 이사야는 시돈과 두로의 시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그 섬으로 도망친 하나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회피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사야는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의로 그의 세상을 감독하시는 것을 믿을 수 있다.

많은 경우, 주위를 둘러보며 악한 통치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대로 하며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시는지 궁금해 한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통치자들과 국가들이 그의 거룩한 기준에 책임을지게 하실 것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밝혀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시간표에 맞추어 일하시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의 완벽한 시간표에 따라 일하고 계신다.    

           

당신은 당신 삶의 구조(構造)와 제도(制度)를 어떤 방식으로 신뢰해오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공의로 어느 날엔가 당신의 도시나 나라를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관련하여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당신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활동하신다 (이사야 23장 13 -14절)

 

이사야 23장 13 -14절:

  •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그 곳을 들 짐승이 사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하게 하였느니라
  •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의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두로와 시돈의 상인들과 통치자들이 여전히 그들의 도시가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은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일어난 최근의 역사적인 사건에 유의할 필요가 있었다.

수도인 바벨론의 이름을 따서 바벨론으로도 알려지고 있던, “갈대아 사람의 땅”은 종종 가나안 땅을 포함한 중동지역의 대부분을 지배(支配)하였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 바벨론 북쪽에 있던 “앗수르 사람”들이 “갈대아 사람”들을 패배시킨 후 서쪽으로 아람 왕국(시리아)과 북 왕국인 이스라엘, 그리고 남 왕국인 유다를 향해 지배권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왕하 18장).

그러므로, 갈대아 사람들은 더 이상 지배세력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 사람이 그 곳을 들 짐승이 사는 곳이 되게 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앗수르 사람들이 도성 바깥에 흙 언덕을 쌓고 성을 공격하여 “궁전을 헐어 황무하게 하였[다]”고 한다.  

가장 파괴적인 포위 공격은 주전 689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바벨론 성을 정복하고 파괴한 일이 되고 있다.

     이사야는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는 말로 시작했는데(23: 1), 14절에서 똑같은 말로 마치고 있다.

배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불리고 있는데, 그것들은 항구와 무역의 손실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 되고 있다.

두로는 높은 벽으로 둘러 쌓인 “견고한 성”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두로는 역사적으로 여러 번 포위 당했으며, 매번 손실을 입었다.

도시의 일부는 섬으로 된 요새였기 때문에, 주민들은 잃었던 것을 되찾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업을 재건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주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은 도시의 폐허가 된 부분의 잔해를 사용하여 해안에서 섬 요새까지 둑길을 만들어 포위 할 수 있었다.

그의 포위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알렉산더는 그 큰 도시를 무너뜨렸고, 그 이후로 두로는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당신의 일생 동안에, 세계적인 혹은 국가적인 어떤 주요 사건이 당신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당신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다 (이사야 23장 15 -18절)

 

이사야 23장 15 -16절:

  •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그날부터”라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한 때를 가리키고 있다.

선지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날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미래의 대략적인 때가 되고 있다

이사야는 특정한 달력 날짜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고 있는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확실성과 증거는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한때 자랑스럽고, 부유하고, 영향력 있던 도시는 역사 책에 나오는 희미한 기억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성경 학자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칠십 년 동안”을 몇 가지 가능성으로 제안해 고고 있다.

한 가지 제안은 기원전 7세기에 앗수르가 지배했던 시기와 관련되고 있다.

또 다른 제안은 그 기간이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 된 후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생활을 한 70년과 대략 일치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는 말로 두로가 회복될 것을 예언한다.

장차 두로가 회복될 것에 대한 그의 예언의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사야는 앞 구절에서 언급한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였다.

그 노래는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라는 말로, 전성기가 지나가 버리고 잊혀진 창녀를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이전의 고객들은 더 이상 그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수금을 집어 들고 일종의 음악가로서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주의 끌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노래가 두로에 대해 암시하고 뜻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에, 두로의 거래자들은 더 이상 두로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부를 손실함으로, 두로는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다.

노래의 “잊어버린 바 [된 창녀]”처럼, 두로는 두루 다니며 주의와 관심을 끌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사야는 두로의 회복을 말하면서 왜 두로를 창녀에다 비유했을까?

히브리 선지자들은 종종 우상 숭배를 성적 부도덕의 개념에다 연결시켜 정죄하였다 (호 4: 12 -14 참조).

가나안 땅의 도시의 하나였던, 두로는 우상 숭배와 이교도의 다산 의식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사야 23장 17 -18절:

  •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이사야는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라고 한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점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되고 있다.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아 주심으로 인하여 두로는 옛날처럼 다시 해상무역을 하게 될 것이다.

창녀를 비유로 삼았던 이사야는 두로가 다시 여러 나라들과 해상무역과 상거래를 하는 것을 “열방과 음란을 행[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상거래를, 특별히 우상을 섬기는 이방나라들과의 거래를 죄로 여기신다는 뜻은 아니다.

공정하고 공평한 사업은 생존과 서로 돕는 수단으로 성경에서 선한 일로 인정되고 있다.

여기 이사야 23장 17절에서의 문제는 물질에 대한 두로 주민들의 동기(動機)가 되고 있다.

그들의 주요 목표는,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지만, 부유해지고 독자적으로 강력 해지는 것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부와 그것이 가져 오는 힘을 신뢰하려는 인간의 경향과 교만을 지속적으로 정죄한다.

     그런데, 23장 18절은 하나님의 심판 후에 두로 사람들이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라고 한다.

이사야는 두로에 대한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어쩌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할 때 참여하였는데, 그 때 이 예언이 일부 성취되었을 수 있다 (스 3: 7 참조).

선지자 학개도 모든 나라의 보배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득 차 영광을 나타낼 날이 올 것에 대해 말하였다 (학 2: 6 -9).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은 공의롭다.                                     
  •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을 능동적으로 이끄신다.            
  • 하나님의 계획에는 모든 나라들이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포함되고 있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는 상황을 열거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을 실행해 나가실 때, 당신에게 통찰력을 주셔서 그를 신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번 주에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취할 행동 한 가지를 적어보십시오.
그 행동이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 되는 지를 확인하십시오.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공부

우리는 11월 말까지 이사야서를 공부합니다.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유일한 구약의 책이자 (7: 14)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종임을 예언한 책이 되고 있습니다 (52: 13- 53: 12).
이사야서를 학습하게 되면, 이사야서가 구원의 교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예배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방법이 됨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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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 - 제 4과 - 2020년 12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장 25 -38절 강호길 2020.12.20 109
277 선포된 메시야의 탄생 - 제 3과 - 2020년 12월 2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장 4 -19절 강호길 2020.12.13 80
276 인간으로 태어나신 메시야 - 제 2과 - 2020년 12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장 26 -38절 강호길 2020.12.05 104
275 하나님의 구속계획 - 제 1과 - 2020년 12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장 13 -25절 강호길 2020.12.01 93
274 하나님은 회복시키신다 - 제 13과 - 2020년 11월 2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65장 17 -25절 강호길 2020.11.22 140
273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 제 12과 - 2020년 11월 2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58장 1 -12절 강호길 2020.11.15 144
272 하나님은 의롭게 하신다 - 제 11과 - 2020년 11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53장 1 -12절 강호길 2020.11.08 158
271 하나님은 위로하신다 - 제 10과 - 2020년 11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49장 1 -13절 강호길 2020.10.31 304
270 하나님은 행하신다 - 제 9과 - 2020년 11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46장 3 -13절 강호길 2020.10.26 72
269 하나님은 새롭게 하신다 - 제 8과 - 2020년 10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40장 18 -31절 강호길 2020.10.18 75
268 하나님은 들으신다 - 제 7과 - 2020년 10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37장 14-20, 30-35절 강호길 2020.10.11 60
267 하나님은 보호하신다 - 제 6과 - 2020년 10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31장 1-9절 강호길 2020.10.04 487
266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 제 5과 - 2020년 10월 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25장 1-10절 강호길 2020.09.27 205
» 하나님은 통치하신다 - 제 4과 - 2020년 9월 2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23장 8-18절 강호길 2020.09.20 70
264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 제 3과 - 2020년 9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7장 7-17절 강호길 2020.09.13 958
263 하나님은 보내신다 - 제 2과 - 2020년 9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6장 1-13절 강호길 2020.09.07 281
262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 - 제 1과 - 2020년 9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1장 10-20절 강호길 2020.08.30 62
261 관계를 위한 투자 - 제 13과 - 2020년 8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아가서 5장 6-16절 강호길 2020.08.22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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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명예를 귀중하게 여기는 지혜 - 제 11과 - 2020년 8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잠언 31장 10 -16, 23 -31절 강호길 2020.08.08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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