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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19년 12월 29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제 5과

 

 

하나님은 부르신다        

 

 

학습구절: 민수기 22장 22 -35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의 목적을 나타내게 하신다.         

 

주요교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모든 인간의 행동과 신조 및 종교적 견해를 가늠하는 최고의 표준이다 (시 19: 7-10).     

 

암송구절:  민수기 22장 38절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Well, I have come to you now,” Balaam replied. “But I can’t say whatever I please. I must speak only what God puts in my mouth.”  

   

 

시작하는 글:

 

진실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고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진실을 말하도록 요청을 받을 경우, 그같이 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면 어떻게 할까?

진실이 이웃이나 동료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나게 만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그 같은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모든 진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시킬 방법을 모색하려고 들 수 있다.

한 예로, 우리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정이나 두려움 혹은 다른 어떤 요소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무엇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다 말하게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가?

그것이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본문배경설명

 

민수기 22장 1절부터 25장 18절까지  

 

      민수기 22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지역을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모압 평지에 진을” 친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모압 사람들은, 자연히, 자기의 국경을 침범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해 심히 두려워하며 번민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아모리 족속에게 행한 모든 것을 목격한(민 21: 21 -35)   모압 왕 발락은 초자연적인 도움을 구하려고 하였다.

22장은 또한 우리들에게 “브올의 아들 발람”을 소개시켜준다.

그는 유브라데 강 가에 거주하는 사람이었는데, 예언을 하며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름이 나있었다.

그래서, 에돔 왕인 발락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하늘의 힘으로 이스라엘과 싸워 이길 수 있게 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발락은 신하들을 발람에게 보내어 ‘와서 이 백성을 저주하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이 그같이 행하는 것을 막으셨으며, 발람은 모압에 가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민 22: 12 -18).

그러나, 발락이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어” 다시 간청했을 때, 하나님은 발람에게 “일어나 함께 가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고 하셨다 (민 22: 20).

그러자 발람은 모압으로 떠났다.

    발람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되고 있다.

그는 유브라데 강 서쪽의 수리아에 있던 “브돌”(Pethor)이라는 마을 출신이었다 (민 22: 5).

브돌”이라는 이름은 ‘점쟁이’를 뜻하였다.

그러면서도, 발람은 발락의 신하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말하리라”는 말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22: 8).  

그는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 (민 22: 18).

이야기의 일부에서, 그는 경건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발락의 사신들에게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고 하였다 (22: 18).

그는 심지어 여호와를 “내 하나님”으로 불렀다 (22: 18).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은 그가 여호와의 참 예배자가 아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민 31: 8, 16; 신 23: 4 -5; 수 24: 9 -10).  

 

 

학습구절 연구

 

세 번의 사건이 주는 교훈 (민수기 22장 22 – 27절)

 

발람은 당시 신의 능력을 받아 그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 것]으로 크게 알려져 있던 예언자였다 (22: 6).

더욱이 그는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던 유브라데 강 출신으로 (22: 5),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인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22: 8).

그런데, 모압 왕 발락은 바로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를 내리게 할 목적으로 (22: 6) 발람을 불렀던 것이다.  

발락의 요청을 받은 발람은 발락에게로 가기로 하였다.

발람이 나귀를 타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모압으로 갈 때, 하나님은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발람에게 “진노하시므로” 사자를 보내어 그가 가는 길을 막게 하셨다.

발람의 당나귀만이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처음에는 길에서 벗어났고, 두 번째는 주인인 발람이 돌 벽에 부딪치게 하였으며, 세 번째는 땅에 주저 앉고 말았다.

천사를 보지 못한 발람은 그때마다 채찍으로 나귀를 때리는 것으로 반응하였다.

 

민수기 22장 22절

  •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발람이 나귀를 타고 모압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그가

가는 길에 갑자기 나타났는데, 나귀만 그 천사를 보았다.
그 같은 일이 세 번에 걸쳐 일어난 후에,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열어주셔서 나귀가 말하였다.

      우리는 이 구절의 부수적(附隨的)인 세부 사항들은 어떤 기준이나 표준을 세우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는 천사나 동물에 관한 어떤 교리적인 면을 설정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짐승이 천사를 볼 수 있다거나 때로는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귀가 천사를 볼 수 있었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나귀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그같이 할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다음과 같이 모압에 가서 예언을 하도록 허락하셨다: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민 22: 20).  

그렇지만, 22절부터 27절까지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이 모압으로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 같이 보이고 있다.

22장 22절은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민수기 22장 23 -25절

  •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 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첫 번째의 이야기에서 (23 절), 천사는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발람이 가는 길에 서 있었는데, 그것은 위협적인 방법으로 막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을 보고 나귀는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 갔다.

천사를 볼 수 없었던 발람에게 그것은 이해되지 않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발람은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 하였다.

    두 번째의 이야기에서 (24 -25절),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의 좁은 길에 서 있고 좌우에는 돌담이 둘러있었다.

나귀가 필사적으로 천사를 피하려고 한 나머지 발람은 발이 담벽에 세게 부딪치게 되었고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발람은 다시 나귀에게 “채찍질” 하였다.  

    

민수기 22장 26 -27절

  •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세 번째의 이야기에서(26 -27절), 여호와의 사자는 앞으로 좀더 나아가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서 있었다.

천사가 그같이 서 있는 것을 본 나귀는 땅에 엎드리어 아예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발람은 화가 나서 나귀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짐승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쉽게 화를 내며 나귀를 계속 때린 것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이 되고 있다.

그는 쉽게 화를 낼 뿐 아니라, 짐승이라 할지라도 약자에게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신중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다루고 계셨던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앞에서 발람에게 모압으로 가도록 허락하셨는데 불구하고 (22: 20), 22절은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 이 이야기의 마지막인 34과 35절에서는,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내가 범죄하였나이다”고 하면서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목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고 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하셨다.

그 같은 사실들 미루어볼 때, 발람이 발락의 왕궁에 가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우리는 발람이 가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말하거나 행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니면 하나님은 발람에게 어떤 교훈을 가르치려고 하였을 수 있다.

     성경에서, 어떤 일이 세 번에 걸쳐 일어날 때, 그것은 어떤 일을 진정으로 신실하게 행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거나 철저하게 교훈시키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열왕기상 17장 21절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죽은 아이의 몸 위에 세 번씩이나 엎드려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생명을 살려주시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지를 나타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무릎을 끓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경외심과 신실함을 표현하였다 (단 6: 10).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한 일은 (마 26:75), 그가 믿음의 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인간이라는 교훈을 철저하게 깨우쳐 주는 일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그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요한 복음 21 장) 주님의 교회의 양들을 치는 목자로서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김으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도록 베드로의 마음에 철저하게 교훈을 깨우쳐주는 일이 되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이 가는 길을 세 번씩이나 막았을 때, 그것은 발람에게 어떤 교훈을 깨우쳐 주는 일이 되었을까?

 

하나님은 발람에게 계시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 온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여호와의 사자와 나귀 사이의 세 번에 걸친 사건이 있기 이전과 이후에 똑같이, 하나님은 발람에게 발락의 왕궁에 가서 그가 전하는 말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하라고 하신 것만을 말해야 한다고 지시 하셨다.
발락 왕은 발람이 위대한 선견자라고 믿었지만, 하나님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가 볼 수 없는 계시를 나귀에게 주실 수 있었다!
세 번에 걸쳐 일어난 사건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발람을 강제로 돌려보내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계시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예언자를 한 놀림감으로(표준 새 번역 -22: 29), 나귀를 예언자로 바꾸실 수 있으시다.

발람은, 발락 왕이 어떤 많은 보상금을 주며 유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대본을 고수해야 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교훈이 때때로 세 번씩이나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고 있는가?

 

두 가지 질문에 담긴 교훈 (민수기 22장 28 -30절)

 

하나님은 발람의 나귀의 입을 열어주셔서 주인의 화난 행동에 대해 질문을 하게 하셨다.

이 이방인 예언자는 그의 짐승의 특이한 행동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 혹은 방법으로 여겼어야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 되고 있다.  

그런데, 발람이 나귀의 행동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있는 것과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것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강한 결의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수기 22장 28 -30절

  •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나귀는 발람에게 묻기를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고 하였다.

이상하게도, 바람은 나귀가 말하는 것에 너무 놀라서 뒤로 넘어지는 대신에, 나귀와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발람은 나귀가 자기를 “놀림감” 혹은 ‘바보’로 만들었다고 하였다 (표준 새번역 22: 29).  

그러므로, 발람은 나귀의 행동을 고의적이고도 모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발람은 화가 나서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고 하였다.

 

논쟁(論爭)의 결과는 나귀의 승리였다.

 

    발람과 나귀는 서로 화가 나서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주장하면서 직설적(直說的)인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결과(結果)는 나귀의 승리였다.

나귀는 주인에게 물었다:

“나는 당신이 오늘 날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 말은 나귀가 결코 거칠게 행동하거나 발람을 해치는 법이 없이, 항상 충성스러운 피조물이 되었던 것을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발람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화가 나서 나귀를 때리기 보다는 왜 나귀가 그렇게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마땅하였다.

나귀의 질문에 대한 발람의 간략하고도 무뚝뚝한 “없었느니라”고 한 대답은 나귀의 말이 옳은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있다.

아마도 발람이 나귀와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발람에게 계시해 주셨던 것이다.

발람은 성경에서 문제가 되는 인물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발람이 나귀에게 “없었느니라”고 한 대답은 나귀가 옳았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무조건적인 인정이 되고 되고 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認定)한 다음에야,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우기 시작할 수 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예수님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기적들과 치유들을 베푸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그리고 죄인들과 사귀는 문제에 관해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려고 했지만, 결코 예수님의 반론에 대답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말로 덫을 놓아 예수님이 율법적으로 오류를 범하여 함정에 빠지게 하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하려고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썼지만, 오히려 예수님의 대답은 항상 그들을 그들을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였다.

그들은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이 옳다”고 말한 적이 결코 없었다.  

대신에, 그들은 더 깊이 파고 들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셨을 때, 그들은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비록 특별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바리새인으로서 예수님에 관해서 자신이 틀렸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겪은 일 이후에,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가졌던 모든 것이 거짓된 것이며 교회에 대해 행한 모든 일은 악한 일임을 인정하였다.

자신의 생을 마칠 때까지,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자신이 말로, 생각으로, 그리고 몸으로 행한 모든 잘못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생의 후기에 쓴 서신의 하나인 디모데서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하면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하였다 (딤전 1: 15).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그같이 깨닫고 인정했을 때, 그는 놀라운 사역자가 되었다.  

바울은 교회 역사에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초대 유대인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그같이 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켰다.

예수님 이후 다른 어떤 사람보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신학을 형성하고 구체화 시켰다.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삶을 돌이켜 보고 자신이 잘못되었던 것을 분명하고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잘못을 인정할 때 어떻게 관계가 고쳐질 수 있는가?

그것은 회개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한 가지 견해가 밝혀주는 교훈 (민수기 22장 31 -35절)

 

하나님은 발람의 눈을 밝혀주셔서 그를 막고 있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게 해 주셨다.

발람은 두려움에 차서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고]”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자백하였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에게 모압으로 계속 가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르신 말만 전달하라고 지시하였다

 

민수기 22장 31  -35절

  •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마침내 하나님은 발람이 천사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순종의 표시로 머리를 숙이고 땅에 엎드렸다.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에게 그의 니귀가 물은 것과 똑같이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말하기를,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천사는 발람의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다]”고 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악한 것은 발람이 모압에 가고 있는 단순한 사실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모압에 가는 것을 이미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22: 20).

천사는 또한 발람이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고 했을 때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하면서 발람이 발락 왕에게로 가는 것을 재확인해 주었다 (22: 34 -35).  

그러면, 문제는 무엇일까?

발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말하면서도 발락을 기쁘게 하여 큰 돈을 벌 수 있는 말을 하려는 이중적인 전략을 강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길을 가면서 겪은 경험과 교훈으로 인하여, 발락은 이제 그것이 하나님께 사악한 일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발락에 도착했을 때, 그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 어만 하였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발람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모든 힘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말할 어떤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는 꼭 재능 있고 위대한 선지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나귀라도 그 일을 잘 하게 하실 수 있다.

아무도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삶의 밑바닥에 있었을 때, 엘리야 선지자는 마치 자신은 쓸모 없는 사람처럼 말하였다.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맹세했을 때,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도망을 친 후에, 자기 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있는 신실한 유대인 자손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열왕기 상 19장 10절에서 하나님께 하소연하기를,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고 하였다.   

그는 삶에 대한 모든 관점과 전망을 잃었고, 이로 인하여 심각한 자살 우울증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는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왕상 19: 4).

이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신실하고 바알에게 절하기를 거부 한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셨다.

 

없어서는 안될 사람은 없다.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침례 요한이 한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러 그에게 왔는데, 그들은 진정한 회개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지위를 더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열망하고 있었다.

침례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로 부르며 말하기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경고하기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였다 (눅 3: 7 -8).

     발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였고 어떤 면에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한 탐욕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였다.

계시록 2장 14절에 의하면, 그는 한 때 사악한 일을 행하기도 하였다.

발람과 같은 경우로, 신약에서 가장 가까운 예를 둔다면 마술사 시몬을 둘 수 있다. 

그는 돈을 주고 성령을 사려고 하였다 (행 8: 9 -24).

그렇지만, 발람은 모압으로 가는 동안에 중요한 교훈을 배웠고,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하였다.

우리도 그가 겪은 일에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뜻 안에 거하도록 경계선을 정해주신다.    
  • 하나님은 어떤 방법이나 수단을 사용하시거나 통해서든지 인간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
  •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겸손한 종으로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경 공부 반원들과 함께 하나님의 경계선 안에서 생활하는 일에 대해 서로 책임을 지게 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해 보라.
서로가 그들 경계선들 안에 거하도록 좀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하면 성경말씀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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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5 헌신적인 삶을 살라 - 제 11과 - 2020년 5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2장 1 -2, 9 -18절 강호길 2020.05.02 40
244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 제 10과 - 2020년 5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1장 17 -32절 강호길 2020.04.26 58
243 구원을 받다 - 제 9과 - 2020년 4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0장 5 -15절 강호길 2020.04.19 36
242 보증 받은 구원 - 제 8과 - 2020년 4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8장 12 -25절 강호길 2020.04.12 34
241 부활하시다 - 제 7과 - 2020년 4월 1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 12절 강호길 2020.04.04 15
240 자유함을 얻다 - 제 6과 - 2020년 4월 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6장 1- 14절 강호길 2020.03.31 41
239 화평을 누리자 - 제 5과 - 2020년 3월 2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5장 1- 11절 강호길 2020.03.22 23
238 의롭다 하심을 얻다 - 제 4과 - 2020년 3월 2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3장 21절 – 4장 3절 강호길 2020.03.16 14
237 의인은 없다 - 제 3과 - 2020년 3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2장 17 - 29절 강호길 2020.03.08 21
236 유죄 판결 - 제 2과 - 2020년 3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장 18 -7, 13 -17절 강호길 2020.03.02 28
235 복음에 사로 잡힌 삶 - 제 1과 - 2020년 3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장 1 -7, 13 -17절 강호길 2020.02.22 44
234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 - 제 13과 - 2020년 2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신명기 32장 48 -52절; 34장 4 -7절 강호길 2020.02.18 47
233 선택의 삶 - 제 12과 - 2020년 2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신명기 30장 1 -10, 19 -20절 강호길 2020.02.09 67
232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다 - 제 11과 - 2020년 2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신명기 18장 15 -22절 강호길 2020.02.01 53
231 하나님을 사랑하라 - 제 10과 - 2020년 2월 02일 주일 용 - 신명기 6장 1 -13절 강호길 2020.01.28 66
230 영광을 돌리다 - 제 9과 - 2020년 1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신명기 4장 1 -9절 강호길 2020.01.19 48
229 소중하게 여기다 - 제 8과 - 2020년 1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신명기 5장 17절; 19장 4 -13절 강호길 2020.01.12 32
228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 제 7과 - 2020년 1월 1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32장 20 -32절 강호길 2020.01.04 28
227 하나님은 위임(委任)하신다 - 제 6과 - 2020년 1월 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27장 12 -23절 강호길 2019.12.25 17
» 하나님은 부르신다 - 제 5과 - 2019년 12월 2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민수기 22장 22 -35절 강호길 2019.12.2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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